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09화 (307/425)

# 309

<귀환무사 309화>

귀환무사 2부

84화

둘은 기사들에게 험악한 눈길을 주고는 성으로 들어갔다.

한편 레이나 공주와 연소민은 모든 광경을 성의 첨탑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이나 공주의 아름다운 얼굴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너무 과격했어. 기사들에게 발길질이라니…….”

연소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중원이라면 발길질이 아니라 칼질을 당하면서라도 담대소천에게 훈련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운이 없는 사람들이군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운이 없단 말이지?”

“저 기사들 말이에요.”

“왜 그렇지?”

레이나 공주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

“훗!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식사하셔야죠. 얼른 가세요, 공주님!”

술잔을 기울이던 셋은 레이나 공주와 연소민이 들어섰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레이나 공주도 그것에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한 달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 꽤 친숙해진 탓이다. 이들의 사고방식에 그녀가 물들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음이 상했나 보군요. 대낮부터 술이라니…….”

“숙부님들! 제가 한잔 올릴게요.”

연소민이 생긋 웃으며 모두의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레이나 공주도 자리에 앉더니 술잔을 내밀었다.

“나도 한 잔 줘.”

“훗! 괜찮으시겠어요?”

“취하면 자러 가지, 뭐.”

“흐흐! 꽤 변했소? 그러다가 우리처럼 되는 것 아니오?”

“나쁘진 않죠. 숙부들처럼 거칠 것 없이 사는 것도 꽤 매력적인 삶이겠단 생각도 들곤 해요. 그건 그렇고 셤서라는 곳, 아름다운 곳인가요?”

셤서는 레이나 공주에게 자신들의 출신 지역을 둘러댄 지명이다.

중원의 섬서를 셤서로 바꾸어 대답한 것을 레이나 공주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아름답지, 세상에 그곳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지…….”

담대소천이 중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레이나 공주의 눈에 살짝 빛이 발해졌다. 그녀는 담대소천이 걸친 갑주를 보며 물었다.

“진즉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 갑주는 제국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군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아 보이는데, 방어막이 둘러진 갑주를 하나 선물하고 싶군요. 어때요?”

“난 이게 좋소.”

“흠! 그래도 선물하겠어요. 성의를 무시하지 말았으면 해요.”

연소민이 활짝 웃으며 대신 감사를 나타냈다.

“고마워요, 공주님! 기왕이면 최신형으로 주시고, 두 분 숙부님들 것도 주시면 고맙겠네요.”

그 말에 왕전과 북궁천소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둘은 레이나 공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뒷말을 기대했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갑옷 하나 주고 조건은 무슨…….”

왕전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레이나 공주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숙부들이 강한 건 인정해요. 패튼 경을 그렇게 쉽게 제압하는 경지라면 마스터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못한 정도겠죠. 그 정도라도 어지간한 국가에서 최소, 자작 이상의 작위는 받을 수 있으니까, 거기에 걸맞은 최상급 갑옷을 선물하겠어요.”

“마스터라면……?”

북궁천소가 연소민을 쳐다봤다.

“강호에서 절정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절정? 우리가 말이야?”

둘의 얼굴이 무참하게 구겨졌다. 담대소천은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레이나 공주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되물었다.

“절정이 뭔가요?”

“호호! 저희 셤서 지방에선 강한 사람들을 그렇게 불러요.”

“조건이 뭐요?”

선물이 궁금했던 북궁천소가 급하게 나오자 레이나 공주는 가볍게 눈을 흘기고는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아르소에서 지내는 동안 나를 호위하는 기사들이 되어 주세요. 작위는 자작으로 내려 주겠어요. 당연히 임시 작위가 아닌 영구적으로 임명되는 거니까 괜찮은 조건이 아닌가요?”

연소민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그 모습을 본 레이나 공주는 내심 만족했다. 자신이 건넨 조건은 제국의 기사들이라면 꿈에도 그리는 것이다.

