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18화 (316/425)

# 318

<귀환무사 318화>

귀환무사 2부

93화

“케이론 제국의 소속인지 먼저 밝혀 주십시오!”

가투소는 정색을 하고서 물었다. 요란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얼마 전까진 레이놀드 백작의 마법사였소. 물론 지금은 그 돼지와 헤어졌소. 되었소?”

“아! 그러시군요. 제1군단, 이글스 여단의 가투소라고 합니다.”

가투소는 그제야 자신을 밝혔다.

사실 요란의 음습한 분위기에 그는 내심 꽤 긴장하고 있었다. 혹시 요란 제국이 보낸 마법사가 아닐까 의심도 하며 주변을 살피기도 했었다.

“아르소엔 누굴 찾아오시는 길이십니까?”

“그냥 세상을 떠도는 중이오. 이곳의 맥주가 최고라기에 맛이라도 보고 가려고 들른 것이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쪽으로 오십시오. 기사들에게 시내로 모시라고 하겠습니다.”

가투소는 깍듯했다.

레이놀드 백작의 마법사였으면 보나마나 상위 계열의 마법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대륙의 그 어디에서도 환대와 존중을 받는 존재들이다.

요란은 가투소를 따라 성내로 들어섰다.

여전히 주변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울부짖는 사람들을 슬쩍 찌푸린 눈으로 쳐다본 요란은 낡은 막사로 안내되었다.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도시로 모시겠습니다.”

“어찌 된 일이오?”

“요란 제국의 기마 병단과 전투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막아 내기는 했지만 많은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단하군. 아르소는 변방이라 정규군도 없다고 들었소만, 어찌 막아 낸 것이오?”

요란의 질문에 가투소의 얼굴이 뿌듯함으로 물든다.

“이곳에 지금 대단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 덕분에 일천이 안 되는 병력으로 일만의 적, 기병을 물리쳤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흥분됩니다, 하하!”

요란이 크게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고작 일천으로 일만을? 그것도 기병을 말이오? 제국의 마스터들이라도 있단 말이오?”

“하하! 마스터보다 더 강한 분들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제가 그분들께 모시겠습니다. 거의 정리가 다 되어 갑니다.”

가투소는 가볍게 허리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요란은 낡은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마스터보다 강한 자들이라…… 이곳에 그런 존재들이 있었단 말인가? 혹시, 그 다크 영지의 그자들일까?”

그는 지난 날, 보았던 흑야와 혁련소를 떠올렸다.

그들이라면 어쩌면 마스터보다 강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대승이라면 곧 제국에 소문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자들에 대한 소문 역시 퍼질 것이다. 후후! 이거 이곳이 폭풍의 중심이 될 수도 있겠군.”

요란의 눈동자에 하얀 백색의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나 사건의 중심에 서 있기를 원하는 그의 성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 *

담대소천 등은 성의 첨탑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담소를 즐겼다.

아직 다크 영지로 돌아가지 않은 흑야와 조윤도 함께했다.

찻잔을 나르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모조리 우드의 몫이었다. 연소민이 옆에서 도왔지만 우드는 등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드, 스스로 자청한 것이다.

요즘 우드는 중원식 요리를 배우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생전 처음 먹어 본 중원의 음식에 흠뻑 빠진 탓이다. 우드는 즐거웠지만 그것을 먹어야 하는 담대소천 등은 달갑지 않은 표정이 역력했다.

“저 인간이 마법을 포기하고 요리사로 전직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군. 덕분에 내 혓바닥만 고생이잖아. 젠장!”

“흐흐! 난 탕수에서 그런 오묘한 맛이 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얼마 전, 그들은 우드가 직접 요리한 탕수를 한 젓가락도 삼키지 못했었다. 고춧가루를, 그것도 지독하게 매운 고춧가루를 향신료로 오인하여 듬뿍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매운 것을 유달리 못 먹는 북궁천소에게 맞아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엄청나게 매운 탕수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의 옆에서 카루가가 젓가락을 들고서 뭔가를 열심히 입에 넣었다.

