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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80화 (278/425)

# 280

<귀환무사 280화>

귀환무사 2부

55화

* * *

흑야와 혁련소는 과일을 한가득 따 놓고 엄청나게 먹어 대는 카루가를 보면서 어이가 없어 웃었다.

어지간한 장정은 몇 개만 먹어도 나가떨어질 커다란 과일을 벌써 스무 개째 입으로 가져가는 카루가였다. 그 작은 배에 저 많은 게 들어간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맛있어.”

“천천히 먹어라! 체하면 약도 없다.”

“체하는 게 뭐야?”

눈을 반짝이며 물어 오는 카루가를 보며 혁련소는 피식 웃어 버렸다. 흑야는 불에 익어 가는 토끼를 천천히 돌리며 그 위에 소금을 조금씩 뿌렸다.

“야만인.”

카루가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흑야를 노려본다. 흑야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재빨리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사람을 떼로 죽이는 네놈은 뭐지?”

“그거야 그놈들이 내 땅을 침범했으니까…… 요!”

“말 똑바로 해라. 아니면 네놈을 통째로 구워 버릴 테니까.”

“콜록!”

카루가는 곧바로 사레가 들렸다. 고기가 익자 둘은 식사를 시작했다. 카루가는 여전히 못마땅한 시선으로 둘을 흘긋거렸다.

마계의 왕자라는 그가 과일만을 먹고 또,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본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안다면 모두가 웃을 일이다.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군요.”

“어쩔 수 없지. 현재로선 우연히 부딪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테세우드 공작이 체포령을 내린 인물들을 둘은 거론했다.

그들은 케논 산맥으로 향했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소문만을 믿고 달려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절박함이 그들을 만나는 결과를 내 주기를 그들은 고대했다.

“아니면 실망이 더 클 거야. 미리 마음을 단단히 해둬.”

“그렀겠죠.”

고기가 꽤 질겼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동물을 사냥해서 무작정 불에 구운 것이다. 도저히 입맛에 맞질 않자 둘은 식사를 끝냈다.

카루가가 곁으로 다가왔다.

“누굴 찾는 거요?”

요 자를 이상하게 붙여서 말투가 꽤 요상했다. 마치 뒷골목 건달의 말투를 어린아이가 흉내 내는 듯이 들렸다.

“그런 게 있다. 다 먹었냐?”

“그래요.”

“그럼 출발하자.”

둘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무작정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가장 유력한 곳은 일단 케논 산맥의 초입에 위치한 작은 부락이었다.

제국에서 출발했다면 대부분이 그 부락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정보를 얻어 알아낸 그들은 산을 넘기 위해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때 카루가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눈빛을 발했다.

“누가 온다요.”

흑야의 눈빛도 뒤쪽을 향해 이미 던져져 있었다.

셋은 빠르게 주변 숲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잠시 후, 일단의 무리들이 그들이 앉았던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주를 걸치고 투구를 쓴 기사들이었는데 투구에 새겨진 문양으로 보아 요란 제국의 기사들임이 분명했다.

“대장님! 불을 피운 흔적이 있습니다.”

방금 껐으니 발각되는 것은 당연했다. 대장이라 불린 기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모두 주변을 샅샅이 살펴라! 놈들의 척후병이 다녀간 것이 틀림없다!”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몇몇은 긴장한 탓에 검 끝에 오러까지 품었다. 그때였다.

“깍!”

뾰족한 소리와 함께 우측 숲을 살피던 기사의 육신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화르륵!

“으아아악!”

화염에 휩싸인 기사가 순식간에 재로 변해 흩날리자 모두는 경악하며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카루가가 나타났다.

“헉!”

모두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자신들이 찾고자 했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물론 저렇게 살아서 날뛰는 줄 알았다면 찾을 마음조차 먹지 않았을 그들이다.

며칠 전에 벌어졌던 참상이 떠오르자 기사들은 저마다 줄행랑쳤다.

“다 죽일 거야!”

그때였다.

흑야의 손이 카루가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카루가의 왜소한 육신이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분노로 인해 붉게 충혈이 되었던 카루가의 눈동자가 서서히 제색을 찾았다.

“아프잖아!”

카루가는 목을 조여 드는 옷 때문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했을 텐데?”

“저놈들은 나를 다치게 했던 놈들이란 말이야요!”

“약속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이겠다.”

“컥! 싫어! 저놈들은 죽일 거야!”

스르릉!

흑야의 검이 섬뜩한 광채를 발하며 뽑혀지는 것을 본 카루가는 기겁을 했다. 금세 눈물이라도 뚝뚝 흘릴 것처럼 애처로운 표정으로 변했다.

“……약속한다요.”

“정말이냐?”

“정말이다요.”

“어떻게 믿지?”

“깍! 난 마계의 위대한 왕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요!”

흑야가 놓아주자 카루가는 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며 떨어졌다. 목을 움켜쥐고 숨넘어가는 시늉을 하더니 재빨리 혁련소의 뒤쪽으로 숨었다.

혁련소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기사 하나를 불태워 죽일 때와 지금의 모습은 정말이지 눈으로 보고도 어이가 없었다.

‘선과 악이 극명하게 공존하는 것인가?’

인간 역시 선과 악을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카루가처럼 극명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카루가는 순수한 악의 정령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인간, 정말 무섭다…….”

