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74화 (272/425)

# 274

<귀환무사 274화>

귀환무사 2부

49화

“좌측에 오우거가 나타났다!”

쾅!

지축이 울리며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오우거가 기마병들의 좌측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이 없는 세상에선 최강의 육지 몬스터라 불리는 오우거가 출현하자 용맹했던 기사들도 얼굴이 굳어졌다.

오우거의 몸에 검을 먼저 쑤셔 넣느냐, 아니면 오우거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먼저 작렬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두두두두!

“밀어붙여!”

와아아아!

기병은 그대로 오크 부대를 덮쳤다.

베린스 공작과 소리아노, 그리고 일부 기사들만이 오우거의 주변을 맴돌며 공격 기회를 노렸다.

크아아!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침입자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새파란 오러를 품은 베린스 공작의 검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퍽!

“크오오!”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에 오우거는 피하지 못하고 가슴을 관통당하고 말았다.

녹색 선혈이 뿜어지며 거대한 동체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심장을 관통당한 것이다.

“접근하지 마라! 원거리 공격으로 놈들을 처치하라!”

베린스 공작이 다른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던 기사들은 일제히 오우거를 향해 검을 던졌다. 그러나 그들의 검은 베린스 공작과는 달리 오우거의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했다.

다만 깊숙이 박혀 들어 부상을 입혔을 뿐이다.

콰직!

오우거의 주먹이 기사 하나를 덮쳤다.

다행히 기사는 간발의 차이로 주먹을 피했지만 전마는 그러지 못했다.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던 전마가 핏덩어리가 되어 날아갔다.

가공할 파괴력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기사는 재빨리 베린스 공작의 주변으로 몸을 피했다. 살아남은 오우거의 몸짓은 그야말로 광란에 가까웠다.

무지막지한 공격이 이어졌다. 놀란 전마들이 앞발을 들어 피하기 급급하자 기사들은 말을 버리고 땅으로 내려섰다.

“비켜라!”

베린스가 기사들을 물리고는 앞으로 나섰다.

“감히 몬스터 따위가……!”

그는 그레이트 소드를 주 병으로 사용한다.

같은 그레이트 소드라도 베린스 공작은 훨씬 크고 무거운 것을 애용했다. 당연히 파괴력이 배가된다.

오우거의 붉은 눈동자가 베린스 공작에게로 돌아갔다.

크르르르…….

“일 검에 네놈을 죽여 주지.”

베린스 공작이 그대로 오우거를 향해 날아올랐다.

기사들은 숨죽여 베린스 공작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오우거가 양손으로 날아드는 베린스 공작의 육신을 잡아갔다. 잡힌다면 그대로 뼈가 으스러져 즉사를 면치 못한다.

그러나 베린스 공작은 요란 제국에서 최상위에 드는 강자였다.

오우거의 움직임보다 그의 검이 더 빨랐다.

서걱!

세상에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오러가 오우거의 목에 작렬하자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핏물이 베린스 공작을 덮쳤다.

“역시!”

“역시 공작 각하시다!”

기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막강한 오우거를 베린스 공작은 말처럼 단 일 검에 목을 벤 것이다.

“가죽을 수거하고 나머지는 싸움을 끝내라!”

“예! 각하!”

기사 몇이 죽은 오우거의 가죽을 벗기고 나머지는 오크부대와 전투 중인 부대에 합류했다. 인간 대 몬스터의 전투는 거의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끝났다.

“각하! 모두 죽였습니다!”

소리아노가 머리를 숙이며 보고했다.

그러나 베린스 공작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그는 죽은 기사들의 시신을 모아 놓은 곳으로 걸어갔다.

수천의 오크들을 죽인 대가로 그는 세 명의 수하를 잃었다.

압도적인 승리임에도 불구하고 베린스 공작은 굳은 얼굴로 죽은 자들을 응시했다.

자신을 믿고 따랐던 수하들의 시신 앞에서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 * *

쏴아아!

폭우가 쏟아졌다.

