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01화 (299/425)

# 301

<귀환무사 301화>

귀환무사 2부

76화

제1장 아르소 전투

베린스 공작은 1군단에서 지원 나온 마법사들을 별도의 부대로 편성하여 자신의 주변에 두었다.

본국에 서신을 보내 기사들의 수도 이천 이상을 늘여 놓은 그는 아르소의 약점을 파악하는 것에만 몰두했다.

파악되면 곧장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주변 공국들의 반발은 무시하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그들은 정치적으로 적당히 합의점만 찾으면 그뿐이다.

전면전을 염려한 측근들의 만류에도 그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케이시 공작도 공식적으로 그를 지지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의지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기에 그는 더욱 아르소 정벌에 박차를 가했다.

성공하면 비록 변방에 불과하지만 군량 확보에 상당한 도움이 될 곡창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아르소를 점령하고 그곳에 군사를 주둔시킨다면 아르소의 뒤쪽에 위치한 케이론의 중소 영지들은 완전히 고립되는 효과까지 얻어 낼 수 있다.

더 크게는, 비록 공국이지만 왕국보다 강력함을 자랑하는 홀베른 공국과 케이론 제국의 교통로를 자신들이 중간에 막아서는 형국으로 이어진다.

전쟁 발발 시 케이론에 우호적인 홀베른의 병력 이동이 사실상 그곳에서 막히게 된다.

당연히 요란 제국에선 그런 날을 대비해서 그곳에 홀베른의 병력을 막아 낼 정도의 대규모 병력을 상주시킬 것이다.

베린스 공작은 그 부분을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자주 지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국의 상당한 관심을 이곳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황제의 관심을 이끌어 내어 출세를 보장받기 위해선 그것만이 최선이라 여겼다.

그는 전임 사령관을 비웃었다. 자신이 생각해 낸 것들을 그가 먼저 행했더라면 벌써 상당한 공적을 인정받아 중앙으로 진출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이곳보다 더한 한직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가는 베린스 공작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수색을 나섰던 기사들이 의문을 죽음을 당한다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도 1군단에서 추가 지원을 올 마법사들이 합류하면 쉽게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 * *

끼아악!

거대한 독수리가 아르소 상공을 배회하며 소름 끼치는 울음을 토해 냈다.

그 크기가 와이번이라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독수리들은 붉은 광망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굴리며 아르소의 곳곳을 누볐다.

독수리들의 붉은 눈동자만큼이나 섬뜩한 광망을 발하는 존재가 지상에서 독수리들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흑야였다.

그는 아르소와 다크의 접점 지역을 배회하는 독수리들을 보며 눈빛을 발했다.

‘놈들이야. 중원에서 나와 소를 쫓던 그 독수리들…….’

그랬다.

금역의 상공에서 거대한 불꽃 공격을 퍼부었던 그 독수리들의 눈빛과 지금 저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들의 눈빛이 닮아 있었다. 소름 끼치는 울음 역시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땐 그저 지나쳤던 부분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세상인 이곳에서 보게 되자 의구심이 강하게 생겨났다.

‘중원에선 서식하지 않는 거대한 놈들이다. 그렇다면 이곳의 놈들이 그곳으로 넘어갔다는 말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신교의 놈들이 저놈들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거지?’

진천이 다가왔다.

“뭘 그리 유심히 보십니까?”

“저것들…….”

“좀 크긴 하지만 그냥 독수리네요. 눈빛이 시뻘거니 재수 없게 생긴 놈들이군요. 그래도 그 와이번인가 하는 놈에 비하면 아주 귀엽게 생겼습니다, 하하!”

웃던 진천은 흑야의 태도가 지나치게 무겁자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표정을 바꾸었다.

“저놈들, 중원에서도 보았었다. 소와 함께 놈들의 추격을 받을 때 말이지.”

“예? 그게 정말입니까?”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확실하다.”

농담이지요라고 말하려던 진천은 흑야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을 보고는 열려던 입을 닫았다.

그때 상공을 배회하던 독수리들이 서북쪽으로 날아가며 사라졌다.

“놈들이 사라져 간 지역이 어딘지 아느냐?”

“요란 제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곳이 아닙니까.”

