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
<귀환무사 289화>
귀환무사 2부
64화
“텔레포트 때문입니다.”
“텔레포트?”
그때 혁련천후의 눈에 처음으로 호기심이 어렸다. 언제나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그의 눈동자가 가투소에게로 돌아갔다. 텔레포트는 그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자세히 말해 봐.”
잠시 호흡을 고른 가투소가 말을 이어 갔다.
“텔레포트를 운용할 수 있는 마법사들은 대륙 전체에 오직 셋뿐이라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요란 제국의 율튼 대마법사입니다. 공작께서는 그가 전장에 있음을 보시고 다소 자만하신 듯 보입니다.”
“알아듣기 쉽게 말해!”
왕전이 짜증을 내자 대번에 얼굴이 굳어진 가투소의 입놀림이 빨라졌다.
“텔레포트가 아니면 요란 제국의 국경 주둔군에서 케논 산맥까지 지원 병력이 오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적의 마법 병단을 깡그리 쓸어버리는 것을 목격하신 각하께서는 충분히 적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판단하신 모양입니다. 아군의 마법 병단을 믿으셨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텔레포트를 이용해 엄청난 마법 병단을 보내왔습니다. 저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말입니다. 5서클에 근접한 자들만 열에 가깝게 보였으니…….”
“그러니까, 마법 병단에서 밀리는 바람에 졌다, 그 말이냐?”
“비슷한 전력에서 마법 병단이 더 강한 쪽이 승리할 확률은 거의 백 퍼센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모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드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마법사가 하나가 아니었다니…….”
“확실합니다.”
가투소가 힘주어 말했다.
듣고만 있던 진천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텔레포트를 운용할 수 있다는 놈들이 전에는 없었나? 그 정도로 대단한 놈들이라면 꽤 오래 살 텐데 말이야. 늙은 노물이라도 하나쯤은 더 있지 않을까?”
황제와 거의 동급으로 존중받는 대마법사를 놈이라 칭한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가투소는 물을 마시고는 이내 대답했다.
“오십 년 전쯤에 한 분이 계시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실종되셨습니다.”
“실종?”
듣고 있던 우드가 대신 대답했다.
“새로운 마법을 창안하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성공해서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소문일 뿐입니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마법을 연구했단 말이냐? 텔레포트와 다른 것인가?”
“텔레포트는 동 시간대의 공간으로만 이동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소문의 그 마법은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면 그곳으로 이동이 가능한, 그런 마법으로 보시면…….”
혁련천후를 비롯한 모두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혁련소를 이곳으로 데려온 자를 모두는 동시에 떠올렸다.
“그자가 살던 곳이 어디지?”
“홀베른 공국입니다. 테세우드 공작의 권역과 근접한 곳입니다.”
조윤이 눈빛을 발하며 전음을 보냈다.
[처음 떨어졌던 그곳입니다.]
그랬다.
자신들이 떨어졌던 곳이 테세우드 공작의 권역 근처라고 했었다. 혁련천후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자와 지금의 대마법사들과 비교하면 어때? 누가 더 강한 거냐?”
진천의 물음에 우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그게 비교하기가 좀…….”
“홀베른은 어떤 곳이지?”
이번엔 조윤이 물었다.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우드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정성껏 늘어놓았다.
보다 못한 써튼이 우드를 도왔지만 날이 꼬박 새고 나서야 둘은 새우잠을 잘 수 있었다.
* * *
땡 땡 땡!
소집을 알리는 종소리가 케이론 제국의 수도방위사령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짧은 시간에 연병장에는 수천의 기사들이 대열을 이루고 사령관 케시우스 후작을 기다렸다.
정자세로 꼿꼿이 고개를 들고 전방을 응시하는 기사들의 표정은 꽤 경직되어 있었다. 세 번의 종소리는 출전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열의 선두에 선 부사령관 데포 백작의 입에서 우렁찬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군! 차렷!”
처척!
전신을 붉은색 갑주로 두른 인물이 건물의 중앙 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니콘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든 기사들이 인물의 좌우를 호위하며 함께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사령관 케시우스 후작이었다.
“사령관님께 경례!”
“충!”
연병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손을 들어 화답한 케시우스 후작은 연단에 오르기가 무섭게 확성 마법을 통해 명령을 전달했다.
성정이 급하기로 유명한 그답게 목소리는 우렁차면서도 힘이 넘쳤다.
“오늘 우리는 1군단의 병사들을 구하러 케논 산맥으로 출진할 것이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우리의 임무는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케논 산맥을 떠도는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다! 최후의 일인까지 반드시 구출한다! 알겠느냐!”
“충!”
기사들이 단호한 결의를 담은 표정으로 우렁차게 대답하자 케시우스 후작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라 떠오른다. 그는 데포 백작에게 시선을 던졌다.
“데포 백작!”
“예! 사령관님!”
“마법 병단은 모든 준비를 마쳤겠지?”
“사령관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다! 출진한다!”
기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관들이 끌고 온 전마에 몸을 실은 케시우스 후작이 가장 먼저 연병장의 정문으로 이동하자 모든 부대들이 빠르게 연병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웃기는 놈들이군.”
그들이 빠져나가는 광경을 보며 차갑게 미소 짓는 인물이 사령부 건물의 옥상에 있었다.
