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8
<귀환무사 328화>
귀환무사 2부
103화
[왜 그러십니까?]
[저놈을 예의 주시하도록.]
혁련천후가 눈짓으로 검은색 갑주를 걸친 출전자를 가리켰다. 진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새빨간 광망을 발했다 사라지는 것을 혁련천후는 놓치지 않았다.
그때였다.
밖으로 사라졌던 자들이 돌아와 홀베른 국왕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전했다. 홀베른 국왕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룻거 후작도 귓속말을 들었는지 안색이 돌처럼 굳어졌다.
“연회는 이것으로 마치겠네. 그대들은 거처로 돌아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기를 바라네!”
홀베른 국왕이 서둘러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룻거 후작과 기사들이 뒤를 따랐으나 에이미 공주는 연회장에 남았다. 아리엘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 팔을 머리 뒤로 깍지 끼고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검술 대회는 이것으로 끝인가 보군.”
에이미 공주가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냥,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리엘의 표정이 묘했다. 그는 혁련천후와 다른 출전자들을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자들이 너무 많아. 홀베른이 꽤 시끄러워지겠어. 뭐, 나야 상관없지만…….”
혁련천후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러나 아리엘이 눈을 찡긋 거리자 이내 혁련천후는 시선을 돌렸다. 금발의 청년 기사와 검은색 갑주의 기사도 아리엘을 차갑게 응시했다.
에이미 공주가 아리엘에게 다가갔다.
“지금 말씀하신 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해요.”
“응? 아, 아니요. 그냥 해 본 소립니다, 하하!”
“아리엘이라고 했죠? 목적을 가진 자들이 누구죠? 그냥 간과해선 안 될 말을 했으니 밝혀 줘야겠어요.”
에이미 공주의 어조는 단호하면서도 상당히 차가웠다. 아리엘이 멀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두 팔을 어깨 위로 올려 보이며 다른 출전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때 금발의 청년 기사가 나섰다.
“밖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 같은데, 저희들도 돕겠습니다!”
“전하의 명을 잊으셨군요. 여러분들은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돕는 거겠죠?”
에이미 공주의 다소 오만한 말투와 행동에 진천의 눈썹이 슬쩍 꿈틀거렸다. 그것을 본 혁련천후가 눈빛으로 그를 제지했다.
혁련천후가 일어섰다.
“우린 거처로 돌아가겠소.”
모두가 그를 돌아봤다. 아리엘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혁련천후를 볼 때면 언제나 그는 신비한 보석을 보듯 눈빛을 발하곤 했다. 그 안에 숨은 의미심장함은 오직 아리엘만이 알 뿐이었다.
“내일 봅시다!”
진천이 손을 흔들며 혁련천후의 뒤를 따랐다. 에이미 공주는 어쩐 일인지 말없이 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른 둘도 뒤이어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검은색 갑주의 기사는 다소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주변을 기웃거렸다. 아리엘이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며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둘이 연회장을 빠져나가자 아리엘도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쩝! 파장 분위기니 저도 가야겠지요?”
“당신은 아직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어요.”
“아, 나 참! 그냥 해 본 말이라니까요?”
“답하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하겠어요.”
에이미 공주의 그 같은 말에 아리엘의 눈빛이 달라졌다. 에이미 공주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지금 이곳엔 내일부터 당신들과 대결을 펼치려던 기사들이 은신해 있어요. 내가 신호만 보내면 그들이 당신을 상대할 거예요. 그러니 다시 묻겠어요. 목적을 가지고 온 자들이 누구며 그 목적이 무엇인가요?”
아리엘의 눈동자가 장난기에서 차가움으로 서서히 변해 갔다. 동시에 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게 무력을 사용한다고 했어요?”
아리엘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했다. 얼핏 들으면 여인으로 착각할 만큼 가늘어져 있었다. 등을 돌렸던 아리엘이 에이미 공주를 향해 돌아섰다.
“호호! 웃겨요, 정말!”
완연한 여인의 목소리, 주변 공간에 갑작스럽게 한기가 몰아쳤다.
동시에 아리엘의 갑주가 눈처럼 흰 은색으로 바뀌었다. 견갑에 선명한 드래곤의 문양이 새겨진 갑주는 케논 산맥에서 나타났던 아름다운 여인의 것과 닮아 있었다. 에이미 공주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자신의 눈앞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조리 모아 놓은 여인이 나타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돌연한 변화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호위하는 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리엘의 표정이 차갑게 변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들은 나타났어야 했다.
완전한 변신을 끝낸 아리엘의 육신 주변에 눈꽃송이처럼 반짝이는 빛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고혹적인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듣는 사람을 매혹시키는 청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디 홀베른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볼까요?”
* * *
밖으로 나온 혁련천후와 진천은 경계를 서던 기사에게 시종을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다렸다.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가 보고 싶은 충동이 굴뚝같았지만 목적을 위해서 둘은 참아야 했다.
그들보다 조금 늦게 연회장을 나온 둘은 각자의 방향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어둠 속으로 마차를 몰아 사라져 가는 검은색 갑주의 출전자를 유심히 쳐다보던 진천이 물었다.
“아까, 놈을 지켜보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동이 느껴졌을 때, 놈의 기운이 순간적으로 요상하게 변하더군.”
“요상하게요?”
“네가 말했던 그 기운과 흡사했지.”
