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
<귀환무사 304화>
귀환무사 2부
79화
“그러지.”
그러고 보니 모두는 지금껏 식사를 하지 못했다.
적당한 식당을 발견한 우드가 모두를 그곳으로 안내했다. 작은 규모의 식당은 대부분의 테이블이 실외, 길가에 놓아져 있었다.
안이 비좁아 야외 테이블에 앉은 그들은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고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카루가는 노점상에서 과일을 사 와 식사를 대신했다.
“넌 언제까지 과일만 먹을 거냐? 그러니까 키가 요만하지.”
“냠냠! 변신하면 큰데. 한번 보여 줄까?”
“됐다! 그냥 과일이나 많이 먹어라.”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거지. 마계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
“싫어, 형들과 여기서 같이 살 거야. 거긴 재미없어. 매일 싸우기나 하고…… 그 형이 돌아오면 나도 함께 데려가 줘야 해?”
진천이 피식 웃었다.
“무사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네가 해 달라는 건, 다 해 준다. 그러니 데려간 놈한테 잘하라고 소식이나 전해.”
“그게 불가능하다니까. 바보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진천이 눈을 휘둥그레지고서 카루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요게, 말재주가 늘어나니까 못하는 말이 없네. 콱! 꽁꽁 묶어서 달고 다닌다!”
“씨…… 미안해.”
혁련천후가 맞은 곳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자 카루가는 대번에 환하게 웃으며 과일을 입안 가득 물었다.
천진한 모습에 진천은 피식 웃고 말았다. 잠시 후, 꽤 뚱뚱한 주방장이 음식을 가져다주자 일행은 식사를 시작했다. 여전히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지만 모두는 하나도 남김없이 먹었다.
후식이라면서 시커먼 차를 내어 오자 인상을 찌푸린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오가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하더니 모두가 한곳으로 가리키며 몰려갔다.
“무슨 일이지? 구경거리라도 났나? 주공 가 볼까요?”
“어! 기사들입니다.”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전마에 몸을 실은 기사들이 도로의 가운데에 모습을 나타냈다. 좌우 두 줄로 이동 중인 그들은 죄수를 가두는 것으로 짐작되는 철창이 세워진 마차를 끌고 있었다.
어른의 팔뚝만 한 굵기의 쇠창살 안에는 죄수로 짐작되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곳곳이 피로 얼룩진 그는 두터운 갑주를 걸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전신이 굵직한 쇠사슬로 칭칭 묶여 있었다.
“포로로 잡힌 인물인가 본데, 어지간히 묶어 놓은 걸 보니 꽤 신분이 높은 자거나 흉악범이겠군요.”
“어!”
흥미롭게 지켜보던 사공진무가 갑작스럽게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우드도 크게 놀란 얼굴로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혁련천후의 미간에 슬쩍 주름이 생겨났다.
죄인으로 보이는 인물은 그들 모두가 아는 인물이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충직한 모습으로 남아 있던 헤론 후작이었다.
“놀랍군요. 저 정도의 인물이 포로로 잡히다니…… 꽤 강하게 보였는데 말입니다.”
“저들도 고수들이다.”
혁련천후의 눈빛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마차의 지근거리에서 이동 중인 인물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기사들의 복장과는 달리 그들은 중원의 무복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섬뜩한 안광을 발하는 그들은 각종 병기들을 전신에 두르고 있었는데, 중원에서나, 이 세상에서나 처음 보는 기병이었다.
“놈! 시선을 돌려라!”
섬뜩한 음성이 귓속을 울렸다.
혁련천후는 붉은 광망으로 일렁이는 자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선두에선 육중한 체구의 인물이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감히 크로우 나이츠와 눈싸움을 하려 들다니, 죽고 싶으냐?”
속삭이듯 전해지는 음성은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섬뜩했다. 얼마나 섬뜩했는지 우드는 시선을 돌리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갑주를 걸친 기사들이 소리쳤다.
