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12화 (310/425)

# 312

<귀환무사 312화>

귀환무사 2부

87화

“이유를 물으시잖아! 자식아!”

진천이 눈을 부라려도 마법사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혁련천후의 눈에 살짝 이채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진천이 손을 들어 마법사의 머리를 향했다.

환술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그만!”

진천을 말린 혁련천후가 한쪽에 우두커니 선 죄수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죄수들의 태도가 이상했다. 마법사들을 죽이고 기사들을 때려눕힐 때 보였던 놀람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두려워서 보이는 반응과는 확연히 달랐다.

“뭔가 있었군.”

“예?”

진천과 사공진무가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쳐다봤다. 그가 삼 미르 정도까지 다가갔을 때였다. 죄수 두 명이 느닷없이 그에게 공격을 감행했다.

쾅!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강력한 기운이 혁련천후를 스치고 지나가며 벽면을 강타했다.

그때를 이용해 보우는 죄수들 곁으로 뛰어갔다. 워낙 갑작스러웠던 탓에 진천과 사공진무는 보우를 놓치고 말았다.

“케이시 공작이 보낸 자들이냐?”

죄수들 중, 가장 체격이 좋은 자가 물었다.

그의 손에 들려진 검을 보며 혁련천후는 내심 감탄했다. 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마나 덩어리였다.

중원으로 보면 내공으로 검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답해라! 케이시 공작의 졸개들이냐고 물었다!”

“네놈들은 누구지?”

혁련천후는 물음을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 진천과 사공진무는 죄수들의 좌우로 다가갔다.

보우를 막지 못해 기분이 상해 버린 둘은 죄수들의 좌우에 포진했다.

혁련천후를 바라보는 죄수들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조금 전의 기습을 쉽게 피해 낸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다.

뒤쪽에 빠져 있던 죄수가 앞으로 나섰다.

“크로우 기사단의 단원들이냐?”

“네가 이들의 수장인가 보군.”

혁련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나치게 여유로운 태도에 나섰던 인물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너희들에겐 관심 없다. 우린 저 사냥꾼만 데려가면 그뿐이다. 다른 그 어떤 것도 묻지도, 알려고 하지도 마라. 모두 죽고 싶지 않다면 저 친구만 우리에게 넘겨라. 기회는 한 번뿐임을 명심해라. 난, 여자라고 두 번 봐주지는 않는다.”

그의 말에 죄수들이 일제히 동요했다.

여자라고 지목된 인물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때 보우가 착잡한 표정으로 나섰다.

“나를 원하는 이유부터 듣고 싶소만…….”

“케논 산맥의 레어!”

“역시…….”

보우의 얼굴에 체념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다른 죄수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제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약속을 어기겠다는 것이냐?”

“이들을 물리치면 당신들과의 약속을 지키겠소. 반대로 당신들이 지면 난 이들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오.”

보우는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리는 시늉을 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뒤쪽에 섰던 죄수들이 앞으로 일제히 나섰다. 사라졌던 마나 검이 다시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혁련천후를 차갑게 노려보던 죄수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군요. 당신들을 죽일 수밖에…….”

여인의 음성이었다.

우우웅…….

건물 안이 갑작스럽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했던 죄수가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화려한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으로 변모했다.

“아이작 경! 기사들이 몰려오기 전에 저들을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그녀가 뒤쪽으로 물러나자 뒤쪽에서 다른 자가 나섰다. 그는 지금껏 가장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인물이었다. 느릿하게 앞으로 나서던 그는 짧은 순간에 완벽한 기사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다.

“오호! 놀라운 변신술이군. 그것도 마법이냐?”

진천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에 뒤쪽에 물러섰던 보우의 얼굴에 가벼운 이채가 떠올랐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작의 얼굴이 가볍게 실룩거렸다.

“너희들도 그만 본모습을 드러내시지.”

“이거 놀라운걸. 그걸 알아채고 있었단 말이야?”

진천이 진정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공진무도 같은 표정이다.

지금 자신들은 내공으로 모든 것을 변환시킨 상태다. 중원으로 본다면 초절정 정도의 고수가 아니며 결코 깨닫지 못한다.

‘기운을 감출 정도의 강자였던 모양이군.’

혁련천후는 아이작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보잘것없는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변신을 간파했다면 결코 보잘것없는 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기운을 갈무리할 수준의 고수라는 것을 뜻한다. 다른 자들도 아이작의 좌우로 늘어섰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단장님!”

그들도 변신을 풀고 기사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하나같이 금빛이 번득이는 최상급 갑주를 걸치고 있었는데 손에 쥐어진 검도 다른 기사들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혁련천후가 앞으로 나섰다.

“싸운다면 너흰 죽는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저 친구만 데려가면 그뿐이다. 그래도 싸우겠느냐?”

“그깟 허세에 속을 줄 아느냐? 기사라면 본모습을 드러내고 검을 들어라!”

아이작은 당당했다.

갑작스러운 셋의 등장에 처음엔 다소 놀라고 당황한 그였지만 정작 결투가 임박하자 그는 전형적인 무인의 기질을 보여 주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다소 망설였다.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만 아니었다면 요란 제국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벌써 이들을 베었을 그였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는 과정에서 고르디 자작과 그의 기사들, 그리고 요란의 백성들이 보여 준 행동 때문에 그는 요란 제국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눈앞의 아이작과 기사들에게서 사악함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깥을 지켰던 기사들에게서 느꼈던 기운과는 확연히 달랐다.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세상이다. 적아의 구분은 오직 자신을 방해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을 막아섰으니 적으로 간주하면 그만인 것이다.

