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
<귀환무사 308화>
귀환무사 2부
83화
진천과 사공진무는 마차가 질주하는 도로를 보며 감탄했다.
다소 거칠었지만 모든 도로에는 흙이 아닌 돌이 깔려 있었다.
많은 양의 비가 내려도 전차나 보급 마차의 이동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도로의 가장자리엔 도로 가운데로 물이 흘러 들어가지 못하게끔 별도의 배수로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거의 반나절을 이 속도로 달렸다면 어지간한 성, 하나는 달렸다고 봐야 하는데 그 엄청난 거리를 모조리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니…….”
평소 기관토목에 관심이 많았던 사공진무는 도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았거나,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내서 만들었겠지. 만약 둘 중에 하나를 건다면 넌, 어디에 걸 거야?”
“난, 전자!”
진천이 혁련천후를 돌아보다가 그가 눈을 감고 있자 우드에게 시선을 주었다. 우드는 헤론 후작을 흘긋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저도 전자에 걸겠습니다.”
“나도! 전자!”
“넌 빠져, 쨔샤!”
손까지 들고 말했던 카루가는 쀼루퉁한 표정으로 진천을 노려봤다. 카루가를 짐짓 협박하는 눈빛으로 쳐다본 진천은 묘한 표정으로 헤론 후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봐! 당신 생각은 어때?”
헤론 후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예 등을 돌려 그들을 외면했다.
사공진무가 그러지 말라는 눈짓을 보내자 진천은 코를 실룩거리고는 헤론 후작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기분이 엿 같을 텐데 자극하지 마라.]
[저렇게 죽상을 쓰고 있다고 뭐가 달라지나? 나 같으면 탈출할 궁리라도 하겠다.]
[혹시 모르지, 탈출할 궁리를 하고 있을지도…….]
[아닐 거다. 이곳의 귀족 놈들은 하나같이 정신 상태가 약해 빠졌어. 포로로 잡혀도 돈을 주면 풀려난다니까 탈출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거다.]
진천과 사공진무가 헤론 후작을 보며 전음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마차는 질주를 계속했다.
련천후는 여전히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빠르게 질주하던 마차가 돌에 걸려 한바탕 크게 휘청거리고는 멈추었다.
“무슨 일이냐?”
“바퀴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마차를 살펴보던 기사의 얼굴이 난감한 표정이다.
“휠이 부러졌습니다. 아무래도 마차를 버리고 도보로 이동해야 할 듯합니다.”
“한곳에 모두 타고 가면 되지 않을까?”
“이쪽도 휠이 나갔습니다! 자작님!”
“젠장!”
고르디 자작이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쳤다.
기사들이 자물쇠를 끌러 모두를 마차에서 내리게 했다. 지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아이론자일로 두 손을 단단히 묶고는 도보로 이동을 속개했다.
헤론 후작은 혁련천후를 흘긋거렸다.
후작 이상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
하지만 다크 공작은 전혀 기억에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생소한 인물이었다.
마침 혁련천후가 자신을 돌아보자 가볍게 머리를 숙인 그는 이내 시선을 전방으로 던졌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미련하게도 키워 놨군.’
갑주를 벗은 헤론 후작의 근골은 꽤 우람했다.
헐렁한 옷 사이로 비치는 팔뚝의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중원에선 근육이 발달한 무인들은 하수로 친다. 대부분이 외공을 익힌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무인들은 대부분이 근육을 크게 키우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큰 체격에다 근육을 키웠으니 초고수의 필수 조건인 순발력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인들이라 불리는 자들은 어떨까?’
문득 사람들이 대륙의 초인이라 칭송하는 자들은 어떨까 궁금했다.
전혀 생소한 무공들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최강자라고 불린다면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날, 케논 산맥에서 부딪혔던 케이시 공작을 떠올렸다.
‘진무와 엇비슷했다면 결코 약한 자들은 아니다. 만약 그자보다 더 강한 자가 있다면 조금은 신경이 쓰이겠어…….’
