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
<귀환무사 277화>
귀환무사 2부
52화
* * *
로드브릿지라는 도시의 입구에서 모두는 걸음을 멈추고 써튼만이 도시로 들어갔다.
그간의 정보를 알아보려고 들어갔던 써튼은 삼십 분 후에 돌아왔다.
써튼의 얼굴 표정이 꽤 어둡자 모두는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큰일 났습니다. 제국 간에 전쟁이 곧 발발할 듯하답니다!”
“전쟁?”
“케논 산맥에 요란 제국의 전투 부대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때문에 케이론 제국에서 그들에게 경고문을 보냈다고 하는데, 지금껏 그들이 그곳에서 철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쪽에서도 군사를 보냈다고 하더냐?”
써튼이 다소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1기병여단이 케논 산맥으로 출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테세우드 공작가의 근위대들도 그곳으로 향할 것이라 했습니다.”
“기병여단이라면 전에 만났던 그자들이군요.”
조윤이 고개를 돌려 혁련천후를 바라보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써튼의 말을 듣고 있던 그는 전쟁이 대수냐는 표정으로 말머리를 북쪽으로 돌렸다.
“우린 그 아이들의 흔적만 찾아보면 그뿐이다. 전쟁 따윈 우리완 상관없는 일이지.”
그가 말을 몰아 서서히 속도를 높이자 모두는 뒤를 따랐다.
전쟁의 기운은 그들이 지나치는 도시마다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케논 산맥이 가까워지면서 모든 도시에서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졌는데, 가는 곳마다 북쪽으로 향하는 병사들의 행렬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통제 때문에 일행은 길을 버리고 숲으로 이동했다.
당연히 속도는 무척이나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간혹 덤벼드는 몬스터들을 때려잡는 재미로 모두는 지루함을 달랬다.
* * *
간신히 본진으로 들어선 베린스 공작은 마법방어막 밖에서 허공을 배회하는 악마 같은 존재를 바라보면서 이를 갈았다.
“교활한 놈! 결계를 넘어서지 않다니…….”
결계를 넘어서면 그를 잡을 비장의 수가 있었다.
평소부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준비해 놓았던 블러드 에로우가 그것이었다.
수천이 동시에 실드를 전문적으로 뚫어 내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화살을 쏘고 그 화살에 마법 병단의 모든 마나를 모조리 심는 방법으로, 드래곤도 반쯤 죽여 놓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그였다.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수법이지만 워낙 넓은 범위로 펼쳐지는 탓에 어지간한 존재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요란 제국만의 특수 공격 기술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발록을 축소시켜 놓은 듯 생겨 먹은 저 악마 같은 존재는 결계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서 연신 채찍질을 해 대고 있었다.
쐐액!
수많은 화살들이 허공을 찢으며 발사되었다.
“깍!”
따다다다당!
그러나 접근하기도 전에 모조리 튕겨 나갔다.
채찍에서 발출된 화염이 결계 근처에 세워진 건물들에게 떨어지자 주변은 이내 뜨거운 불줄기가 솟구치며 불바다로 변했다.
히히힝!
전마들이 이리저리 날뛰며 거품을 물었다. 날뛰던 전마들에게 화염이 떨어지며 떼죽음을 당하자 베린스 공작의 눈에서 화염이 솟구쳤다.
“준비해라!”
“각하! 사정거리 밖입니다!”
“아니다! 소수만 근처까지 접근하여 놈의 육신을 노려라!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 서둘러라!”
소리아노가 황급히 뒤로 뛰어가더니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과 백여 명의 궁병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놈을 맞춰야 한다! 여기서 두려움을 주지 못하면 놈은 절대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마법사들과 궁병들이 눈에 힘을 주고는 은밀하게 결계 쪽으로 이동했다.
“화살을 퍼부어라!”
베린스 공작은 모든 병사들에게 화살을 쏠 것을 명령했다. 이동하는 자들이 발각되는 것을 감추기 위한 엄호사격이었다.
수천 발의 화살이 하늘을 새카맣게 덮으며 날아갔다.
따다다당!
“깔깔! 어림없다!”
소용없었다.
오히려 강력한 반탄력에 되돌아온 화살들이 병사들을 덮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말았다.
쐐애액!
“화살이 되돌아온다! 피해라!”
퍼퍼퍽!
“으아악!”
자신들이 날린 화살에 꿰뚫려 날아가는 참상이 벌어졌다.
베린스 공작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강한 존재일수록 몸을 아끼는 법이다.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는 은밀하게 이동하는 마법사와 궁병들을 주시했다.
백 명의 궁병들은 특수한 물체로 제작된 화살을 지니고 있었는데, 와이번의 가죽도 관통시키는 대단한 위력의 화살이다.
악마 같은 존재, 카루가와 마법사들 간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다.
* * *
“너희들이 죽인 몬스터들의 복수를 할 거야! 덤벼! 전부 다 죽여 주겠어!”
거침이 없었다.
날아오는 화살도,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육신을 건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마음 놓고 화염을 발출했다.
“깔깔깔!”
듣기에도 소름 끼치는 웃음을 터뜨리며 주변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던 존재가 어느 순간, 모든 행동을 뚝 멈추었다.
허공에 뜬 채로 그는 남쪽으로 시선을 던져 놓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깍! 마계의 기운이야. 너무 강한 마계의 기운이야…….’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더니 순간, 더 높은 공간으로 올라갔다. 강력한 마법으로 시력을 키우더니 한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이잖아!”
