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
<귀환무사 337화>
귀환무사 2부
112화
제5장 의문의 괴물체
다음 날 아침,
기온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밤새 내린 눈은 군막의 중간까지 덮었는데, 여전히 엄청난 양이 쏟아지고 있었다.
툭!
군막을 젖히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지며 우드의 머리를 하얗게 덮었다. 눈을 털어 낸 우드는 주변을 살폈다.
“휴! 많이도 내렸군.”
이른 시간이라 군막 밖으로 나온 기사들은 없었다.
“춥긴 하지만 멋진데?”
군막의 천장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묘한 정취를 불러일으켰다. 잠시 주변 풍경을 감상하던 우드는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눈을 헤치고 으슥한 곳으로 걸었다.
가슴까지 푹푹 들어가는 눈길이 귀찮았던지 마나를 끌어올려 일거에 녹여 버린 그는 절벽 밑으로 가서는 바지를 끌러 내렸다. 몽롱한 표정으로 볼일을 본 우드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시 군막으로 향했다.
“으흐! 불알이 꽁꽁 얼었어.”
그곳이 조그맣게 쪼그라들어 있었다.
잔뜩 어깨를 움츠린 우드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눈을 가늘게 한 그는 건너편 봉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게 뭐지?”
건너편 봉우리에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워낙 먼 거리에다 눈까지 내리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은 틀림없었다.
“엄청나게 큰데, 도대체 저게 뭐야?”
그때였다.
군막 안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카루가였다.
“왕자님! 벌써 일어나셨어요? 조금 더 주무시지…….”
카루가가 이상했다.
자신이 쳐다보던 건너편 봉우리를 보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우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갈 때 카루가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놈이 왔어……!”
“놈? 놈이라뇨?”
“전왕! 발록의 스승, 티온스!”
“바, 발록이라고요?”
기겁을 한 우드가 벼락같이 고개를 돌려 건너편 봉우리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움직이던 존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카루가는 그것을 보고 마계의 전왕, 발록의 스승이라고 했다.
‘전설 속의 존재, 발록에게 스승이 있었단 말인가?’
우드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 그때, 카루가의 작은 육신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왕자님! 어딜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카루가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여전히 몸을 떨며 건너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천진난만함으로 가득했던 눈동자도 서서히 붉은 광망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저놈은 스스로 문을 넘어올 수 없어. 그렇다면 누군가가 넘어올 때…… 형이야! 형이 온 거야! 형이 왔어!”
“왕자님!”
콰앙!
우드가 그를 잡으려고 뛰어올랐으나 카루가의 육신은 이미 건너편 봉우리로 날아가고 있었다. 놀란 우드는 황급히 군막으로 뛰었다.
그때,
군막이 젖혀지며 담대소천이 나왔다. 청룡언월도를 비껴들고 투구까지 쓴 그를 보고 우드는 흠칫했다. 그에게서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던 까닭이다. 담대소천의 심유한 눈길이 우드를 향했다.
“옹고르로 가서 친구들을 불러와. 난, 카루가를 따라가마.”
“예엣?”
“심상치 않은 놈이 나타났어. 엄청나게 강한 놈이 말이야.”
* * *
추위가 가셨다.
요란 제국의 카르스 황태자는 당초 작전을 변경해, 소수 정예만을 거느리고 움직였다. 전공을 세우지 못함을 염려한 제후국의 기사들에게 공평한 분배를 약속한 카르스는 마법 병단과 크로우 기사단, 아이언 기사단, 그리고 제후국에서 온 마스터급의 강자들만을 대동했다.
제후국의 요청으로 파견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수준이 낮은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괜히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으면 사령관인 카르스에게 모든 책임이 몰린다. 그것을 꺼린 카르스는 남은 기사들을 크루즈 백작에게 맡기고는 빠르게 옹고르 분화구를 향했다.
추위가 가셨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산은 눈과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은 상태였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마스터의 반열을 훌쩍 넘어선 강자들이기 때문에 지형은 그다지 장애가 되지 못했다.
