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
<귀환무사 299화>
귀환무사 2부
74화
“사냥하다가 주웠습니다.”
하얀 돌처럼 생긴 그것은 상당히 투명했는데, 곳곳에 거친 암석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혁련천후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진천이 눈을 동그랗게 하며 탄성을 질렀다.
“오호! 이거 엄청난데? 주공! 금강석입니다.”
“금강석?”
“야! 이 정도 크기면 신마성을 하나 더 지을 정돕니다. 이봐! 이걸 산에서 주웠단 말이야?”
“예! 돌 틈에서 뭔가 반짝거리기에 파내어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금강석이 아니고 다이아몬드라고 하는데…….”
혁련천후는 담담한 시선으로 써튼을 응시했다. 써튼은 머리를 조아리며 그의 시선을 마주 보지 못했다.
“팔면 돈이 제법 되겠군.”
“그게, 그냥 드리고 싶어서…….”
“고맙군.”
써튼의 어깨를 툭 쳐 준 혁련천후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혁련소가 쓰던 방이었다.
사공진무가 흑야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라고 하십니까?”
“중원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하실 거란 말씀만 하셨다. 그만 물어보고 잡은 짐승들 손질이나 해.”
모두는 팔을 걷어붙이고 산돼지들에게 달려들었다.
제7장 아르소의 전운
다음 날, 다크 영지의 모든 주민들이 평원에 모였다.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들던 사람들은 평원에 펼쳐진 요리의 향연을 보고는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곳곳에 걸린 솥들이 무럭무럭 김을 피워 냈고 그곳에서 흘러나온 구수한 향기가 평원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통째로 구워지는 돼지고기 주변엔 벌써 몰려든 아이들로 가득했다.
기사들이 조금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다고 달랬지만 배고픔에 주렸던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진천은 여전히 양손에 칼을 들고는 요리를 하기 바빴다. 모두가 신마성의 숙수 홍무에게 배운 솜씨였다.
사사삭!
그의 손이 거친 돼지고기는 어김없이 얇게 저며져 접시에 올려졌다.
먹기 좋은 크기와 두께로 썰어진 그것은 노인들과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나눠졌다.
그저 모이라고만 해서 모였던 영지민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면서 눈치를 보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먹으며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면서 다크 영주의 부친께서 마련한 자리라고 말을 전해 주자 사람들은 일제히 그에게 감사를 했다.
물론 혁련소에게 감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들에겐 폭정을 일삼던 테베스를 몰아내고 자신들에게 자유를 안겨 준 그가 여전히 최고의 영주였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혁련천후는 성에서 바라보았다. 흑야가 그 옆에 함께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즐겁게 먹고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혁련천후의 얼굴은 미세한 회한의 감정이 나타나 있었다.
“언제나 놈이 불만이었다.”
혁련천후의 입에서 중얼거리듯 말이 흘러나왔다. 흑야가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가볍게 눈을 찌푸린 혁련천후가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어 냈다.
“항상 놈이 강해지길 원했었다. 나보다 더 강해져서 더 위대한 절대자가 되어 주기를 바랐었지…….”
“그건 불가능합니다.”
혁련천후는 흑야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성곽에 섰다. 그가 나가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보내왔다.
가볍게 미소로 화답한 혁련천후는 말을 이어 갔다.
“언젠가 놈이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군.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고…… 강호의 절대자도, 신마성의 주인도 다 싫으니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이지.”
흑야는 말없이 혁련천후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게 놈이 바랐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웃고 울며, 때로는 삶의 중심에서 운명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 말이다.”
“……!”
“내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느냐?”
“위대한 삶이었습니다.”
“위대한 삶이라…….”
흑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무사들에게 꿈을 심어 주셨으며 그들에게 정의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악이 무엇인지, 그 악을 왜 벌해야 하는지를 실천하셨습니다. 위기에 빠진 강호를 구원하셨으며 세상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명멸해 간 수많은 선조들 중에서도 주공과 같은 삶을 살아가신 분은 없습니다. 위대하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다면 그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혁련천후의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너도 변했군.”
“예?”
“천하의 살왕이 변해도 너무 변했어.”
“주공!”
흑야의 어깨에 그의 손이 얹혀졌다.
“수십 년을 함께했던 내가 아닌, 내 아들이 너를 변화시켰군. 최강의 자객에다 따뜻한 인간을 더 얹혀서 말이지.”
말뜻을 이해한 흑야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혁련천후의 얼굴에 이 세상에 온 이후, 처음으로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려가지. 맥주라는 것을 마셔 보고 싶군.”
* * *
케이시 공작은 연이어 들어오는 비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탈출하는 포로들을 제압하러 출전한 기사들이 몰살을 당했다. 그리고 레이나 공주를 발견했다고 전해 온 율튼이 어이없게도 동행했던 마법사들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혼사서 낭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케논 산맥과 케이론 제국과의 접점 지역에 주둔했던 이 개 대대 병력이 모조리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보고까지 이어졌다.
“이 모든 게, 설마 놈들이 벌인 것이란 말인가?”
그는 혁련천후와 그 일행들을 의심했다.
