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귀환무사 306화>
귀환무사 2부
81화
“후후! 아니지. 네놈들은 귀중한 전리품들이니 소중하게 모셔야지. 후후! 고르디 자작! 놈들을 태울 마차부터 구해야겠군.”
“조금을 더 가면 북부 군단의 본영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마차를 구하겠습니다.”
“좋아.”
레이번의 가죽으로 만든 밧줄이 다섯을 단단히 동여매었다.
마법이 실린 그것은 마스터의 오러가 아니면 절대 끊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내구성을 지닌다.
“황궁에 통신을 넣어라!”
고르디 자작이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사로잡힌 다섯을 헤론 후작이 타고 있는 마차로 데려갔다.
철창은 보기보다 넓었다.
다섯이 들어가고도 공간이 남을 정도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헤론 후작의 눈동자는 안타까움과 의구심이 뒤섞여 있었다.
* * *
[주공! 놈들이 제대로 속은 것 같습니다.]
[그렇군.]
[이젠 그곳으로 수감되기를 기다리는 것만 남았군요. 공작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어둠의 숲속이라는 그곳으로 보내 주겠지요?]
[운을 믿어 볼 수밖에…… 틀어지면 힘으로 해결한다.]
[후후! 알겠습니다. 그런데, 금발에 벽안이 꽤, 어울리십니다.]
[……!]
헤론 후작이 변장한 진천을 돌아봤다.
한쪽 눈을 찡긋 감아 주는 그를 보며 헤론 후작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포로로 잡힌 자가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들의 정체가 궁금했던 헤론 후작이 입을 열려고 할 때, 그의 귓속으로 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우린 제국이 비밀리에 양성해 온 특수 부대니 당연히 모를 거요. 너무 혼란스럽게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니 그러려니 하고 있으시오.]
헤론은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그냥 목적이 있어서 일부러 잡힌 것이오. 나중에 탈출할 때 데려가 줄 테니 그동안은 전혀 내색하면 곤란하오. 아시겠소?]
헤론 후작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저 사납고 무서운 적의 기사들은 자비를 모르는 족속들이다. 자신의 수하들 수백 명이 저들 몇 명에게 피를 뿌리고 죽어 갔다.
자신도 하나를 당하지 못하고 사로잡힌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들과 싸워서 다치지 않고 일부러 져 줄 정도면 자신보다 훨씬 강자라는 소리다.
자신이 아는 케이론 제국에 그러한 자들은 몇을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후후! 그냥 그렇거니 하는 게 건강에 이롭소.]
모기처럼 가는 목소리엔 여유가 넘쳤다.
제3장 의문의 인물, 다크 공작
테세우드 공작은 여전히 자신의 권역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는 그가 패배의 아픔을 다스리며 복수를 준비한다고 여겼다.
지고는 못 사는 그의 성미는 케이론 제국뿐만 아니라 전 대륙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모든 이들이 그의 다음 행보를 궁금하게 여기고 있을 즈음, 테세우드 공작은 자신의 거처에서 통신석을 통해 들어온 보고를 받고 얼굴을 붉혔다.
“다크 공작이라니…… 제국에 그런 자가 있었나.”
요란 제국에 심어 놓은 첩보원이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헤론 후작을 구출하려다 잡힌 케이론의 기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공작의 신분을 지닌 인물이 있었는데, 그 공작의 이름이 다크라고 전해 온 것이다. 당연히 테세우드 공작이 알 턱이 없다.
“나 몰래 비밀 세력이라도 만들었단 말인가?”
그는 황제를 의심했다.
자신과 황제는 군신간이지만 양립 불가의 정적이기도 했다.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암중 세력을 양성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그들이 구출하려고 했던 헤론 후작은 대표적인 황제파가 아니던가.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우드득!
굳게 쥐어진 주먹이 섬뜩한 소리를 냈다. 그는 통신석을 끄고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집무실을 나섰다.
