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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72화 (270/425)

# 272

<귀환무사 272화>

귀환무사 2부

47화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군, 베린스.”

“중간에 몬스터들을 토벌하느라 하루가 지체되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흠! 그랬군. 어떤가? 그곳을 직접 보니…….”

“폐하의 명대로 제국의 1군단을 이곳에 상주시킨다면 천하요새로 거듭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드옵니다! 서둘러 요새를 짓고 1군단을 이곳으로 이동시키겠습니다!”

막스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후후! 조만간 놈들에게도 소식이 들어갈 것이다.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베린스!”

“폐하의 명을 가슴에 새겨 두었습니다!”

“후후! 좋아. 그대만 믿고 있겠다, 베린스!”

팍!

통신석이 빛을 거두자 황제, 막스의 영상도 사라졌다.

보이지도 않는 황제에게 군례를 한 베린스는 다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법사가 그를 따랐다.

“만약 놈들이 소식을 접하고 대군을 몰아온다면 1군단이 올 때까지 우리가 막아야 한다. 하니 결계를 보다 강력하게 설치해야 한다. 알겠느냐?”

“지금 레이나 공주가 이곳으로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협상을 하기도 전에 설마 군사를 일으킬까요?”

“그들은 우리 측 협상단만 이곳에 오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만의 병력이 들어온 것을 안다면 테세우드, 놈이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놈이 병력을 끌고 온다면 우리로선 더 좋은 경우가 되겠지.”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일단 병사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 배불리 먹이도록 해. 나는 좀 씻어야겠다.”

“준비하겠습니다. 각하!”

“자네들도 오늘 만큼은 즐기라고. 알겠나?”

“감사합니다.”

베린스가 자신의 군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양이 서쪽으로 조금씩 떨어지는 시간이 되자 군사들은 솥을 걸고 불을 피워 본격적인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 * *

속이 답답해서 마차 위에 올라앉은 레이나 공주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불었지만 그녀의 답답한 가슴은 풀리지 않았다. 행렬의 뒤쪽에서 이동 중인 진천과 사공진무는 그녀의 폭발적인 아름다움에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화려한 금발에 새하얀 피부, 보석처럼 빛나는 벽안은 중원의 미녀들과는 색다른 아름다움을 풍겼다.

“죽인다.”

“그래, 죽인다.”

“저 정도면 큰 주모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지 않냐?”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화려하기로는 저 공주라는 여인이 한 수 위겠지만…….”

다른 존재들은 둘을 보며 혀를 찼다.

“침 좀 닦고 봐라, 자식들아!”

“흐흐! 거시기가 불끈 달아오르는 모양이군.”

“하하!”

그들을 바라보는 써튼과 흑마법사는 거의 기절 일보 직전까지 간 기색이다.

저렇게 큰소리로 말을 한다면 공주와 헤론 후작의 귀에 들릴 것이다. 당연히 헤론 후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데, 둘은 다름 아닌 헤론 후작을 걱정했다.

어쩌면 제국의 공주와 충신이 객사를 할 지경에 놓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둘의 걱정과는 달리 헤론 후작은 이들의 말을 듣지 못하는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주변을 살피며 경계를 하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헤론 후작님 정도면 충분히 들었을 거린데……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써튼을 보며 북궁천소가 험악하게 웃었다.

“왜 걱정되냐?”

“예? 무, 무엇이 말입니까?”

“우리가 떠드는 소릴 저 털북숭이가 들을까 봐 말이다.”

“헉!”

속내를 들킨 써튼은 기겁을 했다.

“넌 앞으로 우리랑 계속 다니려면 그 간덩이부터 키워야 해. 주공의 길잡이라면 적어도 호랑이 아가리에 대가릴 밀어 넣을 정도는 되어야지, 잘 봐라.”

북궁천소가 고개를 돌리더니 느닷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공주야! 이놈들이 널보고 껄떡거린다!”

“으아…….”

써튼은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는 숨을 죽이고 공주와 헤론 후작의 다음 행동을 예상했다.

보나마나 칼부림이 날 거다. 흑마법사와 써튼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죽을상을 했다.

그때 흑마법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 그냥 가시는데요?”

“그러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둘은 도무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방금 북궁천소가 지른 소리는 이백 미르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장난치니 재밌냐? 이 무식한 놈아!”

왕전이 북궁천소를 보며 혀를 찬다. 담대소천과 다른 이들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조윤이 써튼과 흑마법사를 향해 손가락을 슬쩍 움직였다.

순간 둘은 주변이 완벽하게 진공 상태로 변해 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귀가 멍해지면서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자신을 보며 껄껄 웃는 북궁천소의 웃음도 들리지 않는다.

팟!

“이제 알겠냐?”

갑자기 북궁천소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렸다.

그들은 지금 호신강기로 주변을 차단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헤론 후작이 들을 리가 없었다.

써튼은 여전히 영문을 몰라 눈동자를 굴리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흑마법사는 상황을 이해했다.

‘대단한 마나의 소모를 필요로 하는 공간 차단을 이렇듯 간단하게 시전하다니…… 정말, 이분들은 드래곤이란 말인가?’

마법사의 기준으로 본다면 방금 조윤이 펼쳤던 수법은 5클래스에 이른 자들만이 가능한 경지였다. 하물며 방금은 공주의 주변까지 그 범위가 뻗친 듯했으니 마법사는 놀람을 넘어 경이로움마저 들었다.

장난을 중단한 일행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주변 경관을 살폈다.

제법 울창한 수림이 그들의 이동 방향 앞에 나타났다. 헤론 후작이 손을 들어 행렬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기사 둘을 뽑아 숲속으로 정찰을 보냈다.

