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75화 (273/425)

# 275

<귀환무사 275화>

귀환무사 2부

50화

게다가 자신의 조국, 요란 제국까지도 위험하게 될 수도 있었다.

베린스 공작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네 이름이 뭐지?”

가까이서 보니 고작 스물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럼없이 반말로 물어 온다.

베린스는 입을 열지 않았다.

“……!”

“카루가! 이 산의 왕이다!”

순간, 베린스 공작의 눈동자에 이채가 맺혔다.

“이곳은 드래곤, 아이아스의 레어가 있는 곳이다. 감히 왕을 자처하다니…….”

짧은 순간에 베린스 공작의 태도는 돌변했다.

강력했지만 그가 드래곤 아이아스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드래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어떤 사소한 것도 절대 진실만을 말하는 종족이 드래곤이다.

방금 자신이 드래곤으로 의심했던 존재는 자신의 이름을 아이아스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이아스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드래곤은 동족이 함께 살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드래곤일 가능성도 전무했다.

그것으로 베린스 공작은 움츠렸던 스스로를 추스르며 오러를 뿜었다.

“나를 죽이려고 하네? 내가 널 죽일 거야!”

베린스 공작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마나를 집중했다.

그리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허공에 뜬 카루가를 덮쳤다.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베린스 공작의 속도와 검에 실린 파괴력은 카루가도 흠칫하게 만들었다.

서걱!

허공을 벤 검이 쏟아 낸 힘의 몇 배를 담고서 베린스 공작의 육신에서 중심을 빼앗아 갔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중심을 바로잡은 그는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팔랑!

작은 천 조각이 폭우 속을 살랑거리며 흩날렸다.

“깍! 이, 이 나쁜 놈이…….”

허공에서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베린스 공작을 포함한 모두가 허공으로 고개를 들었다. 카루가가 웃던 얼굴이 아닌 지독히도 차갑게 굳어 버린 얼굴로 육신을 바르르 떨고 있었는데, 옷자락 끝부분이 잘려 나가고 보이지 않았다.

베린스 공작의 공격에 당한 것이다.

“카악!”

“으윽!”

카루가가 괴성을 터뜨리자 베린스 공작을 포함한 모두는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운 몸짓들을 했다. 그중 수준이 낮은 자는 코와 입에서 핏물을 흘려 내며 쓰러졌다.

화악!

허공에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으악!”

몇이 더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금발이 시뻘건 눈처럼 하얗게 변해 갔다. 크지 않았던 육신도 점점 크기를 더해 가며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불가사의한 광경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마나의 폭풍이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본진으로 퇴각하라!”

심각함을 깨달은 베린스 공작이 명령을 내리자 모두는 캐논 산맥의 초입지에 마련된 주둔지로 몸을 날렸다.

주인을 잃은 전마들이 소용돌이에 휩쓸려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며 비명을 질러 댔다.

베린스 공작은 몸을 날리는 와중에도 뒤를 돌아보았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전설에도, 그 어떤 것에도 지금과 같은 현상에 대해 나와 있는 것은 없었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경험하는 광경이었다.

그때 베린스 공작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저, 저것은……!”

“각하! 발록입니다!”

누군가 부르짖었다.

그랬다. 마계의 제왕이라 불리는 발록이 허공에 나타나 있었다.

부릅떠진 베린스 공작의 눈동자에 의문의 빛이 채워지기 시작한 것은 빛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부터였다.

“너무 작잖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분명 생김새는 발록의 모습, 그대롭니다!”

“으아! 쫓아옵니다!”

발록의 모습으로 변신한 존재가 허공을 가르며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모두는 전력을 다해 달렸다. 변신한 존재가 발록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은 살고 봐야 했다.

“마법 병단과 근위기사들은 각하를 보호해라!”

뒤늦게 합류한 소리아노가 소리쳤다.