사공진무의 말로는 손이 저릴 정도로 케이시 공작의 힘이 대단하다고 했었다. 그때 진천의 고함이 상념을 깨뜨렸다.
“이봐! 굶겨 죽일 작정이야?”
앞서 걷던 고르디 자작이 날카로운 눈매로 뒤를 돌아봤다.
씩 웃는 진천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보던 그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손을 들어 모두를 세웠다.
“여기서 한 시간 동안 쉬었다 가겠다. 기사들은 식사 준비를 해라!”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마의 전낭에 담겼던 음식들과 솥을 꺼내어 요리를 준비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사공진무가 눈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나쁜 놈은 아니군요.”
“아직은 모르지.”
“그나저나,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 아닙니까?”
일이 너무 쉽게 풀리고 있었다. 신분을 공작이라고 속인 것이 주효했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생각 밖으로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렀다.
“그 사냥꾼이란 놈을 데리고 탈출했는데, 놈이 만약 거짓말을 한 거라면 어쩌죠?”
“그땐 대갈통을 부숴 버려야지!”
사공진무가 그답지 않게 과격한 말을 쏟아 냈다. 카루가가 배를 부여잡고 측은한 눈빛으로 진천을 올려다보았다.
“배고프냐?”
“응!”
“넌, 지금 성인으로 변신했잖아. 그럼 말투도 고쳐야지.”
“알았어. 그런데 과일 좀 따 달라고 하면 안 될까?”
“그러다가 너 칼 맞는다.”
* * *
아르소 영지가 분주하게 돌아갔다.
국경 인근의 요란 제국 진영이 세를 불려 가자 케이론 제국도 일개 여단 병력을 아르소로 인근에 주둔시키며 혹시 모를 침공을 대비하기에 이르렀다.
패전했던 1군단의 병력도 속속들이 아르소로 모여들자 일거에 군세는 삼만에 이르는 대군으로 발전했다.
아르소와 반나절 거리에 인접한 평원에 군영이 마련되자 요란 제국의 침략을 겁냈던 아르소는 다소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여전히 황궁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아르소에 남은 레이나 공주 역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챙! 챙!
“으합!”
아르소 성곽의 너머에 마련된 연무장에서 우렁찬 기합성이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성곽에서 팔짱을 끼고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북궁천소와 왕전의 얼굴이 심드렁했다.
“새끼! 신났군.”
“그러게. 덕분에 아르소의 기사 놈들만 좋아졌지.”
“그런데 표정은 영 아니올시다군.”
“놈의 훈련 방식이 좀 억세냐. 신마각의 그 독종들도 입에 거품을 물었으니 저 약골들은 아마 죽을 맛일 게다.”
둘은 가투소와 오백의 기사들, 그리고 기존의 아르소 영지에 주둔했던 오백의 기사들을 더해 도합 일천을 훈련시키고 있는 담대소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갑주를 걸친 담대소천은 중원의 훈련방식으로 기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는데 모두가 연소민의 부탁에 의해서였다.
물론 가투소는 스스로 자청하여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훈련이 실전이다!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둘러라!”
내공을 담은 그의 목소리가 넓은 연무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벌써 두 시간째 휴식조차 없이 검술 훈련에 매진 중인 기사들은 녹초가 되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어지간한 가투소도 입을 벌리고 거친 호흡을 쏟아 내기 바빴다.
“젠장! 더 이상 못해!”
쨍그랑!
기사 하나가 검을 놓고서 뒤로 벌렁 누웠다. 연쇄 반응은 무척 빠르게 나타났다.
하나가 눕자 검을 버리고 바닥에 주저앉는 자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담대소천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만!”
그의 고함에 기다렸다는 듯, 기사들은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담대소천은 주저앉은 자들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검을 집어라.”
반응이 없었다.
“검을 잡고 일어서라.”
