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23화 (321/425)

# 323

<귀환무사 323화>

귀환무사 2부

98화

* * *

와아…….

군웅들이 쏟아 낸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흔들었다. 1차 관문을 통과한 참가자들은 무작위 추첨으로 지명된 상대와 승리를 향한 치열한 시합을 치르고 있었다.

한쪽이 스스로 패배를 선언하면 그것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녹다운 방식이었다. 패배를 선언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가 죽어도 문제 되지 않았다.

다만 패배를 인정한 상대를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 어느 제국의 검술 대회보다 잔인한 방식이었지만 참가자들과 군웅들은 그것에 이견을 달지는 않았다.

승자에게 돌아가는 포상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혁련천후와 진천, 사공진무는 출전자 대기석에서 경기장을 응시했다. 2차 관문에 들어선 참가자는 모두 마흔 명,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에 두 경기를 치르면 최종 10강에 들 수 있었다.

이미 20강에 든 출전자들도 생겨났다. 아침부터 전개된 대회는 해가 중천에 떠오를 무렵이 되자 열여덟 명의 승자가 결정되고 나머지 두 명만을 가리는 시합만이 남았다.

진천이 먼저 출전했다.

“너무 쉽게 끝내지 말고 조금 끌어.”

“옙!”

진천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곳곳에서 야유가 터졌다. 어제 벌어진 오우거와의 시합을 기억한 사람들은 그가 반칙을 저질렀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반칙? 이 자식들이……!”

진천은 인상을 구기며 군웅들을 노려봤다. 더욱 큰 야유가 돌아오자 입맛을 다시고는 상대를 쳐다봤다. 조잡해 보이는 흉갑을 두른 상대는 섬뜩한 소드 브레이커를 들고는 혀로 검신을 핥았다.

진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맛있냐?”

“이곳에 네놈의 피를 묻혀 핥아 주지.”

“어이구! 사양한다, 인간아!”

진천은 짐짓 무섭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도발했다. 심판관이 시합 개시를 알리기가 무섭게 상대가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이곳 수준이 낮은 것 같습니다. 공주의 신랑감을 뽑는 데 고작 저 정도라니 말입니다.”

사공진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은 모른다. 우리처럼 일부러 실력을 감추고 있는 자들도 있겠지.”

“흠……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주공의 눈을 속일 만한 자들이 과연 있을까, 의문입니다.”

“……!”

틀린 말이 아니었다.

혁련천후의 눈을 속이고 기운을 감출 정도의 고수라면 적어도 초인이라 불리는 자들에 필적할 만한 강자라야 가능하다.

그 정도의 강자들은 스스로 기운을 드러내기 전에는 혁련천후라도 눈치채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 진천의 주먹이 상대의 턱에 작렬했다. 검을 뽑지도 않고서 상대를 눕히자 야유는 환호로 바뀌었다.

손을 터는 시늉을 하며 진천이 올라왔다.

“하하!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제 주공만 남으셨네요. 내려가시지요.”

혁련천후가 일어섰다.

무기상에서 몇 냥을 주고 산 싸구려 철검을 허리에 두른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삼류처럼 보였다.

와아!

그가 나서자 군웅들이 환호성을 보내 주었다.

어제 있었던 트롤과의 결투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를 바라보는 상대 출전자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고작 트롤 따위에게 고전하더군. 그 실력으로 나를 이길 수 있을까? 난 말이야. 두 방에 트롤을 잠재웠거든, 너처럼 질질 헤매지 않고 말이야.”

혁련천후는 무시하고 심판관을 쳐다봤다. 빨리 시작하란 뜻이었다. 심판관이 지체 없이 대결을 알리는 신호를 보냈다.

“조금은 시간을 끌어 주려고 했는데, 그 입 때문에 그냥 끝내 주지.”

혁련천후는 똑바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검을 뽑지도 않았다.

“건방진 놈! 눕게 만들어 주마!”

상대는 검을 뽑아 들며 혁련천후를 향해 겨누었다.

멋들어진 문양이 새겨진 검이 태양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그러나 혁련천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기세가 대단하자 상대는 움찔하는 기색을 보인다.

“누워라!”

검이 허공을 횡으로 가르며 날아들었다.

혁련천후는 걸어가는 그대로 날아드는 검으로 손을 뻗었다. 보기엔 스스로 팔을 내미는 형국이었다.

군웅들이 내지르는 탄성이 크게 울렸다.

깡!

막강한 힘을 담고 날아오던 검이 경쾌한 쇳소리와 함께 부러졌다. 동시에 검을 부러뜨린 손가락이 상대방의 명치에 작렬했다.

“끄억!”

혁련천후는 괴상한 신음과 함께 그 자리에 꼬꾸라지는 상대를 오연하게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트롤보다 못한 놈이었군.”

어이없는 결과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던 경기장에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체술의 달인이 나타났다!”

“저 두 사람은 검을 뽑지도 않고 상대를 이겼어! 대단한데!”

“우승 후보다!”

사람들은 저마다 경탄을 쏟아 내며 웅성거렸다. 심판관이 오전 대회를 종료하는 신호를 보냈다. 승자들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각자의 거처로 돌아갔고 패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오후 대결까지 두 시간이 남은 관계로 셋은 식사를 할 요량으로 출전자들을 위해 마련된 식당으로 걸음을 놓았다.

‘뭐지?’

혁련천후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에 진천과 사공진무도 뒤를 돌아봤다.

“왜 그러십니까?”

패자들과 출전자들이 한데 섞여 각자의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 외에는 특이한 건 없었다.

혁력천후는 주변을 느릿하게 둘러봤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그랬다.