선두에서 길을 뚫던 아이언 기사단원 하나가 소리쳤다.
“와이번입니다!”
모두가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오만한 몸짓을 보이며 허공을 선회하는 와이번 떼가 보였다.
“저놈들이 케이론을 작살냈다는 블러드 와이번입니다!”
폭스 후작이 낮게 말했다.
마법사들은 혹시 모를 화염 공격에 대비해 카르스의 주변을 둘렀다. 대마법사 율튼의 지팡이는 강력한 마나를 이미 두르고 있었다. 여차하면 그대로 공격을 가할 태세였다.
크로우 기사단원 하나가 등에서 뭔가를 끌어냈다.
창!
자그마한 작대기가 쇳소리를 내며 길게 늘어지자 끝이 삼각형 모양으로 된 랜서로 변했다. 랜서를 꺼내든 이유를 짐작한 카르스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선공을 하려는 건가?”
“……!”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투로 자신을 바라보는 크로우 기사단원에게 카르스는 고개를 저었다.
“놈들이 먼저 공격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자극하는 일을 없어야 할 것이네.”
랜서를 움켜쥔 단원이 자신들의 수장을 흘긋 쳐다봤다. 크로우 기사단의 부단장인 아벨이 고개를 가로젓자 그제야 단원은 랜서를 본래의 크기로 접어 등에 걸쳤다.
전혀 공손함이라곤 보이지 않자 폭스 후작의 눈매가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카르스가 눈빛으로 폭스 후작을 말리고는 성큼 걸음을 놓았다.
“케이론도 지금쯤이면 분화구 근처까지 이동했을 테니 서두르지!”
모두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카르스 황태자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아벨의 눈빛이 묘했다. 미미하게 올라간 입꼬리는 비웃음에 가까웠다. 마침 자신을 돌아보는 폭스 후작과 눈빛이 마주치자 아벨은 사악하게 씩 웃었다.
폭스 후작의 얼굴 근육이 뒤틀렸다.
“앞을 보고 걸어야지. 그러다가 넘어지겠어.”
아벨의 비꼬는 말투에 폭스 후작은 그를 사납게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이언 기사단과 크로우 기사단은 조금 떨어져서 이동했다.
잔뜩 신경을 쓰는 아이언 기사단에 비해 크로우 기사단원들은 그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간혹 허공을 응시하며 섬광을 발할 뿐이었다.
거친 능선을 넘어서자 옹고르 분화구를 두른 절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하!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도 케이론이 먼저 도착했나 봅니다.”
“약은 놈들!”
카르스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지금 이곳은 대륙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누가 더 많은 전과를 세우냐에 따라 제국 간의 자존심이 엇갈린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던 카르스는 자신들이 한발 늦었음에 짜증이 솟았다.
그가 말도 없이 몸을 날렸다. 이미 달려가면서 검을 뽑아 들고 오러까지 품었다. 폭스 후작이 뒤를 따르자 아이언 기사단도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후후! 저러다가 블랙 오우거에 머리통이라도 부서지면 어쩌려고 저러나…….”
“대장! 우리도…….”
“됐다! 그냥 걸어간다!”
“예?”
“우리의 임무는 놈을 호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우거의 머리통, 몇 개만 가져가면 되는 것이니 서두를 것 없다.”
* * *
분화구에 들어선 카르스는 두 눈을 부릅떴다.
“저건……!”
주변에 널브러진 거대한 주검들. 자신의 자존심에 치명타를 안겨 준 블랙 오우거의 시신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모두가 가슴이 처참하게 박살이 난 상태로 죽어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엄청난…….”
사람 하나가 통과할 만큼의 커다란 구멍이 죽은 블랙 오우거들의 가슴에 나 있었다. 상처 부위로 삐져나온 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불러왔다.
“놀랍습니다! 설마 인간이 이런 파괴적인 공격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폭스 후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쿠아악!
