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
<귀환무사 329화>
귀환무사 2부
104화
격돌은 데얀의 근소한 우위로 나타났다.
그 자리를 지킨 데얀에 비해 사공진무는 다섯 걸음 정도 밀려난 것이다. 하지만 표정은 데얀이 더욱 굳어져 있었다.
“놀랍군. 마계의 하위 전사 주제에 나의 일격을 받아 내다니…….”
“난, 마족이 아니라 사람이거든? 괴물은 오히려 네놈 같은데?”
“후후! 너희, 사악한 마계의 놈들에겐 괴물일 수밖에…….”
“이 자식이 사악함이란 단어의 뜻도 모르는가 보네? 인마! 지금 네가 하는 짓거리가 사악한 거잖아?”
사공진무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때 데얀의 공격이 재차 이어졌다. 첫 번째와는 달린 사공진무는 빠른 보법으로 공격을 피했다. 그가 섰던 자리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힘 하나는 엄청 센 놈이군.”
사공진무는 혀를 내둘렀다.
정면으로 부딪혀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단 한 번의 격돌로 그는 깨달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주특기인 순간이동과 진법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뒤쪽에 선 셋이 마음에 걸렸다. 사공진무는 그들 셋이 어떤 형태로든 중원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다.
데얀과 싸울 때, 그들이 발산했던 기운은 틀림없는 마도 고수들의 마기였다. 그래서 그들을 돕고 나선 것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하니까…….
“젠장!”
사공진무가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공격 전에 조금의 시간 차를 두던 데얀이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해 온 것이다.
쾅! 쾅!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형국이 당분간 이어졌다. 빗나간 공격은 주변을 초토화로 만들었다. 지켜보던 셋은 둘의 사정권 밖으로 몸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여전히 도주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회전하며 피하기에 급급했던 사공진무의 육신이 갑자기 꺼지듯 사라졌다. 목표를 놓친 데얀이 순간적으로 빈틈을 보였다.
깡!
“쥐새끼!”
데얀의 어깨에 불꽃이 작렬했다. 몸을 휘청거린 데얀이 그대로 검을 횡으로 그으며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사공진무의 육신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이동으로 공격을 성공시켰건만 사공진무의 얼굴은 결코 좋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데얀의 어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엇으로 만든 거야? 멀쩡하잖아……?”
방금 그는 검으로 완벽한 빈틈을 노리고 데얀의 어깨에 공격을 성공시켰다. 강철이라도 잘라 낼 힘이 실렸건만 데얀의 어깨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데얀의 견갑은 흠집조차 없었다. 사공진무의 입장으로는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정말 괴물이네, 저놈…….”
사공진무는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후후! 세상에 나의 갑주를 뚫어 낼 것은 없지. 너희들이 전황이라 받드는 무식한 발록의 채찍도 소용없다. 하지만 조금은 아프군. 뼈가 조금 다친 것 같단 말이야, 으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데얀의 눈동자가 새하얀 섬광을 발했다.
“이제 그만 네놈을 소멸시켜 주겠다.”
“그만!”
차가운 음성이 뒤쪽에서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숲을 헤치고 홀베른 국왕과 룻거 후작, 그리고 기사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데얀의 눈초리가 묘하게 뒤틀렸다. 그를 바라보는 홀베른 국왕의 표정은 매우 엄중했다. 룻거 후작이 나섰다.
“왕께서 납시었다! 모두 예를 갖추거라!”
느닷없는 상황에 사공진무는 잠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왕이라는 말에 그는 이곳 방식으로 예를 갖추었다. 뒤쪽에 섰던 자들도 역시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는 고개를 숙였다.
“데얀 공! 왕께 예를 갖추시오!”
여전히 가만히 선 그대로였던 데얀에게 룻거 후작이 소리쳤다. 심사가 뒤틀린 듯, 짜증이 다분한 데얀의 얼굴 근육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실룩거렸다.
“됐네!”
홀베른 국왕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데얀을 제쳐 두고 사공진무와 셋을 엄중한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홀베른의 백성들인가?”
