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92화 (290/425)

# 292

<귀환무사 292화>

귀환무사 2부

67화

아르소에서 그들 소식을 전했을 때, 흑야와 혁련소가 보였던 반응은 충분히 그렇게 오해하고도 남을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식사들 하셔야죠. 내려오세요.”

그녀가 몸을 돌려 내려갔다. 사공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꽤 익숙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소도 그런 말을 하더군.”

“그랬습니까? 흐음…….”

우드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치료가 끝났으니 내려들 가시지요.”

“흠! 형님! 일단 배부터 채웁시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본 지가 꽤 오래됐습니다, 하하!”

사공진무가 자기 배를 두드리며 걸음을 돌리자 흑야도 몸을 일으켰다.

어깨를 돌려 본 그는 꽤 상태가 좋아진 듯 느껴지자, 옷을 걸치고 사공진무의 뒤를 따랐다. 뒤를 따르는 우드의 얼굴이 꽤 굳어 있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마나를 지니고 계셨어. 도대체 이분들은…….’

치료할 때 그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서 스캔 마법을 이용해 흑야의 힘을 살폈다. 그것은 마나의 양을 측정할 때나 몸속에 박힌 파편의 위치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마법이다.

아리안이 들어섰을 때, 순간적으로 감지되었던 흑야의 마나는 우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양이었다.

‘대마법사의 공격에도 살아남은 게 운은 아니었어.’

심호흡을 한 우드는 걸음을 빨리했다.

* * *

“대승을 거두고도 가만히 있다니, 웃기는 놈들이군.”

왕전이 가투소와의 대화 도중 요란 제국의 태도를 거론했다.

그의 식탁 앞에는 아르소의 명물인 맥주가 통째로 놓아져 있었다.

“국가 간의 전쟁이 무슨 무림 문파 간의 땅 따먹기와 같은 줄 아냐?”

북궁천소가 심드렁하게 받아치자 왕전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성을 냈다.

“누가 네놈한테 물었냐? 그냥 술이나 처먹어, 자식아!”

“이런 백정 새끼가…….”

둘의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며 조윤이 혀를 찼다.

“너희 두 놈은 언제 철들래? 보면 볼수록 참 신기하다.”

“뭐가?”

“그런 성질머리로 어떻게 무공을 배웠냐?”

“사돈 남 말하고 자빠졌네. 너도 그냥 술이나 처먹어라, 자식아!”

왕전의 걸쭉한 욕설에 가투소는 실소를 머금었다.

“제국전쟁은 양국 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전면전으로 확전된다면 제국과 관련이 있는 모든 왕국과 공국들도 일제히 전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하게 됩니다. 혹, 승리한다고 해도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른 제후국들이 그 틈을 노려 독립을 선언하고 연합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란 제국도 그 점을 인식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연합전선?”

“그렇습니다. 사실 대륙엔 제국에 못지않은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왕국과 공국들이 몇 있습니다. 홀베른 공국이 그 대표적인 곳입니다. 비록 수에서는 상대가 되질 않으나 대마법사에 근접한 상위 마법사들과 수십의 마스터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약 혼란을 틈타 제국의 황실을 침공한다면 막아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담대소천이 의문을 나타냈다.

“당연히 최소한의 방어 병력은 남겨 두지 않는가?”

“그들을 막아 낼 정도의 병력이라면 최소 두 개 군단과 상위 마법사 열 명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국 간의 전면전에서 전력의 약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설혹, 그들이 왕궁을 노리지 않고 거래를 통해 어느 한 곳과 동맹을 맺기라도 한다면 그것으로 승패는 갈린다고 봐야 합니다. 역사에서 그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담대소천이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럼, 당분간 제국 간의 전면전은 없다고 봐야겠군. 물론 패배한 케이론 측에서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당장은 떠도는 패잔병들을 구출하기 위한 특수 부대만을 파견했다고 하니 당분간, 우려했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테세우드 공작의 심중이 변수가 되겠지만 그분도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이번 전쟁에서 잃은 마법 병단은 대부분이 그분의 직속이었으니까요.”

가투소의 그 같은 말에 북궁천소가 묘한 빛으로 이죽거렸다.

“상대도 꽤 많은 마법사 새끼들이 뒈졌지. 모조리 죽였어야 했는데…….”

“예?”

“흐흐! 아니다.”

가투소는 그들이 요란 제국의 마법사들을 반 이상 몰살시킨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들이 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요란 제국에서 텔레포트로 대규모의 마법 병단이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가투소는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요란 제국이 승세를 몰아 케이론 제국의 본토를 들어서지 못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혁련천후와 그의 일행들 때문이었다. 모든 군권을 쥐고 있는 케이시 공작은 그들의 능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케논 산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마법사 율튼의 공격을 뿌리치고 자신들이 노렸던 자들을 데려간 그들이다.

만약 자신이 확전을 꾀하고 케이론으로 밀고 들어갔을 때, 난전 중에 그들이 자신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저격을 노린다면 막아 내기란 무척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엇비슷한 전력이라면 마스터급 고수들의 수가 승패를 가늠한다.

마법 병단의 위력에선 요란 제국이 우월했지만 그들도 마스터급의 고수들에겐 큰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그것 때문에 케이시 공작은 케이론 제국의 상징적인 인물인 테세우드 공작을 부수고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케이론 제국은 혁련천후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각설하고…….

