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
<귀환무사 331화>
귀환무사 2부
106화
폭스 후작의 명령에 오크를 도살하던 아이언 기사들은 재빨리 카르스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오크의 녹색 핏물로 적셔진 검을 든 카르스는 무지막지한 기세로 달려오는 블랙 오우거를 바라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준비해라!”
그가 짤막한 명령을 내리자 아이언 기사들이 등에서 랜서를 뽑아 들었다. 특수하게 제작된 그것은 마나를 주입하자 두 배 이상의 길이로 늘어났다.
날 끝에 오러를 품은 랜서들은 일제히 블랙 오우거를 향해 겨누어졌다. 카르스, 스스로도 기다란 랜서 하나를 잡고서 던질 자세를 취했다.
율튼이 카르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다른 마법 병단의 일부도 오크 도살을 중단하고 뛰어왔다. 기사들이 랜서를 던지면 마법사들이 화염 계열의 마법을 발출해 위력을 배가시킬 목적이었다.
궁병들의 전술을 랜서에 접복시킨 것이다.
이미 위력은 수많은 임상을 통해 증명되었기에 카르스는 블랙 오우거를 쉽게 제압할 것으로 확신했다.
“마주치지 말고 주변으로 물러서라!”
폭스 후작이 전방의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자칫 블랙 오우거의 주변에 있다가는 아군의 공격에 당하기 십상이다. 그것을 미리 예방한 폭스 후작은 굳은 얼굴로 지축을 울리며 질주해 들어오는 블랙 오우거를 직시했다.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을 위시한 강한 기사들은 검에다 오러를 잔뜩 두르고는 당장에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랜서 공격이 가해지면 그때를 노려 블랙 오우거의 목을 잘라 낼 심산이었다.
“이때다! 공격!”
카르스의 입이 고함을 지르자 기사들이 일제히 랜서를 던졌다. 동시에 율튼을 비롯한 마법사들의 손에서 발출된 시뻘건 화염이 랜서의 주변을 두르기 시작했다.
콰콰쾅!
거대한 블랙 오우거의 육신에 수십 발의 불꽃이 작렬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블랙 오우거가 휘두른 손에 맞고 튕겨 나간 랜서들이 기사들에게로 떨어져 수십 명의 기사들이 피를 뿌리며 화염에 휩싸였다.
“크아아아!”
화염에 휩싸인 블랙 오우거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 광포한 몸짓은 적아를 막론하고 주변을 휩쓸었다. 오우거와 기사들의 육신이 처참하게 찢겨지며 날아갔다.
“모두 뒤쪽으로 물러나라!”
“물러나라니까! 바보들아!”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기사들이 뒤쪽으로 몸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혼돈 중에 오크 병력들과 한데 섞여 버렸기 때문이다.
카르스의 육신이 번개처럼 날아올랐다.
화염에 휩싸여 광란의 몸짓을 보이던 블랙 오우거의 목이 뎅강 잘려지며 날아갔다. 허공에서 몸을 선회한 카르스는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쿵!
블랙 오우거의 거대한 동체가 대지를 울리며 무너졌다.
카르스의 두 눈이 희열로 채워졌다. 비록 상당한 출혈을 감수한 성과였지만 전설의 블랙 오우거를 잡았다는 것에 그는 만족했다. 게다가 블랙 오우거의 뼈는 드래곤의 뼈, 다음으로 강력한 내구도를 지녔기에 마스터들이 사용하는 검으로 제작한다면 무력이 배가되는 효과로 이어진다. 죽은 기사들의 목숨과 비교해도 결코 아깝지 않았다.
“오크를 마저 쓸어내라!”
카르스는 자신만만하게 명령을 내렸다.
율튼과 마법 병단들은 다시 전방으로 날아갔다. 블랙 오우거의 출현으로 잠시 주춤했던 몬스터 살육이 재개되었다.
“감히 몬스터 따위가…….”
카르스는 검을 고쳐 잡고 다시 전장으로 말을 내디뎠다.
