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32화 (330/425)

# 332

<귀환무사 332화>

귀환무사 2부

107화

“그깟 새 대가리 하나 당해 내지 못한 새끼가 용납은 개뿔!”

북궁천소가 으르렁거리자 연소민은 웃으며 그를 달래었다.

“나중에 우리가 떠나면 아르소와 다크 사람들이 곤란해져요. 그러니 참으세요. 알았죠?”

“끙!”

당초, 토벌군에 합류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황제가 직접 오라고 졸랐어도 오지 않았을 이들이었다. 연소민이 화제를 돌렸다.

“그 블러드 와이번의 뼈가 만년한철보다 강한 것을 모르시죠?”

“그게 정말이냐?”

“그럼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물질이 드래곤의 뼈고, 다음이 블러드 와이번과 블랙 오우거의 뼈랍니다. 그것으로 검이나 도를 만들 수만 있다면 아마, 중원에선 고금제일의 명검이 탄생할걸요?”

모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지간해선 놀라지 않는 흑야와 조윤, 담대소천도 솔깃 하는 표정이다. 그들의 속내를 짐작한 연소민이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걸 얻는다고 해도 가공할 만한 기술이 현재로썬 마땅하지 않아요. 물론 신의 손을 가졌다는 드워프족을 만난다면 모를까…….”

“그건 또 뭐냐?”

“난장이족인데요, 인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들이 그들이에요. 그들이라면 드래곤의 뼈를 가지고도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 테니, 하물며 와이번의 뼈쯤이야 문제없겠죠?”

“그런 놈들도 있었나? 하여튼 요상한 세상이군, 이곳은…….”

드워프는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모두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연소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엘프와 드워프는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존재들이에요. 아주 오래전엔 인간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았다고 전해졌는데, 요즘은 나타난 적이 없어요.”

“그럼 그 블러드 와이번의 뼈를 얻어도 무용지물이 아니냐?”

“그건 아니에요. 비록 드워프만은 못해도 대륙엔 뛰어난 장인들이 있으니까, 그들에게 부탁하면 꽤 좋은 무기를 만들어 주겠죠. 소문에 의하면 홀베른에 대륙 최고의 장인이 있다더군요. 그라면 뭔가를 해낼 가능성이 높겠죠.”

왕전이 눈빛을 발하며 말했다.

“그곳은 주공께서 가신 곳이 아니냐? 몇 마리 잡아서 뼈를 발라 주공께 가 볼까?”

왕전다운 말에 연소민은 소리 내어 웃었다.

“호호! 그런 말씀은 제발 다른 기사들 앞에선 하지 마세요, 호호!”

“왜?”

“아무튼 하지 마세요.”

말하면 당연히 욕이 날아올 것이다. 왕전이 무슨 닭처럼 여기는 블러드 와이번 때문에 천오백 명의 기사들이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욕이 아니라 죽자고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었다.

그때, 조윤의 중얼거리는 말이 들렸다.

“저놈, 제법 강한 놈이야.”

모두가 조윤이 응시하는 인물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흰색 로브를 걸치고 기다란 지팡이를 든 노인이 모두의 눈에 잡혔다.

“대마법사, 쉐인 공이군요.”

“대마법사? 저 노인네가 케이론의 유일한 대마법사라는 그 노인네냐?”

“예. 아리안으로 지낼 때, 황궁에서 본 적이 있어요. 눈동자를 보니 더 강해진 것 같군요.”

흑야의 주변이 이내 싸늘한 한기로 채워졌다.

누구보다 마법사에 대한 증오심이 강했던 그였다. 담대소천이 흑야의 어깨를 툭 치고는 눈빛으로 그를 말렸다.

그가 발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일까? 쉐인이 이쪽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땐 이미 한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 눈빛을 발한 쉐인이 어디론가 사라지자 뒤이어 레이놀드 백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소민의 고운 아미가 슬쩍 찌푸려졌다.

지난날의 기억 때문에 연소민은 그를 꽤 싫어했다. 하지만 그녀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가투소의 기사들과 함께 모여 있던 마법사 요란이었다.

