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
<귀환무사 305화>
귀환무사 2부
80화
“저 사람들은 나와 각별한 관계이니 나를 봐서라도 그냥 넘어가 주세요, 패튼 경.”
“모욕을 당하면 죽음을 건 결투조차 마다하지 않은 게, 케이론의 정신입니다. 비켜 주십시오!”
패튼은 물러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싸우면 무조건 저들은 죽어. 말려야 해.’
레이나 공주는 패튼과 그의 수하들의 강함을 알고 있다. 결투를 한다면 무조건 북궁천소와 일행들이 당할 것이라 여겼다. 빠른 시간에 그녀는 해답을 찾았다.
“그들은 나의 호위로 임명된 기사들이에요. 황족의 호위는 특별한 범죄가 아니면 면책 특권을 지닌다는 것쯤은 아시겠죠?”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북궁천소를 비롯한 셋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서로 언제 그런 계약을 맺었냐는 질문을 눈빛으로 주고받았다.
[저게 미쳤나?]
[졸지에 호위로 전락했네, 킁!]
[우리를 구하려고 그런 것이니 이해들 해라.]
셋은 전음을 주고받으며 고리눈을 치켜떴다. 다행히 레이나 공주는 등을 돌리고 있어 실룩거리는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한편 레이나 공주의 말에 패튼은 입술을 곱씹으며 분을 삭였다.
‘교활한…….’
그녀에게 저런 호위기사들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저들을 구해 주기 위하여 거짓말을 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즉흥적인 기사 임명은 황족의 권한이기에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게다가 그녀의 말처럼 황족이 호위로 임명한 기사들은 면책 특권이 주어진다.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있지. 나의 무서움을 보여 주면 고분고분, 황궁으로 돌아가겠지.’
패튼은 내심 독하게 마음먹었다.
“좋습니다! 결투를 신청하겠습니다. 그건 황족, 당사자들만 제외하곤 모든 자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마마께서도 아시겠지요? 당연히 모욕받은 당사자가 신청을 했으니 저들이 거부할 권리가 없음 또한 아시리라 믿습니다. 참관인은 마마께서 해 주셔야겠습니다.”
일순, 레이나 공주는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패튼은 분명히 모욕을 받았다. 모욕을 받았다면 황족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결투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이 케이론의 법이다.
만약 모욕을 가한 대상자가 결투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면 상대를 모욕한 행위가 범죄로 인정되기 때문에 귀족이라면 작위가 박탈당하고 시민은 금고형이나 구금형을 살게 되며, 평민은 처형까지도 가능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지금껏 결투가 성립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레이나 공주는 순간 막막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북궁천소를 돌아보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녀는 대마법사 율튼도 두려워하는 그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 때문에 율튼이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덕분에 자신이 무사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 부분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율튼이 돌아간 이유를 케이론의 국경을 넘어 영토를 침범하면 정치적인 분쟁 사태로 번질 것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돌아간 것으로 그녀는 착각하고 있었다.
‘저들은 아리안이 무척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 결코 이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
레이나 공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짧은 시간에 그녀는 연소민과 무척 가까워졌다. 황실에선 언제나 혼자였던 그녀였기에 마땅한 말동무조차 없었다.
해서 비슷한 연배에 말이 통하는 연소민이 그녀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북궁천소가 죽음을 당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때 그녀의 복잡한 속내를 무참히 짓밟는 목소리가 걸쭉하게 울렸다.
“결투하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북궁천소였다.
“그냥 그걸로 끝이에요. 정당한 죽음, 그 자체로 제국에서 인정하니까요.”
연소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녀야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패튼이 불쌍할 뿐이었다.
“흐흐! 그럼 저 새끼가 뒈져도 귀찮아질 일이 없단 말이군.”
북궁천소가 패튼을 가리키며 히죽 웃는다. 패튼의 두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이, 이런 고릴라 같은 놈이……!”
그는 레이나 공주가 빨리 수락을 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응……?’
레이나 공주는 당연히 울상이 되었어야 할 연소민이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연소민은 마스터다.
당연히 마나의 측정된 양으로 둘의 승부를 예견할 수준이 넘는다.
“아리안! 괜찮아요?”
“예? 아, 예! 괜찮아요.”
북궁천소가 성큼 앞으로 나서며 으르렁거렸다.
“배고프다. 얼른 시작하자.”
* * *
슈나이더는 아르소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책임지는 행정관이자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의사이기도 했다.
올해 나이 35세로, 거의 모든 행정을 자신이 도맡는 바람에 아직 장가를 가지 못한 노총각인 그는 의술에도 제법 일가견을 지닌,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 할 만했다.
의사는 그다지 대단한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슈나이더는 달랐다. 작금의 세상은 마법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대였기에 어지간한 치료는 마법이나 포션으로 대부분 해결된다.
하지만 그건 상당한 돈이 들어가는 치료였기에 가난한 평민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은 의사를 찾는다.
슈나이더는 꽤 의술이 뛰어난 편에 속했고, 누구보다 친절하게 평민들을 진료했다.
해서 아르소의 평민들은 그를 무척 존경하며 따랐다.
그런 슈나이더에게 오늘 아침, 정신 줄을 놓아 버린 환자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복장으로 보아 꽤 지위가 높아 보이는 그들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쯧쯧! 이러고도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군. 도대체 몇 군데가 부러진 거야?”
슈나이더는 침상 위에 축 늘어진 패튼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그는 아주 골고루 뼈가 부서진 상태였다.
얼굴은 퉁퉁 부어서 독 오른 두꺼비를 연상시켰다.
