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22화 (320/425)

# 322

<귀환무사 322화>

귀환무사 2부

97화

“모조리 한 곳으로 몰려온단 말이냐?”

“일 개 군단은 카티르 평원과 인접한 곳으로 방향을 틀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곳은 적의 보급 부대가 상주하고 있는 곳으로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각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케이시 공작이 짜증스럽게 말을 뱉으려는 순간, 율튼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의미심장한 눈으로 케이시 공작을 바라본 율튼은 맥나라마 백작에게 자신이 대신 말했다.

“오늘부터 카르스 전하께서 지휘권을 인수하셨네. 부대의 모든 채널을 그곳으로 돌리고 보고나 명령 또한 그분께서 관할하실 것이네.”

팍!

율튼은 일부러 통신석을 꺼 버렸다.

그는 부관들을 모두 물러가게 만든 다음 여전히 구겨진 얼굴의 케이시 공작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각하! 차라리 이번 기회에 황태자의 능력을 시험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대군을 운용해 본 경험이 없는 그에게 이번 일은 상당히 벅찬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의 부족함이 세상에 드러난다면 오히려 정국은 각하께 유리하게 돌아갑니다.”

케이시 공작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일단, 황궁으로 돌아가겠소. 그동안 공께서 1군단을 맡아주시오.”

“폐하와 독대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아니오! 다른 볼일이 좀 생겼소. 카르스에겐 공이 대신 좀 전해 주시오.”

“각하! 자중하셔야 합니다.”

율튼은 케이시 공작이 행여나 황궁에서 소란을 부릴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케이시 공작은 그런 율튼의 속내를 짐작한 듯, 미소를 머금었다.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염려 놓으시오.”

그 말에도 율튼의 근심은 가실 줄을 몰랐다.

* * *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원이 며칠 사이에 군막들로 가득 채워졌다.

케이론 제국과 요란 제국의 접점 지역인 그곳은 언제나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기도 했다.

평원 뒤쪽엔 케이론의 군사 도시이자 보급 부대가 상주하는 몰리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평원까지 이어지는 길목에서 도로 건설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하급 병사들과 임금을 받고 동원된 평민들 수천 명이 땀을 흘리며 자재를 나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두두두두…….

아직 제대로 닦아지지 않은 도로 위를 빠르게 질주하는 마차가 있었다. 다져지지 않았던 탓에 바퀴 자국이 굵게 파여 버리자 인부들은 저마다 욕설을 퍼부었다.

“저런, 젠장맞을!”

“빌어먹을! 옆길로 달리면 될 것을! 하여튼 귀족들은 머리가 비었어!”

마차는 욕설을 뒤로하고 먼지를 일으키며 카리르 평원이 있는 방향으로 사라져 갔다.

평민들과 어우러져 욕설을 퍼붓던 하급 병사들은 마차의 깃발을 보고는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저, 저건 테세우드 공작 각하의 마차잖아?”

“맞다! 제국에서 저 깃발을 달 수 있는 분은 그분뿐이지.”

“빌어먹을! 텔레포트진으로 오면 될 것을 괜히 마차를 타고 와서 일을 두 배로 만들었잖아!”

“야! 인마! 입조심해. 그러다 감독관이 들으면 넌 그냥 이거야! 자식아!”

동료 하나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나무랐다. 주변을 둘러본 병사는 다시 투덜거렸다.

“놈들이 신경이나 쓰냐? 아침부터 처먹고 놀기 바쁘구먼.”

“어허! 이놈이 입에다 가시를 박았나.”

“어차피 전쟁이 벌어지면 네놈들이나 나나, 최전선에서 몸으로 때우다가 죽겠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 같지 않겠냐? 그러니 할 말이라도 하고 죽어야겠다. 이놈들아!”

“그건 그래! 젠장! 죽어서 환생하면 제발 귀족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병사들은 그늘 밑에서 껄껄거리며 노는 귀족들을 바라보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평민들은 그런 병사들이 측은했는지 물과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급 병사들과 평민들이 땀을 흘리며 도로 확장에 여념이 없는 한편, 케논 산맥의 정상에서는 요란 제국의 아이언 기사단이 몬스터 토벌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틀 전에 오우거와 와이번의 서식지라고 알려진 옹고르 분화구로 들어선 그들은 케이론의 군사적인 움직임으로 비상이 걸린 본진과는 다르게 한껏 주변 풍경을 즐겨 가며 오우거와 와이번을 찾아 움직였다.

