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
<귀환무사 276화>
귀환무사 2부
51화
제1장 공작들 간의 전투
두두두!
레이나공주 일행과 헤어진 혁련천후 일행은 거의 매일을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꽤 먼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라이트 마법이 걸린 말에다 자신들의 내공까지 심었으니 그 속도와 지구력은 가히 상상 속의 유니콘에 필적할 만했다.
일행은 인구 수천의 소도시로 접어들었다.
낡은 옷가지와 이동에 필요한 소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선두는 써튼의 몫이었다.
그는 꽤 밝은 표정으로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동안 이동하면서 써튼은 혁련천후 일행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이라 여겼던 그들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그들이 살인을 하거나, 심지어 동물들을 죽이는 것조차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번에 걸쳐 검문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을 하인 대하듯 한 병사들을 해치지 않았다.
이들이 진짜 드래곤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진천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는 마법사라고 여겼다.
일행이 하나같이 강력한 이유도 그가 마법으로 힘을 심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종종 전설에 그러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확신했다.
아무튼 인간으로 여겨지자 써튼은 그들을 대함에 있어 조금씩 친밀감이 붙기 시작했다. 물론 북궁천소와 왕전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만약 생김새만으로 서열을 매긴다면 단연 둘은 대륙최강에 들 것이다.
써튼이 뒤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옷을 파는 상점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가시지요.”
“괜찮은 술집은 없냐?”
“당연히 있습지요. 저만 따라오십시오.”
왕전의 물음에 환하게 대답한 써튼은 일행들을 번잡한 중심 도로로 안내했다.
중소 도시였지만 중심지는 꽤 화려했다. 온갖 식당들과 술집이 오가는 행인들을 유혹하며 자리 잡고 있었는데, 왕전과 북궁천소의 눈길은 오직 술집을 향하고만 있었다.
도시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자 모두는 말에서 내려 걸어야만 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로 붐볐기 때문이다.
“이상하네? 원래 이렇게 붐비는 곳이 아닌데…….”
써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흑마법사 역시 같은 표정이다. 그때 써튼이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무슨 일이냐?”
그것을 본 조윤이 물었다. 황급히 몸을 돌린 써튼이 뒤로 돌아가라는 손짓을 하며 되돌아 걸었다.
“이 자식이! 무슨 일이냐니까?”
왕전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써튼을 험악하게 노려보았음에도 써튼은 연신 손짓을 하며 뒤로 미는 시늉까지 했다.
“테세우드 공작가의 기사들입니다.”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예? 그, 그게…….”
“그놈들이 왜?”
마법사가 말을 더듬으며 머뭇거리자 북궁천소의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그것을 본 써튼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체포령 때문입니다. 테세우드 공작께서 체포령을 내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담대소천이 희미하게 웃으며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왕전과 북궁천소를 말렸다.
“그만해. 우리를 걱정해서 그런 것 아니냐.”
혁련천후의 눈가에 슬쩍 이채가 떠올랐다. 그는 써튼과 흑마법사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뒤쪽을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둘에게 시선을 던지며 담담한 투로 물었다.
“우리를 걱정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 질문만을 기다렸다는 듯,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혁련천후는 말없이 둘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들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진심이었다.
써튼은 혹시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고개를 자라처럼 움츠렸다.
“우리가 저들보다 약하다고 보느냐?”
“절대 아닙니다!”
“그럼 왜 우릴 걱정해 주는 거지?”
“그냥…….”
써튼은 진심을 말하지 못했다.
이유는 물론 테세우드 공작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들이 비록 마법에 의해 순간순간 강력해지기는 하지만 테세우드 공작은 제국의 초인이다. 그의 가신과 적으로 돌아선다면 테세우드 공작과 적이 되는 것이다.
써튼은 그것을 염려한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간다.”
“어! 주공!”
왕전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혁련천후를 바라보았다.
담대소천과 조윤 등은 혁련천후의 속내를 짐작했는지 웃는 얼굴로 걸음을 돌렸다.
진천이 왕전과 북궁천소를 보며 얼른 돌아가자는 시늉까지 하자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행의 뒤를 따랐다.
* * *
탁!
술잔을 내려놓는 혁련천후의 손길이 유달리 경쾌하게 느껴졌다.
“이름이 뭐지?”
그는 마법사를 보며 물었다.
지금껏 모두는 그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묻지도 않았고, 또 알 필요도 없었던 까닭이다. 마법사는 여전히 그를 두려워했기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우드라고 합니다.”
“부르기 편한 이름이군.”
그가 술병을 들어 우드에게 내밀었다. 우드는 재빨리 두 손으로 술잔을 들고는 앞으로 내밀었다.
해적들이 즐겨 마신다는 지독한 럼주가 술잔에 가득 채워졌다.
“마셔.”
우드는 단숨에 그것을 마셔 버렸다.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장까지 짜릿하게 자극해 오자 우드는 그만 사레에 걸렸다.
“콜록! 컥!”
“마법사는 술도 잘해야지.”
조윤이 슬쩍 우드의 등을 손가락으로 툭 쳐 주자 거짓말처럼 사레가 사라졌다.
써튼도 술을 받고는 한입에 마셨다. 술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써튼이라 오히려 입맛을 다시다가 북궁천소의 도끼눈을 보고는 얼른 술잔을 내려놓았다.
