# 338
<귀환무사 338화>
귀환무사 2부
113화
“껄껄껄! 당신이 아이언 기사단의 수장이라는 폭스 후작인가 보군? 껄껄! 소문대로 충성심이 대단하구먼, 크허허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전혀 거침이 없는 레이놀드 백작의 태도에 카르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명백한 도발 행위였다.
엉뚱하게도 이상한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케이론 제국의 기사들은 잔뜩 긴장감을 드러낸 채, 여차하면 검을 뽑을 태세였다. 그들도 레이놀드 백작의 태도가 의외였던지 조금은 당황하는 빛을 보이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크로우 기사단의 부단장인 아벨이 넘어올 수 없는 선을 넘어 버리는 말을 쏟아 냈다.
“후후! 산돼지처럼 생겨 먹은 놈이 입도 꽤 거칠구나.”
카르스마저도 그의 그 같은 발언에 깜짝 놀랐다. 아벨은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너희 케이론엔 불알 달린 황태자가 없으니 황태자에 대한 예의는 당연히 모르겠군. 이해한다, 돼지!”
“껄껄! 네놈은 누구냐?”
짐짓 호탕하게 웃었지만 레이놀드 백작의 얼굴은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성정이 과격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가 아니었던가.
좋게 끝나기는 그른 것으로 모두는 여겼다. 케이론 제국의 기사들도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카르스의 눈동자에 지독한 짜증이 담겼다.
여기서 싸우면 불가침 협정은 휴지 조각으로 변한다. 물론 그것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자신의 아버지, 황제 때문이다. 자신을 케논 산맥의 주둔군 사령관으로 보낸 것은 자신의 지도력을 제국의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인정받겠다는 황제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자신이 훌륭하게 임무를 다한다면 차기 황제를 놓고 자신과 케이시 공작을 저울질하고 있는 중도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유일한 약점인 경험 부족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황제도, 자신도 그것을 노리고 이곳에 온 것인데 여기서 싸우게 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카르스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벨! 물러서라!”
카르스의 날카로움에 아벨은 그를 흘긋 돌아보며 씩 웃었다.
“후후! 모욕을 참을 생각이오?”
“물러서라고 했다, 아벨!”
카르스의 단호한 어조에 아벨은 피식 웃으며 옆으로 물러섰다. 카르스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레이놀드 백작을 직시했다.
“모르고 그런 것이니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좋겠소, 백작!”
“흐흐! 이미 늦었지. 저 새끼 때문에 무척 화가 났거든…….”
“싸우겠다는 것인가?”
“못할 것도 없지.”
레이놀드의 태도로 보아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 버렸음이 분명했다. 카르스의 속내를 아는지 주변에 차가운 한풍이 몰아쳤다.
“좋다! 지금 이 시간부터 협정은 무효다. 아벨!”
“후후! 부르셨소. 전하!”
“그대들의 힘을 보고 싶군.”
“물러나계시오, 후후!”
카르스가 뒤로 물러나자 아벨이 느릿하게 앞으로 다시 걸어 나왔다. 다른 넷도 그의 옆으로 포진했다.
“돼지! 네놈이 테세우드의 오른팔이라고 들었다. 꽤 강하다고 소문났던데, 어디 실력 한번 볼까?”
“이름도 없는 놈을 죽이고 싶지는 않다. 정체가 뭐냐?”
아벨이 어깨에 둘렀던 검을 손에 쥐며 사악하게 웃었다. 유달리 흰 이빨이 마치 악마의 그것처럼 하얗게 빛을 발했다.
“크로우! 죽음을 대행하는 살인 집행자들이 우리지.”
* * *
쿵!쿵!쿵!
묵직한 소리에 이어 대지가 흔들렸다.
“뭐지?”
“뭔가가 다가오고 있어.”
양측은 공격할 태세를 중단하고 겨누었던 검을 내렸다.