당연히 변방의 기사들인 이들이 거부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

연소민의 놀란 눈동자는 이내 조금의 불안감을 담고는 셋을 번갈아 살폈다. 담대소천은 걱정되지 않았다. 왕전과 북궁천소의 반응이 불안했다.

[이 계집! 죽여도 되냐?]

왕전의 전음성이 그녀의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녀가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그냥 숙부님들이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거니 이해하세요.]

[확, 껍데기를 벗겨서 소금을 쳐 버릴라!]

[꼴 보기 싫으니 얼른 데리고 나가거라.]

[훗! 그럴게요. 적당히 드세요.]

연소민은 레이나 공주를 쳐다봤다.

눈을 반짝거리며 셋의 대답을 기다리던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 가는 것을 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륙의 모든 이들이 꿈으로 치는 직업이 공주의 호위기사인데, 왕전을 비롯한 셋의 얼굴은 몬스터 똥을 밟은 듯, 심하게 구겨져 있었으니 레이나 공주로서는 의아함이 당연했다.

“표정들이 왜 그래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워낙 엄청난 선물이라, 실감이 나지 않아 이러시니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공주님!”

그제야 레이나 공주의 표정이 제대로 돌아왔다.

“좋아요. 대답은 내일까지 듣겠어요.”

“우린 밖으로 나가요. 술을 몇 잔 마셨더니 속이 답답하군요.”

연소민이 레이나 공주의 팔을 잡고 일어섰다. 잠시 더 할 말이 있었던 레이나 공주는 연소민의 완력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연소민의 귓속으로 북궁천소의 전음이 흘러들었다.

[강물에 처넣어 버려라!]

“호호!”

연소민의 입에서 결국 웃음이 터졌다.

흑야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전방에 요란 제국의 군영이 보였다. 곳곳에 피워진 거대한 횃불 통이 주변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고 있었지만 흑야의 움직임을 발견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외곽을 철통처럼 두른 결계를 짐승 한 마리를 그곳에 놓아둠으로서 해결한 그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대상을 찾아 군영의 곳곳을 빠르게 누볐다.

그는 지금 거대한 독수리를 찾고 있었다.

다크 영지의 상공을 배회했던 독수리들이 사라져 간 방향은 분명 이쪽이었다.

하지만 곳곳을 모조리 살폈지만 독수리는 보이지 않았다.

푸르륵!

전마들이 흑야를 발견하고는 놀란 몸짓들을 해 댔다. 평원에 말뚝을 박아서 만든 거대한 울타리엔 일만에 육박하는 전마들이 갇혀 있었다.

흑야의 눈동자가 묘한 빛을 머금었다.

‘선물은 주고 가야겠지.’

그는 우측에 자리한 요란 제국의 군막을 살폈다. 경계를 서는 병사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보이지 않았다.

퍽! 퍽!

그의 손에서 발출된 강기가 말뚝을 차례로 박살 내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이십 미르 정도의 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흑야의 육신이 유성처럼 전마들의 가운데로 날아가 떨어졌다.

그러고는 이내 지독한 살기를 발산하며 전마 하나의 엉덩이를 손으로 쳤다.

짐승 특유의 예민함으로 살기를 느낀 전마들이 일제히 놀라 날뛰기 시작했다. 뚫어진 구멍으로 전마들이 몰려 나가기 시작하자 주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뭐, 뭐야! 말들이 도망간다!”

“잡아라! 막아라!”

조용했던 군영에 일대 소란이 일었다.

취침을 위해 막사로 들어갔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허겁지겁 튀어나왔다. 베린스 공작도 대충 옷을 걸치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모르겠습니다. 소란이 일어서 나와 보니 이렇게…….”

“뭣들 하느냐! 전마들을 진정시켜라!”

놀란 전마들을 진정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마들은 일제히 북쪽으로 달렸다. 일만에 달하는 전마들이 일제히 질주를 시작하자 대지가 흔들렸다.

