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20화 (318/425)

# 320

<귀환무사 320화>

귀환무사 2부

95화

그르르르…….

트롤은 방망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맹수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서서히 다가왔다.

“넌, 운이 좋은 놈이군. 죽이지는 않고 기절만 시켜 주마.”

진천은 오른 주먹을 붕붕 돌리며 트롤을 놀렸다.

크아!

트롤이 괴성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엄청난 파워가 실린 몽둥이가 얼굴 지척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린 진천은 손가락으로 몽둥이를 때렸다. ‘꽝’ 하는 타격음과 함께 트롤이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지었다.

진천이 손가락으로 몽둥이를 때리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워낙 빨랐던 탓이다.

축 늘어진 트롤은 일어서지 못했다. 기절을 한 것이다. 그가 경기장을 나설 때까지도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진천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생긴 것하고는 달리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놈이었습니다, 하하!”

“쓸데없는 힘자랑은 그만해.”

“예.”

혁련천후가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잠시 정신을 놓았던 사람들은 다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강철로 만든 견갑까지 두른 트롤이 튀어나왔다.

크아아!

죽은 동료의 시신을 흘끔거린 트롤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했다.

“죽이지는 않으마.”

혁련천후는 느릿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시장에서 몇 푼을 주고 산 철검이었다. 그는 가급적 다른 출전자들의 수준과 동일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괜한 관심은 번거로움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깡!

몽둥이와 검이 부딪치며 불꽃을 튕겼다. 트롤의 광포한 공격에 혁련천후는 뒤로 물러나며 수비에만 급급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가 트롤에게 당할 거라 생각했다. 십 분 정도가 흘렀을까?

혁련천후가 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검기를 일으켜 트롤의 장기를 강타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오직 내부 장기만을 노리는 내가중수법과도 같은 묘수에 트롤은 외마디 비명을 토하고는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혁련천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일부러 그렇게 보이려는 것이다.

“오! 대단한데?”

“와아! 잘했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진천은 자신도 다음엔 일부러 시간을 끌며 멋지게 눕히겠다고 생각했다.

“하하!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하니 배정받은 숙소로 가시지요.”

“진무는 도착했겠지?”

“졸지에 시종 노릇을 하게 되었다고 입이 이만큼은 나왔을 겁니다, 하하!”

사공진무는 둘의 시종이라는 신분으로 경기장으로 미리 들어와 있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각 출전자들은 시종을 동반할 수 있었다.

물론 대회가 끝나고 우승자가 결정되면 우승자의 시종 역시 황궁에 들 수 있게 된다.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그들로서는 의외로 쉽게 풀린 것이다.

둘은 경기장과는 다소 떨어진 곳에 지어진 커다란 건물로 걸었다. 몬스터들과의 대결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들 수 있는 곳이었다.

“여깁니다!”

이 층에서 사공진무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한눈에 보아도 시종임을 알 수 있는 복장으로 바꿔 입은 그를 보고 진천이 크게 웃었다.

“하하! 진짜 잘 어울린다! 죽이는데? 하하하!”

“시끄러워, 자식아!”

“주공! 올라가시죠, 하하하!”

배정된 방은 꽤 넓었다.

이 인이 방 하나를 사용하게끔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혁련천후와 진천은 같은 방을 쓸 수 있었다.

방 안에 놓인 탁자 위에 술과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출출하실 것 같아 미리 준비 좀 했습니다. 식사 시간은 오후 일곱 시쯤이라고 하니 그동안 이걸로 요기하십시오.”

“수고했다. 사냥꾼은 잘 재웠겠지?”

“염려 마십시오. 돌아가는 은밀한 곳에 진법을 펼쳐 놓았으니 깨어난다고 해도 절대 도망가지 못할 겁니다.”

“대회가 끝나면 그자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야 하니 그 전에 한 번씩 들려 봐.”

“술은 둘이서 마셔라. 난 좀 씻어야겠어.”