이미 오크와 고블린 같은 하급 몬스터들은 수천 마리가 그들의 손에 죽었다.

황태자를 호위할 최소한의 기사들만을 남겨 두고 모조리 이곳으로 몰려온 아이언 기사단의 무력은 실로 막강했다.

천 마리가 넘어가는 오크 떼의 기습에도 그들은 단 하나의 사상자 없이 물리쳤다. 다른 지역의 오크와는 달리 케논 산맥의 오크들은 근골부터가 튼튼하고 덩치 또한 상당히 컸지만 오러로 무장한 기사들을 당해 내지는 못한 것이다.

“하하! 이거 너무 싱겁잖아. 얼른 오우거라도 나타나야 싸울 맛이 날 텐데 말이야.”

단장을 대신하여 기사단을 이끌고 온 크루즈 백작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기사들은 저마다 크게 웃으며 호응했다.

“부단장님! 오우거를 잡으면 포상 휴가라도 주십니까?”

“당연하다! 가장 많이 잡는 조는 단장께 상신하여 오 일의 포상 휴가를 내리겠다. 그러니 눈에 불을 켜고 잡아 보거라! 하하하!”

“하하! 우리 5조가 포상 휴가를 갈 것이니 너희들은 꿈도 꾸지 말거라!”

“웃기는 소리! 포상 휴가는 우리 4조의 것이다!”

지상 최강의 몬스터라는 오우거를 그들은 하찮은 고블린 정도로 여겼다. 힘에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5인 1조로 모두 다섯 개 조로 나눈 그들은 사방으로 산개하며 분화구에 조성된 울창한 수림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간혹 운 없이 걸려든 고블린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 갔다. 그들이 분화구의 가운데쯤에 들어섰을 때였다.

콰르릉!

갑자기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조장! 비가 오려나 봅니다.”

4조에 속한 기사 하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짧은 시간에 하늘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장, 멜빈 자작이 소리쳤다.

“비를 피할 만한 곳을 찾아보자! 몬스터들은 비를 싫어하니 비가 그칠 때까지 우리도 쉰다!”

다섯은 주변을 살피며 동굴 같은 것을 찾았다.

하지만 넓은 분지에 조성된 숲에서 동굴을 찾기란 어려웠다.

“저쪽에 큰 나무가 있습니다. 저 정도면 충분히 비를 피할 수 있겠습니다! 조장!”

“모두 저쪽으로 이동한다!”

기사들은 빠르게 전방에 우뚝 솟아 있는 거목으로 이동했다. 얼마나 거대했던지 수십 명은 피하고도 남을 거대한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변덕스러운 곳이군. 갑작스러운 폭우라니…….”

빗줄기는 상당히 거셌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멜빈 자작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기사들에게 건넸다.

“한 모금씩 마셔!”

술이었다.

기사들은 돌아가며 한 모금씩 마시고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쏴아아…….

“이거 상당히 오랜 시간 퍼붓겠는걸?”

“이곳은 지대가 낮은 곳이라 이 정도로 더 쏟아지면 물에 잠길 위험성이 높습니다.”

“하하! 설마 그 정도가 될 때까지 쏟아질까? 걱정 말고 피곤한 사람은 잠깐 눈이라도 붙여라! 비가 그치면 엄청 뛰어다녀야 할 테니까.”

멜빈 자작의 그 같은 말에 기사들은 거목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잠시 주변을 살펴본 멜빈 자작도 이내 등을 기대로 낮잠을 청했다.

꽈르릉…….

쏴아아…….

쫘자자자작…….

천둥소리가 생각 이상으로 시끄러워 눈을 감았던 기사들은 다시 눈을 떴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나지막이 소리쳤다.

“누가 다가옵니다!”

“다른 조의 기사겠지.”

멜빈 자작이 눈을 뜨고 기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폭우 속에서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희미한 실루엣이 비쳤다.