“이분들은 마법사이시니 깨어나면 스스로 치료하시겠지. 괜히 잘못 봤다간 경을 칠 테니 그냥 통증을 완화하는 약품만 투여하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겠어.”
슈나이더는 조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다지 치료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슈나이더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조수는 푸른색이 감도는 물약을 패튼의 입을 강제로 벌려서 먹였다.
“쯧쯧! 이렇게 높으신 분이 어쩌다가 이 지경을…….”
패튼의 입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부러진 이만 해도 다섯 개가 넘었고 약을 넣을 때 숟가락에 살짝 건드렸는데도 흔들리는 게 세 개가 넘었다. 패튼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상상만 해도 끔찍했는지 조수는 측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 * *
“크하하하!”
헤론 후작의 웃음이 주변을 시끄럽게 울렸다. 통한이 묻어나는 광소였다.
크로우 기사단의 눈동자가 매섭게 돌아갔지만 기사들의 만류로 그들은 섬뜩한 시선으로 헤론을 노려보고는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탁! 탁!
모닥불에 올려놓은 고기가 기름을 흘리며 노릇하게 익어 갔다.
헤론 후작의 호송을 책임진 고르디 자작은 크로우 기사단의 기사들에게 먼저 고기와 향료를 건네고 자신들은 미미한 양만을 가지고 배를 채웠다.
“젠장! 상전도 저런 상전이 또 있을까?”
“시끄럽다.”
불만을 늘어놓는 기사에게 고르디가 눈치를 주었다.
“엄연하게 저들과 우린 소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건, 완전히 공작 각하 모시듯 해야 하니…….”
“듣는다, 이놈아!”
“흥! 들으면 들으라지요. 까짓것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불만이란 감추었다가 표출하면 자제하기 어려운 법이다. 지금, 고르디 자작의 앞에 앉은 기사가 그랬다.
퍽!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무엇인가가 바위에 박혔다. 기사들 모두가 흠칫하며 나무를 응시했다. 순간 모두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바위에 박혀 파르르 떨고 있는 포크가 보였다.
“입조심!”
싸늘한 목소리가 크로우 기사단 쪽에서 들렸다.
기사들이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가락을 입에 대고서 차갑게 웃는 크로우 기사단의 인물이 보였다. 모두가 그의 접시로 시선을 던졌다.
포크가 없었다.
‘으…….’
고르디 자작을 비롯한 기사들은 등골을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불만을 늘어놓았던 기사는 손에 힘이 빠져 포크까지 떨어뜨렸다.
“이봐, 자작!”
누군가가 고르디를 불렀다. 고르디가 재빨리 일어섰다.
“놈에게도 먹을 걸 줘야지. 굶겨 죽일 셈이냐?”
“아, 예. 알겠습니다!”
고르디가 눈짓을 보내자 기사, 하나가 구운 고기와 포도주 한잔을 들고 헤론이 갇힌 마차로 뛰어갔다.
다가오는 기사를 노려보는 헤론 후작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기사가 창살 사이로 음식을 넣어 주려고 팔을 뻗어 갈 때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기사의 육신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크로우 기사단의 고개가 일제히 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갔다. 바닥에 꼬꾸라진 기사를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마차의 뒤편 숲에서 다섯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젠장! 적이다!”
뒤늦게 발견한 기사들이 소리쳤다.
크로우 기사단이 어느새 장내로 들어선 다섯을 에워쌌다. 놀라울 정도로 신속한 몸놀림이었다.
장대한 체구의 인물이 가소롭다는 투로 물었다.
“케이론의 놈들인가?”
“그렇다! 헤론 후작을 데려가기 위해서 왔다.”
“후후! 꿈을 꾸고 있군.”
그가 고갯짓을 하자 크로우 기사단 전체가 넓게 포진하며 다섯을 완벽하게 포위했다.
다만 앞으로 나오는 자는 둘뿐이었다. 둘로 다섯을 상대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포위된 다섯은 모두가 금발에 검을 들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은 상당히 왜소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감히 제국의 영토를 침범하다니, 저자들을 생포해 주십시오!”
고르디 자작이 크로우 기사단에게 소리쳤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크로우 기사들은 이미 행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싸움은 시작되었다.
고르디를 비롯한 기사들은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주변을 포위하고만 있었다.
그들이 끼어들 수준이 아니었다. 기사들은 헤론 후작을 구출하기 위해 나타난 케이론의 인물들을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 무섭고 사나운 크로우 기사단의 둘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비록 둘이라지만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는 고르디 자작은 다섯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축을 흔드는 강력한 폭발이 연신 터져 나왔다. 시간이 제법 흐르자 우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용맹하게 덤벼들던 다섯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이 더 지나자 검을 놓고 손을 들었다.
유독 날카로운 인상을 한 인물이 가운데 인물의 목에 검을 가져가며 물었다.
“후후! 꽤 성가신 놈들이었다. 신분이 무엇이냐?”
옆의 청년이 소리쳤다.
“이분은 케이론 제국의 다크 공작이시다! 예의를 갖춰라!”
그 말에 크로우 기사단과 기사들이 흠칫했다. 보통은 아닌 줄 짐작했지만 설마 공작일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후후! 이거 거물이 오셨군.”
제국의 공작이면 어지간한 왕국의 왕과 맞먹는다. 대륙에 끼치는 정치적인 영향력 또한 타국에까지 끼칠 정도다. 크로우 기사단의 얼굴에 희열로 번득였다.
후작에 이어 공작까지 사로잡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후후! 어떻게 된 공작이 후작보다 약하지? 너희 케이론은 웃기는 곳이군.”
“모욕을 줄 셈이냐! 어서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