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
<귀환무사 281화>
귀환무사 2부
56화
“대단하군…….”
“요란 제국이군요. 저 깃발은 아까 기사가 거론했던 1군단을 상징하는 것이네요. 듣기로 요란 제국 최강의 전투 부대라고 들었는데, 저들이 군단째로 이곳을 왔다면 제국에선 누가, 어떤 부대를 이끌고 왔을지 궁금합니다.”
“나쁜 놈들!”
카루가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마법 병단이 있는 곳으로 짐작되는 군막을 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에게 화살 세례를 퍼부은 것을 잊지 않은 것이다.
“함부로 설치지 마라!”
흑야의 엄포에도 카루가의 눈빛은 점점 더 붉어졌다. 금발이던 머리카락이 점점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본 혁련소가 흠칫하며 카루가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해!”
“저놈들이 나를 죽이려고 했어, 저 나쁜 놈들이…….”
“시끄러워!”
흑야의 나지막한 호통에 움찔했지만 이내 적의를 드러냈다. 혁련소는 어깨를 잡은 손에 내공을 주입시켜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했다.
삐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그들이 선 주변 공간이 은은한 진동을 보였다.
“결계군요.”
“이곳까지 결계를 쳐 놓았다니, 그만큼 대단한 마법 병단을 거느렸단 말이군.”
“군단이니 어쩌면 상위 마법사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결계에 걸렸으면서도 둘은 담담한 기색이다.
쫓아오면 도망가면 그뿐이다. 작정하고 경공을 펼친다면 와이번이 아니고서야 그들을 따라잡을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깍! 저놈들이 또 온다!”
카루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마법사들로 보이는 자들과 손에 석궁을 든 병사들이 빠르게 그들이 있는 곳으로 질주해 오는 것이 둘의 시야에 들어왔다.
선두에 황금색 갑주에 붉은 흉갑을 두른 자가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를 본 흑야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꽤 강한 놈이군. 이 부대의 우두머린가?”
“설마 군단장이 직접 오겠습니까? 아무튼 꽤 강한 힘을 지닌 자군요. 어쩌지요? 그냥 도망갈까요?”
“싸울 순 없지 않느냐.”
“그럼 가죠. 뭐.”
둘은 몸을 돌렸다.
“깍!”
잠시 방심한 혁련소의 손아귀에서 카루가가 빠져나갔다. 아차 싶었던 혁련소가 몸을 돌렸을 땐 이미 카루가는 마법사들과 병사들에게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미처 어찌할 수가 없었다.
“깔깔! 죽일 거야!”
허공에 뜬 카루가의 육신은 이미 완벽하게 변신을 한 상태였다. 이미 시뻘건 화염을 두른 그는 역시 화염으로 둘러진 기다란 채찍을 손에 쥐고 있었다.
화르륵!
채찍이 허공을 가르자 화염이 달려드는 병사들을 향해 떨어졌다.
쾅!
“우악!”
엄청난 위력이었다.
지켜보던 둘도 그 위력에 크게 놀랐다. 설마 저 정도의 위력일 줄은 생각도 못했던 그들이다.
“깔깔! 나쁜 놈들! 다 죽어!”
쏴악!
쾅쾅!
화염 덩어리가 연속적으로 대지로 떨어졌다. 곳곳에 폭발이 일어나며 기사들이 화염 속에 쓰러져 갔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죽음을 무릅쓰고서 그들은 카루가의 지척까지 접근해 들어갔다.
흑야의 눈동자에 섬광이 돌았다.
“위험하다!”
쾅!
그의 육신이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혁련소도 흑야의 뒤를 쫓아 날았다.
* * *
“저놈들입니다! 저놈들이 저 괴물과 함께 있었습니다!”
도주했던 기사가 손으로 흑야와 혁련소를 가리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베린스 공작은 둘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모조리 한꺼번에 죽여라!”
우우웅!
마법사들이 마나를 응집해서 화살 주변에 둘렀다.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화살촉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쏴라!”
슈슈슈슈슉!
수백 명이 동시에 날린 화살들이 엄청난 속도로 허공에 뜬 셋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 베린스 공작이 연이어 명령을 내렸다.
“파이어 에로우!”
마법사들의 손에서 새파란 불꽃이 화살 모양으로 바뀌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일대 장관이 마법사들에 의해 펼쳐졌다. 십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먼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환호성을 질러 댔다.
콰과과광!
허공에서 엄청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순식간에 하늘이 불꽃과 연기들로 채워졌다.
비명을 기대했던 베린스 공작은 비명은커녕, 지상으로 떨어지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자 발작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그 상황에서 피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조금 전의 공격은 반경 오십 미르는 족히 넘어가는 엄청난 화력이었다. 제국의 초인들이라도 쉽게 벗어나기 힘든 그 공격을 피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곤경에 몰아넣었던 존재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사람으로 보이는 자들이 둘 있었다.
그들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무조건 불길에 휩싸여 지상으로 추락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상으로 떨어진 것은 화살과 파이어 에로우라는 마법 공격의 잔재들뿐이었다.
콰앙!
베린스 공작은 뒤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확 전해져 오자 몸을 웅크리며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깍! 용서 못해!”
베린스 공작은 들려온 목소리에 치를 떨었다.
그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 카루가를 찾았다.
“……!”