탁!

윗옷을 벗어 버린 혁련천후는 조그맣게 마련된 욕실로 들어갔다. 중원과는 달리 흐르는 물을 끌어다 각각의 방에 연결된 배관을 통해 항상 물이 흐르게끔 만들어 놓은 욕실을 보고 그는 가볍게 감탄했다.

“괜찮은 방식이군.”

여전히 놀라운 것이 많은 세상이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커다란 욕조에 물을 받고는 그 안에 누웠다.

반쯤 열린 창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쾌적함을 배가시켰다.

문득 아들이 떠오른다. 이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마저 생겨났다.

‘돌아오지 못하면 내가 그곳으로 갈 수밖에…….’

그는 눈을 감고 모든 상념을 지워 냈다.

* * *

아르소의 본성, 이 층의 창가에 레이나 공주가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 그녀는 연무장을 어슬렁거리는 마법사 요란을 유심히 살폈다.

당초, 음습한 분위기의 그가 무척 거슬렸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에 대한 흥미로움이 생겨났다.

‘레이놀드, 그 돼지와 함께 했었다면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야.’

레이놀드 백작은 모두가 아는 테세우드 공작의 충신이다.

마법 자원이 넘쳐 나는 그곳에서 테세우드 공작이 가장 신임하는 레이놀드 백작이 선택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필시 상위 레벨의 마법사일 것이다.

그와 싸우고 헤어졌다는 것이 어쩌면 그녀의 마음을 더욱 끌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테세우드 공작만큼이나 레이놀드 백작을 싫어했다.

‘만약 5클래스 수준이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포섭해야 해. 아바마마에게 힘이 되어 줄 마법사의 수가 너무 부족해.’

그랬다.

비록 제국의 황제라도 아리우스2세는 마법 병단의 전력에 있어 테세우드 공작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마스터의 수는 양측이 엇비슷한 전력이지만 테세우드 공작에겐 대마법사 쉐인이 있다.

그것만으로 전력은 테세우드 공작에게로 기울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루안이 있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인연에 불과했다. 아리우스2세의 전력으로 평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부른 바람을 한껏 들이켠 레이나 공주는 연무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삑 삑!

그녀의 거처에 놓아진 통신석이 소리를 울렸다.

“응! 어디지?”

레이나 공주는 다시 몸을 돌려 통신석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통신석에 얹자 영상이 나타났다.

영상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테세우드 공작이었다.

“안녕하셨소, 공주!”

“공작께서 어쩐 일로 통신을 다 보내시나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그곳에 루안이라는 자가 있소?”

“그건 왜 물으시죠?”

영상속의 테세우드 공작은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레이나 공주는 그가 루안을 들먹이자 내심 불안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을 테세우드 공작은 모르고 있을 줄 알았던 그녀였다.

“놈이 사고를 쳤다는 보고가 들어왔소. 이런 시기에 적국과 다툼을 벌이다니, 전쟁으로 확전이라도 시킬 생각이었소?”

“흥! 확전은 공작께서 바라는 것이 아니었나요? 그리고 포로로 잡힌 아군을 구한 일이 잘못된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제국의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 아닌가요? 게다가 탈출한 포로들은 대부분 공작의 병사들임을 모르지는 않겠죠?”

레이나 공주는 음성에 힘을 실었다.

불안감이 오히려 그녀를 단호하게 만들었다.

“전쟁이 애들 장난인줄 아시오? 놈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케논 산맥에 놈들의 황태자와 아이언 기사단, 강습여단이 몰려들었소!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곳을 탈환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단 말이오!”

“애초에 빼앗긴 건 공작이었죠. 그걸 왜 루안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거죠? 그는 목숨을 걸고 포로로 잡힌 아군을 구출한 영웅이에요!”

“공주! 이런 다툼은 서로를 피곤하게 할 뿐이오. 루안에게 전하시오! 지금 당장 황궁으로 복귀해서 내게 오라고 말이오.”

