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
<귀환무사 283화>
귀환무사 2부
58화
* * *
“피해야겠습니다! 꺼림칙한 놈이 접근합니다!”
혁련소는 허공을 날아오는 율튼을 보고는 흑야에게 소리쳤다.
흑야도 율튼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언제나 차가움을 유지했던 두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주변이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차단되어 있다. 뚫는 게 쉽지가 않아.”
흑야는 덤벼드는 기사를 베어 버리고는 혁련소의 곁으로 날아왔다.
마법 병단 전체가 그들의 주변을 결계로서 차단하고 있었다. 물론 기사들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였다.
오직 적에게만 적용되는 요란 제국의 마법은 그래서 강력했다.
“저자의 마법 때문에 몇 배의 중력이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또 다른 상위 마법이 펼쳐지면 꽤 힘들겠어.”
흑야는 날아오는 율튼을 노려보며 살기를 드리웠다.
자신들과 싸우는 수천의 기사들보다 그 하나가 더 꺼림칙했다. 카루가의 반응도 한몫했다.
무서움을 몰랐던 카루가가 그를 보자마자 두려운 기색을 보인다.
“저 인간은 대마법사! 피해야 해!”
“대마법사?”
“맞아! 분명 대마법사가 맞아. 저기 주변에 흐르는 마나가 안 보여? 저건 6서클을 넘어가는 자들만이 보일 수 있는 엄청난 힘이란 말이야.”
둘은 다가오는 율튼이 대마법사라는 카루가의 말에 얼굴이 돌처럼 경직되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바로 대마법사들이었다.
물론 일대일이라면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마법사들은 언제나 상위 마법사들을 몰고 다닌다. 게다가 그 주변은 항상 마스터들이 철통같은 방어진을 이루고 있다.
지금도 율튼의 주변은 백색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과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는 기사들 몇이 함께 날아오고 있었다.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저들 모두를 상대로 싸울 순 없는 노릇이었다.
흑야는 순간 고민했다.
‘일단 이 아이만이라도 탈출시켜야 한다!’
결론은 그렇게 내려졌다.
둘이 동시에 탈출하기엔 확률이 낮았다. 보이지 않은 강력한 차단막 때문이다. 그것을 뚫기 위해 둘이 동시에 힘을 소진한다면 다가오는 마법사의 공격에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자신이 방어막을 뚫고 그곳으로 혁련소를 탈출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쾅!
달려드는 기사들에게 강력한 검법을 퍼부은 흑야는 혁련소에게 따라오라는 눈빛을 주고는 높은 지대로 몸을 날렸다. 그곳이 방어막의 가장자리였고, 뚫어만 낸다면 곧장 숲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도주하기가 용이한 장소였다.
물론 혁련소를 위한 선택이었다.
혁련소는 흑야의 속내를 모른 채, 검을 휘두르며 뒤를 쫓았다. 기진맥진한 카루가는 그의 등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화염을 뿜어내며 기사들의 접근을 막아 냈다.
화르륵!
콰아앙!
화염으로 인해 기사들의 속도가 확 더뎌졌다.
“카루가! 꽉 잡아!”
“알았어!”
흑야가 질주하는 공간이 좌우로 벌어졌다.
기사들이 두려움에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길을 내준 덕분이었다.
“공격해라!”
허공에서 율튼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기사들은 주춤거리며 선뜻 달려들지 못했다. 흑야의 오른손에 쥐어진 가늘고 긴 검은 이미 그들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들은 똑똑히 보았었다. 실드가 쳐진 검과 방패, 갑주를 동시에 베어 버리는 그 가공할 장면들을…….
율튼의 얼굴에 초조함이 어렸다.
흑야의 의도를 간파한 것이다. 방어막을 뚫어 내고 숲으로 들어가면 둘의 가공할 능력을 감안했을 때, 자신이라도 찾아내기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의 육신이 빛으로 둘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거대한 창의 형태로 변해 갔다. 율튼은 혁련소의 등에 매달린 카루가를 노렸다.
마계의 기운이 풀풀 느껴지는 그만이라도 무조건 죽여야 했다.
그의 정체를 몰랐지만 저 정도의 기운이라면 마계의 상위 종족이 분명할 것이라 확신했다.
백마법사들의 영원한 숙적이 바로 마계의 종족들이다.
그들과 계약한 흑마법사들로 인해 그 얼마나 많은 백마법사들이 죽어 갔던가.
그들에 대한 살심은 백마법사들의 본능이었다.
“가라!”
대마법사 율튼의 손이 앞으로 쭉 펼쳐졌다.
동시에 공기를 찢어 내는 소음과 함께 마나로 만들어진 창이 엄청난 속도로 카루가를 향해 날아갔다.
짜자자자작!
* * *
혁련천후는 달렸다.
점점 아들의 기운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심장이 뜨겁게 요동쳤다.
바람처럼 질주하는 그의 머릿속은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의 영상으로 가득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넌, 그들과 다른 운명으로 태어났다.’
‘그 운명이 도대체 뭡니까? 왜 아버지의 운명을 제가 이어받아야 합니까? 싫습니다. 천하제일도, 신마성의 성주도 다 싫습니다!’
성을 나가기 전날, 자신에게 소리치던 아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더 이상의 영상도, 아들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것이 기억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주공! 천살강기와 엄청난 마법의 힘이 뒤섞였습니다!”
진천이 뒤를 따르며 소리쳤다.
