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24화 (322/425)

# 324

<귀환무사 324화>

귀환무사 2부

99화

그중 하나와 진천의 시선이 부딪혔다.

‘응……?!’

상대가 시선을 돌렸으나 진천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가볍게 흔들리는 눈동자는 진한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순간적이었지만 틀림없는 마기였다! 어떻게 이곳에 마기가 있을 수 있지?’

마계의 마기가 아니다.

중원의 마도 고수들과 비슷한 기운이었다. 진천은 혁련천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느끼지 못하신 건가?’

혁련천후는 새롭게 들어선 인물들을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느꼈다면 당연히 그들을 주시했을 테지만 워낙 순간적으로 발산되었기에 느끼지 못한 것이다. 진천은 다시 그들을 응시하고는 음료수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진천의 굳은 얼굴을 본 혁련천후와 사공진무는 의아한 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표정이 왜 그래?”

사공진무가 물었다. 진천은 곁눈으로 조금 전, 그 인물들을 가리키며 전음을 사용했다.

[이상한 놈들이 있습니다. 신교의 고수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놈들입니다.]

[……!]

혁련천후는 진천이 응시한 인물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그런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다시 진천을 돌아봤다.

[잘못 본 것은 아니냐?]

[아닙니다! 순간적이었지만 틀림없는 마도 고수들의 기운과 같았습니다!]

[인마! 네가 잘못 보았겠지. 신교의 고수들이 이곳엘 어떻게 올 수 있단 말이야?]

사공진무가 끼어들었다.

[대회에 출전한 놈들입니다. 놈들과 대결할 수 있도록 제가 조정해 보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진천은 사공진무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밥이나 먹으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진천은 다시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그의 얼굴이 다소 무겁게 가라앉았음을 느낀 진천이 물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습니까?]

[아니다. 식사나 하지.]

진천과 사공진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혁련천후에게서 받았다. 그러나 둘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 게 있다면 당연히 자신들에게 말해 줄 거란 생각에서였다.

* * *

오후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진천이 보이지 않았다.

잠깐 다녀오겠다면 나간 진천을 기다리며 둘은 다른 출전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진천을 거슬렸던 인물들은 가장 끝자리에 함께 모여 있었다.

그들을 유심히 살피던 사공진무가 심드렁한 투로 중얼거렸다.

“별다른 느낌이 없는데요? 아무래도 진천이 잘못 본 모양입니다.”

“……!”

“설마 금역 말고도 이 세상으로 오는 문이 존재할 리 있겠습니까?”

“모르지.”

“설마 가능하다고 여기십니까?”

“우리가 왔다면 다른 사람들도 올 수 있겠지. 세상은 넓고 우리가 모르는 신묘한 것들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법이다. 전대의 실종된 사람들이 조금은 거슬려.”

“……!”

혁련천후는 금역의 비사를 떠올렸다.

그 옛날, 자신의 세가를 배신하고 떠났던 자들의 흔적이 이곳으로 통하는 혈지에서 끝났다고 전해졌었다.

그들이라고 이곳으로 오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껏 생각조차 못했던 그였다. 하지만 진천의 말을 들은 이후부터 그것이 자꾸만 신경을 거슬렸다.

그때, 진천이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냐?”

“하하! 자식아! 내가 누구냐? 고금 최강의 환술사가 아니냐? 주공! 놈들과 맞붙게끔 조정했습니다.”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을 대비해서 중원에서 사용하던 무공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단순한 초식만 쓰도록 해.”

“알겠습니다.”

뿌우웅!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주변이 소란으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확신하는 출전자에게 돈을 걸었고 두 번의 대결에서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인 출전자들에겐 열렬한 환호성을 보냈다.

홀베른의 왕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3번만 이기면 되었다.

늦은 번호인 혁련천후와 진천이 느긋한 표정으로 출전을 기다리고 있을 즈음, 카티르 평원에 군영을 차린 케이론 제국의 대병력은 난데없는 혼란에 휩싸였다.

* * *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테세우드 공작은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현장에 망연자실, 고개를 저었다. 냉혈한인 그가 죽은 수하들 때문에 그런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오백 필이 넘어가는 전마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 때문이었다.

전마의 수가 부족한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기사 오백 명의 죽음보다 더한 피해라고 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와이번들이 떼로 몰려와서 그만…….”

레이놀드 백작이 말끝을 흐렸다.

죽은 전마들과 기사들이 그의 소속 부대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곳곳에 치솟고 있는 불길은 기사들이 달려들어 진화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테세우드 공작의 얼굴에 분기가 떠오른다.

“와이번은 오우거처럼 군집 생활을 하지 않는다. 떼로 몰려왔다면 이건 분명 요란의 와이번 기사단의 짓이다! 괘씸한!”

“각하! 라이더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놈들이라면 라이더들이 있어야지 않습니까?”

“뭣이? 라이더들이 보이지 않았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분명 와이번들만 떼로 몰려왔었습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야생 와이번이 떼로 몰려다닌다니…….”

테세우드 공작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역력했다.

그때였다.

먼 곳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오우거다!”

“오우거가 떼로 몰려온다! 오크도 있어!”

테세우드 공작과 레이놀드 백작의 고개가 급히 그곳으로 돌아갔다. 평원의 끝이자 산맥이 시작되는 초입에 주둔했던 부대 쪽이었다.

“각하! 엄청난 숫잡니다!”

레이놀드 백작이 손으로 산의 능선을 가리켰다. 테세우드 공작도 이미 그곳을 보고 있었다.

엄청난 수의 오크들이 산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능선 전체가 움직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감히! 몬스터 따위가!”

테세우드 공작의 수염이 가늘게 떨렸다.

“당장 저것들을 쓸어버리겠습니다!”