주변 숲에서 오크와 고블린 무리가 괴성을 지르며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수가 고작 수백에 불과했다. 아이언 기사단원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오크와 고블린들은 괴성만 지를 뿐, 달려들지는 않았다.
“이, 이것은……!”
대마법사 율튼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오?”
“이건, 인간의 기운이 아닙니다. 마계의 암흑마기가 틀림없습니다!”
“마계의 암흑마기!”
카르스를 비롯한 모두가 크게 놀랐다. 암흑마기는 마계의 상위 존재들이 보유한 파괴력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그 옛날, 인간과 몬스터 간의 십 년 전쟁 때, 강림했던 발록으로 인해 인간 세상에 알려진 그것은 마스터도 운이 없으면 한 방에 신의 품으로 보낸다고 알려져 있었다.
“어떻게 마계의 존재가 이곳으로 넘어왔단 말인가…….”
율튼은 곳곳을 살펴보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놈들이 이곳에 접근하기를 꺼려 합니다! 주변에 뭔가가 있습니다! 전하!”
폭스 후작이 하늘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블러드 와이번들은 옹고르 분화구의 근처를 맴돌 뿐,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제왕이 두려움을 가질 만큼의 강력한 존재가 주변에 있음을 모두는 직감했다. 모두가 얼굴이 굳어질 때, 카르스가 소리쳤다.
“율튼 공! 스캔을 펼쳐 주변을 감지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율튼은 곧 두 팔을 벌려 하늘로 세우며 주문을 외웠다.
대마법사의 스캔은 반경 수 킬로미르까지 감지가 가능하다. 물론 한번 펼치면 상당한 마나가 소요되기 때문에 중요한 때가 아니면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다.
크로우 기사단원들이 아벨을 앞세우고 다가왔다.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의 그들은 주변을 흘긋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행동들을 했다.
그들이라고 주변을 흐르는 강력한 암흑마기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스스로의 무력에 대한 자신감이 표출이라고 봐야 했다.
“사라졌습니다! 반경 이 킬로미르 내엔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오? 숙주가 없는데 암흑마기가 느껴진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존재기에…….”
“의문입니다. 몇 개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암흑마기는 아닙니다.”
율튼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더욱 깊게 패였다. 그때였다. 분화구의 우측 능선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쏟아졌다.
“후후! 케이론의 종자들이 왔군.”
아벨이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적국의 기사들이 출현했음에도 카르스와 율튼은 온통 암흑마기에 대한 생각으로 시선조차 주지 못했다.
아이언 기사단원들이 카르스의 주변을 둘러싸며 기운을 발산했다. 비록 한시적인 조약으로 불가침 협정을 맺었다지만 케이론은 엄연한 주적이다.
“요란의 기사들인가?”
장대한 체구의 인물이 큰 소리로 물었다.
폭스 후작이 날카롭게 맞받았다.
“제국의 황태자 전하이시다! 적의 장수는 예를 갖춰라!”
그 말에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던 기사들이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어지간한 어른의 허리통 굵기만 한 무기를 든 인물이 다시 소리쳤다.
“카르스 황태자란 말인가?”
“무엄하구나! 감히 존엄하신 전하를 함부로 입에 담다니!”
“껄껄! 황태자를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물어볼 수밖에! 진정 제국의 황태자이신가?”
크게 웃으며 다시 물어 오는 자는 바로 레이놀드 백작이었다.
그 옆에 대마법사 쉐인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는 율튼에게 시선을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카르스는 그제야 앞으로 나섰다.
“그대의 신분을 밝혀라!”
“껄껄껄! 본인은 케이론의 사자라는 레이놀드 백작! 그대가 요란의 카르스 황태자가 틀림없는가?”
치르륵!
황태자임을 알면서도 불손한 태도를 보이자 폭스 후작과 아이언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검에다 오러를 품었다.
레이놀드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호! 협정을 깨고 싸우겠다?”
“닥쳐라! 감히 백작 주제에 전하께 그런 무례를 범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