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71화 (269/425)

# 271

<귀환무사 271화>

귀환무사 2부

46화

* * *

캬오오!

괴수의 울부짖음이 주변을 진동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불줄기들.

현장에 들어선 모두는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새의 형상에 크게 놀랐다.

“환장하겠군. 저건 또 뭐냐?”

“저게 드래곤이 아닐까?”

불줄기는 괴조가 뿜어내고 있었는데, 마법사들이 한 데에 모여 불줄기가 마차로 떨어지는 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아 내고 있었다.

한참을 떨어진 일행들의 얼굴까지 뜨겁게 달구는 강력한 불줄기가 마차 주변에서 그대로 흩어졌다.

콰광!

거대한 방어막이 불길을 튕겨 냈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마차는 심하게 흔들렸다.

당장에라도 넘어질 듯 위태해 보였다.

헤론 후작이 검을 뽑아 들고 푸른색 기운을 줄기줄기 괴조를 향해 뿜어냈다. 그러나 워낙 빠르게 움직이는 탓에 번번이 빗나가고 말았다.

“모두 일제히 놈에게 오러를 퍼부어라!”

헤론 후작이 고함을 지르며 거대한 괴조가 움직이는 동선을 가리켰다.

허공에서 한 바퀴 선회한 괴조는 다시 그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일행들은 눈에 내공을 끌어올려 새의 형상을 살폈다. 붉은 눈동자를 번득이는 새는 거대한 날개와 코끼리도 대번에 낚아챌 듯, 엄청난 발톱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실로 엄청났다.

“엄청나다.”

“칼로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주공이라면 단칼에 목을 베실 수 있을 거다.”

어지간한 왕전이 다 놀란 모습이다. 크기로 보아 중원의 전설에나 나오는 봉황 정도는 되어 보였다.

캬오오!

시뻘건 불줄기가 이번엔 말들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말들을 보호하라!”

헤론 후작의 다급한 음성에 마법사들이 황급히 손을 그곳으로 뻗었다. 그러나 워낙 창졸지간에 벌이진 일이라 화염의 일부가 말들에게 떨어졌다.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오르며 죽어 갔다. 한 번의 공격에 여섯 마리가 시커멓게 탄 채로 쓰러졌다. 가공할 위력에 모두는 혀를 내둘렀다.

“도울까요?”

사공진무가 물었다.

“괜히 힘을 보였다간 귀찮아져.”

“위험한 듯 보입니다만…….”

“저자들, 저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자들이다. 지금은 당황해서 그러니 그냥 지켜보도록 해.”

혁련천후는 담담했다.

대도를 손에 쥐었던 북궁천소와 왕전이 입맛을 다시며 눈길을 거대한 괴조에게 돌렸다.

헤론 후작의 검이 시퍼런 불길을 토해 내며 지상으로 다가온 괴조의 다리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 빠르기와 파괴력이 대단했는지 모두가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캬오!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던 거대한 새의 동체가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 와중에 날개에 부딪힌 말 한 마리가 피를 뿌리며 엄청난 거리로 날아갔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괴력이었다.

“와이번이 도망갑니다! 후작님!”

기사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과연 거대한 괴조, 와이번은 그대로 시커먼 하늘 속으로 사라져 갔다. 헤론 후작이 재빨리 마차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공주와 시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괜찮으십니까? 마마!”

“괜찮아요, 후작께서는 괜찮으신가요?”

“경호를 소홀히 한 점, 죄송합니다!”

헤론 후작의 얼굴엔 진심으로 걱정하는 빛이 다분했다.

제아무리 공주라도 후작의 신분을 지닌 헤론이 보일 태도를 넘어선 공경스러운 모습에 모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세상에서의 견문이 소꼬리만큼 짧았지만 후작이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는 들어서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대단한 충신이군.”

“그러게, 중원에서도 저 정도의 인물은 없는데 말이지.”

모두가 헤론 후작의 태도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헤론 후작을 바라보는 혁련천후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가 사라진다. 진심으로 충성하는 자의 마음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문득 그는 옆의 수하들과 흑야를 떠올렸다.

‘저 여인도 나만큼 좋은 사람을 두었군.’

저절로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린다. 그는 수하들을 돌아봤다. 재밌는 일에 끼어들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그들을 보며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아쉽군, 모처럼 재밌는 일이 벌어졌는데 말이야.”

“케논 산맥에 가면 많다니까, 참자.”

“그러지.”

* * *

어수선했던 장내가 빠르게 수습되었다.

헤론 후작은 이내 떠날 것을 결심한 듯 기사들에게 짐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고는 혁련천후 일행들에게 다가왔다.

“다친 자들은 없는가?”

마침 뒤늦게 잠을 깨고 온 써튼이 허리를 굽혔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다행이군, 서둘러 출발할 것이니 그대들도 준비를 하여라.”

헤론 후작이 돌아가자 써튼은 혁련천후를 쳐다봤다. 물론 그의 지시가 떨어져야만 움직이는 써튼이다.

“말들을 데려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써튼과 마법사가 빠르게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둘이 말들을 끌고 오자 모두는 말 위로 몸을 싣고는 마차의 뒤를 따랐다.

“지금 몇 시쯤 되었지?”

혁련천후의 물음에 써튼이 빠르게 대답했다.

“곧 있으면 동이 틀 시간입니다.”

“별자리가 확실히 중원과는 다르군.”

별자리가 완전히 다른 탓에 시간을 추측할 수가 없었다.

문득 자신이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자 씁쓸함이 밀려온다. 앞서 이동하던 마법사들이 힐끗 뒤를 돌아본다.

그들은 진천과 사공진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이내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혁련천후는 마법사들의 몸을 날카롭게 살폈다.