흑야가 몸을 돌렸다.

“주공을 만나야겠다.”

“그렇잖아도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팍!

둘의 육신이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 *

연소민은 자신의 방에서 성곽을 오가며 훈련에 몰두 중인 가투소와 기사들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레이나 공주가 이곳에 온 까닭에 가투소는 복귀하지 않고 줄곧 아르소에 머물렀다. 그는 꽤 이곳, 아르소가 좋은 눈치였다.

수려한 풍경에 넓은 곡창 지역과 온순한 영지민들은 자신이 살았던 제국의 거대 도시들과는 전혀 다른 따뜻함과 소박함이 있었기에, 그는 수련 도중에도 영지민들이 일하는 경작지로 내려가 그들의 일손을 돕고는 했다.

그러나 기사들은 그런 가투소가 불만이었다. 그들은 대도시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다. 출세를 하려면 대도시가 유리했다.

이런 오지에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모두는 여겼다.

그러나 수련만큼은 모두가 열심이었다. 무기력하게 패했던 케논 산맥에서의 전투와 혁련천후 일행이 보여 주었던 강력함이 동기 요소로 작용한 탓이다.

“으랏차!”

챙! 챙! 챙!

기사들의 기합성이 성곽 주변을 울렸다.

“응!”

연소민의 눈동자에 살짝 빛을 발했다. 기사들이 수련하는 성곽에 담대소천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내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옛 생각이 나신 건가?”

그가 명 제국의 도독 출신임은 중원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담대소천의 얼굴이 가볍게 찌푸려져 있음을 본 연소민은 가볍게 소리 내어 웃었다.

“후훗! 오합지졸로 보시는구나.”

“당연하지.”

뒤에서 거친 음성이 들렸다. 연소민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왕전이 다가와 그녀의 옆에 섰다.

“놈의 눈에 저런 오합지졸들이 눈에 차겠냐. 아마 몸이 근질거려 죽을 맛일 게다.”

“중원과는 전투 방식이 완전히 다른 걸요. 이곳엔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마법 병단이 있어요. 대부분의 나라에서 마법 병단의 전술에 맞추어 군사 훈련을 시켜요. 케이론 제국도 마찬가지예요.”

“전쟁이 별거냐. 먼저 쓸어버리는 놈이 이기는 거지. 아무튼 소천, 저놈은 이 세상에서도 아마 최고 가는 명장이 되고도 남을 놈을 거야. 때론 강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놈이니까.”

“저도 숙부님의 생각에 백번 동감이랍니다. 내려갈까요? 숙부님! 오늘 메뉴는 특별히 중원식으로 했답니다.”

“흐흐! 그거 좋지.”

둘은 성의 연무장 뒤편에 마련된 넓은 야외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련했던 기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식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형 솥에선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며 구수한 냄새를 사방으로 흘렸다.

“한 끼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엄청나겠군. 저놈들에게 돈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

“공주님께서 금과 보석을 대신 내주셨어요. 저분들이 몇 년은 먹어도 남을 만큼 많이 주셨으니 돈 걱정일랑 마세요.”

“그 싸가지가 그런 면도 있었군.”

“호호! 그럼요. 얼마나 자상한 분이신데요. 숙부님들께도 요즘은 잘하시잖아요.”

“그래도 싫다! 노랑머리에 재수 없는 시퍼런 눈깔하고는…….”

“어머! 저도 지금 딱, 그 모습인데요?”

“흐흐! 너야 속에 다른 모습이 있질 않느냐.”

둘은 웃으며 사람들도 북적대는 식당의 가운데로 걸었다. 담대소천와 북궁천소는 이미 탁자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들! 끼니때는 제때 챙기는군.”

“오늘 식단이 제법이야. 이 세상에서도 자주 해 먹었던 모양이지?”

연소민을 바라보는 북궁천소의 눈빛은 꽤 따뜻했다. 중원에서의 그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본능이었겠죠. 살면서 저도 모르게 조금씩 생각이 나더군요. 해서 가끔 만들어 먹곤 했었어요. 맛이 별로라도 많이 드세요, 숙부님들.”

“흐흐! 술은 없냐?”

