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
<귀환무사 330화>
귀환무사 2부
105화
“국왕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글쎄…….”
“드래곤의 레어 말고도 뭔가 커다란 비밀이 있어 보입니다.”
혁련천후도 진천의 생각과 같았다. 왕궁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는 의문스러운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놀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왕도 그렇고 결코 그에 못지않은 룻거 후작,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숲도 그랬다. 물론 데얀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혁련천후는 가볍게 숨을 토해 냈다.
“일단은 이곳에 드래곤의 레어가 있다고 확인되었으니 용언 마법의 흔적을 찾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진무가 혹, 무슨 해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요?”
“마음먹으면 충분히 해쳐 나올 능력이 있음을 알잖느냐?”
“쩝! 그렇긴 합니다만…….”
“그만 돌아가자.”
찬바람이 불어왔다.
초토화된 숲이 바람에 부대끼며 섬뜩한 울음소리를 토해 낼 때, 둘의 모습이 사라졌다.
제3장 몬스터 전쟁
케논 산맥은 때 아닌 피바람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인간 대 몬스터, 죽은 동료의 복수를 위한 양 제국의 기사들은 각자 반대 방향에서부터 케논 산맥의 모든 몬스터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 출진했다. 우습게도 몬스터들을 토벌하기 위해 테세우드 공작과 카르스 황태자 간에 육 개월간의 불가침 협정이 맺어졌다.
전임, 케이시 공작이라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지만 카르스는 그와 달랐다. 삶에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하는 둘 간의 공통점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고, 한편으로는 몬스터에 대한 인간 본연의 두려움과 증오심이 작용한 탓도 있었다.
특히 블랙 오우거와 와이번이라는 강력한 몬스터의 무더기출현은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타협이 불가능한 몬스터들은 그 세력이 팽창하기 전에 무조건 꺾어 놔야 한다. 인간보다 훨씬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는 몬스터들이기 때문에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전에 일정 수를 제거하지 않으면 적아를 막론하고 인간 세상, 자체가 위험에 놓이게 된다.
수천 년 역사를 교훈 삼은 테세우드와 카르스의 협정으로 인해 제국 전쟁의 전운은 엉뚱하게도 케논 산맥의 몬스터들에게 불똥이 떨어졌다.
제국의 유능한 인재라던 아이언 기사단의 단원들을 잃은 카르스 황태자는 테세우드 공작보다 더한 복수심에 이를 갈았다.
협정으로 인해 적의 기습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 그는 대마법사 율튼까지도 케논 산맥으로 출전시켰고 당초, 생각을 바꿔 자신이 직접 토벌군을 이끌기에 이르렀다.
반면, 테세우드 공작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레이놀드 백작을 토벌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용맹한 기사들, 오천 명을 그의 휘하에 넣고서 출전시켰다. 물론 대마법사 쉐인이 마법 병단을 이끌고 참여했다.
거기에 인근 영지의 영주들과 기사들을 강제 징집하여 별도의 별동대를 구성했는데, 거기엔 아르소와 다크 영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레이놀드 백작은 연소민에게 무조건 참전할 것을 종용했고 거부할 명분이 없었던 연소민은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기사들만을 이끌고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 최소한의 기사들은 당연히 담대소천 등을 위시한 팔왕의 다섯에다 마법사 요란과 우드, 그리고 가투소와 그의 기사들이었다.
레이나 공주도 당연히 그들과 함께했다.
“젠장! 팔자에도 없는 괴수 사냥이라니…….”
“흐흐! 근질거리던 차에 잘됐지. 게다가 성과가 좋으면 포상도 짭짤하게 내린다고 했으니 깡그리 잡아 보자고.”
“블랙 오우건가 하는 놈을 잡으면 대박이다. 흐흐! 덩치 큰 시꺼먼 놈을 만나기만을 바라야지.”
마스터도 일대일로는 승부를 장담하지 못하는 블랙 오우거를 고블린 취급하는 이들은 당연히 왕전과 북궁천소였다.