집무실 문을 열고 나서자 수십의 기사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그를 호위하는 기사들이다.
“레이놀드에게 통신을 보내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이곳으로 오라고 전하라!”
“예! 각하!”
명령을 내린 테세우드는 성의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얼마 전에 황궁에서 돌아온 대마법사 쉐인의 거처가 있는 곳이다.
마법서적을 읽고 있던 쉐인은 들어서는 테세우드 공작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헤론을 구출하려던 제국의 기사들이 오히려 포로가 되었답니다.”
“어허! 그게 사실입니까? 그런 작전이 있었다면 왜 제게…….”
“나도 모르는 작전입니다. 잡힌 자들도 전혀 모르는 위인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쉐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럼 각하께 의논도 없이 황실이 추진한 작전이란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인 테세우드 공작이 다소 짜증스러운 투로 물었다.
“다크 공작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다크 공작? 요란 제국의 인물입니까?”
예상대로 쉐인도 몰랐다. 테세우드 공작의 눈매가 몹시 심하게 가늘어졌다.
“포로로 잡힌 본 제국의 공작이 그자랍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제가 모르는 공작이 제국에 있었다니 말입니다.”
“허! 그런 일이…….”
그 말에 쉐인은 크게 놀랐다.
“황제가 뭔가 일을 꾸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고작 다섯만으로 헤론을 구출하려고 적국으로 뛰어들 마음을 먹었다면 잡힌 자들은 상당한 고수들로 봐야 합니다. 황궁으로 갈 준비를 해 주십시오. 가서 따져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텔레포트를 준비하는 동안, 기사들을 부르십시오.”
* * *
다크 공작이라는 인물이 요란 제국에 포로로 잡혔다는 보고는 황궁에도 들어갔다. 혼란스럽기는 황제도 테세우드 공작에 못지않았다.
그 역시 다크 공작을 알 리가 없었다.
“다크 공작이라니, 본 제국에 짐이 모르는 공작이 있었단 말이냐?”
케이론 제국의 황제, 아리우스 2세는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보고를 올린 핀투스 후작에게 물었다.
그 앞에는 용맹한 인상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는데, 불굴의 사자검이란 별명을 지닌 핀투스 후작이 그였다.
“저들의 주장이 그렇습니다, 폐하!”
아리우스 2세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이젠 작위까지 함부로 내린단 말인가! 테세우드, 이자가 감히……!”
“폐하! 속단하기엔 사안이 지나치게 큽니다. 적들의 이간책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신중하게 여기시옵소서.”
“이간책은 무슨! 필시 테세우드, 그 작자가 관련된 것이 분명하다.”
“그자들이 정말로 테세우드 공작이 몰래 양성한 자들이라면 왜 헤론 후작을 구출하려 했겠나이까. 누구보다 헤론 후작을 싫어하는 테세우드 공작이 그럴 리는 없사옵니다. 소장의 생각으로는 요란의 추악한 음모로 의심되옵니다.”
핀투스 후작의 말이 그럴듯하자 아리우스 2세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분을 삭였다.
그렇다고 의심이 가신 건 절대 아니었다. 핀투스 후작의 말이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일단은 적의 요구를 기다려 보시고 차후, 대책을 마련하시는 게, 옳을 듯하옵니다.”
“놈들이 아직 석방에 대한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괘씸한 요란 놈들! 석방 조건을 내세우지 않을 거면서 포로들의 신분을 보내오다니, 이건 짐을 모욕 주려는 처사가 아니더냐!”
아리우스 2세의 얼굴이 분기로 인해 벌게졌다.
핀투스 후작은 입을 다물었다. 황제의 말처럼 명백한 모욕 행위였기 때문이다.
전쟁 중, 포로로 잡힌 귀족은 보석금을 주면 풀어 준다는 것이 전 대륙에 불문율로 정해져 있다.