우측 숲,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사방으로 날아오르는 부러진 나무들은 점점 옹고르 분화구의 가운데로 향하고 있었다. 진동은 갑주에 걸린 장식물이 소리를 낼 정도로 점점 강력해졌는데, 그곳에 가공할 속도로 자신들이 서 있는 곳으로 질주해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서로를 향해 달려들려고 자세를 잡았던 양측의 고개가 일제히 우측으로 돌아갔다. 순간 모두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피, 피해라!”
“저게 뭐냐? 피해라!”
후아악!
뜨거운 열기가 주변을 몰아치자 숲이 일시에 화염으로 휩싸였다. 갑주가 대번에 달아오를 정도로 강력한 화염줄기가 케이론과 요란 제국의 기사들을 덮쳤다.
콰아앙!
“으아악!”
화염이 떨어진 곳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졌다. 케이론의 기사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보통의 붉은색이 아닌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화염에 휩싸인 기사들은 아주 잠시 몸부림치더니 이내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주변은 인육이 타들어 가는 냄새로 가득했다.
“쿠오오!”
괴성이 울리며 거대한 무엇인가가 모두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정체를 확인할 시간조차 없이 엄청난 속도로 그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그것은 이내 옹고르 분화구의 능선을 넘어 사라졌다.
“저게, 도대체 뭐지?”
피아를 막론하고 모두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화염에 휩싸였던 기사들은 이미 한 줌 재로 화해 버렸다. 어지간했던 아벨조차도 경직된 얼굴로 괴물체가 사라져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또, 옵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공격을 준비하라!”
카르스와 레이놀드가 동시에 소리쳤다. 양측의 마법 병단이 동시에 마나를 끌어올렸다. 새까만 점이었던 것이 눈 깜박할 사이에 지척에 나타나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가공할 속도에 기사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쿠오오!
괴성에 수준이 낮은 일부 기사들이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허공을 날아오는 괴물체는 조금 전과는 달리 몸 전체가 붉은 화염으로 둘러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연상시켰다.
“공격!”
대마법사 율튼과 쉐인이 동시에 허공에다 대고 공격을 퍼부었다. 동시에 양측의 마법사들도 괴물체를 향해 일제히 손을 뻗었다.
허공이 거대한 화염과 빛들로 난무했다.
콰과과과광!
워낙 빠른 속도 탓에 공격의 일부만이 괴물체에 명중했다.
쾅!
“으아아!”
화염은 이번에도 케이론의 기사들을 덮쳤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지만 날아오는 속도가 그들의 상상을 넘어섰다. 상당수의 기사들이 화염에 휩싸여 참혹하게 죽어 갔다.
화염의 파편들이 요란 제국의 기사들을 덮쳤으나 그들은 재빨리 피해 버렸다. 소수 정예만을 데리고 왔던 탓에 하나같이 신속한 몸놀림을 보였다.
쿠오오…….
괴물체는 최초, 모습을 드러냈던 숲속으로 사라졌다.
쿵!
허공에서 무엇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거대한 철판처럼 생긴 그것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그 열기가 제법 떨어진 기사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카르스가 재빨리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엄청난 열기가 대번에 갑주를 뜨겁게 달구어 놓자 황급히 마나를 끌어올려 열기를 차단한 카르스는 눈에 힘을 주고서 화염 덩어리를 살폈다.
레이놀드 백작도 어느새 그의 맞은편에 내려섰다.
“놈의 몸에서 떨어진 것인가?”
“젠장! 설마 고대의 병기, 타이탄이라도 된단 말이야? 어떻게 이런 거대한 쇳조각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거지?”
“분명히 살아 있는 생명체의 움직임이었어…….”
둘은 처지를 잊고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다른 이들도 다가왔다. 그제야 둘은 조금의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머쓱한 표정의 레이놀드 백작이 얼굴을 실룩거렸다.
“싸움은 다음으로 미루지.”
“후후! 누구 마음대로…….”
아벨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싸우겠단 말이냐?”
“먼저 싸우자고 한 건 네놈들이지.”
“그만!”
카르스가 소리쳤다. 아벨의 눈초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카르스의 속내를 짐작한 것이다. 아벨을 슬쩍 쳐다본 카르스는 레이놀드 백작에게 힘주어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대들은 물러가라! 단, 저것은 본 제국이 가져가겠다.”