아르소를 떠나 케논 산맥으로 향한 지 보름이 지나서 겨우 산맥의 초입에 도착한 그들은 다른 영지의 기사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가투소와 기사들은 담대소천에게 전수받은 기마 전술을 익히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당초 전원이 오려고 했지만 아르소와 다크 영지의 치안을 위해 백 명만이 토벌에 참여했다.
어쩌다가 이들과 함께하게 된 마법사 요란의 도움으로 기사들의 전마엔 마법 방어막이 쳐진 마갑이 둘러져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기사들은 매우 들떠 있었다.
마법 방어막을 두른 마갑은 자작 이상의 귀족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위 마법사가 직접 마갑에 실드를 입혀 줘야만 가능한 것이 그것인데, 자신들 같은 최하위 귀족이거나 아예 작위조차 없는 기사들이 상위 마법사의 은혜를 받을 길은 전무하다고 봐야 했다.
그런 귀중한 것을 요란이 해 주었으니 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저 자식들! 완전 닭대가리네? 또 저기서 방향을 저렇게 틀고 지랄이야!”
“인간아, 기마 전술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줄 아냐?”
“똑바로 못하냐!”
왕전 등은 기마 전술을 훈련 중인 기사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연소민은 레이나 공주와 케논 산맥을 두르고 흐르는 강변으로 잠시 나간 탓에 보이지 않았다. 전 부대의 지휘권은 담대소천에게 있었다.
베린스 공작의 공격을 막아 낸 이후부터 그에 대한 레이나 공주의 신뢰는 대단했다. 비록 후작인 헤론이 있었지만 그는 본대와 합류하면 자신의 부대를 다시 이끌어야만 했기에 담대소천이 아르소와 다크의 연합군을 이끌게 된 것이다.
꽈르릉……?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뭐야? 비가 올 모양인데?”
“해가 쨍쨍 떴는데 천둥이라니, 웃기는군.”
왕전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은 빠른 속도로 어둡게 변해 갔다. 그리고 이내 빗줄기를 쏟아 냈다.
훈련하던 기사들이 재빨리 군막을 치며 부산을 떨었다. 강변에 나갔던 연소민과 레이나 공주도 카루가의 손을 잡고 바삐 돌아왔다.
쏴아아……?
빗줄기는 짧은 시간에 폭우로 변했다. 어쩐 일인지 카루가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조윤이 카루가에게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그냥, 기분이 이상해.”
“기분이 이상하다고?”
“응! 여기 오면서부터 그냥 이상해졌어. 불안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하고…….”
대답을 흐린 카루가는 한쪽에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모두가 그런 카루가를 갸웃거리며 쳐다봤다.
“많이 늦는군요.”
연소민이 망토를 갑주에서 떼어 내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담대소천 등에게 비밀리에 무공을 전수받고 있었던 까닭이다. 엄청난 강자들, 다섯이 달라붙어서 가르치니 나날이 그녀는 강해져 가고 있었다.
“어차피 와 봤자 도움이 될 것도 아닌데, 그냥 우리끼리 출발하는 게 어떨까?”
“그거 좋지! 사람이든, 음식이든 기다리는 건 질색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곧 오겠죠.”
군막으로 레이나 공주와 헤론 후작이 들어섰다. 헤론 후작은 예전의 기력을 회복한 듯,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보였다.
“이토록 지독한 비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비가 오면 몬스터들이 활동을 하지 않으니, 빨리 그쳐야 할 텐데…….”
레이나 공주가 갑주에 묻은 빗물을 털어 내며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곧 그치겠죠. 이리로 오세요, 공주님! 카루가도 이리 와.”
연소민은 가장 좋은 자리에 레이나 공주와 카루가를 앉혔다. 헤론 후작은 레이나 공주의 옆에 앉았다.
