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
<귀환무사 303화>
귀환무사 2부
78화
제2장 아이아스의 레어를 찾아서
카루가는 하품을 하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느닷없이 수많은 질문을 퍼붓는 혁련천후에게 정성껏 대답해 준 그는 졸린 눈으로 진천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는 눕더니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혁련천후는 암울한 기색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마계의 인물이라면 카루가가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렇지 못했다.
계약을 맺은 자가 스스로 밝히기 전에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했다. 결국 그자를 찾아내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결론이었다.
조윤이 그를 위로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주공! 반드시 돌아갈 방도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생각을 바꿔야겠어.”
“예?”
“드래곤의 레어라고 했나? 케논 산맥에 있다는 그것 말이다.”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그건 왜……?”
혁련천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창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연 혁련천후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케논 산맥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곳으로 간다. 드래곤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저곳 말이다.”
“주공!”
“왠지 실존할 거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설사 없더라도 찾아는 봐야겠어. 아르소에 전령을 보내, 소민을 지켜 주며 기다리라고 전해라.”
“그럼 저희들도 함께 가는 겁니까?”
진천의 물음에 느릿하게 몸을 돌린 혁련천후는 조윤을 응시했다.
“너와 흑야는 이곳을 지켜라. 진천과 진무만 나와 함께 간다.”
“저희들도 함께 가겠습니다.”
조윤이 나서자 혁련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모를 놈들의 도발을 생각해야지. 소가 아꼈던 이곳이 피에 잠기는 건 용납하지 못하겠다. 너희들이 지켜라, 이곳을…….”
혁련천후는 조윤과 흑야에게 몇 가지 당부를 건네고는 거처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문이 열리며 우드가 들어섰다. 여전히 지친 기색이 다분한 그는 들어서기가 무섭게 무릎을 꿇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데려가 주십시오!”
혁련천후의 미간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우드의 눈에 어린 열망을 읽어 낸 그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곳이 위험하다고 너희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목숨 따위 잃어도 상관없습니다. 아이아스의 레어를 찾는 데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낼 확률이 높은 방법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혁련천후와 모두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단호한 결의를 얼굴 가득 품은 우드가 혁련천후를 바라보았다.
“데려가야만 말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군.”
“죄송합니다. 가고 싶습니다.”
“좋다, 출발은 내일 아침에 할 것이니 각자 거처로 돌아가서 준비를 하도록.”
* * *
“그러니까, 그 작자를 찾으려면 직접 감옥으로 들어가야 한단 말이야?”
“그가 요란 제국에 수감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진천은 황당한 표정으로 우드를 쳐다봤다.
황당하기는 혁련천후와 사공진무도 같았다. 카루가만 그저 이들의 대화하고는 상관없이 싱글벙글 콧노래를 부르며 주변 풍경을 구경하기 바쁜 모습이다.
혁련천후의 미간에 슬쩍 주름이 잡혔다.
“놈이 허풍을 떨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군. 그건 왜지?”
“그는 대륙을 통틀어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전직, 드래곤 헌터입니다. 죄를 짓기 전에 그의 집을 요란 제국에서 압수 수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의 집에서 드래곤의 뼈가 대량으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물론 소문일 뿐이지만 워낙 유명했던 자였기에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습지요.”
진천이 실소를 머금었다.
“우습군. 그런 유명한 작자가 황족을 간음하고 감옥에 갇혔다니…… 살려 둔 요란 제국도 우습긴 마찬가지네. 구족을 멸해도 시원찮을 중죄인을 살려 두다니 말이야. 하여튼 요상한 곳이다, 이곳은…….”
“어쩌지. 주공 정말 감옥으로 들어가 볼까요?”
사공진무의 말에 우드가 기겁을 하고 나섰다.
“그곳은 일반 감옥과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가지는 곳이 아니며, 들어간다고 해도 살아서 나오기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건 왜? 무슨 지옥에다 가두기라도 하는 거야?”