그는 여전히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철판을 가리켰다.
“저것을 넘겨주지 않으면 그냥 보내 주진 않겠다, 이건가?”
“싸우면 여기 있는 너희들은 모조리 죽는다. 조금 전, 화염이 떨어졌을 때, 그 정도는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다.”
카르스의 말이 옳았다.
레이놀드 백작도 그 부분을 이미 간파했다. 비록 수는 자신들이 앞서지만 상대는 하나같이 강한 자들만 추려서 온 정예임을 말이다. 싸우면 무조건 자신들이 필패다.
물론 다른 부대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도착하기까지 견뎌 낼 자신도 없었다.
‘놈들의 움직임은 결코 나보다 아래가 아니었다.’
레이놀드 백작은 크로우 기사단원들을 무겁게 응시했다. 괴물체의 난입으로 혼란스러웠던 순간에도 그들은 피하지 않고 괴물체를 공격할 기회만을 노렸었다.
순간순간의 몸놀림은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대단했었다. 피하기에만 급급했던 자신과는 달리 그들은 기어코 공격을 퍼부어 괴물체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철판을 뜯어내기까지 했다. 레이놀드 백작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다음엔 오늘과는 다를 거야, 돼지.”
아벨의 노골적인 빈정거림에도 레이놀드 백작은 등을 돌리고 걸음을 놓았다.
기사들이 그를 따랐다. 최후까지 자리에 남아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철판을 응시하던 대마법사 쉐인도 아쉬움을 접고 레이놀드 백작의 뒤를 따랐다.
“우리도 돌아간다!”
“그냥 가실 생각이오?”
아벨의 말에 카르스는 그를 돌아봤다.
“블랙 오우거보다 더 엄청난 존재를 발견하지 않았나. 일단은 저것으로 놈의 정체부터 알아내는 것이 시급하다. 그 자신감은 차후, 다시 빌리도록 하지.”
“우린 나중에 돌아가겠소. 볼일이 좀 있어서…….”
카르스의 눈썹이 슬쩍 치켜 올라갔다.
“별도로 움직이겠단 뜻인가?”
“후후! 블랙 오우거의 머리통 하나는 들고 가야 체면이 서질 않겠소? 게다가 놈들의 뼈도 좀 필요하고 말이오.”
카르스는 아벨의 성격을 안다.
오만하고 음습하면서도 잔인한 성격을 지닌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황제 외에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물론 황제가 그만한 힘을 그에게 보장한 탓도 있지만 압도적인 무력에서 오는 자신감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정확했다.
황태자인 자신뿐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공의 위치에 오른 숙부, 케이시 공작도 아벨에겐 처벌권이 없었다.
“좋네! 대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포기하고 돌아오게.”
“후후! 걱정해 주는 것이오? 이거 고맙군…….”
“걱정이라…… 그럴 수도 있겠군. 자! 우린 군영으로 돌아간다!”
카르스는 기사들을 이끌고 군영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벨의 입가에 싸늘한 비웃음이 걸렸다.
“허약한 놈…….”
“놈이 무능할수록 우리가 좋은 것 아닙니까?”
“후후! 그건 그렇지. 케이시도 슬슬 팔다리를 묶을 때가 되었으니 저놈만 대충 걸러 내면 황제도 어쩔 수 없이 우리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요란은 저절로 주군의 손에 떨어지겠지, 후후.”
“홀베른으로 간 아이들에게서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혹시…….”
아벨의 눈가에 슬쩍 짜증이 묻어난다.
“며칠을 더 기다려 본 뒤, 소식이 없으면 우리 모두가 그곳으로 갈 것이다.”
“모두 말입니까?”
“레어를 찾아서 드래곤의 심장을 얻어야만 주군께서 완벽한 힘을 얻으신다. 당연히 우리가 서둘러야지. 다만 홀베른에 제법 강한 놈들이 있어 마음에 걸린다만 대법을 펼치고 싸우면 우리에겐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