그는 레이놀드가 모습을 드러내자 아예 등을 돌려 버렸다.

“아르소의 아리안 영주가 아닌가?”

레이놀드가 연소민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흑야의 눈초리가 매섭게 올라갔다. 그 역시 레이놀드 백작을 싫어했다.

“다른 영주님들을 기다리다 조금 늦었군요.”

“이들은?”

“레이나 공주님의 근위기사들입니다. 새롭게 임명된 분들이라 모르실 겁니다.”

“근위기사? 그건 처음 듣는 말인데?”

레이놀드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알 턱이 없었다. 그는 하나같이 거친 분위기를 풍겨 내는 담대소천 등을 보고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무례하군. 인사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흐흐! 공주께서 그러시더군. 황제 폐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지.”

왕전이 험악하게 반응하자 레이놀드 백작의 얼굴이 대번에 붉게 물들었다. 급한 성정이라면 그도 결코 북궁천소등에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백작이다. 자신보다 높은 후작도 공주의 근위기사에겐 지휘권이나 명령권이 없다.

당연히 분을 삭여야만 했다.

“곧 출전할 것이나 준비하도록!”

연소민에게 말을 건넨 레이놀드 백작은 씩씩거리며 사령 막사로 사라졌다.

“근위기사가 이럴 땐 쓸 만하군.”

“기회가 되면 놈에게 전해. 다음에 또 그런 눈으로 널 쳐다보면 눈알을 뽑아 놓겠다고 말이야.”

북궁천소가 으르렁거렸다.

그는 연소민을 쳐다보던 레이놀드 백작의 눈동자에 깃든 탐욕을 놓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레이놀드 백작의 눈빛을 보자마자 달려들려고 하던 그를 담대소천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벌써 사달이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꼭 전해 줄게요. 그러니 참으세요. 아셨죠?”

연소민은 언제나 이들을 달래는 보모와도 같았다. 모두가 자신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이라 그녀는 결코 싫지 않았다. 중원의 사람들이 알면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숙부들을 둔 여인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게다가 잘만 하면 시아버지는……?

“훗!”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모두가 갸웃거리며 그녀를 쳐다볼 때,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이 돌아왔다.

“본대에서 지원 병력이 오면 다시 토벌에 나선다고 하는군요. 그동안 좀 쉬세요.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술을 준비해 볼게요.”

“크흐흐! 좋지!”

술이란 말에 눈에서 광선을 뿜어 대는 왕전과 북궁천소를 보며 모두는 실소를 머금었다.

* * *

탁!

찻잔이 흔들리며 차가 조금 밖으로 튀었다. 찻잔을 내려놓는 손길이 조금은 화가 난 듯 보이자 진천은 조심스럽게 탁자를 더럽힌 차를 닦아 냈다.

사공진무는 찻잔을 바꾸어 새것으로 가져오며 혁련천후의 눈치를 흘끔 살폈다. 그는 지금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검술 대회의 중단 때문이다.

중원의 무공을 익혔을 거라 의심되던 출전자, 팰론 자작에 대한 체포령이 원인이었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그가 체포되기 전에는 대회를 속개할 수 없다는 국왕의 선포가 어젯밤에 있었다.

그것은 곧, 자신들이 목적했던 왕궁으로의 자연스러운 진입이 늦어지는 것을 뜻했고, 중원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곤란해졌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에 오직 모든 것을 걸었던 혁련천후의 분노는 당연했다.

“주공! 대충 위치는 알아냈으니 은밀하게 잠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놈의 시종들을 잡아다가 물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진천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현재로썬 그게 최선이었다. 혁련천후는 대답이 없었다. 팔짱을 하고서 눈을 감고 있는 그는 그 자세로 삼십 분 동안을 아무런 말조차 없었다.