아리안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들이 정말 소문의 흑안의 마검사들이 맞는 걸까?’

대륙에 흑발을 지닌 사람은 많다.

하지만 흑안을 지닌 사람은 마족, 외에는 없다. 마족이라면 당연히 백마법사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마족이 아니었다.

들어 보니 이글스 여단에서 하룻밤을 보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단에 상주하는 마법사들에게 발각되었을 것이고 결과는 죽음으로 이어졌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의문점은 이들의 강력함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요란 제국의 기마병들을 도륙하던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뛰었다. 마스터인 자신이 놀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투가 끝났을 때 보여 준 이들의 호흡이었다.

다소 숨이 가빴던 자신과는 달리 이들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것은 곧 자신보다 엄청나게 강력한 마나를 이들이 지녔다는 것을 뜻한다.

‘틀림없을 거야.’

이토록 강력한 힘과 흑안, 아리안은 이들이 소문의 그들이라 확신했다.

“꼬마야!”

왕전이 카루가를 불렀다. 양 볼을 과일로 볼록하게 채운 카루가가 그를 쳐다보자 왕전이 물었다.

“그쪽에다 연락 같은 것은 불가능하냐?”

“으응!”

카루가가 고개를 가로젓자 왕전의 이마에 주름이 생겨났다.

“크흠! 그럼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단 말이군.”

카루가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가 다소 굳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진천이 물었다.

“무조건 돌아오는 것은 확실하지?”

“응! 무조건…….”

카루가의 대답에 모두는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마법사는 분명한데, 세상에 저렇게 어린 마법사가 있었나?’

카루가를 바라보는 아리안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닌 마법 주머니는 전설로 전해지는 드래곤의 마법 창고에 뒤지지 않았다.

그 많은 검들이 들어갔음에도 부피는 작은 주머니 정도에 불과했다.

‘하나같이 이상한 존재들이야.’

아리안은 혼란스러워진 머리를 식히려고 식사에 열중했다.

혁련천후는 홀로 성의 첨탑에 올라 수려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있었다.

아들을 위기에서 구해 냈지만 그는 지금 기약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물론 살아서 돌아올 거라 믿었지만 믿음만큼이나 불안감도 컸다.

문득 중원에 있을 아내들이 떠올랐다. 요즘 들어 그녀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향수병인가…….’

좀처럼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그의 얼굴이 아련함으로 물들었다.

“헤헤!”

뒤에서 카루가의 웃음이 들렸다.

“뭐해?”

“많이 먹었느냐?”

“배가 터지려고 그래!”

배를 쑥 내밀고 손으로 퉁퉁거리는 카루가의 모습이 꽤 귀여웠다.

“난 누구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아.”

“후후! 그래?”

“형 생각하는 거지?”

“……!”

“나도 무척 보고 싶은데 참고 있어. 그러니까 아저씨도 참아! 내가 꼭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헤헤!”

“그래줄 수 있겠느냐?”

“헤헤! 난, 왕자야. 반드시 약속은 지킨다구.”

혁련천후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카루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슴이 아파 온다. 지금껏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기억이 없다.

“아저씬 배 안 고파?”

“별로…….”

“흠! 내가 저 강물에서 싱싱한 생선을 잡아서 구워 줘?”

“됐다.”

혁련천후가 몸을 돌리자 카루가는 옷소매를 잡고 바짝 붙었다. 둘은 느린 걸음으로 성곽의 계단을 밟으며 걸었다.

구불구불한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성안의 사람들이 둘을 보고는 뭐라 수군거렸다. 어떤 사람들은 다정한 부자지간이라며 부러워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들이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며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다.

아무리 작게 속삭여도 모두 생생하게 들렸다.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카루가는 여전히 자신의 팔을 잡고 있었다.

“화가 나면 본모습으로 변한다고 하더군.”

“응. 나도 그 모습이 싫은데, 화가 나면 어쩔 수 없어…….”

“변하지 마라. 넌, 지금의 이 모습이 더 좋다.”

“그게 쉽지 않다니까…….”

“화를 안 내면 되지 않느냐.”

“쳇! 그게 더 어렵지.”

* * *

케논 산맥 북부 평원에 주둔한 요란 제국 제1군단은 완벽한 시설의 설비를 마치고 도로를 닦는 데 주력했다. 본토에서 그곳까지 진입할 진입로 개척은 상당히 중요한 작업이었기에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대규모 인원이 투입되었다.

투입 인원에는 포로로 잡힌 케이론 제국의 병사들도 이천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포로는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 말고도 오백여 명이 더 있었지만 그들은 최소, 남작에서 자작의 지위를 지닌 귀족들이었기에 작업에 투입되지 않았다.

포로라도 귀족은 최소한의 존중을 받는다. 그것은 수백 년을 내려온 대륙의 전통이자 불문율이었다.

“젠장! 패배는 지들이 해 놓고 고생은 우리가 다 하는구나! 빌어먹을!”

“인마! 그래서 전공을 세워 작위를 받아야 하는 거라고. 제기랄! 그것 하나만 믿고 군에 투신했다만 첫 전투에서 포로가 되는 신세라니…….”

“신도 우리 같은 놈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거다. 이참에 종교를 바꿀까 생각 중이다. 젠장! 확, 요란 제국으로 전향을 해 버려?”

“이 자식이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닥치고 돌이나 날라!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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