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94화 (292/425)

# 294

<귀환무사 294화>

귀환무사 2부

69화

놀라웠다. 불과 이틀 전에 케이론의 황궁에 있었던 루안이다. 텔레포트가 아니라면 이 시간에 이곳에 그가 있을 수는 없었다.

“신분을 밝혀라!”

“루안.”

루안은 짤막하게 이름만을 밝히고는 성큼 마법사들을 향해 걸었다. 팍!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루안의 갑주를 적셨던 핏물들이 붉은 안개처럼 솟아나며 소멸되었다.

마법사들을 응시하는 루안의 눈동자에 새파란 광망이 어렸다.

“켈베로스! 놈의 냄새가 네놈들에게서 나는군. 불쌍하게도 나 루안이 가장 싫어하는 놈의 수족이었구나, 후후후!”

쩌저저정!

루안이 걸어오는 주변 공간이 괴상한 소음을 울리며 요동쳤다.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 공격으로 집중포화를 가했다. 공격이 작렬한 루안의 육신 주변이 파생된 마나로 난무했다.

칼날처럼 날카롭기 그지없는 마나의 파편들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베어 버리고 쓰러뜨렸다.

“으…… 끄떡없다!”

소용이 없었다.

“모두 죽어야겠어.”

루안의 눈동자에 붉은 광채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법사들은 문득 루안의 눈동자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한한 공포가 몰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죽어 가며 느낀 이승에서의 마지막 감정이었다.

* * *

케이시 공작은 통신석을 통해 급보로 전해진 소식을 접하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적의 기습 공격으로 수천의 포로들이 탈출했다고 전해 왔다. 그 와중에 죽어 나간 기사들이 수백이 넘었으며 지원을 하고자 달려간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했다.

“이게 말이 된단 말이냐? 고작 하나 때문에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다니…….”

그랬다.

이토록 엄청난 피해를 입힌 적이 고작 한 명이란다.

심각한 표정의 대마법사 율튼이 케이시 공작을 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케이론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상당한 강자들을 대거 끌어들인 것 같습니다. 이번엔 금발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번의 그자들과는 또 다른 강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대륙에 존재하는 마스터급 이상의 강자들은 본 제국의 정보망에 의해 모조리 감시되고 있는 상황이오. 그들이 케이론으로 향했다는 보고는 없었소.”

“각하! 대륙은 넓습니다. 수억의 인구가 세상의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강자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보셔야 합니다. 당장 저번의 그들만 하더라도 다시 붙으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자들이지 않았습니까?”

케이시 공작은 입을 열지 못했다.

끓어오르는 속을 식히려 연신 냉수만 들이켰다. 율튼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케이론에서 어쩌면 전설로 전해지는 아이아스의 레어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만약 그들이 아이아스의 레어에서 용언 마법과 그 외의 것들을 얻었다면 위험한 것은 본 제국이 될 것입니다.”

율튼의 그 같은 말에 케이시 공작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생겨났다.

“율튼 공! 그건 지나친 근심이 아니오? 설사 그들이 용언 마법을 얻었더라도 인간이 어찌 드래곤의 서적을 해석할 수 있겠소? 그리고 그것과 그놈들이 무슨 상관이 있겠소? 설마 놈들이 그것 때문에 강해졌다고 보는 것이오?”

“답답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케논 산맥에서의 그자는 지금도 제 심장을 떨리게 만듭니다. 마치 마계의 발록을 보듯 사나운 눈동자는 소름이 끼칠 정돕니다.”

미간을 찌푸린 케이시 공작은 딱딱하게 굳은 율튼을 다소 언짢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율튼이 말을 이었다.

“제 마법이 그자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죽음 직전에 처한 흑발청년을 구하려고 뛰어들었을 때, 그 엄청난 파워가 그에게 작렬했습니다만,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지 않았습니까? 마스터를 초월한 초인들이라도 불가능한 경지였습니다. 그걸 단순히 스스로 단련하고 수련하여 올라선 경지라고 보기엔…….”

케이시 공작도 그 부분에서는 인상을 쓰지 못했다.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던 장면이었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자 울화가 불끈 치밀었다.

“테세우드와 쉐인! 두 놈만 견제하면 케이론은 별것이 아니라고 여겼건만…….”

“고정하십시오, 각하! 일단은 놈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케이론에 잠입해 있는 스파이들을 통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정보를 알아내겠습니다.”

“반드시 알아내시오! 율튼 공!”

그때였다.

찌이잉!

통신석이 울렸다. 율튼이 손짓을 하자 통신석에 불이 들어오며 누군가의 영상이 나타났다.

마법 병단의 단주였다.

“조금 전 상당한 마나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직접 오셔야겠습니다!”

“내가 직접 가야 할 정도인가?”

“그렇습니다.”

율튼이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마법 병단의 단주다. 그러나 영상 속의 얼굴은 꽤 긴장한 듯 보였다.

그것은 곧 마나의 움직임이 대단했다는 것을 뜻한다.

“각하!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거든 즉시 연락하시오!”

빠르게 사령실을 빠져나가는 율튼을 보며 케이시 공작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 때문에 그는 짜증이 가실 날이 없었다.

지금도 율튼의 표정을 보니 꽤 심각한 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이아스의 레어라…….”

율튼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요란 제국으로서는 커다란 위협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아니야! 그게 사실이라면 군단 간의 전투에서 그들이 그토록 쉽사리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우일 뿐이다!”

한 개 군단이 몰살을 당했다.