오감을 자극하는 묘한 기운이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러나 특별한 인물이 보이지는 않았다.

사공진무와 진천도 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는 눈에 힘을 주고서 주변을 살폈다.

역시 특별한 건 없었다.

“가지.”

혁련천후는 다시 걸음을 놓았다.

진천과 사공진무는 주변을 다시 쓸어 보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식당으로 들어서자 모퉁이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 놀라운데? 나를 느꼈단 말이야? 이거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인간이네?”

은발에 유달리 큰 눈동자를 지닌 인물은 20강에 든 출전자였다.

그는 식당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훗! 어쩌면 나와 대결할 수도 있겠네. 재밌겠어, 훗훗!”

여인을 연상시키는 화사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의 치렁치렁한 은발이 유달리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흠! 맛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좀 먹어야겠지?”

그도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면서 점점 바뀌기 시작한 기운은 식당에 다가가서는 그저 평범한 검사 정도로 변해 있었다.

그가 섰던 곳에 또 다른 자들이 나타났다.

역시 20강에 든 출전자들이었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흑발에 적안을 지니고 있었다.

식당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는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 세상에 저런 기운을 지닌 자가 있을 수 있지?”

“그러게 말입니다. 대종사께 보고를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직은 아니다! 비슷한 무공을 익힌 자들일 수도 있으니 내가 말하기 전에는 보고하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그때, 다른 인물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전주님! 모두 모였습니다!”

“알았다!”

전주라 불린 자는 잠시 식당을 노려보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다른 자들 역시 주변을 살피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놀라운 일이었다.

대종사나 전주라는 호칭은 중원에서나 사용하는 언어였다. 그런데 그들이 그것을 지칭했다.

그렇다면…….

은발 청년은 식당으로 들어서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식당의 좌측, 모퉁이를 돌아가는 일단의 무리들을 보며 그는 묘한 눈빛을 발했다.

그는 그들이 사라져 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끝까지 쳐다봤다.

“뭐지? 저 사람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네? 친군가?”

자신을 자극했던 혁련천후와 그들의 분위기가 흡사했다.

“둘은 꽤 강해 보였어. 왜 저런 강자들이 이 세상에 자꾸만 나타나는 걸까?”

혁련천후 때문에 케논 산맥에서 이곳까지 그를 쫓아왔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뒤를 쫓고 있음을 모를 것이다.

그런데, 그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보이는 자들이 더 있었다. 느껴지는 힘도 누가 더 세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했다.

“흐음! 나 아리엘을 긴장하게 만드는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짜증이 나려고 하네.”

푸념을 늘어놓은 은발 청년, 아리엘은 뒤를 흘긋 돌아보고는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웅성웅성!

식당은 꽤 소란스러웠다.

출전자들에다 대회를 주관하는 기사들이 한데 어우러지자 그 수가 백 명이 넘어갔다.

은발 청년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혁련천후와 일행을 발견하고는 일부러 가까운 곳으로 걸어갔다.

물론 완벽하게 기운을 감춘 상태였다.

음식은 투박한 스테이크와 감자를 삶아 다진 이름 모를 요리였다. 그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진행 요원들이 음식과 음료수를 탁자에 올려놓고 사라졌다.

“뭐야? 미리 만들어 놓은 걸, 주는 거야? 맛도 없고 싱싱하지도 않고, 쩝! 최악이군.”

가볍게 미간을 찌푸린 아리엘은 이내 음식을 입안에 꾸역꾸역 넣고 씹었다. 예상대로 최악의 맛이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씹어 삼킨 아리엘은 다시 혁련천후를 흘긋 쳐다봤다.

마침 그가 자신을 쳐다보자 눈을 찡긋거려 준 아리엘은 음료수를 마시며 컵을 통해 다시 그를 살폈다.

그는 이미 자신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훗! 변신을 풀면 어떤 얼굴일까? 저 사람, 지금 두 번에 걸쳐 가짜를 걸치고 있어.’

놀랍게도 아리엘은 혁련천후가 두 번의 변신을 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내공으로 근육을 움직여 변장했음에도 그것을 알아본다면 상당한 경지라고 봐야 했다.

“윽!”

우걱우걱 음식을 씹던 아리엘이 인상을 찌푸렸다.

“돌!”

손톱만 한 돌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잔뜩 인상을 쓴 아리엘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나르기에 여념이 없는 진행 요원들을 불렀다.

“이봐! 음식에서 돌이 나왔잖아!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가져다준 거야?”

그가 큰 소리로 따지자 진행 요원들이 기겁을 하고는 뛰어왔다.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아리엘을 쳐다봤다.

“돌이잖아! 돌! 돌!”

“금방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소리는 좀…….”

“이빨에 금이 갔으면 당신들이 물어 줄 거야?”

난데없는 소란에 아리엘을 응시하던 진천이 눈매를 가늘게 했다.

“조용한 곳으로 가시죠, 주공.”

“다 먹고 가야지.”

“돌 나왔다는데요?”

사공진무가 자신의 음식을 포크로 일일이 뒤져 보며 중얼거렸다. 진천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사공진무를 노려보고는 일어섰다.

“음료수가 맛있네요. 더 가져오겠습니다.”

“난, 파란색으로!”

“난, 빨강색!”

진천은 아리엘의 소란으로 대부분의 운영 요원들이 그곳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그는 직접 음료수를 가지러 입구에 마련된 음료수 거치대로 걸어갔다.

그가 음료수 거치대 앞에 섰을 때, 문이 열리며 다섯이 들어섰다. 문과 가까운 곳에 거치대가 있었기에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던 진천은 무심결에 그들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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