“어쩔 수 없겠군…….”

팍!

셋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흑안의 마검사!”

경악성이 보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여인과 다른 기사들의 얼굴에도 은은한 놀람의 기운이 나타났다. 그들이 보기엔 틀림없는 소문의 그 흑안의 마검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놀람도 잠시 아이작과 기사들은 좌우로 넓게 벌리며 전투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소문이 틀렸군. 흑안의 마검사는 정의로운 자들이라 들었는데 죄 없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이토록 무참히 살해하다니, 역시 케이론답구나.”

흑안의 마검사는 케이론에서 살아간다고 전해져 있었기 때문에 아이작은 혁련천후 일행이 케이론 제국에서 왔음을 확신했다.

“난, 마법사라는 놈들을 꽤 싫어한다. 특히 눈빛이 좋지 않은 놈들은 더더욱 싫어하지.”

“사악한 자들이군. 그대들의 이름 앞에 정의라는 말을 집어넣는 케이론의 어리석음이 다시 한 번 느껴지는구나!”

“정의? 요란 제국에서 살아가는 놈들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닥쳐라!”

혁련천후가 다시 걸음을 놓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그의 오른손에 서서히 검의 형상이 생겨났다. 기사들이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형태의 검이었지만 색은 완전히 달랐다.

기사들이 청색이었다면 그는 무형에 가까운 순백색의 검이었다.

대지를 가르고 하늘을 베었던, 그리고 군림천하를 그에게 안겨 준 무적의 살인강기이자 궁극의 최종 병기인 천살강기를 품은 것이었다.

“이 세상은 나의 세상이 아니다. 따라서 케이론이든 요란이든 나완 전혀 상관없는 곳이지. 단,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요란도, 케이론도 나의 적일 뿐이다.”

혁련천후의 육신 주변이 아지랑이 같은 기운으로 요동쳤다.

대마법사 율튼과 그의 마법 병단을 돌파할 때 이후로 가장 강력한 힘이 그에게서 분출되고 있었다.

치르륵!

아이작과 기사들의 검에도 강력한 오러가 맺혔다.

천살강기의 광포함에도 그들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아이작이 양손검의 자세로 일보를 내디디며 씩씩하게 외쳤다.

“오너라! 케이론의 개여!”

* * *

두두두…….

베린스 공작 휘하의 일만 기병이 대지를 울리며 아르소의 국경으로 질주를 거듭했다.

선두에서 전마를 몰아가는 베린스 공작의 얼굴엔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질끈 깨문 입술이 그의 마음가짐을 대변했다.

자신의 모든 과오를 일거에 뒤집기위한 독단적인 출진이다. 승리하면 다시 한 번 출세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패배하면 그걸로 자신의 인생은 끝장이다.

부관 하나가 전마를 몰아 그의 곁으로 따라붙으며 소리쳤다.

“각하! 삼십 분 거리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쯤에서 척후병들의 정보를 살핀 후에 아르소의 영지로 진입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보 따윈 무시한다! 어차피 전력은 우리가 우세하다. 속전속결이다!”

“각하! 케이론 1군단의 패잔병들과 새롭게 보강된 전력이 삼만에 이릅니다. 그들이 아르소로 구원을 온다면 자칫, 고립될 수도 있습니다!”

“그깟 허수아비 같은 놈들이야 백만이 있어도 두렵지 않다! 그대로 돌진할 것이니 속도를 높여라!”

베린스 공작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르소쯤은 충분히 함락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다. 부관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대열로 돌아갔다.

일만 기병이 만들어 내는 흙먼지는 엄청났다. 건조한 날씨 탓에 뒤쪽에서 질주하는 기마병들은 얼굴을 덮어 오는 흙먼지 때문에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두두두…….

지축이 흔들렸다.

저 멀리 아르소의 평원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베린스 공작의 눈동자에 강렬한 염원이 어린다.

‘반나절 만에 전투를 끝내야 한다. 케이론의 북부 여단이 구원을 올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아르소를 쓸어버려야 한다.’

보병과 창병은 아예 합류조차 시키지 않았다. 오로지 속도만을 중시했던 작전 때문이다.

해서 시간이 지체되면 되레 자신들이 불리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우르릉…….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날렸다. 베린스 공작의 얼굴에 초조함이 나타났다.

비가 오면 기동력이 떨어진다.

‘망할……!’

두두두…….

그를 태운 전마가 더욱 빠르게 직선으로 쏘아졌다.

* * *

“저게 뭐냐?”

“적, 적군인가?”

아르소의 성곽을 경계하던 기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서 거대한 먼지구름을 쳐다봤다.

“북부 여단으로 이동하는 아군인 모양인데?”

“그런가? 그런데 그런 소식은 들을 적이 없었는데?”

기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사색으로 변했다.

“저, 적이다!”

“신호를 울려라! 적의 기습이다!”

뿌우웅!

성곽을 따라 드문드문 세워진 첨탑에서 일제히 나팔 소리가 울렸다.

반쯤 열렸던 성문이 빠르게 닫혔고 몇 없어 보이던 성곽에 수백 명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올라섰다. 모두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달려드는 기마병이 어림잡아 일만은 넘어 보였다. 고작 천이 안 되는 병력으로 막아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오 미르에 달하는 성곽이 위안거리였다.

장대한 체구에 은빛 플레이트를 걸친 천인장 맥슨이 큰 소리로 외쳤다.

“통신병들은 북부 여단에 적의 기습을 알리고 나머지는 공성전을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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