어느새 하얗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놀람의 기운이 어렸다.
두려움이 일어날 정도로 자극했던 기운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인간이었다. 시커먼 머릿결에 역시 시커먼 옷을 걸친 사내 두 명이 케논 산맥의 능선을 타고 오르는 것이 그의 눈에 잡혔다.
카루가의 동공이 연신 흔들렸다.
“이거 말이 돼? 어떻게 인간이 저런 강력한 마기를 지닐 수 있는 거지?”
날카로운 인상에 허리에 장검을 두른 사내의 시선이 마침 자신을 향하지 그는 움찔하며 자신도 모르게 뒤쪽으로 날아갈 뻔했다.
“카악! 설마 저 거리에서 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어림없어! 인간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해!”
카루가는 아이처럼 호들갑을 떨어 댔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땅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순식간에 그의 코앞에 빛을 품은 화살들이 쇄도해 들었다.
쐐애애액!
“……응?”
카루가가 고개를 돌렸다. 그땐 이미 엄청난 양의 화살이 그의 코앞까지 날아와 있었다.
퍼퍼퍼퍽!
* * *
“성공이다!”
베린스 공작이 그 자리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평소의 그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던 탓이다.
그는 검을 뽑아 들고 마법사들과 궁병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추락하면 자신의 손으로 끝장을 볼 셈이었다.
“카악!”
허공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시퍼런 녹색 선혈이 후드득 대지로 떨어져 마법사들의 로브를 더럽혔다. 카루가는 당장에라도 추락할 듯 휘청거렸다.
그러나 베린스 공작의 바람과는 추락을 하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베린스 공작이 발을 구르며 안타깝다는 몸짓을 보였다.
죽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에 그는 한참을 그대로 선 채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각하! 군수품 창고가 모조리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리아노의 목소리에 그제야 베린스 공작은 시선을 허공에서 거두었다.
소란스러운 장내 상황이 그대로 전해진다. 마법사들은 치솟는 불길을 잡느라 여념이 없었고, 기사들은 죽은 병사들과 부상당한 병사들을 따로 나누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각하! 통신병과의 통신석들이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뛰어 오며 다급하게 외쳤다.
연이어 보고가 올라왔지만 하나같이 비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고립이 되면 모두가 다 위험해진다.’
베린스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통신석이 없다면 자신들은 완전히 고립되는 상황에 처한다.
베린스는 이내 고민에 휩싸였다.
“각하! 명을 내려 주십시오, 각하!”
소리아노의 말에도 베린스 공작은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외쳤다.
“그만!”
“각하…….”
“잠시 나를 내버려 두거라.”
꽉!
머리를 움켜쥔 베린스 공작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사실 지금 그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지금껏 이러한 경우는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그였다. 패배를 모르고 살아온 그였고 제국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떠받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상위 귀족의 삶을 살아왔던 그였기에 카루가에게 당한 피해를 씻을 수 없는 치욕이라 여겼다.
소리아노도 그런 베린스의 심정을 이해했기에 더는 재촉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휘이잉!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다시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쏴아아!
제2장 마계의 왕자, 카루가
툭!
흑야는 자신의 어깨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툭!
다시 어깨에 뭔가가 떨어졌다.
“몬스터의 피 같은데요?”
혁련소가 어깨에 묻은 녹색 핏물을 나뭇잎으로 닦아 내며 중얼거렸다. 흑야는 다시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엔 묘한 이채가 떠올라 있었다.
“묘한 놈이 있었군.”
“예?”
“신교의 고수들과 비슷한 기운이야. 이 세상에 이런 종류의 기운이 있었다니, 놀랍군.”
혁련소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흑야를 따라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나무 위를 샅샅이 살폈지만 아무런 생물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른 체하고 걸어라.”
“대체 뭔데 그러십니까?”
“나중에 보게 될 거다.”
혁련소는 앞서 걸어가는 흑야를 갸우뚱하며 쳐다보고는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
지금 그들은 케논 산맥을 넘으려는 중이었다. 테세우드 공작의 권역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산의 건너편을 거쳐야 한다.
그곳에서 아리안에게 들은 흑안에 흑발을 지녔다는 사람들을 기다릴 요량이었다, 물론 중원에서 온 아버지와 숙부들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전음을 날린 흑야가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천하제일의 경공이라는 탄공류를 펼친 것이다.
혁련소의 아버지, 혁련천후가 창안한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속도를 발휘하는 무적의 경공술인데, 순간적으로는 하늘을 나는 와이번보다 더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혁련소도 재빨리 흑야의 뒤를 쫓았다.
그때였다.
“까악!”
어린아이의 비명이 숲속에서 울렸다. 뒤이어 비명을 닮은 목소리가 울렸다.
“깍! 넌 누구지? 누구냐고? 왜 마계의 힘을 지니고 있는 거야?”
‘뭐지?’
혁련소는 속도를 높였다.
숲을 헤치고 나서자 흑야의 뒷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 흑야를 향해 숨을 헐떡이는 카루가를 볼 수 있었다.
‘발록!’
혁련소는 순간 크게 놀랐다.
덩치는 작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발록과 흡사했다.
“마계의 전왕, 발록을 축소시켜 놓았군요.”
혁련소는 흑야의 곁으로 다가갔다. 흑야는 뽑아 들었던 검을 거두며 물었다.
“우릴 쫓은 이유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