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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90화 (288/425)

# 290

<귀환무사 290화>

귀환무사 2부

65화

“나중에 가 보면 그곳이 어딘지 알게 되겠지.”

혁련천후는 카루가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면서 일어섰다.

카루가도 따라 일어섰다. 다른 모든 이들도 일어섰다. 모두는 다시 다크 영지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뒤쪽은 가투소가 이끄는 오백의 기사들이 따랐다.

푸르륵!

상당히 지쳤던 전마들은 싱싱한 풀로 배를 채우자 제법 활발한 몸짓을 보였다.

기사들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체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기사들은 북궁천소와 왕전 등을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대부분이 요란 제국의 기마병들을 쓸어버릴 때, 그들의 놀라운 무력에 대해 입을 놀렸다. 왕전 등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속삭인다고 속삭였지만 모조리 그들의 귀에 들렸다.

드래곤이 폴리모프를 한 것은 아닐까라는 말이 들렸을 때는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이동 속도는 다소 느렸다.

좁은 길목과 주변을 두른 울창한 수림은 전마들이 질주하기엔 마땅치 않았다.

자그만 산의 능선을 타고 돌아가자 시야가 뻥 뚫리는 기분이 들 정도의 넓은 평원이 펼쳐졌다. 모두는 능선을 버리고 평원으로 전마를 몰아갔다.

그들이 막 평원으로 들어설 때, 담대소천이 혁련천후를 불렀다.

“주공!”

혁련천후는 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무엇 때문에 불렀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전과 북궁천소가 말 머리를 돌려 뒤쪽으로 이동했다. 담대소천은 혁련천후의 옆을 지켰다.

혁련소 때문에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제약 때문에 싸울 수 없는 그를 호위하기 위함이었다.

“왜 저러지?”

갑자기 선두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자 뒤를 따르던 모두는 의아함을 내비쳤다.

써튼과 우드도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했다.

왕전이 가투소를 보며 손짓을 보냈다. 가투소가 전마를 몰아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을 구해 줄 때의 가공할 무력이 가투소를 고분고분하게 만들어 놓았다. 왕전이 전방을 응시하며 짤막하게 말했다.

“전투 대형!”

“옛?”

“적의 기병이다.”

가투소는 왕전의 시선을 쫓아 후방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투소를 보며 모두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에 보일 리 만무했다. 비웃음을 담은 눈초리가 왕전이 뒤통수에 일제히 쏟아졌다.

“누군가 쫓기고 있는 모양이군.”

조윤이 중얼거렸다.

가투소는 여전히 영문을 몰라 눈을 멀뚱거렸다. 무슨 말들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가투소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자신들이 이동해 온 후방에 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다. 점점 그 크기를 달리하는 먼지구름의 크기로 보아 상당한 병력으로 보였다.

“적입니까?”

“적이라고 했잖아.”

여전히 가투소의 눈에는 적아가 구분되지 않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는 왕전 등을 믿었다. 아니, 그들의 능력을 믿었다. 가투소가 전마를 몰아 기사들에게로 달려가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기사들이 말 머리를 뒤로 돌리며 횡렬로 늘어섰다.

‘저 엄청난 거리를 다 본단 말인가?’

왕전 등을 바라보는 가투소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 * *

‘찾았어!’

아리안은 전방에 자신이 찾던 존재들이 서 있음을 보고는 질주에 박차를 가했다.

뒤를 쫓는 요란 제국의 기마병들은 케논 산맥의 강변에서부터 쫓아오는 자들이었다. 자신의 갑주에 새겨진 문양이 케이론 제국의 황실기사단의 것임을 알아본 것이다.

문양은 죽은 그녀의 양부가 전직 황실기사단의 기사였기 때문에 새겨 넣은 것이다.

황실기사단의 기사들은 대대로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모든 자손들은 문양을 넣을 권리를 갖게 된다.

그녀도 그 이유 때문에 갑주에 문양을 새겨 넣은 것이다.

쐐액!

따다당!

강전들이 그녀의 갑주에 닿았지만 마법방어막이 쳐진 갑주는 끄떡도 안 했다. 아리안은 내심 갈등했다. 눈앞에 자신이 그토록 찾았던 인물들이 있었다.

아르소를 포기하면서까지 만나 봐야 할 그들이다.

하지만 이대로 달려가면 요란 제국의 기사들과 저들이 부딪치게 된다.

싸움을 붙이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방향을 틀자니 다시는 저들을 만나지 못할 거란 불안감이 생겨났다.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좀처럼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였다.

전방에 섰던 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리안의 커다란 눈망울이 반짝 빛을 발했다.

‘이쪽으로 온다! 싸우려는 걸까?’

움직이는 자들은 고작 여섯에 불과했다. 뒤쪽에 늘어선 기사들은 무기를 뽑아 든 채, 움직이지 않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설마 저들만으로……!’

아리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는 사이에 여섯은 아리안의 옆을 지나갔다. 극히 짧은 순간에 아리안은 누군가의 시선과 부딪혔다.

‘뭐지?’

아리안은 가슴이 쿵쾅거림을 느꼈다.

형용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전율처럼 솟아올랐다. 아리안은 황급히 전마의 고삐를 당겨 방향을 뒤쪽으로 돌렸다.

동시에 요란한 소음이 울렸다.

콰지지직!

그녀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전마와 사람이 동시에 사방으로 솟구치며 피를 뿌렸다. 자신을 스치고 지나갔던 여섯이 요란 제국의 기마병들을 그대로 밀고 지나갔다.

