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07화 (305/425)

# 307

<귀환무사 307화>

귀환무사 2부

82화

군웅들의 과격한 행동에 견갑까지 벗겨진 기사들도 있었다.

군웅들은 창살 안의 여섯에게 욕설과 오물을 퍼부었다.

“의외군요. 그저 나쁜 놈들로만 알았는데, 백성들을 저렇게 두려워할 줄 알다니 말입니다. 중원 같았으면 벌써 사단이 나고도 남았을 텐데…….”

진천의 말에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르디 자작과 기사들을 응시하며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뜻밖이군. 이 나라, 요란 제국이 생각과는 다른 곳인가?’

그는 지금껏 케이론 제국의 사람들만 만났었다.

모두가 요란을 비난하고 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도 그들의 말에 따라 요란 제국은 전쟁광인 황제를 두고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려는 야심에 찬 국가로만 여겼었다.

그런 황제는 대부분 철권통치를 기반으로 삼는다.

힘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철권통치를 위해서는 군을 모든 정책의 우선에 두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히 군부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고 군부는 모든 이들의 정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런 철권통치하의 백성들이 군에게 이런 행동을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기사들이 성난 군웅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군웅들에게 화난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진압을 위해 의례 나오게 마련인 폭언이나 고함, 무력행사도 지금껏 보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이 이런 상황에 꽤 익숙해 있다는 것을 뜻하고 또 언제나 이런 식으로 해 왔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케이론은 이렇지 않았다. 평민들은 귀족들의 얼굴조차 마주보지 못했다. 귀족의 폭력은 당연한 거라 여기고 반항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작이 일반 백성에게 쩔쩔매는 모습이다.

중원이라면 벌써 검을 뽑았을 상황이지만 지금껏 그들은 검에 손조차 대지 않았다. 그저 비켜 달라며 읍소만 할 뿐 다른 대책이 없어 보인다.

“황명을 받들고 가는 길이니 비켜 주시오! 이들의 죄목이 알려지면 그때 수도 광장에 낱낱이 그 죄명을 적어 올려 드리겠소!”

“거짓말! 놈들의 옷을 보니 귀족이다! 당연히 몸값을 받고 풀어 줄 것이 아닌가! 제국의 국민들을 무참히 도륙한 케이론의 개들을 우리에게 넘겨라!”

“넘겨라! 넘겨라!”

고르디 자작의 읍소에도 군웅들은 오히려 더욱 성을 부렸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상황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크로우 기사단의 몇이 앞으로 나서는 것이 혁련천후의 눈에 보였다.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느낌은 결코 빗나가지 않았다.

가장 거칠게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군웅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우르르 물러났다.

놀라기는 고르디 자작과 기사들이 더욱 컸다. 그들은 의외의 상황에 넋이 나간 모습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 너희들은 황제 폐하의 명을 어기고 있다. 비켜서지 않으면 모조리 이렇게 될 것이다!”

섬뜩한 기운이 주변을 몰아쳤다.

평범한 사람들이 결코 이겨 낼 수 없는 지독한 기운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나서는 시늉을 하자 그토록 흥분했던 군웅들이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뛰었다. 짧은 시간에 그들의 앞, 도로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죽은 자가 흘린 핏물이 도로를 붉게 물들였다.

“고르디! 황명은 저놈들을 내일 아침까지 황궁으로 데려오란 것이었다. 원망은 굳이 이토록 번잡한 곳으로 길을 택한 네놈, 스스로에게 하여라!”

크로우 기사단들은 이내 전마를 몰아 전진을 시작했다. 기사들은 여전히 죽은 자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고르디 자작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미친놈들! 이게 무슨 짓이야!”

이동하던 크로우 기사단 전체가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수장으로 보이는 자의 눈에 악독한 기운이 어렸다. 기사들이 고르디 자작을 황급히 말렸으나 그는 다시 소리쳤다.

“이러다가 말 사람들이었어!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냥 돌아갈 사람들이었단 말이다!”

“죽고 싶은 모양이군, 고르디!”

“닥쳐!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귀들아!”

챙!

고르디 자작이 검을 뽑아 들었다.

기사들은 어쩔 줄 몰라 양측을 번갈아 응시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혁련천후를 비롯한 모두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고르디 자작이 저렇게 나올 줄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고르디! 제아무리 대공의 총애를 받는 놈이라도 본좌에겐 네놈을 즉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잊었느냐? 지금의 네 태도는 목을 잘라도 충분한 죄임을 생각해야지.”

전마가 느릿하게 고르디 자작을 향해 걸어왔다. 그러나 고르디 자작은 두 손으로 검을 잡고서 물러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성난 얼굴로 다가오는 자를 노려보며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혁련천후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은 방금 크로우 기사단의 기사가 말을 하고 난 직후였다.

‘본좌! 그런 표현을 이곳에서도 쓰는 것인가?’

본좌는 중원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다. 이 세상에선 그 어떤 귀족도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었다.

혁련천후는 고르디 자작에게 다가가는 인물을 예의주시했다.

“후후! 이번 일로 인해 네놈의 출세에 지장이 될까 두려운 모양이군. 네놈들, 귀족들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가족도 파는 놈들이니까.”

“너희 살인마들보다야 백번 낫다!”

고르디 자작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두려움이나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육신을 압박해 들어오는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마가 뿜어내는 콧김이 고르디 자작의 얼굴을 덮었다. 손을 뻗으면 그의 목이 날아갈 거리까지 다가왔음에도 그는 추호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다른 크로우 기사단원이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고르디 자작을 차갑게 노려보던 자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폐하께서 너를 살렸군, 고르디…….”

“……!”

“서둘러 오라는 황명이시다.”

그 말을 끝으로 인물은 말머리를 돌렸다.