‘확실히 현묘한 뭔가가 몸속을 흐르고 있어.’

종류를 알 수 없는 기운이 마법사들에게서 느껴졌다.

아들을 데리고 간 자의 영상이 새삼 떠오른다.

그와 눈앞의 마법사들이 교차되며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순간 살심이 생겨나며 그의 눈동자에 새파란 광망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잘못되었다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불길한 생각은 머리를 흔들어 떨쳐 냈다. 무조건 살아 있어야 하며 무조건 자신과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의 모든 마법사들을 죽여서라도 데려간 놈을 찾겠다!’

살심이 분노로 바뀌었다.

심호흡을 한 그의 눈동자가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헤론 후작이 뒤를 돌아보며 의아함을 담은 눈동자를 일행들에게 던지더니 고개를 갸웃하고는 머리를 돌리는 모습이 보인다.

혁련천후가 순간적으로 보였던 기운을 느낀 모양이다. 마법사들도 다시 뒤를 돌아본다. 그들은 여전히 진천과 사공진무를 흘긋거렸다.

“뭘 보니, 자식들아!”

사공진무가 환하게 웃으며 중원어로 욕설을 퍼부었다.

진천도 손을 흔들어 주자 슬쩍 노기를 드러낸 마법사가 동료의 만류로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마법사들에게 둘의 행동은 천한 시민들이나 하는 경박한 행동으로 보였다.

작위를 받은 귀족들이니 그러한 반응은 당연했다.

하지만 내색을 할 순 없었다.

행동만 가지고 뭐라 할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 * *

거대한 산의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하늘을 향해 그 머리를 내밀고 있다.

만년설이 두른 산의 정상은 생명체의 접근을 불허하며 하늘과 그 높이를 겨루고 있다.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온통 숲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넓이가 어지간한 공국의 영토보다 넓었으며, 거대한 강이 숲의 가운데를 오만하게 가르며 그 고고함을 뽐내고 있었다.

캬오!

거대한 와이번들이 하늘을 선회하며 울부짖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이곳이 자신의 왕국임을 숲의 모든 생물에게 경고하듯 보인다.

두 마리의 와이번은 왕국을 둘러보는 제왕의 그것처럼 오만하고 위압적인 모습이다.

그런 와이번들의 시선이 산맥의 북쪽을 향하더니 이내 그곳으로 빛살처럼 날아가며 모습을 감추었다.

와이번이 사라져 간 방향, 그곳에 붉은색 갑옷을 걸친 상당수의 병력이 숲 가운데를 흐르는 강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어림잡아 일만은 되어 보이는 병력들은 마치 거대한 뱀이 움직이듯 했다.

푸르륵!

전마들이 숲을 보며 두려움에 찬 몸짓들을 한다.

먹이 사슬의 상위에서 군림하는 맹수들과 몬스터의 기운을 느낀 것일까? 숲의 가운데로 들어갈수록 전마들은 현저하게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었다.

선두에서 이동하던 자의 곁으로 날카로운 눈매의 기사가 빠르게 다가왔다.

“각하! 아무래도 더 이상의 진입은 힘들 듯합니다. 이 부근에 군영을 차리고 상주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흠! 그러지.”

기사가 허리를 굽히고는 로브를 걸친 자들을 쳐다봤다. 그중 하나가 뒤를 돌아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전군! 멈추어라!”

가볍게 속삭인 그 말이 공간을 타고 일만의 병사들 모두에게 전해졌다.

대지가 울리며 군의 이동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 하나하나의 눈빛이 살벌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보아 특수한 훈련을 받은 군인들로 여겨졌다.

“마법사들은 몬스터의 접근을 막아 줄 결계를 서둘러 설치하고, 나머지는 사단의 마법진에 따라 군막을 설치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일만의 군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각하라 불린 자가 다소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살폈다. 태양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황금색 갑주에 그레이트 소드를 허리에 찬 그는 옆에 선 기사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이곳이 본 요란 제국의 번영을 천년만년 동안 이어지게 할 것이다. 이 풍요로운 대지를 보라. 이곳의 풍요로움이 고스란히 제국의 것이 된다면 본 제국은 그 어떤 제국보다 강력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옆의 기사는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내민 그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곳은 드래곤, 아이아스의 전설이 깃든 성지이니 네 발 달린 짐승의 피로 제를 올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각하!”

“하하! 소리아노! 산맥의 공기를 흠뻑 취해 본 뒤에 제를 올리자꾸나. 나, 베린스가 캐논 산맥의 지배자가 되려고 첫발을 디딘 날이다. 오늘은 병사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 배불리 먹이고 흥겹게 놀게 하라!”

“예! 각하!”

소리아노가 군례를 취하고는 빠르게 밑으로 내려갔다.

“흠! 과연 몬스터의 왕국이라는 별명이 걸맞군. 숲 전체가 이토록 완벽하게 보전되어 있었다니……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베린스의 눈동자가 야망으로 번들거렸다.

그때 그의 옆으로 로브를 걸친 마법사 하나가 다가왔다.

“공작 각하! 폐하께서 통신을 보내셨습니다!”

“뭣이? 폐하께서?”

“저를 따라오십시오!”

베린스는 서둘러 마법사의 뒤를 쫓았다.

진의 정 가운데 마련된 군막 안으로 들어간 베린스는 성인 남자의 얼굴 크기만 한 구슬 앞에 섰다.

구슬 안에는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르고 머리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관을 쓴 인물이 나타나 있었다.

요란 제국의 12대 황제인 칼 드베인 막스가 그였다.

“충!”

베린스가 군례를 올리자 통신석 안에서 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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