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
<귀환무사 287화>
귀환무사 2부
62화
* * *
쾅!
격하게 열린 문이 너덜거렸다.
침묵 같은 정적 속에서 모여 앉았던 모두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상기된 표정으로 실내로 들어온 카루가는 침상을 응시했다.
죽은 듯 누워 있는 혁련소와 전신을 천으로 동여매고 침상 옆에 앉아 있는 흑야가 보였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몸이 떨려 오는 존재들이 침상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었다.
“고칠 수 있어요!”
카루가가 소리쳤다.
모두의 고개가 급격하게 돌아갔다.
“그게 무슨 소리냐?”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만…….”
우드가 들어서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섬광이 돌았다.
“그게 무엇이냐?”
우드는 조심스럽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모두는 숨을 죽이고 우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의 암울했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혁련천후의 차가웠던 눈동자는 뜨거운 열기마저 내뿜었다.
우드의 말은 십 분 동안 이어졌다.
실내가 뜨거운 기운으로 요동쳤다. 꼼짝없이 죽을 줄로만 알았던 혁련소다.
천하제일의 의술을 지녔다는 사공진무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혁련소의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그를 살려 낼 수 있단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두는 혁련천후만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혁련천후의 시선이 카루가를 향했다.
“부탁한다.”
“응! 알았어!”
인간 세상의 예의범절을 잘 모르는 카루가가 반말로 대답했다. 평소였으면 주먹이 날아들었을 테지만 모두는 들뜬 눈빛으로 카루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저씨가 저 형의 아버지야?”
어린아이처럼 물어 오는 카루가에게 혁력천후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카루가의 얼굴에 천진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헤헤! 닮았다. 조금 무섭긴 하지만…….”
“시작해.”
“알았어.”
* * *
“그러니까, 소가 돌아올 때까지 주공께선 절대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왕전의 물음에 우드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한 모두는 우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우드는 식은땀이 등골을 적셨다.
“요상한 치료 방법도 다 있군. 그 방법 말고는 없는 거냐?”
“그렇습니다.”
우드의 대답은 여전히 간단했다.
이들과 대화하면 자신도 모르게 단답형으로 변한다. 여전히 두렵기 때문이다. 그의 속내를 알고 있는 써튼은 슬쩍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젠장! 돌아올 때까지 그 새끼들을 작살내려고 했더니…… 빌어먹을!”
북궁천소가 으르렁거리자 웃던 써튼의 얼굴도 돌처럼 굳어진다.
“소가 회복돼서 돌아오기만 한다면 복수는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 그나저나 놀랍군. 저 어린놈이 오백 년이나 살았다니…….”
“인간 세상으로 치면 열 살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제대로 완성된 힘이 아닐 텐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마계의 왕자는 전 차원을 통틀어 최상위에 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우드의 확신에 찬 어조에 모두는 다소 마음을 놓았다.
그때였다.
주변이 갑작스럽게 어두워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사위를 덮으며 주변 공간이 은은한 진동을 보였다.
“지독한 마기군.”
침묵을 지키던 조윤이 창을 잡으며 일어섰다. 중원의 마두들에게서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강력한 마기가 모두를 긴장시켰다. 주변 공간의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기는 점점 강력하게 커져만 갔다.
“지독하군.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마기를 뿌려 대는 거지?”
“신경 쓸 거 없다. 적이라면 죽이면 그뿐이지.”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써튼은 이미 얼굴이 노랗게 떠 있었다.
그가 감당할 마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우드는 전혀 힘든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우드가 소리쳤다.
“성공하셨습니다!”
“뭐?”
모두가 그를 돌아봤다.
“하하! 마계의 문이 열리는 현상입니다. 역시 마계의 왕자다우시군요! 이토록 빠른 시간에 차원의 문을 열다니…….”
우드의 얼굴엔 기쁨과 경탄이 어우러져 있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궁극의 경지가 눈앞에서 발현되자 오래전, 마법에 입문했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 성공한 것이냐?”
왕전이 재차 물었다.
“그렇습니다. 일단 그분께서 마계로 소환되어 가신 것은 분명합니다.”
모두가 조금은 들뜬 표정으로 지독한 마기로 일렁이는 집을 응시했다.
누구보다 흑야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혁련소가 저렇게 된 것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 여기고 있었던 그는 모처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 * *
날이 밝았다.
다소 지친 기색이 역력한 혁련천후가 카루가를 품에 안고 나왔다. 잠이 덜 깬 것인지, 아니면 혁련소를 소환시키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힘을 사용한 탓인지 카루가는 품 안에서 잠이 든 상태였다.
우드가 카루가를 건네받아 자신의 전마에 태웠다.
혁련천후도 전마에 몸을 싣고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수하들과 함께 혁련소가 지냈다는 다크 영지로 가려는 참이었다.
그곳에서 혁련소가 돌아올 때까지 지낼 생각이었다.
아들을 그 지경으로 만든 자들에 대한 복수는 잠시 미루어야만 했다. 자신이 사람을 죽이면 아들이 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하나의 제약이 더 있었다.
자신과 카루가만이 아는 비밀이다.
수하들에게 자세한 것을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자신만 알고 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담대소천이 묵직한 어조로 물었다.
“그곳에서 소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십니까?”
“그래야겠지.”
“소를 그렇게 만든 놈은 죽여야지 않겠습니까? 흑야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됐어! 놈은 소가 돌아오면 소에게 맡긴다. 그때까지 우린 할 일이 있다.”