고르디 자작은 그제야 검을 내려놓았다. 크로우 기사단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엔 여전히 분노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기사들이 그를 위로하며 전마를 끌어왔다. 전마에 오르기 전에 흘긋 마차를 쳐다본 고르디 자작의 얼굴은 분기로 붉어진 그대로였다.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놈인데, 다른 면이 있었군요.]

[……!]

[아까, 놈이 본좌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이곳에선 처음 듣는군요.]

[기회가 되면 놈들 중, 하나를 잡아서 알아내 봐.]

[지금, 당장 할까요?]

혁련천후의 시선을 받은 진천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혁련천후는 헤론 후작을 흘긋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자세, 그대로였다.

잠시 그를 응시한 혁련천후도 눈을 감고 허리를 폈다.

이동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사건에 대한 말이 퍼졌는지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운 기색으로 피하기에 급급했다.

밤을 낮 삼아 달려 해가 떠오를 무렵이 되어서 그들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만큼 거대한 궁전 앞에 도착했다.

“우와!”

입을 열지 말라는 엄명(?)을 받은 카루가가 입을 벌리고 탄성을 질렀다. 모두의 눈에도 감탄의 빛이 어렸다.

중원의 자금성조차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궁전이 그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죽인다!”

가장 함축적이며 확실한 표현이 사공진무의 입에서 나왔다. 새삼 요란 제국의 대단함을 느낀 그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연신 감탄사를 날렸다.

처척!

백만 명은 족히 수용할 만한 거대한 광장에 이르러서 마차가 멈추었다.

크로우 기사단들이 전마를 몰아 궁전으로 들어갔다. 고르디 자작은 기사들에게 마차를 지킬 것을 지시하고는 크로우 기사단과는 달리 전마에서 내려 도보로 뛰어갔다.

황궁에서는 전마를 타고 다니지 못한다. 다만 크로우 기사단에겐 그러한 제약이 없었다. 오직 그들에게만 내려진 특권이었다.

진천이 기사들에게 물었다.

“이봐! 우린 이제 어디로 가는 거지?”

상당히 불량스러운 말투에 기사의 눈이 대번에 고리눈으로 바뀌었다. 진천의 아래위를 쓸어 보고는 내뱉듯이 대답했다.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쇼!”

“걱정은 개뿔! 귀족은 죽이지 않는다며?”

“예외도 있으니 너무 맘 놓지 마쇼. 혹시 아쇼? 그 예외가 당신에게 적용될지.”

“기대하지. 그건 그렇고 이 나라 황제는 어떤 사람이냐? 감히 군의 이동을 백성들이 막아서게 만들고 말이야. 그래서 쓰겠어?”

순간 기사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덩치가 가장 큰 기사가 경멸의 빛을 담고서 빠르게 말을 늘어놓았다.

“당신들, 케이론에선 당연히 상상도 가지 않는 일이겠지. 시민이나 평민들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폐하께서 네놈들, 케이론을 없애고자 하시는 거다! 전쟁광이라고? 개소리! 백성들 피를 빨아먹으면서 호의호식하는 아리우스 2세보다야 백 번, 천 번 훌륭하신 분이다.”

“닥쳐라!”

헤론 후작이 고함을 쳤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서 묶인 육신을 들썩이며 기사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기사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은 여전했다.

강자로 소문이 난 헤론 후작조차도 안중에 두지 않는 태도였다.

“당신은 우리 요란에서도 꽤 유명해. 케이론의 소문난 충신이라고 말이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아리우스 2세의 몇 되지 않는 진정한 충신이라고 말이야! 하하하!”

“이놈!”

헤론 후작의 두 눈이 피라도 쏟아 낼 듯 격하게 붉어졌다. 그때 궁으로 들어갔던 고르디 자작이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눈빛으로 기사들을 나무라고는 전마에 몸을 실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자작님!”

“그곳으로 간다.”

“예? 그곳이라면…….”

“어둠의 숲!”

고르디 자작의 그 말에 창살 안의 사람들의 희비가 교차되었다.

헤론 후작은 두 눈을 감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고 나머지 다섯은 기쁨을 억지로 숨겼다.

“재판도 거치지 않고 곧장 말입니까? 이건 국제법 위반이 아닙니까?”

“재판 날까지 그곳에 수감하라는 말론 원수의 명령이시다. 서둘러라!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그곳에 도착해야 한다.”

“자작님!”

“그만해! 우린 군인이다! 명령이 떨어졌으면 그대로 실행하면 그뿐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어서 마차를 이동시켜!”

고르디 자작이 발끈 성을 냈다.

기사들은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봤다.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태도에 기사들은 그가 크로우 기사단과의 충돌 때문에 날카로워졌다고 생각하고는 서둘러 이동을 준비했다.

기사들이 이동을 준비할 때 고르디 자작은 전망에 올라 궁전을 바라보았다. 이동 준비가 끝날 때까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오직 궁전만을 바라보았다.

* * *

마차는 올 때와는 달리 외곽 지역으로 달렸다.

군의 병사들과 전차들의 전용 도로인 까닭에 도로는 상당히 넓었으며 오가는 사람 또한 없었다.

당연히 이동 속도는 매우 빨랐다.

덜컹!

마차는 심하게 덜컹거렸다.

그러나 마차 안의 모두는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그저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들은 공간에 몸을 띄운 상태였다.

유이하게 흔들리는 마차의 움직임에 몸을 들썩이는 헤론 후작과 우드는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놀랍다, 놀라워. 군의 전용 도로가 이 정도라니…….”

“폭우가 쏟아져도 이동에 전혀 지장이 없게끔 만들었어. 배수 시설도 완벽하고 말이지. 이거 확실히 케이론과는 다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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