전마끼리 부딪혔다면 쓰러져야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들은 기마병들을 좌우로 가르며 지나갔다.

“우……!”

그 엄청난 광경에 가투소의 기사들은 입을 벌렸다. 이미 그들의 신위를 한 번 보았던 그들이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거리가 제법 가까웠던 까닭에 그들의 시력으로도 모든 광경이 생생하게 보였다.

* * *

아리안의 눈빛이 변했다. 이미 그녀의 손에는 그레이트 소드가 쥐어져 있었다.

함께 싸우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대장! 우리도 도와야지 않을까요?”

“그래요! 놈들을 쓸어버립시다!”

기사들이 흥분으로 불끈거렸다.

기사들의 몸짓이 예사롭지가 않자 가투소는 결단을 내렸다.

물론 끼어들지 말라는 담대소천의 말을 어기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눈앞에 자신들의 동료를 무참히 쓸어버린 적을 놔두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좋다!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준다! 전원, 돌격!”

가투소의 명이 떨어지자 기사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돌진을 시작했다. 담대소천이 그들을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끄응! 나도 싸울래. 저놈들, 나쁜 놈들이야.”

카루가만큼은 혁련천후가 놔주지 않았다.

“넌 앞으로 내가 허락할 때만 싸워라.”

“저놈들, 나쁜 놈들인데…….”

몸을 움찔거리는 카루가의 어깨엔 혁련천후의 손이 올려 있었다. 그저 얹고만 있었음에도 카루가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전장을 지켜보는 혁련천후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아들, 혁련소를 죽음의 지경까지 몰고 갔던 요란 제국이다.

당연히 보이는 족족 모조리 죽여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아들 때문에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살기가 들끓고 있었다.

중원에서도 먼저 덤벼온 적은 결코 살려 둔 적이 없었다.

담대소천이 그런 혁련천후를 슬쩍 돌아보았다.

내면과는 달리 눈빛은 여전히 무심했기에 그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참고 계신 건가?’

* * *

쾅!

“그게 지금 말이라고 내게 전하는 것인가! 베린스!”

케이시 공작의 분노는 대단했다.

베린스 공작은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린 채, 참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같은 공작이지만 케이시 공작은 곧 대공의 위치에 오를 신분이다.

대공은 일국의 왕에 버금가는 막강한 자리, 당연히 베린스 공작은 그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율튼 공은 어디 있는가?”

부관 하나가 급히 대답했다.

“마법 병단의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계십니다.”

“당장 내게 오라고 전해라!”

부관이 빠르게 막사를 빠져나가자 케이시 공작은 거푸 술잔을 들었다. 베린스 공작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요즘 그는 연이어 케이시 공작에게 질책을 들어 기분이 엉망이었다.

연이어 터진 막대한 피해로 인해 그에 대한 케이시 공작의 신임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분을 삭인 케이시 공작이 그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1군단의 제2여단장으로 임명된 게 몇 년이 지났는가?”

“오 개월이 지나면 사 년이 됩니다.”

“사 년이라…….”

케이시 공작이 깍지를 끼고 눈을 내리깔았다.

베린스 공작은 케이시 공작의 태도에 내심 불안했다. 불안은 현실로 이어졌다.

“동부 전선의 제7기동여단을 자네가 맡아 줘야겠네.”

“예?”

베린스 공작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냉소를 지우지 않은 케이시 공작은 다시 술잔을 입으러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제7기동여단은 케이론 제국 최고의 밀 생산지라는 아르소와 인접한 곳이자 적의 기습을 막아 내야 하는 주요거점이지 않은가. 자네가 그곳을 맡아 주게. 꽤 중요한 곳이니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걸세.”

“……!”

베린스 공작은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삭이며 눈을 감았다.

말이 중요한 거점이지, 그곳은 제국의 모든 이들이 가장 꺼리는 한직 중의 한직이었다.

불명예 퇴직의 필수 코스가 바로 그곳인 것이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그때 율튼이 들어섰다.

케이시 공작은 베린스 공작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시선을 거두었다. 참담한 심정의 베린스 공작은 고개를 숙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막사를 나섰다.

“빌어먹을!”

저절로 욕설이 쏟아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출세일로를 걸었던 자신이다.

하지만 단 두 번의 패배가 자신을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하나는 엄밀히 따진다면 대마법사 율튼이 지휘했던 작전이지만 자신에게 몽땅 뒤집어씌웠다.

율튼 대마법사는 케이시 공작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지만 그것을 뱉어 내지는 못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사령 막사를 노려보고는 자신의 막사로 사라졌다.

* * *

레이나 공주는 자신의 방에서 며칠째 움직이지 않았다.

양 제국의 최정예라는 1군단 간의 전투에서의 처참한 패배는 케이론의 황실을 암울한 분위기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 갔다. 그리고 여전히 2만에 달하는 병력들이 생사도 모른 채, 그곳을 떠돌고 있음을 생각하자 그녀는 눈물마저 머금었다.

그녀도 쉐인 대마법사의 도움으로 사로잡힐 위기를 모면하고 간신히 황궁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분해!”

눈물을 머금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지금 테세우드 공작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쉐인의 텔레포트를 이용해 황궁으로 돌아온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의 권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누구도 그에게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했다. 황제인 자신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작위를 박탈당했을 정도의 큰 패배였지만 테세우드 공작은 조금의 미안함조차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그 많은 신료들 중, 단 한 명도 그런 부분을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녀를 더욱 분하게 만들었다.

“무능한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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