당연히 헤론 후작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전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요란 제국은 그러지 않고 포로로 잡힌 것만을 전해 주고는 차후, 처리에 대한 아무런 말조차 없었다.
그리고 통신을 보내온 자의 직위 또한 아리우스 2세의 심기를 건드렸다.
자작에 불과한 자가 케이론의 황실로 직접 통신을 보내온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최소한 공작 이상의 고위급 인사가 최초 전문을 보내는 것이 대륙의 관례였다.
“막스! 이 미치광이 같은 놈…….”
아리우스 2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 대전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테세우드 공작이었다. 황제의 눈썹이 끝을 모르고 치켜 올라갔다.
눈썹이 올라가기는 테세우드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황제께 올려야 할 신하로서의 기본적인 예조차 없이 성큼성큼 아리우스 2세의 면전까지 걸어왔다.
핀투스 후작의 얼굴에 은은한 노기가 어렸다.
“여긴 어인 일이오? 공작!”
“여쭐 게 있어 왔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다크 공작이라고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테세우드 공작은 무례하게도 따지듯 물었다.
“그건 짐이 공작에게 할 소리 같소만…….”
“폐하! 정녕 이렇게 나오시깁니까?”
“테세우드 공작!”
발끈하며 소리치는 테세우드 공작을 향해 핀투스 후작이 호통을 쳤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의 눈은 노기로 가득했다.
“폐하께 그런 태도를 보이시다니요. 예를 갖추시지요.”
테세우드 공작의 눈이 불을 뿜었다.
핀투스 후작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뒤에 시립했던 레이놀드 백작이 핀투스 후작을 향해 움직이려고 했으나 테세우드 공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대는 물러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핀투스!”
“신하로서 예를 다한다면 말하지 않아도 물러날 것입니다.”
“그만!”
아리우스 2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핀투스 후작은 허리를 숙이고 뒤로 물러섰다.
옥좌에서 느린 걸음으로 내려서는 아리우스 2세의 눈동자는 테세우드 공작에게 고정된 채,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핀투스, 자네는 그만 물러가 보게.”
“폐하!”
“어허! 물러가래도!”
아리우스 2세의 단호함에 핀투스 후작은 어쩔 수 없이 대전을 물러났다.
그가 물러나는 것을 응시하던 아리우스 2세는 레이놀드 백작에게도 물러나라 명했다.
머뭇거리던 레이놀드 백작은 테세우드 공작이 눈짓을 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물러갔다.
대전엔 둘만 남았다.
한 사람은 제국의 황제요, 다른 하나는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쥔 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불꽃을 튕겼다.
단둘이 남게 되자 테세우드 공작은 결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황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구 하나 물러섬이 없는 팽팽한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간혹 고성도 오갔지만 아무도 들어서는 이는 없었다.
* * *
퍽! 퍽!
온갖 오물들이 마차로 날아들었다.
“케이론의 개들! 추악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죽어 버려라! 케이론의 악당들!”
고르디 자작은 죄수를 압송하는 마차를 가로막은 성난 군웅들을 뚫어 내느라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기사들이 길을 트고자 했지만 군웅들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위협적인 태도를 가해 왔다.
“악당들을 우리에게 건네시오!”
“케이론의 악당들을 우리 손으로 불태워 죽입시다!”
점점 과격해지는 군웅들을 바라보며 고르디 자작은 당황했다.
크로우 기사단원들이 그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우회해서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자고 했건만 고르디 자작이 중심가를 통해서 황궁으로 갈 것을 고집했기 때문에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의 시선을 의식한 고르디 자작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서둘러라! 고르디! 시간이 지체되면 우리가 직접 손을 쓸 것이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늦으면 네놈의 목부터 잘라 줄 것이야.”
그들의 협박성 발언에 고르디 자작이 황급히 무리의 선두로 뛰어갔다.
이미 마차는 군웅들에게 잡힌 상태라 꼼짝을 못했다. 투구가 벗겨진 기사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르디 자작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