“잠시 저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린다!”

기사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공주도 마차에서 내려 주변의 바위에 앉아 시녀가 건넨 음료를 마셨다.

진천과 사공진무의 눈동자는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마침 뒤쪽을 돌아보던 레이나 공주의 시선과 혁련천후의 시선이 부딪혔다.

레이나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혁련천후는 무심한 눈길로 그녀를 흘긋 보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마침 시녀가 그 모습을 보고는 눈썹이 하늘로 올라갔다.

“저런 무례한 작자를 보았나! 감히 마마의 시선을 저리도 무례하게 외면하다니.”

별걸 다 무례하단다.

레이나 공주가 시녀를 나무랐다.

“그만해. 난 괜찮으니까.”

“공주님!”

“그만두라니까!”

레이나 공주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자 시녀는 고개를 조아리며 그녀의 뒤쪽에 공손히 시립했다.

혁련천후를 다시 슬쩍 돌아본 그녀는 이내 시선을 전방의 숲으로 돌렸다.

제9장 아리안의 이어지는 꿈

“솔직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지금 저 공주라는 여인의 표정을 보면 일부러 마차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제국에 있다는 상위 마법사의 텔레포트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냥 간단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일부러 고생길을 택하다니 말입니다.”

조윤의 말에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조윤이 혁련천후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우리만 이동한다면 훨씬 빠르게 그곳에 이를 수 있습니다.”

“됐어, 그냥 이렇게 가.”

모두가 다소 의아한 시선으로 혁련천후를 바라보았다. 그 누구보다 절실한 그가 이렇듯 여유를 보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이 소와 흑야가 아닐 수도 있다.”

“……!”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흑야와 소가 아니라면 우린 상당한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최대한 빨리, 많이 익혀 두는 것이 좋아. 그러니 더 이상 그것에 대한 의문 따윈 품지 말도록 해.”

[주공의 말씀대로 해. 누구보다 초조하신 분이 그분이니까. 우리가 서두르는 모습을 보여 줘선 곤란하겠지.]

조윤이 모두에게 전음으로 그같이 전했다.

푸르륵!

그가 탄 말이 거친 투레질을 한다. 고삐를 당겨 말을 진정시킨 혁련천후가 말을 이었다. 꽤 단호한 어조였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둘을 찾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이 세상에 없다면 다른 세상을 뒤져서라도 찾을 것이다.”

조윤을 비롯한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흐흐! 알겠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언제나 이럴 때 나서는 것이 북궁천소다.

그는 다른 존재들을 돌아보며 눈을 부라린 후, 혁련천후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앞장서서 이동하던 헤론 후작이 다시 뒤를 돌아본다.

조금 전, 혁련천후가 발산했던 기운 때문이다.

“새끼! 생긴 것과는 달리 꽤 예민한 놈이군.”

“그러게, 너하곤 다른데?”

“뭐야! 이 새끼가…….”

북궁천소와 왕전이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린다. 지켜보던 써튼과 흑마법사만 괜히 두려움에 몸을 떤다.

그때 갑자기 마차가 멈추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기사들과 혁련천후 일행도 걸음을 멈추었다. 조윤이 써튼을 보며 말했다.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써튼은 달리고 있었다.

“넵!”

* * *

헤론 후작은 통신구를 응시하며 얼굴 근육을 실룩거렸다.

[그러니까, 이동을 잠시 멈추고 우리가 그곳까지 갈 동안 기다리란 말이다!]

“너무 긴 시간입니다.”

[헤론! 명을 어길 셈이냐?]

“황제 폐하의 명은 공주마마를 그곳까지 모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신, 헤론은 황명을 받들 뿐입니다.”

헤론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헤론! 놈들이 그곳에 전투 부대를 파병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만약 공주께서 놈들에게 인질로 잡히기라도 한다면 네가 책임지겠느냐! 그리고 이런 상황에선 본 공작이 제국의 지휘권을 갖는다는 것을 잊었더냐!]

“……!”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근처의 적당한 도시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어라! 본 공작이 부대를 이끌고 그곳에 도착하면 통신을 넣겠다. 가볍게 행동하지 말고 무조건 본 공작과 함께 케논 산맥으로 가야 할 것이다! 헤론!]

“공주마마의 의견을 들어 본 후, 보고 드리겠습니다.”

헤론은 통신석을 향해 가볍게 허리를 굽힌 후, 통신을 꺼버렸다. 그때 레이나 공주가 그에게도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요?”

“케논 산맥에 요란 제국의 전투 부대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전투 부대라뇨? 협상단이 아니고, 전투 부대가 들어왔다는 말인가요?”

레이나 공주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헤론이 머리를 조아린다.

“테세우드 공작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테세우드가 거론되자 그녀는 눈빛이 달라졌다. 대번에 차갑게 굳은 그녀가 다시 물었다.

“다른 말은요?”

“공작께서 부대를 이끌고 케논 산맥으로 가시겠답니다. 하오니 부대와 합류할 때까지 이동을 멈추고 기다리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레이나 공주의 고운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발끈하여 뭐라 말을 쏟아 낼 것만 같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발로 바닥을 한번 굴렀다.

“어쩔 수 없지요. 전투 부대가 들어왔다면 협상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하니…….”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마마!”

“그럼요, 희망을 버리진 않아요. 다만 이런 상황이라면 테세우드 공작이 제국의 지휘권을 갖는다는 것쯤은 저도 알아요. 그러니 따를 수밖에요.”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복잡한 빛이 떠올랐다.

분노와 안타까움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헤론 후작은 그런 그녀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자책도 헤론 후작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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