율튼의 말처럼 그들이 아이아스의 레어에서 강력한 힘을 얻었다면 그런 패배를 용납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 미치자 케이시 공작은 다소 안심이 되었다.

제아무리 전력에 여유가 있더라도 한 개 군단을 버리지는 못한다.

“케이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너희들은 곧 본 제국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설사 너희들이 아이아스의 유물을 얻었다고 해도 우리에겐 세상이 모르는 강력한 힘이 있다. 이계의 전사들인 그들이 곧 우리의 전력으로 편입되면 그날이 너희, 케이론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케이시 공작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사령 막사를 나섰다. 곧 있으면 베린스 공작이 새로운 부임지로 출발한다.

비록 연이은 실패로 자신의 눈 밖에 난 베린스지만, 지나치게 홀대할 순 없는 인물이 베린스 공작이다. 자칫 그가 자신의 정적들 편으로 돌아선다면 꽤 골치 아플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 * *

율튼은 마법 병단의 척후조가 주둔하고 있는 산맥의 북부 지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합 스물에 달하는 마법사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이곳은 산맥 내의 모든 마나의 움직임이 포착 가능한 주요 거점이었다.

혹시 모를 적국의 마스터들의 습격을 대비해 제법 강한 축에 속하는 기사들, 백여 명도 마법 병단을 호위할 목적으로 상주하고 있었다.

마법 병단의 책임자이자 마법사로는 드물게 백작의 작위까지 받은 샤르만은 율튼이 도착하자 황급히 그를 맞았다.

“상세히 말해 보아라!”

율튼은 대뜸 보고 내용부터 물었다.

연이은 사건으로 그는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그것을 아는 샤르만은 막사로 걸음을 옮기면서 보고했다.

“놀라울 정도의 마나의 움직이었습니다.”

“사람을 보내 살펴보았느냐?”

“아무런 흔적도 없었습니다. 결계를 세밀히 살폈지만 몬스터들을 제외하고는 걸려든 흔적이 없었습니다.”

막사에 들어선 율튼은 마법사들이 건넨 찻잔을 물리고 다소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샤르만을 응시했다.

“대략 어느 정도의 양이었지?”

“텔레포트를 시전할 정도의 양은 충분했습니다!”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니냐? 설마 케이론의 쉐인이 다시 이곳에 왔을 리는 없지 않느냐?”

“혹시, 케이론에서 대대적인 마법 병단을 보낸 것은 아닐까 의심됩니다만…….”

샤르만의 말에 율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마법 병단만 보낼 리가 있겠느냐? 저번 전투에서 케이론은 전체 마법 병단의 이 할에 가까운 전력을 잃었다. 그런 그들이 마법 병단만 보내겠느냐? 그러다가 모조리 죽어 버리면 힘의 균형이 급격하게 기우는 것을 그들도 모를 리 없다!”

“하오면…….”

율튼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뒷짐을 지고 막사 안을 천천히 오가며 생각에 잠겼다. 샤르만은 두 손을 모으고 율튼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제국의 모든 마법사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존재가 율튼이다. 샤르만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러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려 줄 거라 샤르만은 믿었다.

샤르만의 기대대로 율튼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정찰 독수리를 산맥의 곳곳에 띄우고 그곳은 내가 직접 가 보겠다. 너는 이곳을 지켜야 하니 아이들 몇만 데리고 가겠다!”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어허! 너는 한시도 이곳을 비워선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됐으니, 민첩한 아이들 셋만 데리고 오너라.”

샤르만이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샤르만이 다소 젊어 보이는 마법사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율튼은 그들을 한 차례 쓸어 보고는 이내 마나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서북쪽의 능선으로 몸을 날렸다.

* * *

레이나 공주는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깊은 숲속을 우회해서 산맥의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 험악하다고 소문난 케논 산맥에 단신으로 들어선 그녀는 두려움 없이 빠르게 질주를 거듭했다.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왔기에 요란 제국의 마법 병단에 의해 마나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적이 몰려오기 전에 빠르게 벗어나야 했다.

“흥! 꽁지가 빠져라 돌아가는 꼬락서니 하고는…….”

그녀는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다주고 황급히 돌아가던 쉐인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아무리 제국에 하나뿐인 대마법사라도 자신은 엄연한 제국의 공주다. 빈말이라도 함께하겠다고 나섰어야 옳았지만 쉐인은 오기가 무섭게 돌아가 버렸다.

모든 게 황실의 힘이 약해서라고 생각한 레이나 공주는 달리면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두고 봐! 반드시 강력한 황권을 이루어 낼 테니까!”

휙휙!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

사람들은 그녀가 그저 기본적인 무술만 익혔다고 여겼지만 아니다. 그녀는 제국 최초의 여마스터라는 아리안에 버금가는 강자였다. 물론 그것은 자신과 극소수의 측근들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우측 숲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오우거!’

거대한 그림자가 나무들 사이로 비쳤다.

케논 산맥에서만 서식한다는 블랙 오우거였다. 레이나는 황급히 방향을 반대편으로 틀었다. 싸워서 이겨 낸다는 보장이 없는 몬스터가 바로 블랙 오우거였다.

크르르…….

숲에서 머리를 내민 오우거가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며 침을 흘렸다.

하지만 워낙 레이나 공주의 속도가 빨랐던 탓에 오우거는 가슴을 몇 번 주먹으로 후려치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뒤따르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레이나 공주는 적당한 곳에서 이동을 멈추고 거대한 나무의 꼭대기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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