그의 좌우는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이 철통처럼 경계했다. 마스터의 반열을 넘어선 폭스 후작의 검은 엄청난 살상력을 자랑했다.
한 번의 휘두름에 열 마리에 달하는 오크들이 죽어 나갔다.
공격을 가할 때, 이 미르까지 늘어나는 오러가 대량 살상을 가능하게 했다. 크루즈 백작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 또한 마스터다.
멋모르고 달려드는 오크들은 여지없이 그의 검에 의해 두 동강으로 썰어졌다. 압도적인 수를 자랑하는 오크들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비록 다른 오크들에 비해 강력했지만 요란 제국의 기사들을 당해 낼 순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득의만만해하던 카르스 황태자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진 것은 스무 마리가 넘어가는 블랙 오우거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다.
“빌어먹을! 퇴각한다!”
“전하!”
“저놈들 모두를 상대할 순 없어! 설사 죽인다고 해도 여기 있는 우리 모두도 죽어야 할 거다.”
카르스는 보통의 황족들과는 달랐다.
물러나는 것을 수치로 여겨 대세를 그르치지 않았다. 모든 게, 냉철한 그의 성정 때문이었다.
한편, 이들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몬스터 토벌을 행하고 있던 케논 제국의 레이놀드 백작도 엄청난 강적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쾅!
와이번이 쏟아 낸 화염이 기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자 반경 십 미르 안에 있던 모든 생명체가 불길에 휩싸여 죽어 갔다.
“궁병들은 산개하지 말고 집중포화를 퍼부어라! 한 놈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으란 말이다!”
레이놀드 백작이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와이번의 움직임이 워낙 빨랐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지금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와이번은 보통 와이번이 아니었다. 회색의 몸통 대신 시뻘건 핏빛을 띈 그들은 블랙 오우거와 더불어 드래곤의 가디언이라 불리는 전설 속의 블러드 와이번들이었다.
어지간한 검은 흠집을 내는 것에 만족해야 할 만큼 강인한 그들의 육신은 살아 움직이는 최상위 마법 갑주를 연상시켰다.
쾅!
“으아!”
“살려 줘!”
육신이 불길에 휩싸인 기사들이 절규를 토해 냈다. 한 시간이 흐르면서 죽어 간 기사들의 수는 오백이 넘었다. 반면에 블러드 와이번은 한 마리를 격추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엄청난 피해에 레이놀드 백작은 공황 상태에 빠져들 지경이었다.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그도 이런 황당한 전투는 처음이었다. 오크나 몬스터, 해안에 산다는 놀들은 수도 없이 베었던 그였지만 드래곤을 연상시키는 블러드 와이번은 그로서도 감당이 되질 않았다.
“감히! 몬스터 따위가!”
대마법사 쉐인의 창노성이 주변을 울렸다.
그의 양손이 대마법사의 전유물인 파이어 랜서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 옛날 드래곤을 사냥할 때 천계의 전사들이 사용했다는 그것은 지상 최강의 살상 병기다. 블러드 와이번이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즉사를 면치 못한다.
하지만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워낙 빨랐던 탓도 있지만 파이어 랜서가 날아가면 화염을 뿜어내 도중에서 격추시켰기 때문이다. 쉐인은 기회를 노리며 눈에 힘을 주었다.
바닥에 떨어져 죽어 있는 한 마리도 그의 솜씨에 의한 것이었다.
“쉐인 경! 일단 물러나야겠소!”
레이놀드 백작은 어쩔 수 없이 회군을 결심했다.
이대로 가면 전멸이 불가피했다. 당초 블러드 와이번은 생각조차 못했던 그는 일반 와이번과 오우거 정도만을 염두에 두고서 최정예를 뽑아 오지 않았었다.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블랙 오우거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요란 제국이 황태자 카르스가 직접 나선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끄아악!
쉐인의 파이어 랜서가 블러드 와이번의 가슴을 꿰뚫었다. 제아무리 사나운 블러드 와이번이라도 대마법사의 마나가 깃든 공격에 명중되면 죽음을 피할 순 없었다.