담대소천이 다시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중원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지.”
그 말에 담대소천은 입을 닫았다. 혁련소를 살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그것이다.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전마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 * *
케논 산맥을 휘감아 흐르는 강변에 수백에 달하는 기마병들이 어디론가 이동을 하고 있었다.
갑주를 걸치고 거대한 깃발을 든 그들은 모두가 케이론 제국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용맹스러움을 발산해야 할 그들이었지만 보기에도 그들은 패잔병을 연상시키는 초라한 몰골들을 하고 있었다.
전마들이 더위에 못 이겨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방어막이 쳐진 전마 전용 마갑을 걸치고도 고작 날씨 때문에 쓰러지는 전마는 없다. 그렇다면 이미 부상을 입었거나 마갑의 방어막을 넘어서는 공격을 당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푸르륵!
거품을 게워 내며 죽어 가는 전마를 바라보며 기사들은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붉은 바탕에 황금색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깃발도 곳곳이 찢어지고 불에 그을려 있었다. 기사단이 이동하면 당연히 보여야 할 마법사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선두에서 이동하던 기사가 갑자기 전마의 고삐를 당겼다.
강인한 용모의 그는 이글스 여단의 돌격대장 가투소였다. 그에게도 패전의 암울한 기운만이 드리워져 있었다.
“힘을 내라! 조금만 더 가면 아르소가 나온다. 그곳에서 전열을 재정비하여 군단으로 복귀할 것이다!”
투박한 수염에 각진 얼굴의 강인한 용모를 지녔지만 흐려진 눈동자로 보아 그도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도 상당히 지친 듯 보였다.
하지만 자세만큼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힘들어도 내색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리를 이끄는 수장들의 숙명이다.
“사냥이라도 해서 배를 채우고 이동합시다! 이러다가 모두 아르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어 버리겠소.”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맞소! 적의 추격 부대가 이곳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배고픔부터 해결합시다!”
“옳소!”
곳곳에서 거친 소리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착잡한 표정으로 기사들을 바라보던 가투소에게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대장! 일단 기사들의 말대로 사냥이라도 해서 배를 채우고 보는 게 좋겠습니다. 모두가 며칠 동안 물만 마시며 이동했지 않습니까? 이러다간 아르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모조리 탈진해서 쓰러지겠습니다.”
“놈들의 마법 병단이 언제 들이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배를 채운다면 싸울 힘이라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부관의 얼굴에서 간절함을 본 가투소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는 주변 숲을 둘러보았다. 울창한 숲이라 사냥을 하면 배를 채울 정도의 짐승들을 잡는 것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좋다! 각 부대에서 몇 명씩 숲으로 가서 사냥을 하고 나머지는 불을 피우고 조를 이루어 혹시 모를 적의 출현에 대비해라!”
“우아!”
기사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평소라면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갔을 그들이다.
하지만 패잔병의 위치에선 신분의 고하도, 능력의 고하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장의 배고픔에 그들은 명예 따위는 지나가는 개에게 던져 줄 수도 있을 정도로 극한의 상황까지 이르러 있었다.
숲으로 사냥을 하러 가는 기사들이 전쟁터에서의 몸놀림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손에 석궁과 강궁을 든 그들이 숲으로 사라지자 남은 기사들은 방어 대형으로 진을 갖추고 그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가투소도 자신의 전마에게 남은 물을 먹여 주고는 적당한 곳에 앉아 대지를 등받이로 삼아 하늘을 보며 누웠다.
‘젠장! 이토록 처참한 패배를 당하다니…….’
그랬다.
각각의 나라에서 최고라 자랑하던 1군단 간의 전투에서 케이론 제국이 패배한 것이다. 요란 제국의 지원 부대가 그토록 빨리 올 것을 미처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요란 제국에 대마법사, 율튼을 제외한 다른 자가 텔레포트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니…… 이렇게 되면 힘의 균형은 완전히 깨어졌다고 봐야 한다.’
패배의 원인은 바로 그것이었다.
텔레포트는 대마법사의 전유물이다.
케이론 제국에도 오직 대마법사 쉐인만이 가능한 것이 그것인데 요란 제국엔 율튼 말고도 그것을 운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또 있었다. 그것은 곧 대마법사에 준하는 엄청난 상위 마법사가 요란 제국에 더 있다는 것을 뜻한다.
대마법사 하나가 갖는 전쟁 억제력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당장 가투소 자신의 조국인 케이론 제국도 쉐인이라는 걸출한 마법사를 배출함으로써 왕국에서 제국으로 강성해지지 않았던가.
그런 실력자가 요란 제국에 당대의 대마법사 율튼 말고도 더 있다면 요란 제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극히 미미하다고 봐야 했다.
“훅!”
가투소는 거친 숨결을 한껏 토해 냈다.
“대장! 전방에 요란 제국의 기병대가 나타났습니다!”
“뭣이!”
다급한 목소리에 가투소는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들고서 대열의 앞쪽으로 뛰어갔다.
“적이 확실한가?”
“저 깃발을 보십시오. 적의 1군단기가 확실합니다!”
탁 트인 평지의 끝 부분에서 자욱한 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는데 먼지 사이로 보이는 깃발이 요란 제국의 부대기가 확실했다. 가투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모두 전투 대형으로! 서둘러 전마에 몸을 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