“이분들은 크로우 기사단의 영웅들이시다. 눈을 깔고 머리를 숙여라!”
기사들은 크로우 기사단이라는 자들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기사들 중, 하나가 눈짓으로 어서 고개를 숙이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혁련천후와 모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시선도 피하지 않았다. 전신에 거대한 쇳덩어리를 주렁주렁 단 흑의인의 입가가 치켜 올라갔다.
“흐흐! 죽고 싶은 모양이군.”
호송하던 기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는 혁련천후를 향해 한 인물이 말 머리를 돌리려고 할 때였다.
“개소리 마라! 이놈들아! 무고한 백성에게 시비나 거는 놈들이 무슨 영웅이라 나불거리는 것이냐! 지나가던 개가 웃겠구나! 크하하하!”
헤론 후작이 느닷없이 광소를 터뜨렸다. 혁련천후에게 말머리를 돌렸던 자의 시선이 헤론 후작에게 돌아갔다. 하얀 이빨이 그대로 드러나는 섬뜩한 웃음을 짓고는 손을 앞으로 슬쩍 뻗는 시늉을 했다.
퍽!
“욱!”
헤론 후작의 육신이 휘청거리더니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갑주를 걸친 기사가 황급히 그자를 말렸다.
“죽이시면 곤란합니다. 그를 무조건 어둠의 숲으로 데려오라는 폐하의 황명이 계셨습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그 말에 흑의인은 혁련천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놈! 목숨은 소중한 것이다.”
섬뜩한 웃음을 흘린 크로우 기사가 전마를 전방으로 몰아가자 호송단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혁련천후가 몸을 일으켰다.
“기분 나쁜 놈들입니다.”
진천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그가 기분이 무척 상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던 모두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어둠의 숲이라고 했지. 그곳으로 간다.”
“예? 좋은 방법이라도 떠올랐습니까?”
“어쩌면…….”
* * *
레이나 공주는 황궁에서 보내온 통신을 받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 어떻게 그분이 사로잡힐 수 있는 거지. 어떻게…….”
헤론 후작이 요란 제국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은 그녀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가 감금된 곳이 전 대륙에 악명 높은 어둠의 숲이라고 전해 오자 레이나 공주는 눈물마저 머금었다.
“폐하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할 분이 그 지경이 되시다니…….”
손으로 이마를 짚은 그녀는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자신이 고집을 피워 케논 산맥으로 오지만 않았다면 헤론은 지금쯤 황궁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있을 것이다.
스스로 호위를 자청하던 헤론 후작의 모습이 아른거리자 기어코 눈물을 쏟아 냈다.
그녀의 옆에는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는데, 그들의 앞에는 꽤 날카롭게 생긴 중년인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레이나 공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마! 서둘러 돌아가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무척 진노하고 계십니다.”
그는 황궁에서 온 황실마법단 소속의 패튼이라는 인물이었다. 물론 레이나 공주를 데려가기 위해서 내려온 것이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되었군요. 요란 측이 헤론 후작을 포로로 잡고 있어요. 그들이 자진해서 그러한 사실을 알려 왔다면 보나마나 그분을 석방하는 대가로 뭔가를 요구할 것이 틀림없어요. 폐하께 보고드리세요. 요란과의 협상은 제가 직접 진행하겠다고 말이에요.”
“마마!”
“돌아가세요! 패튼 경!”
패튼은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노골적인 짜증스러움이 그의 얼굴에 묻어났다. 결코 공주인 그녀에게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강제로라도 모셔 오라는 황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저희들의 곤란함을 마마께서 헤아려 주셔야 합니다.”
우웅!
마나가 요동치는 소리를 들은 레이나 공주는 발끈하며 검을 뽑을 자세를 취했다.
“감히! 누구에게 손을 대려고 드느냐!”
“지엄하신 황명입니다, 마마!”
“흥! 황명? 테세우드 공작이 내린 밀명이겠지? 그렇지 않나요? 패튼 경!”