그는 눈에 힘을 주고서 실루엣의 정체를 확인하려 애를 썼다. 뒤이어 누군가 외쳤다.

“오우거다!”

“오호! 빗속에 돌아다니는 오거라니, 이거 횡재했군요.”

기사들은 전혀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당연히 그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어야 할, 멜빈 자작이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기사 하나가 그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조장! 왜 그러십니까? 잡아야지요.”

멜빈 자작은 대답이 없었다. 얼굴을 내밀어 그의 표정을 살핀 기사가 흠칫하며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멜빈 자작의 떨리는 목소리가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럴 수가, 무리 생활을 하지 않는 오우거가 한꺼번에 나타나다니…….”

“조, 조장! 스무 마리가 넘어 보입니다!”

그랬다.

오우거의 숫자가 무려 스무 마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원래 오우거는 집단생활을 하지 않는다. 한 마리가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몬스터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먹이 사슬의 균형을 위해 신이 그렇게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4조를 향해 다가오는 오우거는 확실히 스무 마리가 넘었다.

그 정도 숫자면 얘기는 달라진다. 싸우면 무조건 기사들이 필패다.

마스터도 오우거 두 마리 이상은 상대하지 못한다. 인간의 영력을 넘어선 초인들이라면 물론 가능하겠지만 이곳에 그러한 강자는 없었다.

“다른 조들과 합류한다! 뛰어!”

5명의 기사들은 빠르게 동쪽 방향으로 뛰었다. 동시에 괴성과 함께 오우거들이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크아아!

쿵! 쿵! 쿵!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는 기사들에게서 조금 전까지의 자신감을 깨끗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은 오우거의 거친 손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자신들의 육신들에 대한 공포뿐이었다.

“젠장! 너무 빠르다!”

추격해 오는 오우거들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그들이 지금껏 봐 왔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제야 멜빈 자작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조, 조장! 앞쪽에도 오우거들입니다!”

“으아! 빌어먹을! 더 많아!”

멜빈 자작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상당한 수의 오우거들이 앞쪽을 차단하고 있었다.

모두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크아!

다른 오우거들과는 달리 온통 검정색 털로 둘러싸인 거대한 오우거가 가슴을 치며 괴성을 질러 댔다.

우두머리였을까? 다른 오우거들이 두려운 빛을 보이면서 슬금슬금 뒤쪽으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그르르…….

새빨간 광기를 번득이는 블랙 오우거는 기사들을 노려보며 서서히 다가들었다.

제7장 몬스터의 준동

2조장 토린 자작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다, 다 죽었어…….”

처참하게 찢겨 죽은 동료들의 육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죽어 버린 동료들의 육신은 전신이 시뻘건 가죽으로 둘러싸인 고블린들에 의해 산산이 찢겨지고 있었다.

카악!

크아아!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지닌 블랙 오우거가 괴성을 질러 댔다. 마치 승리에 대한 기쁨의 표출로 보였다.

“오우거가, 블랙 오우거가 이곳에 있었다니…….”

토린 자작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전설에나 나오던 블랙 오우거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최초, 오우거의 기습은 다섯이 힘을 합쳐 막아 냈었다. 하지만 뒤늦게 나타난 블랙 오우거에 의해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음을 당했다.

오직 그 한 마리에 의해서 말이다.

오러를 품은 검도 통하지 않았다. 세상에 못 벨 것이 없다는 오러도 블랙 오우거의 가죽에 가벼운 자상을 입히는 것에 그쳤다.

반면에 최고 레벨의 방어막을 지는 신형 갑주는 블랙 오우거의 손짓에 의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크르르…….

괴성을 지르던 블랙 오우거의 섬뜩한 눈동자가 토린 자작에게 고정되었다.

토린 자작은 이를 악물고 검을 들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베린스 공작의 보고엔 이곳에 블랙 오우거가 있다는 소린 없었어!”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쿵! 쿵!

블랙 오우거가 그를 향해 걸음을 놓았다.

거대한 육신이 대지를 밟자 폭우 속에서도 지축이 흔들리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토린 자작은 신께 살려 줄 것을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하게 빗줄기만을 쏟아 냈다.

쏴아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