어둠의 숲에서 돌아온 지 제법 시간을 흘렀지만 헤론과 다른 존재들은 여전히 서먹서먹했다. 작위로 보면 후작인 헤론이 당연히 위였지만 담대소천 등은 레이나 공주의 근위기사들로 임명이 되었기에 그도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물론 레이나 공주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담대소천 등은 여전히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쩌저저적!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쾅!
굵직한 거목들이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나며 불꽃을 피웠다. 자연의 엄청난 위력에 모두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가투소가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통신입니다! 지휘관을 바꿔 달라고 하십니다!”
“누군가요?”
“레이놀드 백작 각하이십니다!”
레이나 공주가 담대소천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휘관이니 그보고 받으라는 빛이었다. 담대소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투소를 따라갔다.
레이놀드 백작이라는 말에 연소민은 흑야를 흘긋 쳐다봤다.
[사고 치시면 안 돼요, 숙부님.]
[노력하지.]
흑야의 차가운 대답에 연소민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잠시 후, 담대소천이 돌아왔다. 모두가 그를 응시했다.
“상당한 수의 몬스터들이 나타났다는군.”
레이나 공주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 빗속에 몬스터들이 나타났단 말인가요?”
“일 개 사단 규모의 오크 부대가 출몰했다고 하더군……? 오우거도 제법 섞였고……? 분발해야지 않겠소?”
“알겠어요.”
레이나 공주를 대하는 담대소천의 말투에 헤론 후작의 눈빛이 살짝 변했지만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그들의 말투에 적응이 된 까닭이다.
“기사들 몇만 남겨 두고 출발해야겠다. 기왕 나선 거면 확실히 싸워서 아르소와 다크에 도움을 줘야지.”
담대소천이 무장을 꾸리자 다른 이들도 무기를 챙겨 들고 갑주를 걸쳤다. 당초, 레이나 공주가 선물한 갑주를 모두는 어색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꽤 익숙해져 있었다. 거친 용모에 갑주를 걸치니 꽤 잘 어울렸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정색으로 통일시키자 더욱 파괴적으로 보였다.
“서둘러라!”
“야! 제대로 말아야지!”
기사들이 빗속에서 군막을 재빨리 걷어 내고는 빠르게 이동을 준비했다.
연소민은 무심결에 케논 산맥으로 시선을 던졌다. 폭우 속에서도 케논 산맥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오연하게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찌르르 하는 것을 느낀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녀는 마지막으로 견갑을 차고는 전마에 몸을 실었다. 모두가 이동 준비가 완료되자 타 지역의 영주들을 기다려야 하는 기사들 세 명을 제외한 모두는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 * *
케논 산맥의 웅고르 분화구는 인간 대 몬스터의 처절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십만에 달하는 오크 병력에 맞서 일만의 요란 제국의 기사들은 악전고투를 벌여 나갔다. 그들이 상대하는 오크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평소라면 기사 하나가 오크 열은 거뜬히 당해 낼 정도의 우위에 있다. 하지만 옹고르의 오크들은 무척 거칠고 사나웠다. 벌써 천 명이 넘어가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쾅!
오크 병력의 중앙에 강력한 화염이 떨어져 폭발을 일으켰다. 수백의 오크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마법 병단의 화염 공격은 쉬지 않고 오크 병사들의 진영을 강타했다.
대마법사 율튼이 이끄는 마법 병단의 위력은 가히 엄청났다. 특히 요란 제국의 주특기인 궁병의 마법 화살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다.
세 마리의 오크를 관통하고도 남을 위력을 지닌 강전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전투에서 일만 이상의 오크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오크의 사단 병력을 몰살할 태세였는데……?
“크어어!”
“오우거다!”
“블랙 오우거가 나타났다!”
괴수의 울부짖음과 함께 기사들이 동요를 일으켰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시커먼 몬스터, 블랙 오우거가 오크 무리의 뒤쪽에서 대지를 울리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쿵! 쿵! 쿵!
부딪힌 오크들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혼돈은 오크 진영에도 일어났다. 적아를 구분 못하는 블랙 오우거들의 거친 손짓에 오크들도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아이언 기사단은 황태자 저하를 보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