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
<귀환무사 336화>
귀환무사 2부
111화
크로우 기사단과 아이언 기사단, 두 세력 간의 앙금은 요란 제국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아이언 기사단은 황태자 직속이고 크로우 기사단은 황제 직속이다. 어쩌면 차기 황권을 노리는 카르스의 입장에선 크로우 기사단이 가장 껄끄러운 정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몬스터 토벌에 끌어들인 이유는 목적이 있어서였다.
물론 카르스만이 알고 있는 목적이다.
“일단은 내일까지 쉬도록 해. 이들을 군막으로 안내하게! 크루즈!”
“따라오시오!”
시큰둥한 표정으로 등을 돌리는 크루즈 백작을 차갑게 노려본 크로우 기사단원들은 카르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뒤를 따랐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폭스 후작이 물었다.
“전하! 놈들을 끌어들일 필요까지야 있습니까? 마법 병단을 보강하고 제후국에서 합류하는 마스터들만 있어도 토벌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후후! 아군의 피해를 줄이면 그것으로 득이 아니겠소? 지금이야 협정을 맺었다지만 케이론은 반드시 붙어야 할 적이니, 전력 손실을 최소화해야지요.”
“놈들을 직접 이끄실 생각이십니까?”
“선봉에 세울 것이오. 블랙 오우거의 사냥에 말이오, 후후후!”
차갑게 웃는 카르스. 그를 바라보는 폭스 후작의 눈빛은 꽤 복잡했다.
언제나 그는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자신과는 한마디 상의조차 없이 황제에게 크로우 기사단의 지원을 요청할 줄은 몰랐었다.
황태자는 자신보다 더 크로우 기사단을 싫어한다. 어떨 땐, 증오심마저 비추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크로우 기사단을 스스로 불러들였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건지…….’
* * *
쿠오오……!
오우거의 울부짖음이 어둠에 잠긴 케논 산맥을 흔들었다. 울부짖음은 옹고르 분화구가 위치한 방향에서 울렸다.
퍽!
“꾸어억!”
울부짖음은 이내 참혹한 비명으로 바뀌었다.
“망치! 큰 놈들만 죽여!”
“크르릉……!”
오우거들의 울부짖음 사이로 낭랑한 인간의 목소리가 섞였다. 울창한 수림 가운데로 거대한 오우거의 육신이 떨어졌다. 동시에 거대한 발이 쓰러진 오우거의 가슴을 사정없이 내려 밟았다.
“크어어…….”
가슴이 함몰이 된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축 늘어지는 그것은 놀랍게도 블랙 오우거였다. 그런 블랙 오우거를 밟고 선 거대한 덩치의 오우거, 바로 케논 산맥에서 은발 청년을 마중했던 순백색의 아이스 오우거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블랙 오우거는 모든 오우거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최강의 몬스터다. 그런 블랙 오우거를 먹이 사슬의 하위에 있는 아이스 오우거가 죽여 버린 것이다. 놀람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아이스 오우거의 거친 손짓으로 거대한 나무들이 쓰러지자 주변 광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주변에 쓰러져 있는 여섯 구의 블랙 오우거의 시신이 보였다.
모두가 가슴이 함몰되어 죽어 있었다. 아이스 오우거에 의해 당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때, 숲속에서 은발 청년이 뛰어 나왔다.
“하하! 역시 망치구나! 잘했어!”
크르르……?
청년의 칭찬에 아이스 오우거가 머리를 긁적이는 놀라운 광경이 이어졌다.
은발 청년의 맑은 눈동자가 주변을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동자는 신비한 빛을 뿌렸다.
“흠! 도망간 놈들을 어쩐다? 블러드 와이번도 잡아야 하는데…….”
드래곤의 가디언이라 불리는 최강의 몬스터 사냥꾼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는 두려움의 대상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았다.
크르릉……?
아이스 오우거가 고개를 치켜들고 으르렁거렸다.
상공을 선회하는 시커먼 물체들, 블러드 와이번이었다. 청년도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의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
“흠! 제비가 올 때까지 저놈들은 살려 두자고. 그동안 저 시커먼 놈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놈을 찾자, 망치! 최대한 빨리 끝내고 아버지께 가자. 하하!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해 드려야지.”