마법사들이 뒤를 돌아보며 마법 공격을 펼쳤지만 근처에 가기도 전에 거대한 방어막에 막혀 소멸되어 버렸다. 놀라운 광경에 마법사들은 공격할 의지마저 잃어버렸다.

쾅!

“으악!”

채찍에서 뿜어진 불덩어리가 도주하던 기사들을 덮치자 불덩이에 휩싸인 기사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기사들이 용기를 내어 검을 휘둘렀지만 마법 공격과 마찬가지로 육신에 닿기도 전에 검이 가루로 변해 사라진다.

퍽!

채찍에 휘감긴 육신이 그대로 가루로 화해 사라지는 끔찍한 광경에 모두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깔깔! 모조리 죽이겠다!”

불붙은 채찍을 휘두르며 섬뜩한 눈동자를 오직 베린스 공작의 육신에 고정시킨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뒤를 쫓아 왔다. 조금 전의 어린아이와도 같았던 그가 아니었다.

악마의 화산처럼 전신을 백색으로 물들인 그는 화염을 두른 채찍을 휘둘렀다.

베린스 공작의 앞부분에 화염이 떨어졌다.

그러나 베린스 공작은 그대로 화염 속을 뚫고 질주했다. 그가 걸친 갑주는 최상위 마법 공격에도 끄떡없는 실드가 입혀진 것이기에 강렬한 화염에도 무사할 수 있었다.

둘의 간격이 점차 좁혀졌다.

“살아야 한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결코!”

베린스 공작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생각조차 못 해 본 그는 오직 살기 위해 마나를 다리에 모아 질주만을 거듭할 뿐이었다.

쾅!

“으악!”

뒤처진 기사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마법사들도 반 수 이상이 불길에 휩싸여 재로 흩어졌다. 그나마 사방으로 흩어졌기에 베린스 공작을 따르는 기사들을 제외한 다른 기사들은 무지막지한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쾅!

“우욱!”

베린스 공작을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던 기사 하나가 묵직한 비명을 지르며 행렬에서 떨어져 나갔다. 동료의 죽음에도 모두는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쏴아악!

채찍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드는 소리에 베린스 공작은 저절로 목을 움츠렸다.

돌아보면 속도가 떨어지기에 그는 채찍이 등에 작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서 질주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측을 호위하던 기사의 육신이 화염에 휩싸이며 멀어졌다.

“본진이 가까워졌다! 각하를 보호하라!”

마법 병단의 단장이 소리쳤다.

그러자 한 무리를 이루어 질주하던 모두의 주변에 뿌연 안개 같은 기운으로 둘러지기 시작했다. 마법사들 모두가 한꺼번에 마나를 발출한 것이다.

“응! 무슨 수작이지?”

카루가의 붉은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상당한 양의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때 공격사정권에 들어서던 그들이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시야에서 멀어지자 괴성을 터뜨린다.

“카악! 감히!”

지금껏 허공에서만 뒤를 쫓던 그가 바닥으로 내려섰다.

전신을 덮었던 화염은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지며 본모습이 드러났다. 적발에 붉은 눈동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생김새는 변신하기 전의 귀여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악마보다 더 무섭고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죽일 거야.”

전방을 싸늘하게 노려본 그가 바닥을 차고 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쾅!

* * *

캐논 산맥의 우측을 타고 흐르는 거대한 롱고리아 강은 요란 제국의 티아누스 고원에서 발원하여 대륙의 끝, 바다까지 이어진다.

두 개의 제국과 여덟 개의 공국을 가로지르는 그 강을 사람들은 여신의 심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강을 따라 수많은 문명들이 명멸해 갔기 때문이다.

“언제 봐도 대단한 곳입니다.”

“꽤 섬뜩한 곳이기도 하지.”

혁련소는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캐논 산맥의 웅장함에 경탄했다.

말을 버리고 배를 타고 강을 질러 온 그들은 곧 있으면 도착할 케논 산맥을 바라보며 옛 생각에 잠겼다.