군단의 주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몬스터 토벌 작전을 벌인 베린스 공작과 그의 부대는 재빨리 임시 천막을 치고 폭우를 피해 몸을 숨겼다.

“각하! 주변의 모든 몬스터들이 죽거나 도주했습니다. 폭우가 그치면 곧바로 공병 부대를 불러 개간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아. 지금쯤이면 1군단도 그랜드 대평원에 들어섰을 것이다. 통신을 보내어 공병 부대를 먼저 보내 달라고 해.”

“예!”

소리아노가 군례를 취하고 마법 병단의 천막으로 갔다.

뜨거운 홍차 한 잔에 피로를 녹이던 베린스 공작은 야전침대에 몸을 뉘였다.

비록 본토의 침실만은 못했지만 등과 허리를 아늑하게 감싸드는 푹신함에 그는 이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동시에 그의 천막 주변은 마법실드로 둘러졌다.

언제나 베린스 공작은 잠을 잘 때 소음을 막아 주는 실드를 쳤다. 워낙 예민한 성격 탓에 약간의 소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 때문이다.

쏴아아!

번쩍!

쿠르릉!

천둥벼락이 연신 케논 산맥으로 떨어졌다.

“젠장맞을! 갑작스럽게 웬 폭우가 쏟아지고 난리야.”

통신을 보내고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온 소리아노는 하늘을 보며 인상을 썼다.

부관이 그에게 독한 럼주를 내밀었다. 언젠가 캐논 산맥 근처의 원주민을 몰아내고 얻은 전리품인 그것은 소리아노가 가장 즐겨 마시는 애주였다.

“리드! 마법결계는 확실히 쳐졌겠지?”

“두 번에 걸쳐 확인했으니 염려 마십시오!”

“너도 한잔 마셔.”

소리아노와 그의 부관 리드는 술잔을 주고받으며 대번에 한 병을 비웠다.

술맛이 돈 소리아노가 하나를 더 가져오라고 지시하자 리드는 보급 천막으로 가기 위해 천막을 나섰다.

그때였다.

지이잉!

삼천 기병의 주둔지를 두른 결계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가장 먼저 마법 병단 소속의 마법사들이 천막 밖으로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냐?”

“결계에서 경고음이 들렸습니다! 당장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하위 마법사가 소리가 들려온 지역으로 몸을 날렸다. 베린스 공작의 휘하에서 마법 병단장을 맡고 있는 코넬이 뒤이어 밖으로 나섰다.

“경고성이 미약했다. 몬스터가 결계에 걸려든 것은 아니냐?”

“지금 알아보러 사람을 보냈으니 곧 소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단장님!”

“혹시 모르니 너희들은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각별히 유의하여라.”

코넬은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소리아노가 검을 든 채로 마법 병단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술 냄새가 주변을 진동했다.

마법사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소리아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냐!”

“몬스터가 결계에 걸려든 것 같습니다.”

“몬스터가? 결계엔 어지간한 상위 몬스터들도 함부로 다가서지 못할 힘이 쳐져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몬스터가 걸려들었단 말이냐?”

소리아노가 따지듯 묻자 마법사들은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하극상에 가까운 모습이다.

유달리 키가 작은 마법사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사람을 보냈으니 그만 들어가서 술이나 드시지요. 이곳은 저희들이 처리하겠습니다.”

다분히 비꼬는 어조였지만 소리아노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좋아!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연락해라.”

소리아노가 질퍽이며 천막으로 돌아가자 마법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소리아노에 대한 것들이었다.

“낙하산 주제에…….”

“어쩌겠나. 공작 각하의 인척이니 더러워도 우리가 참아야지.”

평소 마법사들을 존중하지 않는 소리아노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은 그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어, 어!”

그때 누군가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이봐! 왜 그래?”

“저, 저기……!”

모두의 고개가 한곳으로 돌아갔다.

순간 모든 마법사들의 눈이 찢어질듯 크게 떠졌다. 그들의 시선은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 허공에 둥실둥실 몸을 띄운 채, 마법사들을 내려다보는 존재가 있었다.