대지로 추락한 블러드 와이번은 몇 번의 날갯짓을 퍼덕이고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전신을 땀으로 목욕을 한 쉐인은 그제야 레이놀드 백작을 돌아봤다.
“퇴각이라 하셨소?”
“돌아가서 정예를 이끌고 다시 옵시다! 이 전력으로는 놈들을 당해 내기가 어렵소!”
쉐인은 어쩔 수 없이 퇴각에 동의해야만 했다.
그는 빠르게 전장을 살폈다. 쏟아지는 빗물은 이미 죽은 자들이 흘린 피로 대지를 붉게 물들어 놓은 상태였다.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기사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여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위로 어김없이 화염이 떨어졌다. 공포에 떠는 기사들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처지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전이다. 쉐인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진다.
“지옥이야, 지옥…….”
* * *
케논 산맥의 중턱쯤에 뒤를 절벽으로 두른 넓은 평지가 있었는데, 그곳이 케이론 제국의 몬스터 토벌군이 군영을 차린 곳이었다.
아르소와 다크 영지의 연합군은 해질녘이 되어서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군영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주변에 묵직하게 깔려 있자 모두는 의구심이 가득한 눈으로 군영의 곳곳을 살폈다.
곳곳에 신음하는 부상병들이 널렸고 전신을 피로 목욕을 한 마법사들이 부상병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뭐지? 몬스터들에게 당하기라도 한 건가?”
“엄청 다쳤는데?”
헤론 후작이 전마를 몰아 마법사들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된 일이냐?”
“누구십니까?”
“후작, 헤론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몬스터에게 당하기라도 한 것이냐?”
부상병들을 치료하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비쩍 마른 몸매를 지닌 마법사 하나가 그에게 대답했다.
“블러드 와이번에게 당했습니다! 한둘이 아니라 수십 마리가 달려드는 통에 그만…….”
“블러드 와이번이라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드래곤의 가디언으로 알려진 블러드 와이번이 틀림없었습니다.”
헤론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익히 그것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때 레이나 공주가 다가왔다. 마법사들이 다시 일제히 허리를 숙여 그녀를 맞이했다.
“블러드 와이번이 나타났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마마!”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친 자들이 이 정도라면 죽은 자는 묻지 않아도 능히 짐작되었다.
“레이놀드 백작은 어디 있느냐?”
“지금 사령 막사에서 본대와 통신을 하고 계십니다. 쉐인 공도 함께 계십니다.”
“안내하거라!”
둘은 마법사의 안내를 받아 사령 막사로 향했다. 적당한 곳에서 전마를 세운 모두는 군영을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지가 찢겨 나간 자들과 온몸이 불에 탄 부상자들의 신음이 주변을 난무했다.
“블러드 와이번이 뭐냐?”
왕전이 연소민에게 물었다. 연소민의 얼굴이 꽤 심각하게 굳어졌다.
“보통의 와이번과는 질적으로 다른 몬스턴데, 수백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그것들이 나타났다니, 놀랍군요.”
“세냐?”
“흠! 중원의 고수로 친다면 구파의 장문인 정도? 하지만 놈에겐 강력한 화염 공격이 있기 때문에 놈에게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군요.”
“별것 아닌 걸 가지고…….”
왕전의 반응에 연소민은 웃어야만 했다.
사실 이들에게 구파의 장문인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자신의 비교가 적절치 않았음을 깨달은 그녀는 숨을 가볍게 들이마시고는 주변을 돌아봤다. 부상병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신의 부대 소속의 기사들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가투소의 뒷모습에서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꼬락서니를 보니 된통 당한 것 같군. 우리끼리 가 볼까?”
흑야였다.
“그것도 괜찮겠지. 다만 꽤 강한 것 같으니, 우리끼리만 가는 게 좋겠어.”
담대소천이 턱 끝으로 가투소의 기사들과 아르소의 기사들을 가리키며 묵직하게 말했다. 연소민이 재빨리 나섰다.
“그건 곤란해요. 레이놀드 백작의 성격으로 단독 행동은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나중에 이들과 함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