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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91화 (289/425)

# 291

<귀환무사 291화>

귀환무사 2부

66화

분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시녀가 들어왔다.

“어떻게 되었어?”

“루안 공께서 직접 케논 산맥으로 가셨답니다.”

“직접 갔단 말이야?”

“예! 마마. 황실기사단의 맥마흔 부단장께서 가시는 것을 직접 보셨답니다. 폐하께는 상신을 올리지도 않으신 듯합니다.”

레이나 공주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준비해! 다시 그곳으로 가야겠어.”

“……예?”

“뭘 그렇게 놀라.”

시녀의 눈동자가 구슬처럼 동그랗게 커졌다. 레이나 공주는 벌써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놀랍게도 평상복이 아닌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마마! 어찌하시려고…….”

“나 혼자서 갈 거야. 케티를 좀 데려와 줘.”

케티는 레이나 공주가 애마에게 붙여 준 이름이다.

시녀는 레이나 공주를 흘끔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시녀가 나서는 것을 본 레이나 공주는 재빨리 방문을 열고 어디론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쉐인 대마법사에게 텔레포트를 부탁하려는 것이다. 말을 타고가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 * *

케이론 제국의 황실마법 병단의 수장인 쉐인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두꺼운 서적을 읽고 있었다.

쿵!

“계셨군요.”

레이나 공주가 들어서자 그는 재빨리 일어나 예의를 갖추었다.

비록 정적이라지만 그녀에게 호의를 갖고 있던 그는 반갑게 인사를 하려다가 그녀의 복장이 예사롭지가 않자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대략 짐작이 갔던 까닭이다.

“케논 산맥으로 보내 주세요. 부탁이에요.”

역시 예상했던 것을 꺼내 들자 그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루안 공 때문입니까? 그렇습니까?”

“역시 쉐인 공의 눈은 벗어날 수가 없군요.”

레이나 공주는 내심 감탄했다.

언제나 쉐인은 모든 것을 본 듯 정확하게 예측했다. 어떨 땐, 그에게 예지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쉐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힘주어 말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겠어요. 그냥 보내 주세요. 말을 타고가기엔 너무 늦어 버렸군요.”

“케논 산맥은 너무 위험합니다. 혹, 놈들의 손에 잡히시기라도 한다면 제국은 꽤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인질로 이용당할 거면 혀를 물고서라도 죽을 작정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간다고 해도 루안이 어디 있는지를 알고 찾는단 말입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공께선 그냥 저를 그곳까지만 데려다주세요.”

레이나 공주가 생각 이상으로 단호하게 나오자 쉐인은 난감했다.

자신은 테세우드 공작의 사람이다. 레이나 공주와 그는 가장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적의 입장이었다. 당연히 그로서는 섣불리 도와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흠……!”

“쉐인 공!”

레이나 공주의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가자 쉐인은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신이 아무리 제국의 실력자인 테세우드의 인물이라고 해도 그녀는 엄연한 제국의 공주다. 이렇듯 단호하게 나온다면 거절할 방도가 없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 * *

적 사망자 백육십 명, 아군 사망자 전무, 부상자 아홉 명.

전투의 결과였다.

압도적이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한 전투 현장은 죽은 자들의 검을 줍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검들은 카루가의 마법주머니로 줍는 족족 사라졌다.

“내가 직접 같이 싸웠으면서도 이건 도저히 못 믿겠다.”

“나도 그렇다. 아무튼 이겼으니 속은 좀 후련하다. 이대로 돌아가면 분해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기사들은 검을 주우며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대장이 저분들에게 쩔쩔매는 게 사실 이상했는데, 당연한 거였어. 저 남작이라는 사람이 저들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보면 분명 제국의 최상위급 귀족임이 확실하겠지?”

“저 정도의 엄청난 강자들을 거느렸다면 그건 당연한 거지. 하지만 최상위급 귀족이라면 대부분이 마법신문이나 황실 행사를 통해 얼굴을 알 텐데, 저분들은 전혀 기억에 없어. 혹시 제국에서 비밀리에 양성하고 있다는 특수 부대가 저분들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군. 솔직히 제국에 흑안에 흑발을 한 귀족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너희들은 들어 봤냐?”

“당연히 못 들었지.”

기사들은 저마다 의아함을 잔뜩 품고서 혁련천후와 주변 인물들을 흘긋거렸다.

애초에 그들은 혁련천후 일행을 흑안의 마검사로 생각했었지만 가투소가 아니라고 하는 바람에 그렇게 믿고 있었다.

기사들의 궁금함은 끝이 없었다.

“저분이 그 유명한 아르소의 영주, 아리안 남작이시구나.”

“봤냐? 놈들과 싸울 때 저분의 검법을…… 왜 제국 최초의 여마스터라고 하는지 대번에 알겠더군. 놈들의 갑주가 종이처럼 뜯겨 나가더라니까!”

“오! 하여튼 오늘 엄청난 강자들을 너무 많이 봤어! 이거 완전 눈이 호강했잖아!”

아리안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의 아름다움에 강인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겹쳤으니 기사들은 초점 흐린 눈으로 그녀를 연신 흘긋거렸다.

갑주에 묻은 피를 닦아 내던 아리안은 기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슬쩍 몸을 돌렸다.

“흐흐! 꽤 인기가 좋군.”

“저 정도면 괜찮지. 빵빵한 몸매에다 뽀얀 피부라니…….”

