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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302화 (300/425)

# 302

<귀환무사 302화>

귀환무사 2부

77화

* * *

혁련천후는 귀엽게 생긴 꼬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어머니는 괜찮으실 거다.”

“정말 저분이 엄마의 병을 고쳐 주신단 말이세요?”

“그는 훌륭한 의원이다.”

루크는 자신의 엄마를 진찰하는 사공진무를 보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쥐어진 작은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후!”

사공진무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일어섰다.

루크가 혁련천후를 올려다보았다.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그가 사공진무에게 물었다.

“상세는?”

“한잠 자고 일어나면 케논 산맥을 뛰어다닐 겁니다.”

환하게 웃는 사공진무에게 혁련천후는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크가 벌떡 일어서며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우리 엄마가 다 나은 건가요?”

“당연하지. 이 아저씨가 꽤 유명한 의원이거든. 이제 됐으니 넌 아저씨하고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깨어나실 때 너의 씩씩한 모습을 보여 주면 더 좋아하실 거다.”

“알았어요. 밥 많이 먹고 씩씩해질게요.”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자! 가 볼까?”

사공진무가 루크를 품에 안고는 밖으로 나갔다. 침상에 누워 있는 여인을 흘긋 쳐다본 혁련천후도 등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 국경 지역에서 돌아온 흑야와 진천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주공!”

“거처로 가지.”

셋은 혁련천후의 거처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긴 그들은 원형의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이곳 기사들의 말로 요란 제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하더군. 병력도 늘어나고 접점 지역에서 노골적인 도발까지 해 온다고 말이야.”

잠시 뜸을 들인 혁련천후가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놈들의 진영으로 가 봐야겠다. 가서 전체적인 상황을 좀 살펴보는 것이 좋겠어.”

“이 세상의 일에 관여하실 생각이십니까?”

조윤이 조금은 놀란 빛으로 물었다.

“돌아갈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어차피 이들과 함께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하! 당연히 군림하며 살다가 가야죠. 까짓것 별로 대단한 놈들도 없던데요?”

“아예, 왕국을 하나 건설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공진무와 진천이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한 조윤이 다시 물었다.

“주공의 생각도 이놈들과 같습니까?”

혁련천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가 아끼고 소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냥 지켜 주고 싶을 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조윤이 일어서자 사공진무와 진천도 따라 일어섰다. 그때 흑야가 입을 열었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

일어섰던 모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흑야를 돌아봤다. 혁련천후도 담담한 빛으로 흑야를 응시했다.

흑야는 중원에서 자신이 겪었던 것들과 조금 전, 상공을 배회하던 독수리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섬광이 돌았다. 조윤이 가볍게 머리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의도적으로 공간을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어쩌다 넘어가서 신교와 엮였는지 알아낼 방도가 없습니다.”

“우리로선 전자가 좋겠지. 의도적으로 넘어갔다면 누군가는 차원을 오가는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찾아낼 방도가…….”

이래나 저래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진천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당장은 두 가지 방법뿐입니다. 황당무계한 말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의 전설에 나오는 드래곤이라는 놈을 잡아서 족치거나, 아니면 대마법사들을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두 번째 방법이 현실성이 높긴 합니다만, 셋밖에 없다는 그들도 다른 차원으로 오가는 텔레포트가 가능한지는 직접 잡아서 족쳐 보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방법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드래곤을 찾는 것 외엔…….”

사공진무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 드래곤이라는 놈이 정말 존재하는 생명체가 맞긴 한 걸까?”

“모르지. 듣기에 놈이 마법이라는 것을 인간 세상에 퍼트렸다고 하더군. 한마디로 마법의 조종이 되는 셈이지.”

“어디 처박혀 있는지 알기만 한다면 간단하게 해결되는데…… 쩝!”

모두는 드래곤을 지나가는 개쯤으로 여겼다. 나라 전체가 덤벼도 어찌할 수 없는 존재를 말이다.

드래곤을 모르니 당연했다.

“차라리 그때 놈을 사로잡았어야 했다.”

혁련천후의 자조 섞인 말에 조윤이 위로했다.

“그땐 소의 상태가 워낙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지 않습니까? 조금만 늦었으면 소는 죽었습니다. 그러니 그 일은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하하! 곧 다시 잡을 기회가 있겠지요. 그땐 저희들이 꽁꽁 묶어서 대령시키겠습니다.”

진천도 환하게 웃으며 거들었다.

혁련천후는 율튼을 끌고 오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다.

“저희는 놈들의 진영으로 잠입해서 정보를 알아오겠습니다. 진무는 이곳에 있어라.”

“무슨 일이 터지면 부르세요.”

* * *

스스슥!

조윤은 나무 위에서 요란 제국의 군진을 살폈다. 진천도 다른 각도에서 면밀히 곳곳을 살피며 눈빛을 발했다. 흑야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간 것이다.

“대단한 숫자군요. 기병만 거의 일만에 육박합니다. 이 정도면 변방의 경계 병력으로 봐 주기엔 지나친 규몹니다. 게다가 마법사들까지 있습니다. 이거 어느 놈이 부대장인지는 몰라도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입니다, 형님!”

진천은 군영의 중심부에 위치한 막사를 가리켰다.

막사 앞에 로브를 걸친 자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머리를 맞댄 모습이 보였다.