베린스 공작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부릅떠진 두 눈은 유년기 때, 하늘을 나는 마법사를 처음 보고 놀랐을 때만큼이나 심하게 흔들렸다.
자신을 보며 지독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카루가의 눈동자는 섬뜩하리만치 붉어져 있었는데, 그 카루가를 잡고 있는 사내가 베린스 공작의 눈을 파고들 듯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흑발을 늘어뜨리고 허리에 장검 하나를 두른 사내와 역시 흑발에 이 세상의 검과는 다른 형태의 좁고 기다란 검을 손에 쥔 사내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인간이다! 인간이 분명해! 그런데 그 엄청난 공격에서 멀쩡하게 살아 있다니…….’
베린스 공작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베린스 공작을 둘러싸며 포진했다.
“깍! 이거 놔줘! 저놈을 죽일 거야!”
카루가는 흑야의 손아귀에서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흑야의 손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베린스 공작은 그들에 대한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흑야의 시선이 그들의 뒤쪽으로 던져졌다. 수천의 기마병들이 말을 몰아 질주해 오고 있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베린스 공작에게로 향했다. 분노로 인해 그의 눈동자는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차가움을 어찌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모두가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쫓아오면 네 머리가 가장 먼저 땅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찌르르…….
베린스 공작은 귓속을 흘러드는 지독히도 차가운 목소리에 전율을 일으켰다.
‘흑안의 마검사…….’
흑야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흑색을 띠었다.
그것을 본 베린스 공작은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그도 흑안의 마검사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둘은 소문의 그 마검사들과 인상착의가 같았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소문난 그들이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은 모조리 죽음이다.
6클래스 마법사가 아니면 상대할 자, 아무도 없다는 초인들이 그랜드 마스터라 불린다.
십만 대군이라도 결코 죽일 수 없는 존재들이 그랜드 마스터들이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베린스 공작의 귓속을 울렸다.
그때였다.
흑야와 혁련소가 유령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뒤쪽에서 고함이 들렸다.
“베린스! 놈들을 추격해라!”
케이시 공작의 목소리였다.
베린스 공작은 뒤를 돌아보았다. 케이시 공작이 직접 기사들을 이끌고 전마를 몰아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다시 심하게 흔들렸다.
케이시 공작의 옆, 그곳엔 말을 타지 않고서 비행해 오는 백발백염의 노인이 있었다.
‘율튼 대마법사!’
흑안의 마검사들을 보았을 때보다 더 큰 놀람이 베린스 공작의 눈동자에 나타났다.
요란 제국에 단 하나뿐인 대마법사 율튼이 나타난 것이었다.
“뭐 하느냐! 놈들을 쫓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케이시 공작의 고함이 이어졌다.
“각하!”
소리아노가 베린스 공작을 불렀다. 그제야 베린스 공작은 맑은 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주변을 빠르게 돌아보았다. 산의 능선으로 질주하는 셋의 모습이 잡혔다.
그는 즉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슈우욱!
그때 그의 머리 위로 빛으로 일렁거리는 물체가 강력한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대마법사 율튼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제야 베린스 공작의 입이 벌어졌다.
“추격하라!”
베린스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굳었던 몸을 풀고서 능선으로 달렸다. 베린스 공작도 뛰었다. 뛰면서도 그는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륙 전체에 가장 유명한 존재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그 중심에 자신이 서 있는 것이 그는 믿기지 않았다.
휙!
강력한 바람이 베린스 공작의 투구를 흔들고 지나갔다. 그는 자신의 앞을 날아가는 대마법사 율튼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벌렸다.
제3장 해후
테세우드 공작은 사령실에서 예하 부대장들의 보고를 받았다.
척후를 담당했던 부대장의 보고가 끝나자 그는 차갑게 웃으며 찻잔을 입으러 가져갔다.
“상당한 규모의 전투 흔적을 보았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수백이 넘어가는 기사들의 시신이 산맥의 가운데에 자리한 평원에 널려 있었다고 합니다.”
거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자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커다란 덩치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지닌 그는 바로 레이놀드 백작이었다.
용맹스러운 기운을 풀풀 풍겨 내는 모습이 술에 쩔었을 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떤 세력이지? 요란 제국의 전투 부대를 겁내지 않을 정도의 세력이 이곳에 있었나?”
“척후를 나갔던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흑안의 마검사로 추정되는 자들을 보았답니다.”
테세우드 공작의 눈동자에 섬광이 돌았다.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그자들이 곤경에 처한 아군을 구해 줬다고 합니다. 어쩌면 요란 제국의 전투 부대와 싸운 것도 그들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그렇단 말이지…….”
테세우드 공작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우우웅!
그때 사령실의 가운데 박혀 있는 통신석에 불이 들어왔다. 레이놀드 백작이 재빨리 통신석의 천을 걷었다.
“각하! 적진 근처에서 적, 마법 병단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엄청난 마나의 흐름으로 보아 대규모 병력으로 예상됩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테세우드 공작은 굳은 얼굴로 통신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보고가 이어졌다. 이번엔 다른 부대에서 보낸 통신이었다.
“적 사령관인 케이시 공작이 수천의 기마병들을 이끌고 움직였습니다. 이동 방향이 아군의 선발 부대가 포진한 곳으로 보입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 보고에 테세우드 공작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숙적이 움직인 것이다.
“병력의 수는?”
“사천 정도로 보입니다!”
“사천? 고작 사천을 이끌고 놈이 직접 움직였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