베린스 공작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전마가 사라지면 전력은 반 이상으로 줄어드는 셈이나 다름없다. 해서 어떻게든 잡아야 했다.

“결계가 있으니 주둔지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말들이 놀라지 않게 주의해라!”

부관들이 빠르게 전마들의 뒤를 쫓았다.

뒤늦게 밖으로 나온 마법사들도 전마들의 뒤를 쫓았다. 그때 베린스 공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당연히 주둔지 외곽에서 멈추었어야 할 전마들이 결계를 뚫고 숲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누군가 결계를 뚫어 놓았습니다.”

“이런! 경계를 어떻게 서고 있었기에 결계가 뚫리는 것도 몰랐단 말이냐!”

“그건…….”

“당장 결계를 설치하고 더 이상의 손실을 막아야 한다! 따라오너라!”

제4장 어둠의 숲에서 사냥꾼을 찾아라

어둠 속에서 빛나는 흑야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후후후, 이렇게 되면 다크 영지에 거대한 목장을 만들어야 하나.’

전마들이 달리는 방향은 북쪽이었다.

전마들의 속도로 조금을 더 가면 다크 영지와 아르소가 나온다. 국경을 넘어서기 전에 잡지 못하면 고스란히 전마들은 두 곳의 소중한 재산으로 바뀐다.

흑야는 정작 찾아야 할 독수리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엔 실패했지만 자신이 일으킨 야밤의 소란을 지켜보며 느긋하게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가 은신한 나무 밑으로 기사들이 허겁지겁 지나갔다. 마법사들도 보였다.

누구보다 다급한 표정이 역력한 마법사들의 육신 주변을 하얀빛이 두르고 있었다. 전마를 모조리 잃을 수도 있는 다급한 상황 때문에 뛰어가면서 마나를 배열하고 있는 것이다.

“응!”

흑야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눈에 익은 인물이 보였다. 갑주를 걸치는 둥, 마는 둥 하고서 황급히 뛰어가는 베린스 공작의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후후! 네놈의 부대였군.’

순간, 흑야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는 혁련소와 자신을 공격하던 베린스 공작을 잊지 않았다. 그의 육신이 나무 위에서 사라졌다.

* * *

베린스 공작의 얼굴은 참담, 그 자체였다.

케논 산맥에서의 극심한 피해로 인해 좌천되었던 자신이다.

이곳에서 성공의 칼날을 다듬어 재기하고자 했던 자신의 야망이 어쩌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 개 여단 규모의 전마를 잃어버린다면 좌천은 고사하고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전마는 마법사만큼이나 중요한 군의 자원이다.

특히 정벌 대상인 케이론 제국은 평지 비율이 높은 국가다. 당연히 기마병 간의 전투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마법사들은 서두르지 않고 뭐 하느냐! 결계를 막아라!”

전마들은 벌써 반수 가까이 사라지고 없었다.

앞을 막아섰던 기사가 자신을 덮쳐 오는 전마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때였다.

결계를 두르던 마법사 하나의 목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워낙 소란스러운 상황 탓에 미처 깨닫지 못한 요란 제국의 기사들은 하나가 더 죽고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적이다! 적의 저격수다!”

“어쌔신이다!”

소란은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빌어먹을! 역시 케이론의 수작이었어!”

챙!

검을 뽑아 든 베린스 공작이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그러나 흥분한 상태에다 소란스러움이 극에 달한 주변 환경 때문에 아무런 기운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전마는 점점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막아서던 기사들이 검을 휘둘러 더욱 놀라는 바람에 결계로 뛰어들어 죽어 나가는 전마들도 생겨났다.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한 방어용이 아닌 살상용 결계를 쳐둔 탓이다.

“기사들은 적을 색출하라!”

분노가 극에 달한 베린스 공작의 얼굴에 시뻘건 힘줄이 돋아났다.

죽음의 손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베린스 공작과 제법 가까이 있던 마법사가 그대로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비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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