크르릉……?
“아니, 먼저 아버지께 가야 할까? 어쩌면 어머니들의 행방을 알아내시고 슬퍼하실 수도 있을 텐데…….”
휘이잉!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와 청년의 은발을 쓸고 지나갔다.
혁련소!
바로 그였다. 그가 돌아온 것이다. 흑발이 은발로 변해 있었으며 얼굴도 여인의 그것처럼 새하얗게 바뀌어 있었지만 틀림없는 혁련소였다.
“흠!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망치! 가자!”
크릉!
혁련소가 숲속으로 뛰어들자 망치도 거대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신속한 몸놀림으로 뒤를 따랐다.
* * *
케이론 제국의 토벌군은 일만에 달했다.
열 개 부대로 나뉘어 케논 산맥의 남서쪽 능선을 타고 오르는 그들에게 몬스터가 아닌 다른 장애가 발생했다.
며칠 동안 쏟아진 폭우에 설상가상으로 폭설이 덮쳐 꽁꽁 얼어 버리자 대지는 무척이나 미끄러웠다. 특히 가파른 지역이 많은 산의 지형 탓에 옹고르 분화구로 향하는 토벌군의 이동 속도는 매우 느렸다.
마법사들이 얼어 버린 길을 녹여 내느라 분주히 움직였지만 그 넓은 곳을 녹이기엔 한계가 있었다. 출발한 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그들은 옹고르 분화구를 십 킬로미르나 남겨 두고 밤을 맞아야 했다.
얼어 버린 대지가 발산하는 한기는 정상의 온도만큼이나 주변을 차갑게 몰아쳤다. 떨어진 온도는 기사들의 갑주를 사정없이 얼렸고, 갑주가 발산하는 싸늘한 한기를 참아 내기란 상당한 고역이었다.
적당한 분지를 찾아 일 차 군영을 세우고 급히 천막을 쳤지만 정상에서 몰아치는 회오리바람 때문에 날아가기가 일수였다. 비교적 체력이 약한 기사들은 벌써 정상적인 움직임이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되었고 지독한 한파에 쓰러지는 기사들도 속출했다.
그곳에 담대소천 등도 있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헤론 후작의 부대에 합류했다. 레이나 공주가 레이놀드 백작에게 간신히 허락을 얻어 낸 결과였다.
다른 부대들과 한 시간 거리에서 이동 중인 그들 역시 지독한 한파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공으로 육신 주변을 무형의 강기로 두른 담대소천 등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다른 기사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워낙 매서운 추위 때문에 발의 무감각을 호소하는 부상자들이 점점 늘어났다. 헤론 후작은 비교적 숲이 울창한 곳으로 들어가 그곳에 군영을 차리기도 작정하고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무를 베어 바람을 막고, 구덩이를 파고 모닥불을 피워라! 서둘러라!”
배속 받은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얼어서 파여지지 않는 땅을 화염 계열의 마법으로 녹여 그곳에 기둥을 박고는 재빨리 천을 덮었다. 숲속이라 매서운 바람에 의해 군막이 날아가는 경우는 없었다.
다른 부대에 비해 절반 정도의 병력인 까닭에 제법 빠른 시간에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군막의 설치가 끝났다.
담대소천 등도 제법 큰 군막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모두 모였다. 중앙에 구덩이를 파고 모닥불을 피우자 온기가 돌았다.
“괜찮으냐?”
담대소천이 연소민을 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갑작스럽게 정신을 잃었던 그녀는 생각보다 수척한 모습은 아니었다. 두터운 털옷을 걸친 그녀는 모닥불 앞에서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느라 손이 분주했다.
이 세상에서 스프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말린 육포를 섞어 끓여 내는 것으로, 전쟁이나 훈련 시에 기사들이 즐겨 애용하는 요리였다. 고소한 냄새가 군막 안을 가득 채우자 모두는 없던 시장기까지 생겨났다.
카루가도 입맛을 다시며 연소민의 옆을 바짝 붙어 있었다. 연소민은 요즘 들어 음식을 조금씩 먹는 버릇을 들인 카루가에게 가장 먼저 요리를 떠 주었다.
