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
<귀환무사 315화>
귀환무사 2부
90화
질주해 들어오던 선두의 기사들이 말 등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말 등에서 성곽까지는 이 미르가 채 안 되는 높이다. 수련을 거친 기사들이라면 쉽게 올라설 수 있는 높이었다.
“성곽 위로 뛰어오른다!”
“렌서들은 어디 갔느냐! 올라오는 적을 막아라!”
가투소의 고함 소리에 뒤늦게 창병들이 성곽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상당수의 기사들이 올라온 뒤였다.
좁은 성곽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레이나 공주도 검을 뽑아 들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검술은 실로 놀라웠다. 여자라고 우습게 여기고 달려들던 기사들이 대번에 목이 날아갔다.
“물러서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가투소는 용맹하게 싸우면서도 전황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으악!”
그의 검에 피를 뿌리며 쓰러진 기사의 육신이 아래로 떨어지며 다른 기사를 덮쳤다. 졸지에 밑에서 올라가려던 기사들이 목이 부러져 함께 횡사를 당했다.
“기름!”
촤아악!
“으아아…….”
미리 설치되었던 커다란 솥에서 펄펄 끓는 기름이 성곽 아래로 쏟아지자 밀집해 있던 요란 제국의 기사들, 상당수가 참변을 당했다.
제법 떨어져 있던 기사들도 기름이 튀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전투력을 상실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살아남은 마법 병단의 공격이 아르소의 기사들에겐 가장 큰 문젯거리였다. 화염 계열의 공격에 상당수가 불길에 휩싸여 죽어 갔다.
더욱이 가투소의 기사들은 공성전에 익숙하지 않은 기병 출신이 대부분이었기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시간은 베린스 공작의 편이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넷에게 최소한의 전력을 던져 주고 성곽을 공격한 것이 주효했다.
워낙 수적인 열세에다 익스퍼트급 기사들의 수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자 서서히 아르소가 밀리는 양상으로 이어졌다.
“성곽으로 돌아가야겠다!”
“독한 새끼들!”
북궁천소와 왕전은 성곽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것을 보고는 몸을 날렸다.
담대소천은 병력들 사이에 몸을 숨기기 바쁜 마법사들만을 골라 격살하고 있었는데, 필사적으로 막아서는 기사들 때문에 다소 곤란함을 겪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군.’
지금까지는 최대한 살생을 금했던 그였다.
적당히 겁을 주고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이면 그대로 물러날 거라 여겼던 것이 판단 착오였다.
“소민! 너도 성곽으로 돌아가서 저들을 도와라!”
“조심하세요! 담대 숙부님!”
연소민이 재빨리 왕전과 북궁천소의 뒤를 따랐다. 담대소천의 청룡언월도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강력한 도강으로 휩싸였다.
“지금부터 너희들을 나의 생사대적으로 간주하겠다.”
담대소천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살기가 떠올랐다.
이미 그의 주변은 커다란 원형의 공간이 생겨나 있었다. 달려들기가 두려웠던 기사들이 뒤로 물러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마법사들을 지켜 내기 위해서였다.
웅웅웅!
청룡언월도가 공명을 토해 내며 허공을 가르자 상상불가의 강력한 힘이 주변을 쓸었다. 검을 들어 막은 자들이 검과 함께 두 토막으로 잘라지며 피를 뿌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지막지한 파괴력에 마법사들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눈 녹듯 사라지며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너희들의 땅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살 수 있다!”
담대소천의 사자후가 주변을 울렸다.
“으아…….”
쾅!
피와 살이 난무했다. 죽어 가는 자들이 흘린 비명 소리는 산자들에게 극한의 공포감을 심어 주었다.
“모두 성곽으로 도주하라!”
누군가의 입에서 엉뚱한 명령이 터졌다.
이곳보다 적의 주 병력이 몰려 있는 성곽이 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담대소천의 파괴력은 공포, 그 자체였다.
기사들이 전마를 돌려 성곽으로 질주했다.
하지만 우위를 점해 가던 성곽의 전투도 전장으로 난입한 왕전과 북궁천소 때문에 상황이 바뀌고 있었다.
워낙 좁은 공간에서의 전투인 까닭에 둘이 양방향에 떡하니 버티고서 서자 뚫어 낼 방도가 없었다.
인해전술도 상대가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보이는 경지라면 통한다.
그러나 북궁천소와 왕전은 그들이 어찌할 수준을 넘어선 존재들이다.
당연히 마스터라고는 베린스 공작, 하나뿐인 요란 제국의 기마 병단이 둘의 방어를 뚫어 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나마 마법 병단이라도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면 가능성이 높아졌겠지만 그들은 벌써 몇을 남기고 모조리 죽어 버린 상황이었다.
집요하게 마법사만을 노렸던 넷 때문이었다.
베린스 공작의 눈동자가 절망을 넘어 광기를 비쳤다.
“각하! 퇴각하셔야 합니다!”
“크로우 기사단이 아니면 저들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모조리 죽습니다. 퇴각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각하! 마법 병단이 전멸했습니다! 속히 퇴각을…… 으악!”
부관 하나의 머리에 화살이 박혀 들었다.
화살은 연이어 베린스 공작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부관들의 목을 꿰뚫었다.
크게 놀란 베린스 공작은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곽의 끝부분에서 황금색 갑주에 붉은 흉갑을 두른 인물이 그의 눈에 잡혔다. 바람에 금발을 날리며 느릿하게 다가오는 그는 베린스 공작을 보며 웃고 있었다.
참혹한 전장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움이 그에게서 묻어났다.
베린스 공작의 부릅떠진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후후! 운이 없다고 생각해.”
어느새 베린스 공작의 곁에 나타난 인물이 속삭이듯 말했다. 달려들던 기사들이 그의 가벼운 손짓에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그녀를 괴롭혔으니 당연히 죽어야지.”
퍽!
베린스 공작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그러고는 서서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을 뚫고 등까지 삐져나온 팔이 빠져나가자 베린스 공작의 육신은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으아! 각하께서 전사하셨다!”
“퇴각하라!”
요란 제국의 기사들이 혼란에 휩싸였다.
이미 성곽 밑의 기마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기 시작했다.
“루안!”
레이나 공주가 베린스 공작을 죽인 인물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소리치며 뛰어왔다.
루안이 그녀를 보며 눈부신 미소를 머금었다.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히는 루안의 미소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후후! 당신의 기운이 느껴지더군. 그래서 왔지.”
“때마침 잘 와 주었군요.”
“잠시만 기다려.”
루안의 육신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허공에서 멈춘 그는 북쪽으로 도주하는 요란 제국의 기사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의 양팔이 허공에서 교차되며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도주하는 기사들에게로 날아갔다.
쾅!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