연소민을 찾고자 명성을 얻으려 몬스터 토벌에 참여했었다.

그때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몬스터 토벌에 앞장섰다. 덕분에 흑안의 마검사란 호칭까지 얻게 되었지만 연소민은 결국 찾지 못했다.

둘은 삼 년 만에 다시 케논 산맥을 보자 감회에 사로잡혔다.

“정말 그분들이 맞을까요?”

“모르지.”

“우리가 먼저 도착한 것은 아닐까요? 테세우드 공작의 권역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몇 개월은 걸리는 거린데 말입니다.”

흑야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치우며 엉뚱한 말을 늘어놓았다.

“양 제국 간의 협상단이 그곳에서 협상을 한다고 들었는데, 요란 제국의 전투 부대가 케논 산맥에 먼저 들어섰다고 하더군. 자칫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야 뭐, 소문의 그 사람들만 확인하면 그뿐이 아닙니까? 솔직히 전쟁에 대한 걱정 따윈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혁련소의 다소 염세적인 대답에 흑야가 그를 돌아보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영지민들이다. 그래도 걱정되지 않는다니, 너답지 않군.”

혁련소가 쓴웃음을 지으며 흑야를 마주 보았다.

“그냥 속마음이 그렇단 말입니다.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만사를 제쳐 두고 영지로 달려가겠지요. 물론 아버지와 숙부들을 만난다면 달라지겠지만…….”

혁련소는 아련한 눈빛을 품고서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아련함에 흑야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앞부분이 뾰족하게 생긴 배는 매우 빠른 속도로 강을 타고 내려갔다. 선원들을 비롯한 몇몇 인물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곧 있으면 케논 산맥의 초입에 위치한 작은 포구에 다다른다.

그곳은 흉맹한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제법 이곳을 오갔던 선원들은 혹시 모를 몬스터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무기들을 챙겼다.

작은 선박치고는 트롤도 한 방에 보낸다는 거대한 화살인 자이언트 에로우까지 갖추고 있었다.

마침 선원들의 움직임을 흘긋 쳐다보던 흑야가 자이언트 에로우를 보고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빛냈다.

“후후! 저걸 맞을 몬스터가 있을까?”

“글쎄요, 움직임이 둔한 트롤이나 오우거는 충분히 맞힐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맞으면 그대로 즉사가 될 테니 꽤 든든한 무기죠. 물론 오우거는 제외겠지요. 그 두꺼운 가죽을 뚫어 내지는 못할 테니 말입니다.”

“끝 부분에 강기를 두른다면 오우거도 한 방에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하! 그거야 당연하죠. 하지만 저렇게 큰 화살에 강기를 어떻게 두른단 말입니까?”

“방법이야 찾아보면 있을 거다.”

혁련소가 눈을 반짝이며 흑야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무기에 관심을 보이시네요?”

“후후! 그냥 심심해서…….”

“숙부야 맨몸으로도 오우거를 보내지 않습니까? 어울리지 않습니다.”

혁련소의 그 같은 말에 배 위의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흑야를 쳐다보았다.

모두가 이상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거, 미쳐도 제대로 미친 작자들이군.”

“그러게, 오우거를 맨몸으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제국의 초인들이라면 모를까.”

“냅두게, 저렇게 객기를 부리다가 오우거는 고사하고 오크에게 잡혀 죽은 자들이 한둘인가. 쯧.”

속삭이는 음성들이 모조리 둘의 귓속으로 들렸다.

둘은 쓴웃음을 짓고는 이내 시선을 케논 산맥으로 던졌다.

흑야가 불쑥 중얼거렸다.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해 보곤 했다.”

“무슨…… 생각을 말입니까?”

“만약 이 세상에 드래곤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드래곤과 주공이 한판 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하고 말이다.”

“그거야 당연히…….”

흑야가 그를 돌아보았다. 둘이 서로를 향해 씩 웃었다.

둘의 생각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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