뒤에서 카루가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혁련소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뒤를 따라오는 카루가에게 동정심마저 들었다.

“혹시 싸우면 이겨?”

“내가 말이냐?”

“응.”

“진다.”

“쳇.”

* * *

무작정 걷던 셋은 앞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자 은밀하게 그곳으로 이동했다. 혁련소는 카루가의 팔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언제 또 사람을 해칠지 몰라서다.

갑주를 걸친 기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조금 전, 카루가의 손길에서 도주했던 기사들도 있었다.

적을 맞아 싸우는 그들은 무척 사납고 용맹스러웠다. 카루가에게 식겁을 하고 도주했던 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혁련소의 눈이 살짝 빛을 발했다.

[케이론 제국의 기사들입니다. 저러다가 몰살을 당하겠습니다.]

[도와줄까?]

[그래도 숙부와 제가 몸담고 있는 제국이 아닙니까?]

[내가 해결하마.]

흑야는 전음을 날림과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멈춰!”

나지막이 흘린 말에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던 기사들이 놀랍게도 손과 발을 멈추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들의 손과 발을 강제하자 그들은 놀란 눈으로 흑야를 돌아보았다.

수세에 몰렸던 케이론 제국의 기사들이 때를 이용하여 뒤로 물러섰다.

흑야의 기운은 요란 제국의 기사들에게만 흘러든 것이다.

“누구냐!”

요란 제국의 기사가 날카롭게 외쳤다.

흑야는 카루가를 피해 도주하던 그를 떠올리고는 입가에 비웃음을 떠올렸다. 그는 요란 제국의 기사들은 무시하고 상처를 입고서 뒤쪽으로 물러나 있던 제국의 기사들에게 말을 건넸다.

“놈들은 내가 처리할 것이니 너희들은 그만 돌아가도 좋다.”

“……!”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난, 너희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

기사들은 망설였다.

기사의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죽음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기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흑야에게 감사의 눈빛을 전한 기사들은 빠르게 테세우드 공작이 주둔하고 있는 병영으로 뛰었다.

“네 이놈!”

요란 제국의 기사가 검을 휘두르며 흑야를 덮쳤다.

퍽!

기사의 커다란 육신이 허공에서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그대로 뒤쪽 숲속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하필이면 그가 떨어진 곳은 혁련소와 카루가가 은신하고 있는 곳이었다.

남은 기사들이 깜짝 놀라 눈이 부릅떠졌다.

“요란 제국의 놈들은 전쟁을 밥보다 좋아한다고 하더군.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그런 놈들이 있었지. 물론 나와 내 벗들에 의해 모조리 죽었지만 말이다.”

흑야는 느릿하게 기사들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무지막지한 기운이 전신을 자극하자 기사들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때 누군가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흐, 흑안의 마검사!”

“뭐!”

그제야 모든 이들이 흑야를 새롭게 쳐다본다.

요란 제국에도 흑안의 마검사에 대한 소문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검을 버리고 꺼지면 살 수 있다.”

“웃기지 마! 네놈의 눈동자를 보니 소문의 그자들이 아니야. 비슷하게 차려입으면 누가 겁먹을 줄 아느냐!”

흑야의 동공색이 푸르스름한 것을 발견한 기사가 소리쳤다.

모두가 다시 검을 겨누며 으르렁거렸다. 흑야의 눈썹이 슬쩍 꿈틀거렸다.

그때!

“깍!”

기사들에겐 지옥의 사자처럼 여겨지는 존재의 울음이 숲에서 들려왔다. 흑야를 노려보던 기사들의 얼굴이 대번에 돌처럼 굳어졌다.

숲에서 카루가가 쑥 튀어나오자 그들은 조금 전의 용맹은 오간 데 없이 다시 줄행랑을 놓았다.

“하하! 일부러 이놈을 놓아주었습니다. 확실히 효과가 있군요.”

혁련소가 크게 웃었다.

흑야와 싸우면 기사들은 보나마나 죽음이다. 필요 없는 살상을 싫어하는 혁련소는 꾀를 부려 카루가를 이용한 것이다.

도주하는 기사들을 노려보는 카루가의 눈동자는 역시 붉게 변해 있었다.

씩씩!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연신 온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도와주자고 한 건 너였잖아.”

흑야가 불퉁하게 말하자 혁련소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자들 피를 묻혀서 좋을 게 있겠습니까?”

“저놈 도망간다요!”

카루가가 제자리에서 펄쩍뛰며 손으로 숲을 가리켰다. 조금 전, 흑야에게 한 방 맞고서 날아가 떨어졌던 기사가 정신을 차리고는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두지요. 어차피 전쟁이 벌어지면 그때 죽을 목숨입니다.”

흑야는 검을 도로 집어넣으며 카루가에게 시선을 던졌다.

“꽤 좋아졌군.”

“숙부가 무서워서 그럴걸요? 아니면 그 기사들은 모조리 죽었을 겁니다.”

“당연하다요.”

카루가가 주먹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때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귀엽다 못해 앙증스럽기까지 한 모습에 흑야는 쓴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렸다.

그들은 울창했던 숲을 벗어나 앞이 뻥 뚫린 곳으로 나왔다.

순간, 둘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평원을 빽빽이 메운 엄청난 수의 군막들과 사이사이를 누비는 병사들. 한눈에 어림잡아도 십만은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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