몰래 가져온 술을 꺼낸 왕전 등은 요리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작전 중의 음주는 군법에 회부될 만큼의 중죄지만 그들이 어디 그런 것에 신경 쓸 존재들인가.
어지간해서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연소민도 몇 잔을 마셨다. 요란 역시 한 잔을 털어 넣고는 오만상을 썼다.
“크윽!”
“쯧쯧! 너희, 마법사는 무슨 재미로 사냐? 술에다 여자까지도 금한다며?”
“이런 맛이라면 안 먹는 게 행복하겠군요, 크으…….”
“호호! 우드 님도 한 잔 드려요?”
우드는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모두가 피식 웃었다.
그때 레이나 공주가 군막을 젖히며 들어섰다.
“흠! 냄새가 좋군요. 나도 한잔 줘, 아리안.”
그녀는 앉기가 무섭게 술잔에 술을 채우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거푸 석 잔을 마신 그녀는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추위 때문에 작전이 곤란하게 되었어요. 요란 측도 꽤 고전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전령을 보냈는데 추위가 가시면 그때, 연합 작전으로 옹고르 분화구를 쓸어버리자고 하더군요.”
“이깟 추위 때문에 작전을 연기하다니, 웃기는 놈들이군.”
“숙부들이나 마스터들은 괜찮지만 다른 기사들은 그렇지 못해요. 게다가 이 정도의 추위라면 몬스터들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괜히 먼저 올라가서 기다릴 필요는 없잖아요.”
레이나 공주는 심드렁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왕전과 북궁천소에게 환하게 웃어 주었다. 이제는 그들의 거친 태도가 꽤 익숙해진 그녀는 오히려 그런 태도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말수가 적은 흑야가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우린 별도로 움직이겠소.”
그 말에 레이나 공주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그 부분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흑야였다. 흑야가 담대소천을 응시했다.
담대소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사전에 정찰 정도는 해 둘 필요가 있겠지. 어차피 이 정도의 강추위라면 몬스터들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날이 풀리기 전에 우리가 옹고르 분화구에 다녀오겠소. 물론 우리가 출발한 다음에 날이 풀린다면 그곳에서 합류하면 될 테니까…….”
“너무 위험해요!”
레이나 공주가 뾰족하게 소리쳤다. 흑야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런 사냥 놀음에 시간을 낭비할 순 없지.”
“그들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에요. 드래곤의 가디언을 지냈다고 알려진 무지막지한 힘을 지닌 최상위 몬스터가 블러드 와이번과 블랙 오우거예요. 마스터도 먼저 맞으면 목숨을 잃어요. 그냥 날이 풀리면 부대와 함께 가요.”
흑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희들은 술이나 마시고 있어. 나 혼자서 갔다 오겠다.”
“새끼! 성질 머리하고는…….”
남은 술을 몽땅 털어 넣은 왕전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서자 북궁천소도 뒤이어 일어섰다. 조윤까지 일어섰으나 담대소천은 일어서지 않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벗들에게 눈짓으로 연소민을 가리켰다. 뜻을 눈치챈, 흑야가 연소민에게 시선을 주었다.
“갔다 오마.”
“조심하세요, 숙부님들…….”
“흐흐! 놈들 이빨로 멋진 목걸이를 만들어 주마.”
군막을 젖히자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쳤다. 밖은 또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넷은 이내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요란이 벌떡 일어섰다.
“저도 함께 다녀오지요. 아무래도 마법사 하나는 있어야 모양이 서질 않을까요? 하하!”
담대소천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요란은 우드의 어깨를 툭 쳐 주고는 재빨리 눈보라 속으로 뛰어갔다.
레이나 공주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중얼거렸다.
“정말 못 말릴 사람들이군요.”
그때, 연소민의 무릎에 얼굴을 대고 잠을 자던 카루가가 깨어났다. 눈을 비비며 군막을 둘러보던 카루가는 넷이 보이지 않자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다 어디 갔어?”
“놀러 갔다!”
레이나 공주의 뾰족한 대답에 카루가는 인상을 쓰며 입을 삐죽거렸다.
“쳇! 나도 데려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