“훗! 그러실 줄 알고 제일 독한 것으로 준비했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가져올게요.”

연소민이 빠른 걸음으로 주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자 왕전도 둘의 옆에 털썩 앉으며 담대소천의 어깨를 툭 쳤다.

“심심하냐?”

“즐거울 것도 없다.”

“심심하면 저놈들을 한번 단련시켜 보든가. 뭐, 근골이 별로라서 제대로 따라올 순 없겠지만 저, 가투소라는 놈은 잘만 가르치면 꽤 유능한 놈이 될 것 같아.”

그 말에 담대소천이 가투소를 흘긋 쳐다봤다.

“의지가 남다른 친구지. 눈빛도 꽤 마음에 들고…….”

“화산의 꼴통들하고 비슷하지?”

“그렇더군.”

북궁천소가 끼어들었다.

“쓸데없이 엉뚱한 놈들한테 힘 쏟을 필요가 있을까? 저놈들은 공주가 돌아갈 때, 함께 돌아갈 놈들이다. 다시는 못 볼 놈들이란 말이지. 차라리 소민이가 영주로 있는 이곳 놈들을 수련시키자고.”

“오호! 그렇군. 내가 그걸 생각 못했네, 흐흐! 개차반, 제법인데?”

“뭐, 개차반? 이 새끼가…….”

“그만들 해. 소민이 온다.”

“끙! 빌어먹을 백정 새끼!”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둘은 연소민 앞에선 언제나 순한 양이 되었다. 연소민이 양손에 잔뜩 술병을 들고 담대소천의 옆에 앉았다.

“이게 대륙에서 가장 독하다는 여신의 키스라는 술이거든요? 지금껏 이걸 한 병 이상 마신 사람이 없다고 해요. 어때요? 한번 도전해 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방금까지 으르렁대던 둘의 얼굴에 급화색이 돈다.

“크흐흐! 이곳의 약골들하고 비교하는 거냐? 있는 대로 몽땅 가져오너라.”

“크허허! 차반아, 내하고 내기할까?”

“흐흐! 좋다 백정 새끼야! 대신 내공 없이 마시기다?”

“흐흐! 당연하지. 지는 놈이 저 산속에 들어가서 두 발 달린 소 새끼를 잡아 와 가죽을 벗겨 외투를 만들어 주는 거다. 알겠냐?”

“네놈 덕분에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게 생겼군, 흐흐흐!”

연소민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둘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러다 이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 미노타우르스를 말씀하는 거군요. 두 발 달린 소 새끼? 호호!”

“거, 소 새끼 이름이 되게 복잡하군. 자식아! 시작이다.”

왕전과 북궁천소의 본격적인 술 내기가 시작되었다.

연소민은 즐거운 표정으로 음식을 잘게 썰어 안줏거리를 만들었다.

둘의 술 내기가 사람들 사이로 퍼져 가자 이내 주변은 구경하러 몰려든 기사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두가 기가 질린 표정으로 멍하니 둘을 응시했다.

어지간한 주당도 한 병을 다 마시면 하루를 꼬박 누워 있어야 하는 술이 바로 여신의 키스다.

하지만 둘의 주변은 벌써 빈병 네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러고도 둘이 멀쩡하다는 것이다.

언제 왔는지 레이나 공주도 연소민의 옆에 앉아 마치 괴상한 몬스터를 보듯, 마냥 인상을 찌푸린 채, 구경했다.

“담대 숙부도 끼시죠?”

레이나 공주가 담대소천에게 말을 건넸다. 셋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친근감이 묻어났다. 담대소천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라서…….”

“훗! 그럼 저 둘은 짐승이네요?”

“비슷하지.”

결국 둘은 다음 날 아침까지 술판을 벌이고서야 승부를 보았다.

결과는 마지막에 한 병 남은 술병을 먼저 낚아챈 왕전의 승리로 이어졌다.

물론 북궁천소는 무효를 주장하며 불복했다.

하지만 승부엔 운도 중요하다며 담대소천이 왕전의 손을 들어 주자 투덜거린 북궁천소는 삼십 분 만에 미노타우르스 한 마리를 잡아 와 가죽을 벗기고야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