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70화 (268/425)

# 270

<귀환무사 270화>

귀환무사 2부

45화

‘저건 분명 상위 클래스의 마법이었다. 설마 마스터가 마법까지…….’

그가 놀란 이유는 그것이었다.

검으로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자가 마법까지 상위 클래스에 들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고 봐야 했다.

마법이란 평생을 수련해도 그 끝을 볼 수 없는 무척 어렵고 난해한 분야다. 하물며 검과 그것을 동시에 수련하기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고 또, 지금껏 그런 인물도 없었다.

‘역시 세상은 넓구나.’

마법에 막연한 동경심을 지니고 있던 그는 자신의 능력을 돌아보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가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 때, 이동하던 마차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헤론 후작이 손을 들어 모두의 이동을 멈추게 하고는 마차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마차의 창을 통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더니 이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할 것이다. 마마께서 묵으실 장소를 마련하고 기사들은 식사를 준비하라! 그리고 마법사들은 몬스터들의 접근을 차단할 결계를 설치하고 주변을 살펴라!”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색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이 가장 먼저 좌우로 흩어지더니 두 손을 올리고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뿌연 안개 같은 기운이 스멀거리며 생겨나더니 주변을 두르기 시작했다.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흑마법사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역시 황실의 마법사들은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감히 자신이 꿈꿀 수 없는 경지를 그들이 보여 주고 있었다.

사실 그는 지금 자신의 마나를 최대한 은폐하고 있었다. 자신은 흑마법계열의 마법을 익히고 있다. 자칫 그 기운이 저들에게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자신은 죽은 목숨이다.

백마법사들은 흑마법사를 무척 싫어한다. 이단아들이라 생각하며 죽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봐! 남작!”

헤론 후작이 써튼을 불렀다. 써튼이 재빨리 그에게로 달려갔다. 아직 공주는 마차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혹시 저놈들 중에서 텔레포트를 시전할 실력이 되는 놈이 있지 않을까?”

왕전이 결계를 두르고 돌아오는 마법사들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조윤이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런 실력이 된다면 왜 이 고생을 하겠나. 쓱싹 가 버리면 될 것을…….”

“혹시 아냐? 공주라는 계집이 그냥 유람을 하며 가자고 했는지.”

“그럴 수도 있겠군. 주공! 놈들에게 물어볼까요?”

왕전이 대뜸 혁련천후를 보며 물었다. 역시 최강의 단순파가 왕전과 북궁천소다. 둘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여기서 고개만 까닥이면 그는 곧장 마법사들에게 달려가 협박을 할 것이다. 그걸 아는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강제로 물어볼 순 없다. 기다려 봐.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주공! 너무 느긋해지신 것 같습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듣고만 있던 진천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 온다. 혁력천후가 고개를 저었다.

“어제 써튼의 말을 들어 보니 그 흑안의 마검사들이 소와 흑야임을 확신하지 못하겠더군. 마족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녔다고 하니 어쩌면 그들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겠지. 느낌이다만, 어쩌면 그들을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으니 가급적 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고, 겪어 보는 게 좋겠지.”

“정보라시면 그냥 적당한 놈을 때려잡아서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훨씬 빠를 듯싶습니다만…….”

북궁천소가 그다운 말을 한다.

“경험이 강제로 얻어지더냐? 조바심을 버려!”

“쩝!”

그의 어조가 단호함을 느낀 모두는 입맛을 다시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써튼이 돌아왔다. 그는 무서운 존재들의 주인 노릇을 하려니 내심 두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들에게 전하기 두려운 말을 건네야만 한다.

“저, 저희들더러 주변 경계를 좀 보라고 하십니다.”

써튼이 잔뜩 두려움에 찬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말을 건네면서도 자신들에게 경계를 서라고 한 것에 대한 노여움을 보이지 않을까, 써튼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왕전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고리눈으로 바뀌었다.

“흐흐! 우리 보고 경계를 서라고 했단 말이지? 저 비실비실한 새끼가…….”

“주공! 그냥 공주고 나발이고 몽땅 때려잡고 갈 길을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저 허약한 새끼부터 주둥아리를 작살내야겠습니다.”

중원에서보다 더 불같은 성격을 둘은 항상 보여 준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에라도 헤론 후작을 작살내려고 들 듯 으르렁거렸다.

북궁천소가 몸을 움직이려 하자 써튼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그는 오직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혁련천후만을 쳐다보았다.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사건이 터지느냐, 마느냐가 달린 것이다. 혁련천후는 잠시 헤론 후작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가 우측의 숲속을 눈빛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경계를 선다고 여길 것이니 모두들 저리로 간다.”

“주공!”

불만에 가득 찬 눈빛을 주는 모두와는 달리 써튼과 마법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칫했으면 제국의 공주와 헤론 후작이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일행들은 마지못해 경계를 서겠다고 전하고는 숲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장작불을 피워 놓고 끼니를 해결한 공주 일행은 달이 하늘의 가운데로 떠오를 즈음, 모포를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헤론 후작을 비롯한 일부도 잠을 청했는데, 약 스무 명에 달하는 기사들은 마차 주변을 에워싸고서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언뜻 비치더니 마차 지붕으로 내려앉았다.

