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
<귀환무사 325화>
귀환무사 2부
100화
율튼은 얼굴을 바르르 떨며 입을 열지 못했다.
카르스는 차가운 웃음을 머금고 몸을 돌렸다. 조금을 걸어간 그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숙부께서 황궁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소. 지휘권자인 내게 보고조차 없이 말이오. 전하시오, 돌아오면 군법으로 처리하겠다고…….”
그 말을 끝으로 카르스는 군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폭스 후작도 율튼을 비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노려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갔다.
율튼의 수염이 심하게 떨렸다.
“감히! 대마법사인 나를 이런 식으로 대우하다니…….”
현기로 가득한 율튼의 눈동자에 순간 섬뜩한 기운이 번득였다가 사라졌다. 결코 초월자의 영역에 든 대마법사가 보여선 안 될 기운이었다.
“켈베로스의 망령에 물든 악마의 종자들이 감히!”
율튼은 분노했다.
그의 분노는 변수였다. 장차 그것이 요란 제국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몰랐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 * *
“으합!”
깡!
아리엘의 힘찬 손짓이 상대방의 검을 튕겨 내며 육신마저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이어진 주먹 공격이 상대의 명치에 작렬하며 승부는 아리엘의 승리로 끝났다.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얼굴의 아리엘은 환호하는 군중들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아리엘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혁력천후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진천과 사공진무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눈을 부라리자 아리엘은 크게 웃었다.
10강전을 거쳐 네 명이 결정되었다. 이제 남은 자리는 하나, 혁련천후와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이며 올라온 붉은 눈동자를 지닌 출전자와의 대결만이 남아 있었다.
혁련천후는 느린 걸음으로 경기장으로 나섰다.
우! 우!
“이번에도 압승을 거둬라!”
“하하! 보나마나 승부는 결정되었다!”
“빨간 눈동자! 무조건 네가 이긴다에 돈을 걸었다! 보내 버려!”
관중들은 그보다 상대방에게 압도적인 환호를 보냈다.
매번 아슬아슬하게 접전을 벌여 온 혁련천후보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온 상대방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혁련천후를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대부분이 그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다.
그가 이기면 엄청난 배당의 몫이 떨어진다. 배당은 거의 스무 배에 달할 정도로 거의 모든 사람들은 혁련천후가 패배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혁력천후는 거만한 태도로 자신을 노려보는 상대방을 담담한 빛으로 마주 보았다.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매우 날카롭게 돌아갔다.
‘싸우면서 놈의 힘을 끌어낸다!’
의문의 힘이 진정 중원의 신교 고수들이 가진 마기와 같은 것인지, 그것을 알아내야 했다. 식당으로 들어서기 전, 자신을 자극했던 기운은 아니었다.
진천이 그들을 의심했다. 진천의 오감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 그가 의문을 품었다면 결코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다.
우와와!
심판관이 대결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자 환호성은 극에 달했다.
혁련천후는 지금껏 그래 왔듯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가 먼저 공격을 해 오기를 기다리며 양팔을 늘어뜨린 자세로 서 있을 뿐이었다.
‘의외군.’
상대도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는 초전에 압살을 하는 방식으로 대결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후후! 설마 감추어진 힘을 깨달을 정도의 고수는 아니겠지?’
혁련천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갈 때, 상대의 공격이 시작됐다.
바닥을 미끄러지듯 다가온 상대는 단순한 찌르기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힘은 놀라울 정도로 막강했다.
혁련천후는 몸을 슬쩍 비틀며 검의 옆면을 손으로 후려쳤다. ‘깡’ 하는 쇳소리가 울리며 방향을 잃은 검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상대가 반탄력을 이용해 횡으로 검을 그어 오자 혁련천후는 내심 감탄했다.
‘좋은 수법!’
깡!
이번에도 손과 검이 부딪혔다. 붙었던 둘의 육신이 떨어지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켜보던 관중들의 환호성은 더욱 열렬하게 뜨거워졌다. 맨손으로 검을 후려친 혁련천후의 신기에 관중들만이 아니라 이미 관문을 통과한 출전자들마저도 놀란 빛을 보였다. 아리엘의 눈동자에도 흥미로움이 가득했다.
‘훗! 역시 마음에 드는 자야. 그런데, 저놈은 왠지 거슬려. 인간이 저런 마기를 품을 수 있다니. 분명 마계의 마기는 아니야. 그렇다면 다른 세상에서 온 놈인가?’
아리엘은 혁련천후와 싸우는 상대를 보며 눈을 반짝 빛냈다.
아리엘이 눈빛을 반짝일 때, 붉은 눈동자를 번득이며 상대가 입을 열었다.
“후후! 언제까지 건방을 떨지 두고 보지.”
그는 혁련천후의 허리에 걸린 검을 차갑게 노려봤다.
“검을 뽑을 만큼의 실력은 아닌 것 같군.”
“후후! 과연 그럴까?”
붉은 눈동자가 더욱 붉어졌다. 혁련천후의 입꼬리가 보일 듯 말듯 슬쩍 올라갔다.
‘쉽게 도발에 말려드는군. 잘못 보았단 말인가?’
고수는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신교의 고수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철저하게 인간의 감정을 죽이는 법부터 배운다.
“목을 잘라 주마!”
거친 음성과 함께 강력한 검강이 날아들었다.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지자 혁련천후도 손에 내공을 조금 더 실었다. 역시 이번에도 몸을 틀어 상대의 검을 후려쳤다.
꽝!
쇳소리가 아닌 폭발에 가까운 굉음이 터졌다. 잠깐 움찔했던 상대의 검이 연속적으로 허공을 가르며 그를 노렸다.
꽝! 꽝! 꽝!