그도 아들의 기운과 한데 섞인 묘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법사의 기운임은 모르고 있었다. 환술을 지닌 진천이 그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숲을 빠져나오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끊임없이 늘어선 엄청난 수의 군막들, 그리고 평원을 가득 메운 채 풀을 뜯고 있는 수만 마리의 전마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십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어딘가를 보며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고함을 지르는 자, 환호성을 보내는 자. 그리고 안타까움에 탄식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들은 산맥의 능선으로 몸을 향하고 있었는데, 혁련천후도 번득이는 기운들로 난무하는 산의 능선으로 시선을 던졌다.
순간 그의 두 눈이 커졌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볼 수 없는 거리였지만 그의 두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그곳에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흑야가 있었다.
“저곳입니다!”
“소아와 흑야 형님입니다!”
진천과 사공진무의 목소리도 격정으로 인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드디어 찾은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그저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허공을 가득 메우고 날아가는 빛을 두른 화살들, 그리고 거대한 빛의 장창들. 그 모든 것들이 혁련소와 흑야의 육신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스르릉!
혁련천후의 손에 검이 쥐어졌다.
쐐액!
공간을 가르며 수백 발의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놈들의 동료가 나타났다! 공격하라!”
“놈들을 막아서라!”
엄청난 수의 병력들이 좌우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따다다다당!
화살들이 불꽃을 튕기며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그 놀라운 광경에 화살을 날린 병사들이 일순 멍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살기가 맺혔다.
“길을 뚫어라!”
혁련천후의 명이 떨어졌다.
뒤를 따르던 진천과 사공진무의 육신이 급속도로 방향을 선회하며 기사들의 가운데로 떨어졌다.
콰과과광!
폭발이 일어났다.
“으아악!”
“피해라!”
아수라 지옥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혁련천후도 혁련소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직선거리를 달리고자 했던 그의 앞으로 인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혁련천후의 앞을 막아선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곳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는 질주하는 방향을 방해하는 자들은 무조건 죽였다. 천살강기가 일으키는 파괴력은 기사들의 갑주마저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비명도 없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죽은 자들이 남긴 육신만이 대지를 핏물로 적셔 놓을 뿐이었다.
“으…….”
“인간이 아니다.”
그 용맹하다던 요란 제국의 기사들이 두려움에 몸을 뒤로 물렸다.
십만의 대병력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이 생겨났다. 간혹 용기를 내어 덤벼드는 자들이 있었지만 어김없이 목이 날아갔다.
두두두두…….
테세우드 공작의 돌격 부대는 캐논 산맥을 우회하여 적진의 가까운 곳으로 질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멀리서 적진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손을 들어 부대를 세웠다.
대마법사 쉐인이 다가왔다.
“저쪽을 보십시오!”
그는 마법경을 테세우드 공작에게 건네며 산맥의 우측 능선을 가리켰다. 테세우드 공작이 마법경을 눈으로 가져갔다.
아주 먼 곳까지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것은 쉐인이 직접 개발한 것이다.
“놀랍군…….”
테세우드 공작의 어깨가 가늘게 흔들렸다.
마법경을 통해 생생하게 보이는 능선의 전투, 수천에 둘러싸여 검을 휘두르는 두 사내의 모습이 그의 눈에 잡혔다.
놀라웠다.
그 단단한 기사들의 갑주가 검과 함께 칼질 한 번에 종이처럼 잘려 나가는 광경에, 그는 하마터면 마법경을 손에서 놓칠 뻔했다.
그의 시선이 우측으로 돌아갔다.
“율튼!”
대마법사 율튼의 모습이 보였다.
허공에 떠 있는 그의 육신은 눈부신 광채로 둘러져 있었는데, 그 광채에서 거대한 빛의 장창이 연속적으로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장창이 떨어지자 강력한 폭발이 지상에서 일었다. 보는 것만으로 전율이 일어나는 가공할 공격력에 테세우드 공작의 손이 가는 떨림을 보인다.
“본진과 케이시 공작과의 거리는 고작 십 분에 불과한, 상당히 짧은 거립니다, 각하!”
레이놀드 백작이 공격 불가의 뜻을 내비치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테세우드 공작은 대답을 않고서 마법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마법경이 요란 제국 1군단의 본진으로 돌아갔다.
“저게, 무엇이냐!”
놀람의 연속이다.
십만 대군의 가운데를 질주하는 자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대마법사 쉐인이 하나의 마법경을 더 꺼내어 자신의 눈으로 가져갔다. 탐스러운 백염이 가늘게 떨린다.
“오…… 놀랍도다!”
모두가 쉐인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존재인 그가 놀랄 만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음이 당연했다.
레이놀드 백작은 자신도 마법경을 통해 그곳을 보고 싶었지만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침을 삼켜야만 했다.
쉐인이 마법경을 레이놀드 백작에게 건네며 테세우드 공작에게 말했다.
“각하! 적의 적은 곧 각하의 편이 아니겠습니까? 적당한 거리에서 저들을 돕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테세우드 공작도 마법경을 눈에서 떼었다.
꽤 굳어진 얼굴로 묵직하게 말을 받았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만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끌어들일 만한 자들입니다. 저들들 우리에게로 끌어들인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능력들이 아닙니까?”
테세우드 공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하나만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도 도움이 아니라 엄청난 전력의 상승을 가져온다.
마법경을 통해서 본 그들의 능력은 대륙의 초인이라는 자들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수준을 보여 주었다.
물론 그 초인들 중 하나는 자신이다.
“저 정도의 능력을 지닌 자들을 어떻게 내가 모를 수가 있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