과일을 갈아서 만든 향긋한 요리였다. 북궁천소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맛있냐?”

“응! 맛있어. 좀 줄까?”

“됐다. 많이 먹어라!”

괜히 물어봤다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돌아온 북궁천소는 우드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춧가루는 함부로 멀찌감치 갖다 놔, 인마!”

“저것 좀 봐라. 아주 지랄을 한다, 지랄을…….”

북궁천소의 고함 소리에 깜짝 놀란 우드가 그만 펄펄 끓는 솥에다 고춧가루를 통째로 떨어뜨렸다.

먹으면 치사량에 가까운 고춧가루를 쏟아붓는 바람에 당황한 우드는 향신료까지 솥 안으로 떨어뜨렸다.

배가 고파서 음식이 다 되기만을 기다렸던 모두가 어이가 없어 입을 벌렸다.

“아저씨 때문이야, 냠냠!”

카루가가 북궁천소를 가늘게 흘겼다.

“그게 왜 내 탓이냐?”

“소리 질렀잖아!”

“맞다, 네놈이 소리를 질러서 일이 벌어진 거니 네놈이 책임져라.”

왕전이 거들었다. 북궁천소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기겁을 한 우드는 재빨리 도망쳤다.

“서! 안 서?”

“오늘은 기사들이 먹는 것으로 하시지요. 제가 후다닥 가져오겠습니다.”

도망치는 우드는 무척이나 빨랐다.

퍽!

“어이쿠!”

밑으로 내려가려던 우드가 마침 첨탑으로 올라오던 가투소와 부딪혔다. 워낙 뒤도 안 보고 달렸던 탓에 충격은 대단했다.

둘은 한동안 머리를 잡고 일어서지 못했다. 가투소와 함께 올라온 요란은 흑야를 발견하고는 이채를 발했다.

‘후후! 역시 저자였어.’

요란 제국의 일만 기병을 물리쳤다는 존재들을 소개받기 위해 온 그였다. 내심 흑야와 혁련소를 떠올렸던 그는 흑야가 그곳에 있자 확신을 굳혔다.

흑야도 요란을 보았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좀처럼 웃음이 없는 요란이 씩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오.”

흑야의 무뚝뚝한 대답에도 요란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때 가투소가 일어나 요란을 소개했다.

“마법사 요란 님이십니다. 여행 중에 이곳을 들르셨다고 하기에 모시고 왔습니다.”

“왜?”

왕전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가투소는 멀뚱거렸다. 요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대단한 전투를 치르신 분들을 만나 뵙고 싶다고 제가 졸랐습니다. 요란입니다.”

전날의 요란과는 무척 달라진 태도였다.

마치 흑마법사처럼 음습하고 차가웠던 그가 아니라 천성이 그런 것처럼, 표정이나 태도가 꽤 밝았다.

전날의 요란을 기억하고 있던 흑야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요란을 직시했다.

“이쪽으로 모셔라.”

담대소천의 묵직한 음성에 가투소는 재빨리 요란을 빈 의자로 안내했다. 요란을 흑야와 담대소천을 제외한 모두가 자신을 차가운 눈초리로 노려보자 내심 흠칫했다.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날카로운 칼날이 몸을 쑤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몇 클래스요?”

왕전이 물었다. 안하무인격인 태도에 요란은 내심 언짢았으나 얼굴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보잘것없는 수준이라 밝히기가 부끄럽습니다, 하하!”

요란은 쑥스럽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제법 강한 친구다. 소가 탐을 냈던 적이 있었지.]

흑야의 전음이 모두의 귓속을 울렸다. 그 말에 모두는 새삼스러운 빛으로 요란의 전신을 훑었다.

모두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변하자 배짱 좋은 요란도 움찔했다.

“다크 영주님은 보이지 않으시군요.”