진천은 머리를 긁적이며 사공진무를 쳐다봤다. 사공진무도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혁련천후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 말은 꺼내지 못했다. 진천이 뭐라 말 좀 하라는 시늉을 하자 침을 꿀꺽 삼킨 사공진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공! 놈들이 중원과 관련이 있는 것이 확실하니, 여차하면 놈들을 족쳐서 놈들의 근거지로 쳐들어가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그곳에 어쩌면 중원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주공! 방법이 하나 더 늘었으니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혁련천후는 여전히 눈을 뜨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둘은 그의 속내를 충분히 짐작하는 둘의 눈에 안타까움이 어렸다. 혁련소가 돌아오기 전에 돌아갈 방법을 찾고자 했던 그의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둘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혁련천후에겐 혁련소를 그렇게 만든 요란 제국에 대한 복수심보다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더욱 절실했다.

혁련소가 살아서 돌아온다고 해도 중원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다. 혁련소 만큼이나 소중한 사람들이 중원에 남아 있다. 혁련천후의 또 다른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내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놈들이 왕궁의 감옥에 갇혔다고 했나?”

차가웠다.

삼십 분 만에 처음 입을 연 혁련천후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예! 원하시면 밤에 잠입하겠습니다.”

“한 놈을 잡아 올까요?”

“함께 간다.”

“예? 주공, 그건 안 됩니다. 그곳에 어떤 놈이 있을지 모릅니다. 자칫 사람을 해쳐선 안 되는 주공께서 곤란한 지경에 처하실 수도 있습니다. 진무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진천의 간곡한 말에도 혁련천후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준비해.”

문고리를 잡아 가던 혁련천후가 걸음을 멈추었다. 동시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똑! 똑!

“누구시오?”

진천이 빠르게 문을 열었다. 뜻밖에도 문 앞에 룻거 후작이 서 있었다.

“전하께서 찾으시니 나를 따라오시게.”

“전하께서 왜……?”

“그걸 말해야 하는가?”

진천은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혁련천후는 이미 걸음을 놓고 있었다. 진천과 사공진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뒤를 따랐다.

혁련천후는 앞서 걸어가는 룻거 후작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런 일에 기사단장이 직접 나섰다면 뭔가 있겠군요.]

[……!]

그랬다.

단순히 찾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을 보내도 충분하다. 하지만 기사단장이 직접 올 정도의 사안이라면 단순히 자신들을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닐 거다.

그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룻거 후작이 가는 방향은 왕이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사공진무와 데얀이 싸웠던 숲이 있는 쪽이었다.

혁련천후의 눈가에 차가움이 스치며 떠올랐다. 주변에 느껴지는 기운들의 수가 상당했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예기를 발산하는 그들은 자신들에게 기를 집중시키고 있었다. 진천과 사공진무도 그것을 간파하고는 날카롭게 눈동자를 빛냈다.

룻거 후작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조금을 걸어가자 더욱 울창한 숲이 나타났다. 사공진무와 데얀이 싸웠던 곳보다 훨씬 깊숙한 곳까지 그들을 걸어서 들어갔다.

“어디를 가는 것입니까?”

진천이 물었다.

룻거 후작은 대답이 없었다. 사공진무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서 올라갔다.

“우릴 어찌하려는 모양이군. 그런 것이오?”

“이곳은 홀베른이네. 너희들이 살아가는 케이론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지. 그런 비열한 짓거리는 없을 것이니 그냥 따라오기만 하게.”

룻거 후작의 말에는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슬쩍 이채가 떠올랐다. 다시 주변을 감지했다. 여전히 날카로운 기운들이 곳곳에서 번득였지만 결코 자신들을 노리고 뿜어내는 살기는 아니었다.

숲이 끝나고 이번엔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왕궁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넓은 평원이었다. 평원의 끝에 적당한 규모의 성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룻거 후작은 그곳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성으로 들어서던 셋은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리엘이 입구에 우뚝 선 채로 그들을 보며 씩 웃고 있었다.

성 안에서 홀베른 국왕이 걸어 나왔다. 에이미 공주도 함께였다.

“쉬는 것을 방해해서 미안하네. 어쨌든 와 주어서 고맙군.”

꽤 친근감이 묻어나는 어조였다.

셋은 가볍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홀베른 국왕을 똑바로 쳐다봤다.

“부탁할 것이 있어서 불렀네. 자! 안으로 들어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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