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
<귀환무사 282화>
귀환무사 2부
57화
“틀림없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각하!”
통신석 안의 부대장은 무척 다급해 보였다. 테세우드 공작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는 레이놀드 백작에게 명령을 내렸다.
“출전 준비를 하여라! 내가 직접 출전하겠다!”
“예! 각하!”
모두가 빠르게 사령실을 벗어났다.
“아군이 갈 때까지 가급적 전투를 피하고 방어에만 주력해라! 말론!”
“알겠습니다! 각하!”
팍!
통신석이 꺼졌다.
테세우드 공작은 서둘러 갑주와 흉갑을 착용하고 검을 들었다. 그의 부관들이 부대기를 들고 그를 따랐다.
* * *
혁련천후는 낙담했다.
막연한 방법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서 둘의 흔적을 조사했지만 전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주공! 저쪽에도 없습니다.”
진천이 다가오며 머리를 긁적였다. 좌측을 살폈던 사공진무도 역시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주공!”
“반드시 만나게 될 겁니다.”
둘이 그를 위로했다. 그러나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가 보자.”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는 혁련천후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우울해 보이자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천천히 평원의 좌측으로 이동했다.
진천의 눈동자는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환술을 펼친 것이다. 사공진무는 눈을 감고 걸었다.
그 역시 기이한 술법을 펼친 상태였다.
울창한 숲은 태양빛이 들어오지 못할 만큼 빽빽한 밀도를 자랑했다. 곳곳에 흉측한 맹수들이 그들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지만 그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자신들이 발산하는 기운 때문에 달려들지도 못할 뿐더러 달려든다고 해도 단칼에 베어 버리면 그뿐이다.
“완전히 맹수들 천지구나.”
“몬스터라는 것들이겠지. 하여튼 괴상한 세상이야, 이곳은…….”
사공진무와 진천은 잠시 환술과 술법을 거두고 걸었다.
시간이 길어지면 급격한 내공의 소모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식과 시전을 번갈아 해야만 했다.
“해골이다!”
진천이 나지막이 소리쳤다.
자신들의 이동 방향 앞에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해골들이 몇 구가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유심히 살펴보던 사공진무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뼈에 아무런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는 앞을 걸어가는 혁련천후에게 시선을 던졌다.
오늘따라 유달리 그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 사공진무는 다시 술법을 펼쳤다.
오감을 극한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그 술법은 그만의 비기였는데, 일단 펼치면 짐승보다 더한 예민함을 지니게 된다. 진천도 환술을 다시 펼쳤다.
혹시 모를 천살강기와 흑야의 암흑마기의 흔적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운이 좋아 죽은 시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여지없이 그의 환술에 걸려들 것이다.
물론 막연한 바람이다.
그때 진천의 눈동자에 떠올랐던 황금색이 더욱 짙어지며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건…….”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앞서 걷던 혁련천후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사공진무도 진천을 보며 눈을 반짝 빛냈다.
“대단하다…….”
“엄청난 힘이 움직이고 있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야.”
어지간해선 놀라지 않는 진천이다.
그러나 지금의 진천은 놀람을 넘어서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혁련천후가 진천과 사공진무에게로 걸어왔다.
“주공! 저 밑에서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인가?”
“그건…… 윽!”
진천과 사공진무가 머리를 감싸며 환술과 술법을 풀었다. 엄청난 두통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혁련천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의 시선이 산의 능선 쪽으로 던져졌다.
그도 느낀 것이다. 술법이나 환술이 아닌 순수한 상태에서 거의 같은 시각에 느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 세상에 이런 기운을 지닌 존재가 있었나…….”
강력했다.
내공에서 발출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힘인지는 몰라도 느껴지는 기운은 전율이 생겨날 만큼 강력했다.
그때 그의 눈에 수백 수천의 폭발이 잡혔다.
워낙에 먼 거리여서 그것이 무엇인지 볼 수는 없었지만, 연속적으로 빛의 폭발이 상공에서 이어졌다. 진천과 사공진무도 그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게 뭐지?”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키다니. 저것도 이 세상에서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종이겠지?”
“아마도.”
둘은 굳은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거리로 보면 어림잡아 이 세상의 단위로 십 킬로미터는 되어 보였다. 물론 폭발이 나타난 상공 지점은 그보다 가깝다.
진천이 무심결에 혁련천후를 돌아보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어!’
사공진무도 마침 혁련천후를 돌아보다가 진천과 같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부들부들.
그가 떨고 있었다.
정마대전의 가운데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눈동자가 폭풍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진천과 사공진무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느낀 진천은 급히 환술을 극성으로 펼쳤다.
그때 혁련천후가 섬전처럼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쾅!
진천이 환술을 풀고 소리쳤다.
“천살강기야! 천살강기의 기운이 저곳에서 느껴져!”
“정말이냐!”
“그래! 정말이다!”
“설마 저곳에…….”
“뭐해! 빨리 가자고!”
쾅!
둘도 혁련천후를 쫓아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두두두두…….
라이트 마법을 걸어 몸을 가볍게 한 전마들은 가파른 길을 평지처럼 달렸다. 선두에 백색의 전마에 몸을 실은 테세우드 공작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마치 자연의 일부인 양, 전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노인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말을 타지 않고서 맨몸으로 허공을 날고 있었다.