화려한 황금색 갑주에 어깨까지 내려온 금발이 인상적인 그 인물은 케시우스 후작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후후! 어리석은…… 지금 간다고 그들을 구할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지. 가는 동안에 패잔병들은 모조리 죽어 있거나 뿔뿔이 흩어져 제국의 곳곳을 떠돌아다니겠지. 그렇지 않나, 맥마흔!”
“글쎄…… 꼭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지. 혹, 케논 산맥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적과 싸우며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들도 있지 않을까?”
뒤쪽에서 다소 염세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금발 청년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다시 말했다.
“적은 케이시 공작이다. 그자는 절대 케이론의 기사들을 용납하지 않을 거야.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죽이려고 들 작자가 케이시 공작이지. 어쩌면 지금쯤 그곳은 전투에서 떨어져 나간 패잔병들을 사냥하기 위한 피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 거야. 놈은 언제나 그런 걸 즐겼지.”
맥마흔이라 불린 청년이 금발 청년의 옆으로 다가와 이젠 먼지로밖에 보이지 않는 케시우스 후작의 부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만이 죽고 삼만이 후방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나머지 이만이 떠돈다는 소린데…… 방관하기엔 너무 많은 숫자야. 당연히 구하러 가는 것이 옳다, 루안!”
“후후! 맥마흔, 넌 언제쯤 그 유약함에서 벗어날래? 케논 산맥은 이미 요란 제국의 점령지로 변했다. 어쩌면 지금쯤 요란 제국의 1군단 외에도 특수 여단들도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지. 그런데,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그 이만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기사들을 보낸다? 후후후! 더 많은 희생만 늘 뿐이야.”
맥마흔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폐하의 명이시다! 더 이상 그 문제를 가지고 너와 설전을 벌이고 싶지 않다!”
“하하! 그렇지. 지엄하신 황명이었지, 하하하!”
금발 청년, 루안은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었다.
맥마흔의 눈가에 지독한 짜증이 묻어났다. 그는 사나운 눈으로 루안을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돌아가 버렸다.
한참을 웃던 루안이 웃음을 멈추고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리석은 황제여,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녀 때문에 난 당신을 외면할 수 없어. 어리석게도, 이 좁은 가슴은 이미 그녀의 영상으로만 채워졌거든. 그래서 나 루안은 결정했지. 내가 직접 케논 산맥으로 가겠다고, 가서 죽음의 능선을 헤매는 기사들을 구해 주겠어. 물론 어리석은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지…….”
루안의 금발이 바람에 날리자 견갑 부근에 새겨진 작은 문양이 드러났다.
붉은색 동체를 지닌 드래곤의 형상이었다.
* * *
“이잉…….”
카루가는 자면서 이상한 소리를 계속해서 해 댔다. 몸을 뒤척이면서 손을 휘젓기도 하고 다리를 올리기도 했다.
“야! 인마!”
왕전이 카루가의 머리를 툭 때렸다. 카루가가 눈을 떴다. 용수철처럼 일어선 그는 고개가 부러져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얼굴이 두려움으로 가득한 것을 본 왕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꿈꿨냐?”
“꿈이었구나, 헤헤!”
카루가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깊은 바보처럼 웃었다.
“무슨 꿈인데?”
“그냥…….”
표정이 밝아진 카루가는 저만치에 앉아 있는 혁련천후에게로 폴짝거리며 뛰어갔다. 혁련소를 마계로 소환시킨 이후로 그가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저씨! 뭐 해?”
“무슨 꿈을 꾸었느냐?”
“음! 아저씨 아들 꿈!”
혁련천후의 눈에 아련함이 슬쩍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다시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린 그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꿈속에서 뭐라고 하더냐?”
“그냥, 서로 약속했어. 형은 꼭 살겠다고 했고 난 반드시 살려 주겠다고 했어.”
“그랬구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물어봐.”
카루가는 혁련천후의 옆에 바짝 붙어 앉으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형을 소환시킬 때, 아저씨 내면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어. 사실대로 말해 줘. 아저씨, 혹시 마계에서 온 거 아니야?”
혁련천후가 시선을 카루가에게 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너무 강해서…….”
“내가 강하게 보이느냐?”
“놈의 마법 공격을 막아 냈잖아. 사실 그때 그 공격은 마계의 전왕이라는 발록이라도 쉽게 막아 낼 수 없었던 거란 말이야.”
말을 하는 카루가가 몸을 떨었다.
놈이란 바로 대마법사 율튼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를 떠올리자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 때문에 마계에서 온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군?”
“아니! 아저씨와 저 아저씨들 몸에선 마기가 느껴져. 이 세상이 마스터라고 부르는 자들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야. 마기는 인간이 지닐 수 없는 것이거든.”
순간 혁련천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자신들이 마기를 지녔을 리 없었다. 마공이나 사공이 아닌 정통 무공을 익힌 자신들이다.
하지만 카루가는 마기로 보고 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군.’
그랬다.
이 세상에 넘어오면서부터 자신은 평정심을 다소 잃어버렸었다. 아들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리라. 항상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만 있었던 스스로를 그는 자책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내가 살던 곳을 구경시켜 주마.”
“에이! 마계는 볼 것도 없는데.”
“후후! 내가 마계에서 왔다면 네가 모를 리가 없잖아.”
“마계는 무척 넓어. 왕인 아버지도 누가 누군지 다 모를 정도로 말이야. 지금껏 인간 세상에 강림했던 자들보다 훨씬 강한 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마계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