사람이 허공에 몸을 띄운 것으로 마법사들이 이렇게 놀라지는 않는다.

철퍽!

마법사들의 발치로 무엇인가가 떨어져 흙탕물을 튕겼다.

사람의 머리였다. 바로 조금 전, 결계의 이상을 알아보러 갔던 그 마법사의 것이었다.

목이 잘렸지만 잘린 부위엔 핏방울 하나의 흔적도 없었다.

“깍! 나쁜 놈들!”

허공에 뜬 존재의 입에서 기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화려한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그는 상당히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양어깨가 불룩하게 솟아 있는 상의에 몸에 착 달라붙은 가죽 소재의 하의는 대륙에선 이용되지 않는 양식이었다.

그림책에서나 볼 법한 뛰어난 용모는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눈부셨지만,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보는 이의 전율을 불러 일으켰다.

“누, 누구냐!”

“카루가!”

“카루가? 그게 뭐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에 기사들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의구심을 가졌다.

펑!

허공에서 폭죽이 터졌다.

신호탄이었다. 누군가가 쏘아 올린 것이다.

“저놈이 대장이지? 저 못생긴 놈이 대장 맞지?”

금발 존재가 우측으로 시선을 던지며 어린아이처럼 따지며 물었다.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오싹한 기운이 주변을 몰아쳤다. 마법사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무슨 일이냐!”

신호탄을 듣고 달려온 베린스 공작은 매우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마법사들을 향해 던지듯 물었다.

마법사들의 눈짓에 베린스 공작은 이내 금발 존재가 떠 있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헉!”

베린스 공작은 순간, 육신에서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착각을 일으켰다.

[흥! 꽤 뛰어난 육신을 지니고 있구나. 미약한 인간 주제에…….]

공명이 베린스 공작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챙!

“이놈!”

베린스 공작이 검을 뽑아 들며 노기를 드러냈다. 마법사들과 근위기사들도 일제히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감히! 위대하신 존재의 흉내를 내다니!”

“위대하신 존재? 그게 뭐지? 혹시 드래곤을 말하는 거야? 깍! 그 우스꽝스럽게 생겨 먹은 파충류와 내가 닮았단 말이야!”

길길이 날뛰는 그를 보며 베린스 공작은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에 비해 하는 행동은 어린아이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닥쳐라! 놈을 공격하라!”

베린스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법사들이 일제히 손을 위로 뻗었다. 강대한 기운이 허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내려다보는 눈빛엔 조금의 긴장조차도 없었다.

“깍! 나쁜 놈들 모조리 죽일 거야!”

쩌어엉!

마법사들이 퍼부은 힘들이 금발 존재의 주변에서 기괴한 소리를 내며 소멸되었다. 동시에 무지막지한 반탄력이 마법사들을 덮쳤다.

“우악!”

반탄력에 휩쓸린 마법사들이 낙엽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베린스 공작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거느리고 온 마법사들은 최고는 아니지만 5서클에 근접한 자가 둘에다, 대부분이 4서클의 경지를 밟은 상위 마법사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저, 정말 드래곤이라도 된단 말인가?’

베린스는 이곳에 드래곤, 아이아스의 레어가 있다는 전설을 떠올렸다.

만약 저 허공에 뜬 존재가 아니아스라면 자신과 일만 여단 병력은 몰살을 당할 것이다.

“깍! 더 덤벼 보시지.”

금발 존재가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베린스 공작은 순간 갈등했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에 자신이 검으로 그를 베고자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거리였다. 그러나 그가 만약 폴리모프한 드래곤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물론 오러를 품은 검이 드래곤의 몸에 작렬한다면 드래곤도 죽을 수밖에 없다. 드래곤도 분명 뼈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니까.

그러나 실패한다면, 단 일 검에 죽이지 못하면 결과는 자신을 포함한 전병력이 몰살당하는 것으로 이어질 게 분명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