“쓸어버리고 주변 지역을 모조리 초토화시켜서 아예, 몬스터의 씨를 말려 버려라!”

“알겠습니다!”

레이놀드 백작이 자신의 말에 몸을 싣고는 빠르게 오크 부대가 출몰한 지역으로 달려갔다. 뒤를 이어 마법 병단과 기사들이 레이놀드 백작의 뒤를 쫓았다.

테세우드 공작의 뒤에 대마법사 쉐인이 나타났다. 자신의 막사에서 뭔가에 골몰했던 그는 밖에서 소란이 일자 나온 것이다.

오크 부대를 발견한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몬스터들이 날뛰다니 묘한 일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와이번에 오우거라…….”

테세우드 공작이 쉐인을 돌아봤다.

“뭔가 짐작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의아할 뿐입니다.”

둘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 *

요란 제국의 황태자 카르스는 처참하게 짓이겨진 기사들의 주검을 내려다보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 앞에 폭스 후작과 크루즈 백작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오우거의 짓이란 말이지…….”

분을 이기지 못해 뱉어 내는 말이 가늘게 떨렸다.

“죄송합니다! 놈들이 갑작스럽게 떼로 몰려드는 바람에…….”

“오우거…….”

“전하! 고정하십시오!”

폭스 단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카르스를 위로했다. 카르스가 크루즈 백작을 쳐다봤다. 섬뜩한 기운이 광포하게 몰아치는 그의 눈동자에 크루즈 백작은 내심 두려움이 덜컥 들었다. 카르스는 좋을 땐 한없이 좋지만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스타일이다.

“죽어라!”

“저, 전하!”

폭스 후작이 놀란 얼굴로 카르스를 쳐다봤다.

크루즈 백작은 제국이 알아주는 인재다. 결코 이런 일로 죽여선 안 되는 인물이다. 크루즈 백작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를 바라보는 카르스의 눈동자는 차갑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스르릉…….

크루즈 백작은 자신의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폭스 후작이 그의 팔을 잡으며 카르스에게 소리쳤다.

“전하! 기회를 주십시오! 크루즈는 제국이 인정하는 인재입니다. 이렇게 죽이신다면 적국에게 이로움을 줄 뿐입니다!”

“지금 죽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크루즈!”

“……!”

“네게 기회를 주겠다. 기사들과 마법 병단을 이끌고 다시 케논 산맥으로 올라가라! 가서, 그곳의 몬스터들을 씨도 남기지 말고 쓸어버리고 오란 말이다! 오우거는 가죽을 벗겨 내게 가져오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귀를 잘라 내게 가져오라! 알겠느냐!”

“전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크루즈 백작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고개를 숙였다. 안도의 숨을 내쉰 폭스 후작은 짐짓 엄한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 또 실수하면 내가 스스로 너를 벨 것이다! 알겠느냐?”

“반드시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해 보이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크루즈 백작이 나가자 폭스 후작은 다시 한 번 카르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카르스는 여전히 차가운 눈동자로 푹신한 털이 덮인 의자에 앉았다.

“블랙 오우거가 나타나다니…….”

“놀랍습니다! 전설 속에 드래곤의 가디언으로 알려진 그들이 현존했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설마, 드래곤이 레어를 깨고 세상에 나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폭수 후작의 말에도 카르스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뭔가 다른 말을 하려던 폭스 후작이 입을 다물었다. 카르스의 표정이 너무나도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스는 두 손을 깍지를 하고 생각에 잠겼다.

폭스 후작은 가볍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거처를 나가야만 했다. 생각에 잠겼을 때, 방해받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카르스였다. 그저 이럴 땐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 최고임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그였다.

밖으로 나온 폭스 후작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대마법사 율튼을 발견하고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같은 제국의 신하였지만 서로가 모시는 주인이 다르니 둘의 사이도 꽤 껄끄러웠다.

율튼이 다소 흥분한 어조로 폭스 후작에게 물었다.

“갑작스럽게 마법 병단을 케논 산맥으로 출전시키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오?”

“전하의 명이시오!”

“몬스터 따위를 잡는 데 마법 병단을 출전시킨단 말이오?”

율튼의 언성이 다소 높아졌다. 폭스 후작도 짜증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몬스터 따위라니? 전하께서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신 것들은 블랙 오우거란 말이오! 블랙 오우거에 따위라는 말을 붙이다니, 그럼 죽은 내 수하들이 그런 따위에게 당한 하찮은 아이들이란 말이오?”

“이보시오! 후작! 지금 내 말이 그게 아니잖소!”

둘의 격앙된 목소리는 카르스에게까지 들렸다. 카르스가 군막을 젖히고 나왔다. 율튼은 그에게 허리를 굽혔다.

“전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율튼 공!”

“전하! 몬스터 토벌을 목적으로 한 마법 병단의 출전 소식을 들었습니다.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명을 거두라?”

“케이론이 카티르 평원에 대병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마법 병단을 빼는 것은 극히 위험합니다. 재고해 주시기를 간청하나이다!”

율튼의 어조는 단호했다.

카르스의 눈가에 차가움이 번득였다. 그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율튼 공! 놈들이 설사 공격을 가해 온다고 하여도 이곳까지 오려면 최소 사흘이 소요되오. 사흘이면 마법 병단이 케논 산맥으로 출전한다고 해도 돌아올 시간은 충분하지 않겠소? 그러니 서둘러 크루즈와 함께 몬스터 토벌에 힘을 쏟으시오!”

“전하!”

“율튼 공! 난, 한번 내린 명령을 거두어 본 적이 없소.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그러니 더 이상 내 앞에서 다른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하오. 더 이상의 발언은 명령 불복종으로 간주하겠소. 아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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