조윤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소민의 말로는 상주 병력이 수천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놈들이 목적을 가지고 수를 늘인 모양이다. 저 정도 전력이면 아르소와 다크 영지의 병력으로는 어림도 없겠어.”

“우리가 있잖습니까? 하하!”

“그렇긴 하지.”

둘은 나무를 내려와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은밀하게 접근했다. 앞서 걷던 진천이 손을 들어 걸음을 세웠다.

“결계가 쳐졌군요.”

둘은 잠시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결계에 걸린다고 해 봐야 위험한 상황에 처할 그들이 아니지만 그래도 번거로운 일을 피하고자 둘은 최대한 은밀하게 행동했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진천이 우측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 보죠.”

사사삭!

둘의 육신이 그림자처럼 우측으로 이동할 때였다.

“헤헤! 여기 있었구나.”

“흡! 이 자식이, 놀랐잖아!”

그들이 이동하는 방향의 허공에 카루가가 손을 흔들며 둥둥 떠 있었다.

진천이 빨리 내려오라는 시늉을 하자 어느새 카루가는 진천의 옆에 나타나 있었다.

“여긴 웬일이냐?”

“심심해서…….”

“주공이 계시잖아.”

“쳇! 어디 가고 없어. 나만 빼놓고…….”

조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말씀도 없이 어딜 가셨단 말이냐?”

카루가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자신들에게 말없이 움직였던 적이 없던 혁련천후였다.

걱정이 되었다. 그의 능력은 믿지만 이 세상이 중원이 아니지 않은가.

“그냥 바람 쐬러 가셨겠지요. 마무리 짓고 우리도 돌아가야죠.”

“넌 함부로 날아다니지 말고 내 옆에 바짝 붙어 있어!”

조윤이 엄포를 놓자 카루가는 고개를 재빨리 조윤의 팔을 잡았다. 진천이 그런 카루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고 치면 혼난다.”

“사고 안 쳐.”

“좋아, 사고만 안 치면 반말해도 봐준다.”

“반말이 뭐야?”

“됐다.”

셋은 다시 본연의 임무로 들어가 빠르게 요란 제국의 군영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카루가가 숲 안에 가득한 과일을 따겠다고 떼를 쓴 것 말고는 별다른 탈 없이 무사히 정찰을 마친 셋은 해질녘이 되어서야 다크 영지로 돌아갔다.

* * *

우우웅!

주변 공간이 심하게 요동쳤다. 팔을 앞으로 쭉 뻗은 우드는 마나를 조심스럽게 다스리며 천천히 손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희미한 원형의 빛이 생겨났다.

“우훅!”

순간, 거친 숨결이 토해지며 우드는 그 자리에 털썩 팔을 짚고 무릎을 꿇었다.

“헉! 헉! 역시 아직은 무리구나.”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적셔진 그는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고 가쁜 숨을 토해 냈다.

좀처럼 숨이 진정되지 않자 뒤로 벌렁 누우며 축 늘어지는 우드의 입가로 가는 핏줄기가 비쳤다.

“틀렸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다니…… 헉! 헉!”

소매로 피를 닦아 낸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땅을 짚고는 간신히 일어섰다. 힘이 빠져나간 다리는 한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아직 멀었어. 오만한 놈들의 콧대를 꺾으려면 아직 멀었단 말이다.”

쿵!

우드의 주먹이 나무에 작렬했다. 살갗이 벗겨지며 피가 주르륵 땅으로 흘러 떨어졌다. 초점 흐린 눈동자는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했다.

호흡이 조금 진정되자 나무에 등을 기대고는 멍한 얼굴로 밤하늘을 응시했다.

“휴…….”

분노가 사라지자 서글픔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생겨났다.

사라진 아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내 두 눈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모두가 죽었다고 말했지만 우드는 아들이 살아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그는 매일 밤, 남몰래 피나는 수련을 해 왔다.

자신의 아들을 사라지게 만든 장본인을 만나, 그를 꺾어야만 했다. 그래야 아들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감당할 존재가 아니었다.

대마법사에 준하는 엄청난 실력자인 그를 꺾으려면 자신도 흑마법의 상위 포지션까지 올라야만 승부가 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은 이 년 전부터 더 이상의 높은 경지로 오르지 못하고 현재의 수준에서 성장이 멈춰 버렸다.

3서클의 백마법사만 만나더라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다.

“빌어먹을!”

쿵!

우드의 주먹이 다시 피를 뿌리며 나무를 후려쳤다.

“그러다가 손이 남아나지 않겠군.”

뒤쪽에서 들려온 차가운 음성에 우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혁련천후가 그곳에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수련 중이었나?”

“예……!”

혁련천후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기운의 소용돌이에 살짝 이채를 발했다. 양이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기운의 종류가 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금역의 혈지에서 느꼈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마계와 계약하면 모두 같은 종류의 기운으로 바뀌는 것인가?”

“강하고 약함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인 마나의 속성은 같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혁련천후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놈도 마계의 힘을 이었군.’

아들을 이곳으로 오게 만든 자의 기운이 우드과 같았다. 그렇다면 그도 마계의 인물이거나, 아니면 우드처럼 마계의 존재와 계약을 맺은 마법사임이 분명했다.

팍!

고개를 숙였던 우드는 바람이 살짝 부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혁련천후가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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