쫓아 들어가는 자와 물러나는 자의 주변이 연신 불꽃을 튕겨 냈다. 환호를 보내던 관중들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지금까지의 대결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점점 빨리지던 둘의 속도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관중들의 눈에 그저 흐릿한 형태만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놈이 꽤 강한데? 검을 뽑으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게.”
진천과 사공진무의 눈동자는 빠르게 둘의 움직임을 살폈다.
상대의 공격이 점점 파괴력을 더해 갔다. 그에 대응하여 혁련천후의 움직임도 더욱 민첩함을 보이고 있었다.
“역시 주공이시군. 검을 뽑지 않으셔도 중원에서 당할 자가 없겠어.”
“언제까지 수비만 하실 생각이지? 아직도 놈이 밑천을 다 드러내지 않았단 말인가.”
“놈은 아직까지는 이곳의 무인들과 같은 기운을 사용하고 있어. 우리가 의심하는 마기를 드러내려면 주공께서도 공격을 하셔야 할 것 같아. 위기에 몰리면 드러내겠지.”
“그냥, 네가 잘못 본 것은 아니냐? 솔직히 우리 말고 다른 놈들이 넘어왔다는 게, 난 믿기지 않는다.”
“지켜보자고.”
“어! 공격하신다!”
사공진무의 말대로 혁련천후가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수비만 해 오던 그는 손을 검처럼 사용하며 상대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꽝! 꽝!
두 번의 공격을 막아 낸 상대의 몸이 휘청거렸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얀 섬광이 순간적으로 번득이며 그의 오른손에 검이 쥐어졌다. 천살강기가 아닌 단순한 검기만을 품은 그의 검이 전광석화처럼 상대의 팔을 노리고 뻗어졌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황임에도 상대는 검을 휘둘러 그의 공격을 차단했다. 그러나 중심이 흔들린 상태에서 강력한 직격을 당하자 입에서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털썩!
둘의 움직임이 멈추자 장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어느새 검을 도로 집어넣은 혁련천후가 쓰러진 상대를 향해 느릿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 모두의 눈에 보였다. 여전히 입에서 꾸역꾸역 피를 흘리고 있는 상대방은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꿈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혁련천후의 담담한 눈동자가 그를 향해 고정되었다. 지독한 분노를 담은 상대의 붉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착각했군. 더할 텐가?”
“……!”
혁련천후는 심판관을 돌아봤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섰던 심판관이 왼팔을 들어 올리며 혁련천후의 승리를 외쳤다.
우아아!
“체술의 달인이다!”
“대단해! 설마 체술의 마스터는 아니겠지?”
“으하하! 스무 배야! 스무 배가 터졌다!”
관중들의 환호에 씁쓸한 웃음을 지은 혁련천후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때, 간신히 몸을 일으킨 상대 출전자는 관중석의 한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왜, 힘을 사용하는 것을 말렸습니까?]
[우리가 잘못 봤다. 놈은 전혀 중원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괜히 우리의 정체를 드러내선 곤란하지 않겠느냐. 네가 떨어졌다고 해도 전주께서 결승에 오르셨으니 왕궁에 우리가 들어간다. 수고했다!]
[젠장!]
울컥, 선혈을 게워 낸 그는 혁련천후를 죽일 듯, 노려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아닙니까?”
“아니다.”
“그럴 리가…….”
진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공진무가 그런 진천에게 핀잔을 주었다.
“네놈도 틀릴 때가 있었네? 차원 이동을 하면서 지능이 떨어진 것은 아니냐?”
“이게!”
“거처로 가야겠다. 결승은 내일이니 좀 씻어야겠어.”
여전히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성에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혁련천후는 숙소로 걸음을 놓았다. 진천은 여전히 머리를 갸웃거렸고 사공진무는 쏟아지는 환호에 대신 두 팔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대단한데? 나도 출전했으면 좋았을 걸…….”
“개 창피나 안당하면 다행이지!”
“흘흘! 내가 나갔으면 넌 죽었어, 자식아!”
최종 5인이 가려졌다.
다음 날 아침부터 속개될 결승전은 서로 대결을 펼치는 방식이 아닌 홀베른에서 내세우는 자들과 대결을 펼쳐 이기는 자들이 올라가는 방식이다.
다섯이 모두 이기면 또 다른 자들이 나선다. 결국,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대결은 펼쳐지게 되어 있었다.
걸어가는 셋의 앞으로 은색 갑주를 걸친 기사가 뛰어왔다.
“머무르실 숙소가 변경되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바뀌어? 어디로?”
“하하! 최고 대우로 모시라는 전하의 명이 계셨습니다. 숙소에 있는 짐은 시종들이 가져올 것이니 저를 따라오십시오!”
좋은 곳으로 간다면 당연히 좋았다. 진천이 사공진무를 흘긋 쳐다보고는 기사에게 물었다.
“시종도 당연히 데려갈 수 있겠지?”
“아, 그건…….”
“이봐! 그럼 당신이 우리 잡일을 해 줄 거야?”
“아, 데려가십시오! 대신 더러운 옷은 갈아입어야…….”
일부러 시종으로 변신한 사공진무는 상당히 낡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혁련천후가 기사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이 숙소로 옷 한 벌만 가져다주시오.”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조금은 덜떨어진 모습에 모두는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대회가 끝나는 동안 당신이 우리 담당이오?”
“그렇습니다! 영광입니다!”
“……!”
진천과 사공진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무릇 기사란 언제나 당당하고 호기로우며 최고의 예법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하지만 눈앞의 기사는 개방의 거지에 갑주를 걸쳐 놓은 듯 도무지 기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기사가 앞장서서 성큼 걸음을 놓았다.
[뭐야! 저거 다리까지 절뚝이잖아!]
[그러게.]
[이거 어쩐지 개고생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둘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