요란 제국의 대마법사, 율튼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경지를 보여 주고 있는 그는 바로 케이론 제국의 대마법사이자 테세우드 공작의 사부이며 수하이기도 인물이었다. 인의노 눈동자가 순간, 섬뜩한 기운으로 번득였다.
“놈이 움직였습니다!”
“놈이라면, 율튼, 그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기운은 분명 놈의 것입니다.”
테세우드 공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국전쟁 때나 나타날 법한 대마법사 율튼이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눈빛을 차갑게 고쳤다.
자신의 옆에도 결코 그에 못지않은 대마법사가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믿었다.
자신의 사부이며 동료이고 수하이기도 한 그를 절대적으로 믿었다.
두두두두!
기마들의 속도는 상상을 불허했다.
모두가 마법 병단의 마법 덕분이다. 가장 뒤쪽에 마법 병단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연신 주문을 외우며 사천의 전마들에게 지속적으로 마법을 걸고 있었다.
“마법 병단은 수위를 높여라!”
테세우드 공작이 소리치자 전마들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전마들이 지나가는 주변은 폭풍이 몰아쳤다. 나무며 돌들이 사방으로 솟구치며 자욱한 먼지구름을 만들어 냈다.
비록 사천에 불과한 수였지만 이들은 테세우드 공작이 직접 수련시킨 최정예 기사들로 제국 최강의 집단전 돌격 부대였다.
레이놀드 백작이 부대장이었다.
두두두두…….
우측에 우뚝 솟아 있는 절벽을 돌아서자 대마법사 쉐인은 요란 제국의 대마법사 율튼의 힘에다 다른 기운까지 느껴지자 흠칫했다.
‘이건 마계의 기운!’
놀람을 모르는 대마법사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그것만으로 뭔가를 짐작한 테세우드 공작이 물어 왔다.
“무슨 일입니까?”
“마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상당한 힘이…….”
“마계의 기운이라니요? 마계의 존재들이 강림했다는 말은 없었지 않습니까?”
“이상한 일입니다.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의 강림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니…….”
마계나 천계의 존재들이 강림하면 신전의 신관들이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이 강림하면 신관들이 가장 먼저 황제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대마법사에게도 우선적으로 소식이 들어간다.
그들이 있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쉐인은 전혀 그러한 소식을 접한 적이 없었다.
대마법사 쉐인이 테세우드 공작을 돌아보았다. 그의 의중을 짐작한 테세우드 공작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대로 갑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테세우드 공작이 쉐인을 쳐다보았다. 그도 불길함을 느꼈을까? 순간적으로 테세우드 공작의 눈동자가 출렁거렸다.
그러나 그는 내려진 명령을 거두지 않았다.
* * *
서걱!
섬광이 번득이자 피가 튀며 투구가 하늘로 솟구쳤다. 투구 안의 임자는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 갔다.
쾅!
마법 병단의 무지막지한 장거리 공격이 대지를 흔들었다.
“깍! 죽어!”
카루가의 뾰족한 음성은 더 이상 기사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존재들에 대한 공포감이 모두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오천에 달하는 기사들이 단둘에게 쩔쩔매고 있었다. 쩔쩔매는 정도가 아니었다. 폭풍처럼 움직이는 그들을 잡을 방도가 없었다.
죽어 가는 기사들의 수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전장의 외곽에서 지켜보던 케이시 공작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대마법사 율튼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각하! 흑안의 마검사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분명 그들의 동공색이 푸른색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기사들이 겁에 질린 상황에서 잘못 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들이 흑안의 마검사가 아니라면 대륙에 저 정도로 강한 자들은 초인들과 크로우 기사단의 마스터들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마계의 존재들이 아닌 것은 확실하오?”
율튼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대답했다.
그의 탐스러운 수염이 가늘게 떨렸다.
“아닙니다. 순수한 인간의 육신으로 이루어진 자들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마법왜곡장 안에서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니…….”
그랬다.
지금 율튼은 마법왜곡장을 펼쳐 놓은 상태였다.
오직 적에게만 발현되는 그것은 공간 안의 중력을 수배로 높여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최상위 마법이었다.
어지간한 마스터들도 그 안에 들면 움직임이 수배는 느려지고 금방 체력이 고갈될 정도로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왜곡장이다.
하지만 지금 저 둘은 반 시간 동안 거침없이 기사들의 생명을 신의 품속으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무지막지한 화염을 뿜어내던 카루가가 서서히 지쳐 가고 있었다.
대량 살상이 가능했던 화염 공격이 거의 무력화되자 기사들은 둘에게 집중해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소용없었다.
“율튼 공! 놈을 죽여 주시오!”
케이시 공작은 카루가를 가리켰다.
눈에 띄게 움직임이 더뎌진 카루가만큼은 쉽게 죽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애초에 엄청난 피해를 준 그를 죽이기 위해 직접 출전한 터였다.
뜻밖의 인물들에게 더한 피해를 입고는 있었지만 카루가만큼은 죽이고자 작정한 것이다.
대마법사 율튼이 전장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