왕전과 북궁천소가 주고받은 말은 고스란히 아리안의 귀로 들어갔다. 그녀는 슬쩍 짜증이 솟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갑주를 정리한 그녀는 주변을 살폈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저 사람…….’

나무에 등을 기대고서 먼 곳을 응시하는 혁련천후가 보였다. 그의 옆모습이 무척 눈에 익었다. 동시에 누군가의 영상이 흐르는 물처럼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크 영주!’

그랬다.

나무그늘 밑의 사내는 그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사내의 옆에는 역시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붕대를 감고 있는 그의 뒷모습에서 묘한 느낌을 받은 그녀는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카루가를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뭐야! 저 꼬맹이는…….’

“예쁜 여자, 성질은 별로구나. 쳇!”

‘저게!’

카루가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발끈한 아리안이 노려보자 카루가는 혁련천후의 등 뒤로 숨었다. 그때 혁련천후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헉!’

아리안은 심장을 칼로 쑤시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혁련천후의 무심한 눈길은 이내 먼 곳으로 던져졌다. 카루가가 고개를 빠끔 내밀고는 아리안을 향해 혀를 내밀었다.

“무섭지?”

* * *

죽은 자들의 검이 모조리 카루가의 마법주머니 안으로 사라지자 모두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기사들은 승전에 대한 들뜸으로 꽤 표정들이 밝았다.

참패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복수는 한 것이라는, 스스로의 만족에 가투소의 얼굴도 모처럼 밝았다.

중간중간에 사냥으로 배를 채우며 이동하기를 반복한 그들은 며칠이 지나서 아르소의 초입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광활한 곡창 지대의 풍요로움이 눈을 시원하게 했다.

그들은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잠시 후, 모두는 아르소의 영내로 진입했다.

영내를 구경하던 모두는 다소 의아한 표정들을 했다.

“뭐야? 이 분위기는…….”

거리는 지나치게 한산했다. 북방 지역, 최고의 번화가라고 소문난 아르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케논 산맥에서 케이론 제국의 패배가 전해지면서 아르소의 영지민들 중, 상당수가 피난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리안의 표정이 꽤 무거웠다.

그녀는 간혹 보이는 영지민들을 보면서도 나서서 묻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전마에 몸을 맡겼다.

오백에 이르는 기사들이 전마에 몸을 싣고 시내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저마다 몸을 숨기고 문을 닫기에 바빴다.

비록 제국의 기사들이었지만 전쟁 중엔 적군이나 아군이나 일반 영지민들에겐 똑같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가투소의 표정에 씁쓸함이 어렸다.

제국의 기사들을 보면서도 누구 하나 물 한 잔, 꽃다발 하나조차 건네지 않았다.

비록 패잔병일지라도 기사들이 이동하면 관례처럼 행해지는 것이 그것일진대 무슨 유령 보듯 전부 몸을 숨기기 바빴다.

“고작 국지전의 패배에 이 정도로 가라앉다니, 제국전쟁이라도 일어나면 볼 만하겠군.”

가투소의 중얼거림을 들은 왕전이 히죽 웃었다.

“인기가 형편없군.”

“그러게 말입니다.”

가투소의 얼굴을 가득 채운 씁쓸함이 더욱 짙어진다.

저 멀리로 아르소의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유려한 풍경에 모두는 감탄했다.

아리안이 전마를 몰아 무리의 앞으로 달렸다. 그녀가 다가가자 성문이 열리며 집사를 비롯해 몇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기사들은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성곽 주변에 펼쳐진 푸른 잔디밭에 전마들을 풀어 놓고 그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가투소만이 혁련천후 일행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많은 수의 시종들이 음식과 술을 잔뜩 들고 기사들을 찾았다. 곳곳에서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의 집사 쉘트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흠! 이제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군.”

모처럼의 소란이 그는 무척 반가웠다. 아리안이 없는 동안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제5장 아리안의 눈물

찌르르…….

우드의 손길이 스치고 지나가자 흑야는 전신이 상쾌해짐을 느꼈다.

지금 그는 우드에게서 마법 치료를 받는 중이다. 의술에 조예가 깊은 사공진무가 있었지만 마법 공격에 의해 입은 부상은 마법 치료만이 답이라는 우드의 말에 따른 것이다.

사공진무가 곁에서 눈을 반짝거리며 우드의 손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법으로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형님! 효과가 납니까?”

“제법…….”

“이거 나도 좀 배워야겠군요. 중원에 돌아가면 꽤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습니다, 하하!”

우드는 땀을 뻘뻘 흘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포션이 통하지 않았다. 덕분에 신통치 않은 자신의 마나를 몽땅 쏟아붓고 있었다.

그때 아리안이 들어섰다. 갑주를 벗고 화려한 옷을 걸친 그녀는 눈이 번쩍 뜨이도록 아름다웠다. 흑야의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에게 던져졌다.

“좀 괜찮아지셨나요?”

“……!”

흑야는 대답 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를 바라보는 아리안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그가 부상을 입은 이유를 들어서 알기 때문이다.

대마법사 율튼과 싸우고서 살아남은 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표정을 고친 아리안이 활짝 웃었다.

“오해했었어요. 저분들을 노리는 줄 알고…… 사과드려요.”

“상관없다.”

흑야의 냉랭함에 아리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흑야를 다크어쌔신으로 짐작했던 그녀는 그가 혁련천후 등을 노리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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