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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88화 (286/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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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288화>

귀환무사 2부

63화

“적이다! 요란 제국의 기병이다!”

막 휴식을 취하려던 기사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전마에 몸을 실었다. 일어나는 먼지의 크기로 보아 적, 기병의 수가 아군보다 훨씬 많아 보이자 기사들이 동요를 일으켰다.

가투소는 재빨리 주변 지형을 살폈다.

“빌어먹을!”

거친 욕설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싸워 보고자 했지만 탁 트인 평원에 뒤는 제법 깊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오직 백병전뿐이다.

요란 제국의 기마병들을 주시하던 기사들의 얼굴이 동요를 넘어 절망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적 기병의 선두에 로브를 걸친 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마법사는커녕 마법의 마 자를 익힌 자조차 없었다. 마법사들이 있다면 백병전도 무의미해진다. 마법사들이 펼쳐 댈 장거리 공격을 막아 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젠장! 마법사도 끼었어.”

“대장! 궁병도 보입니다.”

모두가 가투소를 간절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가투소도 뾰족한 대응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마법사들이 끼였다면 궁병들도 함께 왔을 것이 분명했다. 화살에 마법을 실어 적을 살상하는 공격 방법은 요란 제국의 주공격 방식이다.

기병만이 있는 그들로선 장거리 화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가투소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삶의 불꽃을 태워 적과 싸우다 죽기로 작정한 것이다. 흐려졌던 그의 눈동자에 강렬함이 나타났다.

“적을 죽여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 두려워 말고 용감하게 돌진하라!”

“돌진하라!”

가투소는 목청껏 소리쳤다.

용맹을 잃지 않은 몇몇이 부대를 돌며 기사들에게 용맹하게 싸울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미 떨어진 사기는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본 가투소의 눈동자에 섬광이 맺혔다.

“개죽음을 당하겠느냐! 아니면 비굴하게 도망치다가 잡혀 죽겠느냐! 싸우다 죽자! 그래야 죽어서도 가족들에게 떳떳하지 않겠는가! 움직여라! 검을 들어라! 그리고 돌진하라!”

가투소의 입을 통해 붉은 선혈이 튀었다.

“대장…….”

“젠장! 그래, 까짓것 죽으면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개새끼들! 한 놈은 목을 따고 가야 덜 억울하겠다!”

“그래, 같이 죽자!”

곳곳에서 가투소에게 반응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점점 번지기 시작한 그것은 이내 전체를 뜨거운 기운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던 기사들이 앞다투어 대열의 앞쪽으로 전마를 몰았다.

“젠장! 대장은 죽지 마십시오. 누군가는 살아서 우리가 어떻게 죽었는지 제국에 전해야 합니다. 대장이 그래 주셨으면 합니다. 어서 가십시오!”

“그렇습니다! 여긴 우리가 맡겠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제임스! 톰슨! 입 다물어라!”

가투소의 격한 반응에도 기사들은 그에게 자리를 벗어날 것을 거듭 전해 온다. 가투소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가 검을 하늘로 치켜세우며 돌격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쾅!

화염이 요란 제국의 기마병들을 덮쳤다. 수십 기가 그대로 꼬꾸라지며 뒤따르던 전마들의 발길에 무참히 밟히고 있었다.

가투소를 비롯한 모든 기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지원군, 지원군이다!”

“설마…….”

“이런 오지에 아군이 있을 리 없잖아. 1군단 소속의 기사들인가?”

기사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연이어 화염이 떨어지며 요란 제국의 기마병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때 요란 제국 기마병들의 상공에 시커먼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타나기가 무섭게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과광!

“으악!”

순식간에 피안개가 생겨났다.

가장 먼저 마법사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리고 전마와 기사들의 육신이 통째로 썰어지는 가공할 광경이 펼쳐졌다. 지켜보던 케이론 제국의 기사들은 넋을 놓고 입을 벌렸다.

제4장 아리안을 만나다

“개새끼들! 잘 걸렸다!”

“모조리 죽여!”

북궁천소와 왕전은 누구보다 잔혹한 살수를 펼쳐 냈다.

대도에 걸려드는 자들의 육신이 종이처럼 잘려 날아갔다.

어지간해선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 진천과 사공진무도 지금은 잔혹한 살기를 품고서 요란 제국의 기사들 사이를 누볐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했던 요란 제국의 기사들은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며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들이 하늘처럼 여기는 초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존재들, 반격은 그저 무의미한 손짓에 불과했다.

쾅!

엄청난 열기를 동반한 화염이 기사들의 육신을 불덩이로 만들었다.

오러 블레이드라 불리는 강자들의 전유물이 사방에서 난무하며 기사들의 육신을 종이처럼 찢어발겼다.

서걱!

“으악!”

처참한 비명이 산천초목을 울렸다.

“방향을 틀어라! 퇴각한다!”

요란 제국 제1군단 105여단의 돌격 부대장 케릴 자작은 느닷없이 나타난 존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수하들을 바라보며 참담한 심정으로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상대는 퇴각을 허락하지 않았다.

도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일방적인 살육전은 마지막 생존자였던 케릴 자작의 목이 잘림으로써 그 끝을 보았다.

피 냄새가 평원을 덮었다.

참혹한 살육의 현장은 이내 침묵과도 같은 정적으로 휩싸였다. 지켜보던 케이론 제국의 기사들은 넋 나간 모습으로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우욱!”