“후후! 레어를 노리고 온 쥐새끼들이오.”
데얀이 대신 대답했다. 홀베른 국광이 데얀에게 차가운 눈길을 주고는 다시 사공진무와 셋에게 물었다.
“대답하라! 홀베른의 백성들인가?”
챙!
기사들이 검을 뽑으며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케이론에서 왔습니다.”
“웸블리에서 왔습니다!”
동시에 대답이 나왔다. 홀베른 국왕이 뒤쪽의 셋에게 시선을 던졌다.
“웸블리라면 요란 제국의 우방 공국이 아니더냐? 룻거!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게…….”
룻거 후작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홀베른 국왕의 눈동자에 매서운 빛이 떠올랐다.
“스파이로 들어온 모양이군. 그런 즉결 처형이 가능한 것도 알고 있느냐?”
“아닙니다! 저희들은 검술 대회에 출전한 자작님의 시종들입니다.”
홀베른 국왕이 다시 룻거 후작을 응시했다. 엄한 질책이 담긴 그의 눈빛에 룻거 후작은 고개를 숙였다.
요란 제국과 그곳의 위성 국가나 공국은 이번 검술 대회에 참여할 수 없다. 홀베른이 케이론의 우방 공국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출전자 심사에서 거부되었어야 할 그들이 출전했다면 뭔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했다.
“시종들이 지금껏 남아 있었다면 연회장에 있는 다섯 중, 하나이겠군. 누구냐? 너희들이 모시는 자의 이름이?”
홀베른 국왕의 추상같은 물음에 셋은 서로를 마주 보며 머뭇거렸다.
기사들이 검을 들어 그들의 목에 대었다. 손만 까딱하면 목 없는 시체가 될 판이었다. 룻거 후작이 다그쳤다.
“말하지 않으면 당장에 목을 칠 것이다! 어서 대답하라!”
“펠론 자작이십니다!”
룻거 후작이 기사들 중, 하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자를 당장 체포하거라!”
“예!”
기사 한 명이 사라졌다. 그의 가공할 만한 신법에 데얀과 사공진무도 가볍게 놀란 빛을 보였다. 홀베른 국왕의 시선이 이번엔 사공진무를 향했다.
“복장을 보아하니 그대도 시종인 듯 한데, 모시는 자가 누구이더냐?”
“다크 남작이십니다.”
“다크 남작이라면……?”
“체술을 익힌 그자입니다.”
룻거 후작의 말에 홀베른 국왕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혁련천후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데얀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며 툴툴거렸다.
“후후! 고작 시종 정도가 초인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다니, 웃기지도 않군.”
홀베른 국왕은 그의 말을 흘려버리고는 다시 물었다.
“데얀의 말이 옳다. 시종이 데얀과 싸울 수는 없는 법! 네 주인이 말하기를 다크 영지에서 왔다고 하던데, 진정 그 말이 사실이더냐?”
어쩐 일인지 사공진무를 대하는 홀베른 국왕의 태도는 다소 부드러웠다.
“그렇습니다.”
“허어! 주인보다 강한 시종이라…….”
홀베른 국왕이 놀랍다는 투로 말끝을 흐렸다.
사실 내색을 자제하고는 있었지만 그와 룻거 후작은 무척 놀라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데얀이 어느 정도 강한지 알고 있다. 어쩌면 대륙의 초인들보다 데얀이 더 강하다고까지 여기고 있었다.
그런 데얀과 일대일로 싸워서 멀쩡한 사공진무가 일개 남작의 시종이라니,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홀베른 국왕이 이번엔 데얀에게 시선을 돌렸다.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데얀은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왕에게 할 태도는 아니었지만 왠지 그게 꽤 어울렸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홀베른 국왕도 그런 데얀에게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평소에도 이런 식이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국법으로 처리하겠네. 그러니 자넨 이쯤에서 물러나줘야겠어.”
데얀의 눈초리가 대번에 치켜 올라갔다.