가슴을 쓸어내린 우드가 침을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곳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소멸성 마나홀이 형성된 곳이라고 합니다. 소멸성 마나홀이란 인간이 지닌 모든 마나를 저절로 소멸시키는, 그야말로 순수한 인간의 기운만을 남겨 두고 모조리 빼앗아 가 버리는 지옥과도 같은 곳입니다.”
“소멸성 마나홀? 거, 이름 하나 되게 복잡하군.”
“마스터들도 그 안에 들어가면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되는 것이지요. 물론 초인도 마찬가집니다. 주로 정치범들이나 역적을 도모했던 자들을 가두는 곳인데, 거의 모든 제국에 하나씩은 있습니다.”
“하하! 마나를 자랑하기 바쁜 이 세상 놈들에겐 정말 지옥이 따로 없겠군.”
혁련천후가 다시 물었다.
“어지간한 죄로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내겠군. 죄목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지?”
“……!”
우드는 그의 눈빛을 보고는 즉답을 못했다.
말해 주면 정말로 그렇게 해서라도 들어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드가 머뭇거리자 진천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간단하겠네요. 그 사냥꾼처럼 황실의 여인들 중, 하나를 응응 해 버리면 되지 않겠…… 윽!”
진천의 뒤통수에 사공진무의 주먹이 작렬했다.
“추잡한 생각하고는…….”
“그럼 자식아! 한 천 명쯤 살인이라도 해 버릴까?”
“끙!”
사공진무도 입을 닫았다.
“무조건 큰 죄를 짓는다고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단순한 살인자들은 붙잡힌 도시에서 판결을 거친 후 곧바로 처형당합니다. 그곳은 마스터들이나 적국의 장수 같은 유명 인사들만 가두는 곳이라…….”
“젠장! 복잡하네. 그러니까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극악한 죄악을 저질러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황실에서 직접 운영하고 관리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유명인들이기에 처형할 때면 제국의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쏠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른 제국에서도 관심을 보일 정돕니다. 요란의 황제 입장에선 자신이 정치적으로 불리할 때, 국면 전환용으로 써먹기엔 그저 그만인 셈이지요.”
“추잡하기는 이곳이나 저곳이나 똑같군. 주공! 어쩌지요? 잠입이 불가능하다면 죄를 짓고 잡혀가길 바라야 하는데, 죄를 범해도 반드시 그곳에 수감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진천이 혁련천후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방법은 가면서 생각해 보도록 하지.”
혁련천후는 생각을 정리하고 당장은 요란 제국으로 들어가는 것에 신경을 썼다. 모두는 빠르게 국경 지역으로 말을 몰아 달렸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나,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이라고 해 봤자 양측의 군사들이 커다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아르소와 다크의 접점 지역으로 제국에서 가장 외곽 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대규모 군사행동이 불가능한, 무척이나 좁고 거친 지형을 지니고 있었기에 양측의 군사들은 고작 수백에 불과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이동해야겠습니다.”
주변 지형을 살펴본 진천이 그렇게 결론은 내리자 모두는 말에서 내렸다. 사공진무가 우드를 보며 투덜거렸다.
“쩝! 너도 순간 이동이라는 텔레포트를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우드는 머리를 긁적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 카루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거 내가 할 줄 아는데…….”
“뭣이! 정말이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카루가를 향해 모아졌다. 전혀 뜻밖의 말이었다.
카루가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헤헤! 하지만 좌표를 몰라서 소용없어.”
“좌표? 그게 뭔데?”
진천이 묻자 우드가 대신 대답했다.
“이동할 곳의 지형에 대한 일종의 지도인 셈입니다. 모르고 섣불리 사용했다가는 자칫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기 십상이지요. 운이 없으면 죽기도 하고…….”
“젠장! 갈수록 복잡하군. 그나저나 너 확실히 그게 가능한 거냐?”
“헤헤! 그럼.”
“자식아! 근데 왜 지금껏 말하지 않았냐!”