분위기를 돌리고자 한 말이 주변 공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뭐야, 이거…….’

요란은 한동안 입을 다물어야 했다.

* * *

혁련천후는 홀베른의 왕궁이 내려다보이는 산의 정상에 서 있었다.

보우의 말로는 왕궁의 깊숙한 곳에 아이아스의 레어로 통하는 입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대단한 기운들이 곳곳에서 번득입니다. 확실히 요상한 곳입니다.”

진천이 옆에 섰다.

그의 말대로 왕궁 주변에서 포착되는 강력한 기운들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중엔 혁련천후 자신도 측정이 불가능한 기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붙어 보기 전엔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궁 전체를 두른 결계라는 것이 상상 이상입니다. 숨어서 잠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죠?”

“생각 중이다.”

혁련천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 온 이후로 가장 강력한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반대로 저곳이 드래곤의 레어가 존재하는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세상의 초인이라는 케이시 공작을 그는 근접 거리에서 보았었다. 꽤 강력했지만 자신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가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홀베른의 왕궁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함을 느끼게 했다. 드래곤의 후예라는 보우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사냥꾼은?”

“수혈을 짚어 재웠습니다.”

“깨워.”

“예?”

“놈에게 왕궁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방법을 물어봐야겠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깊은 잠을 자다가 깬 보우는 혁련천후의 물음에 귀가 번쩍 뜨일 만한 말을 늘어놓았다.

검술 대회.

바로 그것이었다.

홀베른의 왕은 검술 대회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위인이란다. 그래서 일 년에 다섯 번에 걸쳐 검술 대회를 개최하는데 곧 올해의 네 번째 대회가 개최될 시기란다.

우승자는 왕실 기사단에 입단하는 영광과 함께 후작의 지위가 내려지고, 준우승자는 백작의 지위에 역시 왕실 기사단에 입단하는 특혜가 주어진단다.

보우의 말에 혁련천후는 눈빛을 발했다.

소란 없이 자연스럽게 왕궁으로 들어갈 방법치고는 지나치게 쉽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검을 당할 자, 없다고 자신한 그는 곧바로 왕궁 근처의 도시로 이동했다.

홀베른의 수도는 멀리서 바라보던 것보다 훨씬 번잡하고 화려했다.

케이론에선 볼 수 없었던 화려함이 도시 전체에 깔려 있었다. 주변을 늘어선 상점은 손님들도 넘쳤고 술집은 빈자리가 없어 아예 도로의 가장자리까지 탁자로 넘쳤다.

곳곳에서 화려한 공연들이 펼쳐졌고 요란한 복장의 광대들이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와! 죽이는군요. 요지경에 든 것 같습니다.”

“돈이 남아도는 곳이군요. 금을 두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거 강도짓 몇 번만 하면 떼 부자가 되고도 남겠습니다.”

진천과 사공진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번에 걸쳐 이곳을 들렀던 그였지만 마지막으로 다녀간 시점이 이 년 전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홀베른은 확연히 달랐다.

“사람들이 엄청 모였네? 뭐지?”

“벽에 뭔가 붙었는데?”

사공진무가 커다란 술집의 벽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큼지막한 대자보가 붙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사공진무가 보우를 손짓으로 불렀다. 대화야 통역구슬이 있어 가능했지만 읽은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간 보우가 이내 돌아왔다.

“검술 대회에 관한 공고문입니다.”

“오! 그래?”

사공진무와 보우는 재빨리 돌아와 그 같은 사실을 혁련천후에게 전했다.

“일주일 후에 왕궁의 특설 연무장이라…….”

“주공! 일이 너무 쉽게 풀립니다, 하하!”

“왕궁으로 들어간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여튼 그때까지 최대한 이곳에 대한 정보를 얻으며 움직이도록 하지. 그리고 넌, 성과가 있긴 한가?”

혁련천후의 물음에 진천은 머리를 긁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