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98화 (296/425)

# 298

<귀환무사 298화>

귀환무사 2부

73화

“잠시 실례하겠어요, 아리안.”

“그럼,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연소민이 밖으로 나가자 레이나 공주는 서둘러 황궁으로 통신을 넣었다.

케이론 제국의 통신 수단은 모두 동일했다. 동일한 주문으로 범위 내의 모든 지역에 통신이 송신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물론 특수한 집단인 군과 황궁은 별도의 암호화된 주문을 사용한다. 레이나 공주도 그것 때문에 아리안에게 자리를 비켜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팟!

그녀가 주문을 외우자 얼마 안 가 황실기사단의 단장실이 통신석에 잡혔다.

강인한 인상의 중년인이 레이나 공주에게 허리를 숙이고는 대뜸 말을 늘어놓았다.

“마마! 왜 이제야 통신을 보내십니까? 폐하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미안해요. 일이 좀 생겨서…… 폐하께선 지금 대전에 계신가요?”

“아닙니다, 신료들과 별청에서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전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소신께 하십시오.”

레이나 공주는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아르소 북부에 위치한 요란 제국 진영의 움직임이 수상해요. 마법 병단을 통해 그곳에 대한 정보를 부탁해요.”

“그렇지 않아도 방금 통신을 받았는데, 단순한 부대 이동으로 보입니다. 너무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만…….”

“케논 산맥에서의 전투가 불과 보름 전이에요. 그 짧은 시간에 부대 이동이라면 다른 뜻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요? 단장께서 너무 사태를 방만하게 여기시는 것 같군요.”

레이나 공주의 목소리에 다소 힘이 들어갔다.

황실기사단장이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마법 병단에 직접 정찰을 하라고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마마!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디십니까? 위치 정도는 폐하께 전하셔야지요.”

“아르소에 있어요.”

“예? 아르소에 말입니까? 그 위험한 곳엘 마마께서 왜 가셨습니까?”

크게 놀란 기사단장이 벌떡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통신석의 영상이 잠시 흐려졌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레이나 공주의 얼굴에 쓴웃음이 돌았다.

“단순한 부대 이동인데 위험할 게 있겠어요?”

“아무데도 가지 마시고 그곳에서 기다리십시오! 곧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파견하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마마!”

충정이 묻어나는 태도에 레이나 공주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

“알았어요. 그리고 단장님! 폐하께는 저와 통신한 사실을 말씀드리지 마세요. 아셨죠?”

“당연하지요. 제가 맞아 죽을 짓을 왜 하겠습니까? 하여튼 마마! 위험하니 함부로 바깥출입을 삼가시고 성안에만 계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알았다니까요. 그럼 또 연락드릴게요.”

팟!

몇 없는 충신과의 통화는 레이나 공주의 마음을 다소 포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긴 그가 있어서 자신이 이곳까지 올 수도 있었다. 황실기사단장은 테세우드 공작과 막상막하의 무력을 지닌 강자이자 충신이었기에 그녀는 안심할 수 있었다.

테세우드 공작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인사들이 그와 헤론 후작이었다.

‘무사하겠지.’

그녀는 헤론 후작을 떠올렸다.

케논 산맥에서의 전투가 패배로 끝난 후, 지금까지 돌아온 병력은 삼만여 명. 이만에 달하는 병력이 여전히 복귀하지 않았다. 헤론 후작도 돌아오지 않았다.

적의 추격을 피해 케이론 제국의 영토 내로 들어섰다면 그다지 문제 될 것은 없지만 만약 적국의 영토로 건너갔다면 살아서 돌아오기란 거의 힘들다고 봐야 했다.

레이나 공주의 얼굴이 대번에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제발 무사하세요, 헤론…….’

자신에게 언제나 힘이 되어 주었던 그였다.

정적들의 번득이는 시선을 언제나 헤론 후작이 온몸으로 받아 냈었다. 그가 막아 주고 기사단장이 타협하는 식으로 지금껏 정적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왔던 그녀는 자신의 육신 한 조각이 잘려 나가는 아픔을 느꼈다.

딸깍!

문이 열리며 연소민이 들어왔다.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내려가시지요.”

“아리안!”

“예! 마마!”

연소민에게 다가간 레이나 공주가 아리안의 손을 갑자기 잡으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연소민의 눈동자가 살짝 빛을 발했다. 그녀는 공주의 미소가 무척 슬프게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딱딱한 극존칭은 별로군요. 그냥 편하게 대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리안만큼은 특별히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그래도 어떻게…….”

“내려갈까요? 배가 상당히 고프군요.”

레이나 공주가 환하게 웃으며 연소민의 팔을 이끌었다.

* * *

다크 영지에 도착한 혁련천후는 흑야의 안내로 혁련소가 지내던 작은 성으로 들어갔다. 성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그곳엔 어설픈 복장의 병사들이 창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흑야를 보더니 크게 반가워하며 큰 소리로 떠들며 사방으로 뛰어갔다.

그들은 ‘영주님이 돌아오셨다’, ‘기사께서 돌아오셨다’라고 외치며 동네방네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진천이 흑야를 보며 묘하게 웃었다.

“하하! 제법 인기가 있었나 봅니다?”

“그러게, 저건 죽었다 살아온 가족을 반기는 수준인데요?”

사공진무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거들었다.

혁련소가 마계로 소환된 이후, 극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던 흑야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눈동자엔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의 그것과도 같은 감정이 나타나 있었다.

“소와 이곳에서 지냈다고…….”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꽤 반기는 것 같군.”

“소의 선정 때문입니다. 돌아오지 못한 것을 알면 무척 실망할 겁니다.”