“놈들은 이곳을 침범했소! 설마 우리와의 협약을 어기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협약은 지킬 것이네. 다만 이들은 검술 대회의 출전자들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니 이번만큼은 과인에게 양보하게.”
“아니 될 말씀!”
이건 도저히 왕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홀베른 국왕은 역정을 내지 않았다. 룻거 후작과 기사들만이 데얀을 노려보며 못마땅한 기색을 나타낼 뿐이었다.
“데얀…….”
홀베른 국왕이 데얀을 나지막이 불렀다. 깊게 가라앉은 홀베른 국왕의 눈동자를 데얀은 외면했다.
“젠장! 알았소! 대신 저놈은 나중에 내게 넘겨주시오! 결판을 내야겠소!”
데얀이 사공진무를 가리켰다.
사공진무는 그런 데얀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주었다. 대얀의 눈초리가 다시 치켜 올라갔다.
“그 웃음이 언제까지 가는가 보겠다.”
“좋을 대로…….”
“이, 이익!”
사공진무의 느긋함에 데얀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몸을 들썩였다.
“고맙네, 양보해 줘서…….”
“흥!”
홀베른 국왕과 사공진무를 한 차례 노려본 데얀이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가 사라지자 홀베른 국왕의 육신이 잠깐 흔들렸다. 룻거 후작이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손을 들어 그를 뿌리친 홀베른 국왕은 사공진무와 뒤의 셋에게 따라오라는 말을 남기고 걸음을 옮겼다.
* * *
“놀라울 정도로 무식한 놈이었습니다.”
진천은 숲속으로 사라진 데얀을 거론했다.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기는 홀베른 국왕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둘은 숲속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따라갈까요?]
사공진무가 전음으로 물어 온다. 이미 그들이 이곳에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일단은 그렇게 해. 무슨 일이 생기면 뛰쳐나오고…….]
[하하! 죽기야 하겠습니까? 드릴 말씀도 있고 하니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다 들었다. 나올 생각일랑 말고 그 안에서 알아볼 것이 있으면 최대한 알아봐.]
[그러지요.]
기사들과 함께 숲으로 들어가는 사공진무. 모두가 사라지자 혁련천후와 진천은 초토화된 주변을 살피며 느릿하게 숲속에서 걸어 나왔다.
“엄청난 화공 계열의 무공입니다. 진무 혼자로서는 벅찬 상대로 보이네요.”
“힘으로만 따지면 그렇겠지.”
“예?”
“힘을 바탕으로 한 공격 방식은 시간이 흐르면 한계가 드러나는 법, 장기전에서는 진무가 유리하다.”
“하긴, 진무, 그놈은 요상한 술법이 있으니 지진 않겠군요. 그래도 더럽게 강한 놈이었습니다. 저 정도면 구파의 장문 정도는 그냥 날름 해 먹을 수준입니다.”
진천은 여전히 데얀이 보여 준 파괴력에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홀베른 국왕과 룻거 후작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늦게 현장에 도착했더라도 데얀에게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데얀이 보여 준 공격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주변을 살피던 혁련천후가 허리를 숙여서 뭔가를 집어 올렸다. 진천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짝 다가갔다.
“뭡니까?”
혁련천후의 손에는 새카맣게 그을린 나무 파편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손끝으로 그을린 부분을 슬쩍 긁었다. 그러자 가루가 아닌 시커먼 부분이 그대로 지워지며 나무의 속살이 드러났다.
“화염이 아니라 마법이었군.”
“그렇군요. 열을 동반한 화염이었다면 탄 부분이 가루로 떨어질 텐데 말입니다.”
“이 정도로 강력한 마법 공격을 대마법사라는 자들은 과연 가능할까?”
혁련천후는 지난날, 요란 제국의 대마법사 율튼을 떠올렸다. 결론은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엄청났던 공격도 조금 전, 데얀에는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곳이군, 이곳 홀베른은…….”
혁련천후는 기를 끌어올려 예의 강력한 기운들을 감지했다. 역시 가장 강력한 기운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 외의 다른 몇은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이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데얀처럼 엄청난 강자들일 가능성이 농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