“저희들이 받은 명령서는 분명 폐하의 직인이 찍힌 황명이었습니다.”
다른 자들도 빠르게 레이나 공주의 주변을 둘러쌌다. 패튼의 말처럼 강제로라도 데려갈 심산이 분명해 보이자 레이나 공주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검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테세우드 공작의 측근들임을 떠나 그들은 케이론 제국의 소중한 마법 병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전쟁일 벌어지면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황실마법단의 재원들이었다.
레이나 공주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연소민이 들어섰다. 뒤이어 북궁천소와 담대소천, 그리고 왕전도 함께 들어섰다.
이미 실내의 상황을 직감한 연소민이 레이나 공주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응, 아니에요. 그냥…….”
패튼에게 시선을 돌린 연소민은 다소 차가운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불경하군요. 감히 마마를 강제로 모시려고 하다니…….”
“웃기는군. 감히 남작 주제에 어딜 끼어드는 게냐? 영지를 몰수당하고 보잘것없는 작위마저도 박탈당하고 싶으냐?”
패튼의 고압적인 태도에도 연소민은 굽히지 않고 받아쳤다.
“여긴, 제 성이고 공주마마는 지금 아르소에 손님으로 오셨으니, 경이 마마께 불응하는 경위를 물어보는 것은 영주인 저로서는 당연한 권리이자 객을 보호하는 자위권이라고 보는데요? 틀렸나요?”
레이나 공주가 나섰다.
“패튼 경! 난 돌아가지 않아요. 그러니 그만 황궁으로 돌아가세요. 강제하겠다면 무력을 사용하겠어요.”
순간 패튼의 눈동자에 미미한 비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황명은 폐하를 제외한 제국의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돌아가셔야 합니다.”
패튼의 음성이 제법 차가워졌다. 해 볼 테면 해 보란 태도였다.
“거, 참 끈질긴 놈일세. 공주께서 싫다고 하잖아! 당나귀처럼 생겨 먹은 빌어먹을 새끼야!”
걸쭉한 욕설이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당사자는 물론이오, 레이나 공주와 연소민도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북궁천소를 돌아봤다. 이미 이마에 골을 깊게 만든 북궁천소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숙부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의 성정을 아는 연소민이 전음으로 말렸다. 당장에 주먹을 날릴 것처럼 보였던 북궁천소가 그녀를 돌아보고는 뒤로 물러섰다. 북궁천소의 광포한 성정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왕전의 전음이 들려왔다.
[자식아! 네가 그렇게 설쳐 대면 나중에 소민이 곤란해지잖아? 생각 좀 하며 살자.]
[지랄을 해라, 생각은 개뿔!]
[하여튼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놈이다. 네놈은…….]
[뭐? 이런 백정 새끼가!]
둘 사이의 허공에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이내 불꽃은 담대소천에 의해 소멸됐다.
둘을 보며 좌우로 머리를 흔든 담대소천은 팔짱을 하고서 묵묵히 패튼을 응시했다.
태어나서 가장 강도가 높은 욕설을 얻어먹은 패튼의 얼굴은 삶은 돼지고기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제국의 백작인 자신이다.
게다가 실질적인 케이론의 지배자, 테세우드 공작의 무한한 신임까지 얻고 있다.
어지간한 왕국의 왕들도 자신을 두려워한다. 케이론 제국의 위성 국가 중, 하나인 체스비 공국의 체스비 대공은 자신에게 상석까지 내준다.
그런 자신이 까다 만 밤송이처럼 생겨 먹은 북궁천소에게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쌍욕을 들었으니 코에서 불길이 뿜어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당나귀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였다. 그의 별명이 코 큰 당나귀였던 것이다.
“놈을 잡아라!”
“예!”
마법사들이 일제히 북궁천소에게 달려들었다.
“그만!”
레이나 공주의 날카로운 고함에 마법사들은 멈칫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패튼을 바라보는 레이나 공주의 아름다운 얼굴은 한기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