진천이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그렇다니까요. 분명 중원의 마도인들이 발산하는 분위기와 비슷했지 않았습니까? 주공! 그럼 놈을 잡아서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놈들이 만약 중원에서 넘어온 것이 맞으면 드래곤의 레어를 찾지 않아도 돌아갈 방법이 당연히 있을 겁니다. 그럼 이런 개고생을…….”
“확실하지 않은 것에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아.”
혁련천후의 단호한 어조에 진천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쩝! 내가 너무 설쳤군.’
절박함을 깜빡한 것이다.
중원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지상 과제였다. 물론 혁련소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했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원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했다.
이곳에 드래곤의 레어가 있음을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내일 펼쳐질 대회에서 통과만 한다면 자연스럽게 궁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돌아갈 방법을 발견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자들을 쫓다가 그것마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혁련천후였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당연히 그들을 잡아서 족쳤을 것이다. 아니, 드래곤의 레어를 확인한 다음엔 당연히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진천은 미안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사공진무를 데리러 간 기사가 혼자서 돌아왔다. 진천이 기사에게 물었다.
“시종은?”
“거처에 없었습니다.”
“엥! 없어?”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천은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의식적으로 둘의 시선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던져졌다. 물론 기사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가 봐야겠어.]
팟!
둘의 육신이 그 자리에서 유령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다른 곳을 보았던 기사는 금방까지 있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눈을 비비며 껌벅거렸다.
* * *
“젠장! 뭐, 이런 놈이 있어!”
사공진무는 난감한 표정으로 경공을 펼쳤다. 육 대 일의 대결이 펼쳐진 지, 이미 십 분이 지났다. 그동안 자신이 한 것이라곤 피하는 것뿐이었다.
상대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이건 공격이 아예 먹혀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군이 되어 버린 기분 나쁜 자들은 이미 둘이 목숨을 잃었다. 미청년의 강력한 주먹에 종잇장처럼 찢겨져 죽어 버린 것이다.
“후후! 고작 이따위로 마족이라 할 수 있느냐?”
쾅!
사공진무가 섰던 곳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한 사공진무는 지금껏 뽑지 않았던 검을 뽑기로 작정했다. 물론 내공을 응축하여 만들어 내는 무형의 검이다. 가급적 중원의 무공을 사용하지 말라는 혁련천후의 명대로 지금껏 피하기만 했었지만 상대는 피해서만 될 존재가 아니었다.
자칫, 한 방이라도 걸리며 그것으로 자신이 죽을 판이었다.
쾅! 쾅!
미공자의 육신에 검강이 작렬했다. 살아남은 셋의 연합공격은 상당히 매섭고 파괴적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청년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뿌연 연기 사이로 미청년의 얼굴이 흐릿하게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후후! 케니언 크로우라고 들어 봤나? 절대 뚫을 수 없는 지옥의 벽, 케니언 크로우의 수장이 바로 나, 데얀이다!”
셋은 망연자실, 자신들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최후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아니, 실패가 아니라 소용없음을 깨닫자 절망이 그들의 정신을 잠식하고 있었다. 미청년, 데얀이 셋을 향해 빛처럼 쏘아졌다.
“어딜!”
사공진무의 육신이 그에 못지않은 빠르기로 데얀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셋의 목숨을 취하려던 데얀이 흠칫하며 방향을 바꾸어 뒤로 멀찌감치 벗어났다.
셋의 앞을 막아선 사공진무의 손에는 내공으로 만들어진 무형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데얀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놈! 힘을 감추고 있었구나! 감히 이 데얀의 눈을 속이다니!”
“저 친구들은 내게 꽤 소중하거든. 그러니 이제부터 나 혼자, 너를 상대하겠다.”
“후후! 가소로운 놈! 그 정도로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보느냐? 좋아! 나도 내 힘을 모두 사용해 주지.”
사공진무가 그 말에 흠칫했다.
‘뭐? 그럼 지금까지 전력으로 싸운 게 아니었단 말이야? 뭐, 저런 괴물 같은 자식이 다 있어?’
참으로 놀랄 노 자였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사공진무는 돌아보지 않은 자세로 뒤쪽에 선 셋에게 협박조로 말했다.
“너희들, 도망가면 죽어. 너희들에게 물어볼 게 무척, 많거든.”
“……!”
셋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사공진무가 왜 자신들을 대신해서 혼자 싸우려고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그의 손에 쥐어진 무형의 검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자신들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지였다.
사공진무는 데얀의 변화를 무거운 기색으로 직시했다.
역시 달랐다. 무지막지했던 조금 전보다 더 파괴적인 기운이 그의 전신을 두르고 있었다. 중원에서도 몇 손가락에 들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엄청난 강적을 만난 것이다.
우우웅!
데얀의 손에 쥐어진 검이 시뻘건 화염을 두르기 시작했다. 후끈한 열기가 사공진무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후후! 어디 막아 볼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봐!”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데얀의 검이 곧장 사공진무를 향해 돌진했다. 검과 육신이 하나가 되는, 중원에서는 검신합일이라고 하는 극강의 경지를 데얀은 아무렇지 않게 펼쳐 냈다.
꽝!
사공진무 역시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놀라울 정도의 파괴력이 엄청난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주변 숲의 나무들이 사정없이 부러져 날아갔다. 뒤쪽에 섰던 셋은 황급히 몸을 충격파의 사정권 밖으로 날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한 그들은 어쩐 일인지 도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