숲속에서 혁련천후와 담대소천, 그리고 써튼과 우드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오던 써튼은 그 참혹한 광경에 허리를 구부리고 구토를 했다.

우드는 차마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 외면했다.

카루가는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두두두!

북궁천소는 전마 한 기가 빠르게 달려오자 북궁천소가 대도를 겨누며 달려 나갈 자세를 취했다. 써튼이 황급히 그를 막아섰다. 써튼은 달려오는 자가 가투소임을 알아보았다.

“써튼 남작 아니십니까?”

“오랜만이네, 가투소 대장!”

가투소는 전마에서 뛰어내리며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그는 북궁천소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써튼을 보며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보다시피 적을 모조리 때려잡았지 않은가?”

입가에 묻은 오물을 재빨리 닦아 낸 써튼이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런 써튼을 가투소는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신분을 감춘 상위 귀족이셨군.’

힘과 세력으로 결정되는 게 귀족들의 서열이다. 이토록 놀랄 정도의 강자들을 기사로 부리는 써튼이라면 최소한 공작이라고 그는 여겼다.

‘응! 뭐야?’

확신을 다져 가던 가투소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써튼이 전혀 의외의 인물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투소도 아는 인물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왜 남작께서 고작 기사에게 저런 태도를…….’

써튼이 공경을 보인 인물은 혁련천후였다.

여단의 주둔지에서 보았던 그는 분명 써튼의 기사라고 했었다. 머릿속이 혼란해진 가투소의 어깨를 누군가 건드렸다.

“좀, 비켜 줄래?”

가투소가 고개를 돌렸다.

무지막지한 인상의 북궁천소가 가투소의 눈, 한가득 들어왔다. 가투소는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비켜섰다. 그를 슬쩍 쳐다본 북궁천소가 써튼에게 소리쳤다.

“이봐! 뭐 해! 이 새끼들의 검을 거두라니까!”

“하하! 예!”

그도 분명 써튼의 기사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가투소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허리를 건드리자 가투소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손가락을 펴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귀여운 소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카루가였다.

가투소의 아래위를 쓸어 본 카루가가 대뜸 물었다.

“너, 뭐야?”

“……뭐?”

“너 뭐냐고?”

그 내면에 감추어진 무서움을 모르는 가투소가 인상을 그렸다. 표정은 당장에 한 대 쥐어박을 기세였다.

카루가가 묘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어! 인상 쓰네? 얘가 인상 써요!”

가투소는 황급히 카루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때였다.

찌르르…….

“윽!”

전신에 전류가 흐르며 온몸에 힘이 빠져나감을 느낀 가투소는 광속으로 손을 뗐다.

자신의 손과 카루가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을 부릅뜬 가투소를 다른 이들이 웃으며 쳐다본다.

“퉤! 퉤! 아씨! 더럽게!”

“꼬맹이, 그만 까불고 저기 저것들 모조리 집어넣어.”

“끙! 알았어요.”

가투소를 요상한 눈빛으로 제대로 째려본 카루가는 산더미처럼 쌓인 검들에게로 걸어갔다. 카루가의 손에 시커먼 천으로 된 주머니가 나타났다. 사과 몇 개만 들어가도 모자랄 정도로 작은 그것을 들고 카루가의 주문이 시작되었다.

짤막한 주문이 끝나자 카루가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헤헤! 이제 담아요!”

“정말 그 안에 다 들어간단 말이지?”

“그럼요.”

“너, 이 새끼! 만약 거짓말이면 통째로 기름을 발라 구워 버린다.”

북궁천소와 왕전 등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머니를 쳐다보며 집어넣을 생각을 못했다. 검을 하나 집어 든 우드가 웃으며 시범을 보였다.

“어! 정말이네?”

“오호! 이거 정말 놀랄 노 자군.”

진정 신기했다.

그 큰 검이 작은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갔다. 당연히 주머니가 찢어져야 정상이지만, 찢어지기는 고사하고 검이 들어간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카루가의 자랑이 이어졌다.

“헤헤! 내 인벤은 무지 크다니까, 아마 드래곤도 가뿐하게 들어갈걸? 헤헤헤!”

모두는 해죽 웃는 카루가를 멍하니 응시했다.

* * *

“초인이라는 테세우드 공작과 대마법사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패했단 말인가?”

“상대도 케이시 공작과 대마법사가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마법 병단의 위력에서 적이 훨씬 강력했습니다. 패인은 그것이죠.”

툭! 툭!

모닥불이 불꽃을 튕겨 내며 활활 타오른다.

주변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모두는 가투소에게 양국의 1군단 간의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앉은 뒤쪽의 넓은 풀밭에는 오백에 달하는 기사들이 곳곳에 거대한 불을 피워 놓고 커다란 짐승을 굽고 있었는데, 모두의 얼굴에 모처럼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은 전쟁도, 패전에 따른 아픔도 모두 잊어버렸다.

우드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법으로 불의 강도를 조절하기 바쁜 모습이고, 카루가는 혁련천후의 등에다 머리를 대고는 코를 골고 있었다.

담대소천이 물었다.

“어리석은 지휘관이군. 적의 힘을 가늠해 보지도 않고서 무작정 전면전을 벌였다니, 그대가 말한 그 공작이라는 자가 이 나라에서 최고의 무장이라고 들었는데, 고작 그 정도였단 말인가?”

반말임에도 가투소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써튼에게서 모든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혁련천후를 다크 영지의 영주라고 소개한 써튼이었다. 물론 담대소천을 비롯한 모두가 작위를 지닌 기사들이라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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