“흥! 루안은 떠났어요. 물론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몰라요. 아시잖아요. 그가 바람처럼 자유로운 사람인 것을…….”

테세우드 공작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마치 코앞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착각에 레이나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놈에게 전하시오. 칠 일 안에 내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군법에 의해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말이오!”

“사형! 미쳤군요! 공작!”

“케이론의 모든 군사적인 움직임은 나의 결재하에 가능함을 잊었소? 준전시 상태에서의 독단적인 행위는 군법에 의해 사형할 수도 있음은 엄연히 제국의 법령에 명시되어 있소. 누구보다 공주가 잘 아실 테니 내 말, 명심하기 바라오!”

팟!

통신석이 꺼졌다.

“이……!”

레이나 공주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화를 참지 못해 몸을 떨었다. 그때 다시 통신석에 불이 들어오며 테세우드 공작의 영상이 나타났다.

“아! 한 가지 잊은 게 있어서…….”

“……!”

“곧 삼십만 대군이 케논 산맥으로 출전할 것이오. 공주께서 그곳 주변의 모든 영주들을 소집시키고 가능한 한 최대한의 병력을 모아 주셨으면 하오.”

그 말에 레이나 공주는 두 눈을 부릅떴다.

“전쟁이라도 벌이겠단 말인가요?”

“놈들이 그곳에 점점 병력을 증강시키고 있소. 우리도 당연히 대처해야지 않겠소? 공주의 나라이니 알아서 병력을 모으리라 믿겠소.”

통신석은 다시 꺼졌다.

레이나 공주는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삼십만이면 제국의 오십 퍼센트에 해당하는 전력이다. 그만한 전력이 케논 산맥으로 몰려온다면 그건 전쟁이나 다를 바 없었다. 요란이 그걸 모를 리 없을 것이고, 안다면 당연히 그들도 그에 상응하는 전력을 보내올 것이 분명한 것이다.

갑자기 그녀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 * *

우드는 모처럼 써튼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었다.

다크 영지에 있던 써튼은 조윤과 흑야가 돌아오지 않자 자신도 이곳으로 온 것이다.

술이 적당히 취한 써튼은 연신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완전히 주방 보조로 전락하셨군요, 하하!”

“쩝! 웃지 말게. 난 무척 힘들단 말이네.”

“보기 좋은데요, 하하!”

미간을 찌푸린 우드는 술잔만 거푸 기울였다.

“게다가 백마법사로 보이는 사람이 이곳에 있어.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라니까.”

“우드 님의 내면을 뚫어 보려면 어지간한 레벨로는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설마 이런 촌구석에 그 정도의 상위 마법사가 있단 말입니까?”

“그게, 들어 보니 제국의 백작가에서 마법사로 지냈다더군. 당연히 상위 레벨이 아니겠나. 내가 흑마법사임이 드러나면 난 죽은 목숨일세.”

우드는 꽤 침울했다. 눈을 동그랗게 했던 써튼이 그를 위로했다.

“제아무리 상위 마법사라도 그분들이 계신데 감히 어찌하겠습니까? 마음 놓으세요.”

“그건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전, 그분들이 더 이상 무섭지 않습니다. 이젠 하루만 안 봐도 보고 싶을 지경이니까요.”

“그건, 나도 그래. 그 성난 얼굴들이 이젠 정답게 느껴지니…….”

우드와 써튼은 담대소천 등과 제법 상당한 기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동안 꽤 깊은 정이 든 것이다. 물론 담대소천 등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우드와 써튼의 입장에선 세상에 두려울 것 없는 든든한 보호막을 두른 것과 진배없었다. 아직 세상에 소문이 돌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들이 벌였던 사건들이 알려지면 그들은 하루아침에 전 대륙에서 주목하는 유명 인사가 될 것이다.

써튼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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