혁련천후는 성곽으로 걸어서 올라갔다.

지평선에 걸린 석양이 세상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그는 한동안 말없이 다크 영지의 곳곳을 느릿하게 응시했다.

모두는 묵묵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켰다. 들판에서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가 허름한 복장에 각종 농기구를 들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문득 그들 사이에서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흑야!”

흑야가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인구가 어떻게 되지?”

“천여 명 정도가 전붑니다.”

“꽤 작은 곳이군…….”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라 소가 무척 마음에 들어 했던 곳입니다. 만약 주공을 만나지 못하고 중원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정착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랬었군.”

사람들은 어느새 성곽 아래까지 이르러 있었다.

“영주님! 돌아오셨군요.”

“와! 영주님! 언제 오셨어요?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전쟁이 난다고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영주님이 오셨으니 이제 걱정 끝입니다! 하하하!”

“와하하하!”

사람들은 혁련천후를 혁련소로 착각했다.

석양에 비친 그의 모습이 혁련소와 무척 닮아 있었다. 혁련천후는 잠시 사람들을 응시하더니 흑야의 어깨를 툭 쳐 주고는 성곽을 내려갔다.

흑야가 사람들 앞에 섰다.

“영주는 돌아오지 않았소.”

조용…….

일순 환영 일색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곧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오. 그동안은 조금 전, 그분께서 영주님을 대신하여 다크 영지의 주인이 되실 것이오. 모두들 한마음으로 그분을 대해 주셨으면 고맙겠소.”

“그분이 누군데 영주님을 대신합니까? 우린 다크 영주님만 진정한 영주님으로 모실 뿐입니다.”

“옳소! 다른 사람은 싫소!”

영지민들이 다시 들끓었다.

그 소란스러움은 혁련소의 거처로 걸음을 옮기던 혁련천후의 귓속으로 모조리 흘러들었다.

흑야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물론 예상했던 광경이었다. 그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영지민들을 골고루 응시했다.

어린아이들도 아우성이다. 어쩌면 혁련소를 가장 좋아하는 층이 아이들일 수도 있었다.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놀아 준 그였다. 음식이 수확되거나 사냥을 해서 음식이 만들어지면 언제나 아이들에게 먼저 나눠 줬던 혁련소였다.

흑야의 입이 느릿하게 벌어졌다.

“저분은…….”

영지민들은 혁련소만큼이나 흑야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그의 표정이 엄숙하게 굳어지자 사람들은 입을 닫고 그를 바라보았다.

다시 사위는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영주의 부친이 되시며 모든 이들의 주인이 되실 분이오.”

* * *

툭! 툭!

지붕으로 연결된 굴뚝 밑의 화로에서 장작들이 불똥을 튕기며 활활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혁련천후의 얼굴도 불꽃처럼 붉었다.

졸고 깨기를 반복하는 카루가가 그의 발치에 앉아 있었고 진천과 사공진무, 써튼과 우드는 보이지 않았다. 흑야는 혁련천후의 뒤쪽에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크 영지에서 수확한 밀로 만든 맥주를 커다란 통에 붓고 있었다.

조윤은 그 옆에서 맥주 맛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맛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쫄쫄!

맥주 특유의 향이 실내를 진동했다. 카루가가 눈을 번쩍 뜨고는 쪼르르 달려가 흑야의 발치에 앉아 통으로 들어가는 맥주를 구경했다.

“그게 뭐예요?”

“술!”

“맛있는 건가요?”

카루가가 혀로 입술을 훔치며 눈을 반짝이자 흑야는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넌 먹지 마라.”

“왜요? 나도 먹고 싶은데…….”

“이건 어른들이나 마시는 거다. 넌 어려서 곤란해.”

“내가 나이는 더 많은데! 오백 살이나 먹었단 말이다요!”

흥분하자 다시 말이 꼬이는 카루가에게 흑야는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건 네 세상에서나 통할 일이고, 어쨌든 넌 과일이나 먹으면서 구경이나 해!”

흑야를 독하게 노려본 카루가는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혁련천후의 발치로 뛰어가 쪼그리고 앉았다.

손으로 턱을 괴고 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마침 혁련천후의 시선이 카루가를 향했다.

“히…….”

바보같이 웃어 주는 카루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흑야가 채운 술통으로 다가갔다.

카루가도 뒤를 쪼르르 따라와 옆에 섰다. 한 방울이라도 얻어먹어 볼 심산이었다.

쿵!

문이 열리며 진천과 사공진무, 그리고 어깨에다 뭔가를 잔뜩 짊어진 써튼과 우드가 들어섰다.

“하하! 제법 튼실한 놈들로 몇 마리 잡았습니다.”

털썩!

살이 오를 대로 오른 커다란 야생 돼지 몇 마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써튼이 다섯 마리, 우드가 네 마리, 모두 아홉 마리였다.

한 마리가 거의 백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엄청나게 큰 대물이었다. 물론 라이트 마법 덕분에 그 정도를 짊어지고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건 특식입니다.”

사공진무가 뭔가를 쏟아 냈다.

카루가의 마법주머니를 빌려 갔던 그는 그 안에다 온갖 것들을 담아 왔다. 대부분이 버섯에다 과일이었지만 양이 실로 엄청났다.

“우와!”

카루가의 입이 찢어질듯 크게 벌어졌다.

흑야가 옅게 웃으며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한 끼는 먹일 수 있겠습니다.”

“해가 뜨면 모두 성곽 앞, 평원에 모이도록 하지.”

“미리 기사들에게 전하라 지시했습니다.”

써튼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혁련천후에게 내밀었다. 혁련천후가 써튼의 손에 쥐어진 것을 보며 살짝 이채를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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