최초로 벌렁 누웠던 기사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솔직히 우리가 왜 당신 명령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소. 우린 제국의 1군단, 이글스 여단의 기사들이오! 고작 변방 영지의 영주 따위가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오! 가투소 대장! 그렇지 않습니까?”
퍽!
기사의 얼굴이 돌아가며 입에서 핏물이 튀었다.
담대소천의 발길질이 턱에 작렬한 것이다. 다른 기사들이 발끈하며 일어섰다.
개구리처럼 널브러진 기사는 비록 준남작의 작위를 지닌 최하위 귀족이었지만 일개 변방의 귀족이 폭력을 행사해서는 곤란한 자였다.
“이거 너무하잖소! 폭력이라니!”
가투소가 재빨리 다가왔다.
“그만! 그만들 해!”
“대장! 우린 더 이상 저 작자에게서 훈련을 받지 않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레이나 공주께서 돌아가실 때 수도로 돌아가 그곳에서 훈련하겠습니다.”
삽시간에 연무장이 소란에 휩싸였다.
“명령이다! 모두 대열로 돌아가라!”
가투소의 고함도 소용없었다.
미간을 찌푸렸던 담대소천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몸을 돌려 아르소의 기사들에게로 걸어갔다.
아르소의 기사들은 달랐다. 누군가가 담대소천에게 물을 건네며 눈빛으로 위로를 전했다.
“힘든가?”
“힘들지만 견딜 만합니다.”
“저희들 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들은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담대소천은 이들과 가투소의 기사들을 비교했다. 실력이나 모든 면에서 이들은 가투소의 부대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하지만 의지만큼은 이들이 앞섰다.
‘간절한 자가 앞서는 법이지…….’
사실 같은 기사라도 그들과 가투소가 이끄는 기사들은 엄청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제국의 군단에 소속된 기사들은 대부분이 막강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특히 테세우드 공작이 이끌었던 1군단 소속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비록 그들이 전투에서 패배한 패잔병이라도 아르소와 같은 변방의 기사들에겐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올라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신분의 차이 때문에 훈련 시에도 아르소의 기사들은 가투소의 기사들과 부딪치는 것을 극히 꺼렸다.
때론 그들이 놀려도 그저 묵묵히 훈련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이런 개새끼들이 어디서 아가리를 빽빽 놀리고 지랄들이야!”
북궁천소의 험악한 목소리에 담대소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어느새 성곽에서 몸을 날린 북궁천소와 왕전이 가투소의 기사들 앞에 나타나 있었다. 둘이 나타나자 발끈하며 소란을 피웠던 기사들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이 새끼들이 저놈이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우리는 겁나고 저놈은 우습게 보이냐?”
기사들은 북궁천소와 왕전의 험악함에 대꾸를 못했다.
사실 그들은 담대소천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껏 그가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반대로 북궁천소와 왕전은 달랐다. 요란 제국의 기마 병단을 휩쓸 때의 그 난폭함은 죽는 그날까지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만해라.”
담대소천이 다가왔다.
“잠깐만 기다려라. 은혜를 모르는 호래자식들은 그저 매가 약이다.”
“그만두라니까!”
담대소천이 나지막이 소리쳤다.
하지만 내공이 담겼기에 모두의 귓속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성을 내던 기사들이 귀를 막으며 오만상을 썼다. 왕전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담대소천을 바라봤다.
“이 자식이 왜 우리한테 성질을 부리고 지랄이야.”
“가서 술이나 마시자.”
담대소천은 몸을 돌려 성 안으로 들어갔다.
“굴러 들어온 복을 스스로 걷어찼구나. 쯧쯧! 멍청한 새끼들…….”
“이 새끼들아! 저놈이 누군지 알아? 투왕이라고, 투왕! 네놈들 말로 싸움의 신이라는 말이다! 병신들아!”
왕전이 가투소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어지간하면 가서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라. 저놈에게 훈련을 받는 것은 네놈들에겐 평생에 한 번 없을 기회일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