담대소천이 둘에게 물었다.
“며칠 정도 남았느냐?”
“요즘 같은 속도로 간다면 칠 일 정도면 가능합니다.”
“흠! 제법 빨리 왔군. 야! 인마! 네 덕분이다.”
왕전이 우드를 보며 거칠게 말했다.
고맙다는 표현이었지만 우드에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협박성으로 들릴 뿐이었다.
그때 진천이 묘한 표정으로 우드를 쳐다보았다. 우드는 그가 자신을 그렇게 쳐다보자 내심 바짝 긴장했다. 여전히 우드는 모두가 두렵고 낯선 존재였다.
“왜 그랬지?”
진천의 뜬금없는 질문에 우드는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진천이 씩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이곳 대륙에 우리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건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몇 번에 걸쳐 검문이 있었지만 아무도 우리를 몰라보더군. 변장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
모두가 우드를 응시했다.
“가끔 묘한 기운이 육신을 감싼다는 기분을 느끼곤 했지. 그 기운 때문에 병사들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군. 물론 그 기운의 주인공은 당연히 너겠지?”
그 말에 써튼도 놀랍다는 표정으로 우드를 쳐다보았다.
조윤이 물었다.
“그것도 우리를 위해서 한 일이냐?”
“그렇습니다.”
“우린 네게 잘해 준 적이 없다. 더욱이 너와 같은 복장을 한 마법사라는 놈들을 싫어하는 것 또한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우리를 보호하려고 드는 거지?”
우드가 갑자기 독한 럼주를 잔에 붓더니 그대로 들이켰다. 얼굴이 시뻘게지면서도 다시 한 잔을 부어 더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처음엔 그냥 무섭기만 했습니다. 언제 우리를 죽일지 몰라, 매일 밤을 두려움에 떨면서 지냈습니다. 도망칠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러다 잡히면 당장 죽을 것 같아서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레이나 공주님과 동행할 때 숲속에서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말을 끊은 써튼이 혁련천후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는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우드가 말을 이었다.
“아드님 때문에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혁련천후가 고개를 들어 우드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게 왜 이유가 되는 것이냐?”
갑자기 싸늘하게 변한 혁련천후의 음성에 둘은 내심 당황했다. 주변에 광포한 기운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둘은 사색이 되었다.
대답은 써튼이 대신했다.
“우드 경도 몇 년 전에 아드님을 잃으셨습니다.”
“……!”
“국경 지역에 여행을 가셨다가 마침 그곳에 수련을 왔던 제국의 마법사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그때 그만 실수로 우드 경의 아드님이 마법에 휩쓸려 소멸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제국의 판관에게 마법사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시다가 저의 영지로 좌천되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와 인연이 되었고 지금껏 보잘것없는 제 영지에서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흑마법사가 될 필요도 없었고 지금쯤 홀베른 공국에서 귀족으로 사셨을 텐데…….”
“소멸이라면 죽은 것인가?”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우드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도 대답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섬광이 피어올랐다.
다시 주변 공기가 차갑게 식어 갔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은 느닷없는 공기 변화에 목을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마셔!”
우드는 그가 따른 술을 다시 마셨다.
한 잔, 두 잔으로 이어진 술잔은 다섯 잔째에 이르러 우드가 정신을 잃고 탁자에 고개를 박으면서 끝났다.
* * *
“으……!”
잠에서 깨어난 우드는 머리를 움켜쥐며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머리가 해머로 맞은 듯,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게다가 속은 독약을 마신 것처럼 뒤틀리고 쓰렸다.
모두가 어젯밤에 마신 술 때문이다.
덜컥!
문이 열리며 써튼이 들어섰다.
“죽을 맛이지요?”
“물, 물 좀…….”
“그럴 줄 알고 여기 마법으로 얼린 시원한 냉수를 가져왔지요.”
써튼이 은으로 만들어진 물 잔을 내밀었다.
우드를 대하는 써튼이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밤, 우드의 신분을 밝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우드가 써튼 영지의 일개 마법사로만 행동했었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복수를 위해 흑마법사로 돌아선 우드다.
그것이 알려지면 그는 모든 백마법사들의 적이 된다. 당연히 그 대가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흑과 백,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마법사의 세계에서 적을 살려 주는 아량이 마법사들에겐 전혀 없었다.
벌컥벌컥!
물을 마신 우드는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머리가 흔들리며 하늘이 빙빙 돌았기 때문이다. 써튼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니 술을 드시더니 마법도 잊어버리신 겁니까? 치료 마법 한 방이면 될 것을…….”
“응! 그렇지!”
우드가 벌떡 일어서며 손뼉을 쳤다.
팍!
우드의 전신에서 독한 주향이 수증기로 화해 뿜어졌다. 마법 치료의 효과는 대번에 두통과 메스꺼움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우드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며 써튼에게 물었다.
“그분들은 뭐 하시는가?”
우드의 말투도 바뀌었다.
“식당에 계십니다. 서두르세요.”
“얼른 가지!”
둘은 빠르게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약간의 물품을 구입하고는 다시 케논 산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우드가 전과는 다르게 제법 활기에 넘쳤다.
확연히 달라진 그의 모습에 모두는 가볍게 웃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