“물어봤어?”
“끙!”
혁련천후가 자신의 팔을 잡고 선 카루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돌아올 때는 가능하겠구나. 이곳의 지형을 미리 보았으니…….”
“헤헤! 당연하지. 이곳이 아니라 예쁜 누나가 있는 아르소도 가능해.”
천진난만하게 웃음 짓는 카루가를 바라보는 우드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텔레포트는 모든 마법사들이 꿈꾸는 이상의 경지다. 대마법사들만의 전유물인 그것은 보유한 자체로 엄청난 전쟁 억제력과 전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잠시 자신을 책망했다.
‘이분이 마계의 황족임을 잠시 잊었구나.’
마계의 황족이라면 최상위의 흑마법을 구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직계라면 타고나면서 저절로 어지간한 마법사들이 평생을 수련해도 모자랄 양의 마나를 지니게 된다. 우드는 부러움이 가득한 빛으로 카루가를 바라보았다.
사공진무는 카루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카루가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그를 마주 보았다. 사공진무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카루가는 슬쩍 혁련천후의 등위로 숨기고는 고개를 내밀었다.
사공진무가 물었다.
“너, 혹시 차원 이동도 가능하냐?”
“내가 무슨 드래곤인 줄 알아?”
* * *
요란 제국은 생각보다 화려하고 번성했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활력으로 넘쳤다.
“오! 이거 전혀 생각 밖입니다. 케이론보다 오히려 분위기가 밝습니다.”
예상외로 활력에 넘치는 도시의 풍경에 모두는 놀랐다.
전쟁광이라 소문난 황제에다 케이론에서 떠도는 좋지 않은 소문으로 인해 요란 제국에 대한 선입견은 꽤 나빴었다.
하지만 직접 본 이곳은 전혀 달랐다.
“대단하군요. 국경 근처라면 제국에선 변방일 텐데 이 정도라니 말입니다. 전쟁을 해서 엄청난 전리품이라도 벌어들인 것일까요?”
“더 두고 봐야지.”
“사람들 표정이 일단, 너무 밝고 활기가 넘칩니다. 독재자라 여겼건만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황제가 전쟁광에 독재자라면 결코 백성들이 저렇듯 밝을 수는 없는 법인데…… 소문이 틀렸나 봅니다. 물론 더 두고 봐야겠지만 확실히 의외군요.”
우드가 나섰다.
“요란 제국의 황제는 호전적이긴 하지만 백성을 아끼는 마음은 어떤 제국의 황제들보다 강하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거두어들인 전리품도 황실엔 최소한의 양만 남겨 두고 모조리 국민들에게 베푼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집권 이십 년 동안 단 한 번의 반란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가 다른 제국이나 왕국에 소문이 좋지 않은 이유는 워낙 호전적인 성격 때문입니다. 요란 제국은 대대로 대부분의 황제들이 비슷한 성정을 지녔다고 하니 유전적으로 호전성을 타고 나는 것 같습니다.”
“이 제국의 역사가 천 년이 넘는다고 했나?”
“제국으로 올라선 것은 백 년에 불과합니다. 그전엔 평범한 왕국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평범한 왕국이 제국으로 올라서려면 엄청난 군사력이 있어야 가능할 텐데, 백 년 전부터 갑작스럽게 강해졌다는 말이냐?”
“그건 저도…….”
우드가 머리를 긁적이자 혁련천후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들에게 손을 흔드는 금발의 아가씨들을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었다.
일행은 도시의 곳곳을 구경하며 이동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흘긋거렸다.
모두가 대륙에선 보기 힘든 흑안을 지녔기 때문이다. 진천이 눈동자를 벽안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었지만 혁련천후가 거부감을 드러냈기에 본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과일이다!”
카루가가 길가에 잔뜩 쌓인 노점상의 과일을 보고는 소리쳤다. 꽤 배가 고픈 모습이었다.
“주공! 어디 한적한 곳에 들어가 식사라도 하고 이동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