율튼의 보고에 의하면 케이론의 접점 지역에서 그들을 보았다고 했다. 물론 그들 때문에 레이나 공주를 잡을 호기를 놓쳤다는 것 역시 보고를 통해 들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놈들은 케이론의 인물들이었어.”
케이시 공작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케이론과는 상관없는 자들이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사실 테세우드 공작을 박살 내고 그 상승세를 몰아 케이론의 본토를 쓸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었다.
자칫 그들에 의해 마법 병단이 또다시 피해를 입게 된다면 그는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게 된다.
그것은 그와 경쟁하는 정적들에게 공격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정체 파악에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서 지금껏 첩보 수집에 심혈을 기울여 온 케이시 공작이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을 끌어내야만 한다.”
탁!
탁자를 치며 벌떡 일어선 그는 벽에 걸어 두었던 검을 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출전 준비를 하고 있는 각 부대장들을 소집시킨 그는 야외 막사에서 대책 회의를 주재했다.
낭패한 모습으로 회의를 듣고만 있던 율튼이 나섰다.
“어쩔 수 없이 본국에 지원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다소 이른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들을 이곳으로 불러 오는 것이 최선인 듯 여겨집니다.”
“그들은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지 않소. 자칫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제국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오, 율튼 공!”
“그렇다고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분명 케이론의 짓입니다. 놈들도 제국전쟁을 대비하여 특수한 능력을 지닌 자들을 양성하고 있음은 각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초인들이 아니면 감히 해낼 수 없는 엄청난 파괴력이었습니다. 그놈들이 전면에 나선 것이 분명합니다. 본 제국도 그들을 보내어 응당한 복수를 해 주어야 합니다.”
율튼은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대마법사는 인간의 감정을 모두 초월한 경지에 오른 초월적인 존재들임을 감안하면 전혀 그답지 않는 태도였다. 그만큼 몇 번에 걸쳐 당한 것이 분했던 것이다.
가볍게 한숨을 고른 케이시 공작이 좌중을 돌아보며 다른 사안을 물었다.
“홀베른과 다른 왕국들의 움직임은 어떻소?”
“케이론 측과 동맹 관계에 놓인 왕국들은 전시 동원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본 제국에 우호적인 왕국들은 다소 케이론 제국을 얕보는 경향이 있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흠! 본 제국을 믿는 것은 좋으나, 그들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발 빠르게 움직여 주면 좋을 텐데…….”
“그리하라고 사신을 보내겠습니다.”
“아니야, 아직은 그럴 단계는 아니네. 케이론 측에서 먼저 군사 행동을 개시할 가능성은 없으니 정국을 지나치게 경색시킬 필요는 없네. 당장의 문제는 케논 산맥 근처를 돌아다니며 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놈들을 색출하는 것이지. 제7강습여단은 언제 도착하는가?”
“약 보름 후면 주둔지로 입성할 것이라 전해 왔습니다. 아! 황태자께서도 이번 출정에 직접 자원하셨다고 했습니다. 강습여단과 함께 오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뭣이! 황태자가 직접?”
“그렇습니다. 분명 그렇게 들었습니다.”
케이시 공작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그에겐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황태자는 자신의 조카이지만 가장 큰 정적이기도 했다.
“그가 온다면 아이언 나이츠들도 오겠군?”
“전 부대가 함께 황궁을 나선 것으로 들었습니다.”
“뭣이! 전 부대가 모조리 나섰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폐하의 승인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케이시 공작의 주름이 더욱 깊은 골을 만들었다. 아이언 나이츠는 말 그대로 강철처럼 강력한 기사들의 집단을 뜻한다.
황태자의 직속 부대로서 오직 황제와 황태자의 명령만을 받는 그들은 요란 제국 최고의 무력 집단이다.
율튼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전부 황궁을 비운다면 문제가 될 터인데…….”
“낸들 알겠소. 만약 홀베른이나 케이론에서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마스터들을 황궁에 난입시킨다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케이시 공작이 은근히 노기를 드러냈다. 율튼이 말을 받았다.
“폐하께서도 그걸 모르실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설마!”
“그들이 벌써 전면으로 나섰다는……!”
케이시 공작과 율튼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딱딱하게 굳어졌다. 부대장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회의를 이쯤에서 마치겠네.”
서둘러 막사를 벗어나는 케이시 공작의 뒤를 율튼이 쫓았다.
* * *
베린스 공작은 새로운 부임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부대의 편제를 새롭게 바꾸었다. 방어에 치중했던 전임 사령관의 잔재를 씻어 내고 보다 공격적인 부대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주둔 병력은 기병 일만에 보병 이만으로 여단급에 불과했지만 베린스 공작은 이들만으로도 접점 지역에 위치한 케이론의 영지들을 휩쓸어 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다.
전임 부관이었던 소리아노가 전사하는 바람에 새로운 부관을 임명한 그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마법 병단의 전력 보강에도 힘썼다.
다행히 케이시 공작의 결재가 떨어져 스물에 달하는 상위 마법사들을 휘하에 두게 된 그는 공을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케이론 제국 최고의 밀 생산지로 이름 높은 아르소를 첫 번째 공격 대상으로 정하고 기회를 노렸지만, 주변 공국들의 반발로 나날을 군사 훈련에만 몰두하며 소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