그 움직임이 유령처럼 은밀했기에 그림자를 본 자, 아무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발했다.

그는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공주마마! 그냥 이대로 돌아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건 안 돼. 지금 요란 제국과 전쟁이 일어나면 제국은 상당한 피해를 입을 거야. 캐논 산맥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전쟁은 피해야 해.”

“누가 케논 산맥을 요란 제국에 넘겨주는 것을 염려한답니까? 그들이 공주마마를 요구하니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까?”

시녀로 짐작되는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공주의 것으로 여겨지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짙은 한숨을 내쉰다.

“그건 아직 속단할 수 없어. 협상만 잘되면 케논 산맥만으로 그들의 욕구를 풀어 줄 수 있을 거야. 난 그렇게 될 거라 확신해. 자신도 있고…….”

“그 음흉한 요란 제국의 황태자가 쉽게 물러날 위인이 아님은 마마께서도 아시는 사실이잖아요. 그러니 그냥 여기서 돌아가서 훗날을 도모하심이…… 전 마마께서 왜 스스로 자청을 하셨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질 않아요, 정말…….”

시녀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절절 묻어난다.

“휴!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테세우드 공작이 직접 나섰겠지. 그러면 결과는 무조건 우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나게 되겠지. 그는 오히려 전쟁을 반기는 위인이야. 전쟁이 일어나면 제국은 강경파들이 득세하게 되겠지. 그러면 제국은 다시 군인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으로 회귀하게 될 거야. 그것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피가 제국을 적셨는지 너도 알잖아. 그러니 이제 그만해.”

“마마!”

“그만하래도!”

공주의 단호한 음성이 이어졌다.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다.

조금을 더 기다렸던 그림자는 더 이상 대화가 들려오지 않자 유령처럼 그 자리를 벗어났다.

주변을 경계하던 기사의 고개가 허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곳엔 어둠을 타고 날아가는 한 마리 새만 보일 뿐이었다.

* * *

“뭔가 사정이 있었군.”

“그렇습니다. 어떤 놈이 전쟁을 빌미로 공주와 많은 것을 요구한 듯싶습니다.”

“이 정도로 문물이 발달한 나라에서 눈치를 보는 나라가 있었단 말이냐? 놀랍군.”

“그러게 말입니다. 이 나라도 왕국이 아닌 제국인데 그런 제국을 위협하는 또 다른 제국의 힘이 보통이 아닌 듯 여겨집니다. 중원으로 치면 옛날의 강국, 몽골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조금 전, 마차 위의 그림자는 다름 아닌 진천, 그였다. 들었던 모든 것을 혁련천후에게 전했다.

호기심으로 모두는 눈을 빛냈다. 혁련천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팔짱을 하고서 나무에 등을 기댄 그를 보며 모두는 침을 삼켰다. 그들은 뭔가 흥미로운 사건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보였다.

물론 혁련소와 흑야를 찾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이런 일은 흥미를 유발하기엔 충분했다.

혁련천후가 입을 열었다.

“케논 산맥으로 가서 그들의 정체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뭔가를 기대했던 모두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눈을 감았다.

“목소리가 죽여주더군.”

“그래? 얼굴도 낮에 언뜻 봤었는데 상당히 아름답더라. 주모님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더라니까.”

진천과 사공진무가 소곤거렸다.

“내공, 아니지 마나라고 해야겠군. 아무튼 대화 도중 감정이 격해져서 순간적으로 뿜어냈던 마나가 상당했어. 저 헤론 후작이라는 자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더군.”

“공주잖아. 당연히 어려서부터 몸에 좋다는 영약을 입에 달고 살아서 그렇겠지. 수련을 통해 쌓은 내공은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법이지만 인위적으로 축적한 내공은 다르지. 물론 주공과 우리는 예외지만…….”

사공진무가 머리 뒤로 팔을 끼고는 벌렁 누우며 말했다. 진천도 그 옆에 같은 자세로 누우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아! 주모님이 해 주시던 요리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쯤이면 고려식으로 만든 바다 음식을 배 터지게 먹고 있었을 텐데…… 쩝!”

“후후! 그러게.”

진천이 사공진무를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혹시 우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주모님도 그곳으로 뛰어드시는 것은 아닐까? 충분히 그러시고도 남을 분들인데…….”

“내 생각도 그렇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 이리로 오겠다고 나설 분이지. 둘째 주모라면 벌써 그러고도 남으셨겠지?”

“큭큭! 그래, 난 그분이 따라오지 않은 게 지금도 신기하다.”

“큭큭!”

둘은 자신들의 둘째 주모를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 * *

눈을 감고 잠을 청했던 혁련천후는 수하들이 돌아가자 눈을 떴다.

지금껏 이 세상에 넘어와서 제대로 잠을 청했던 적이 없었던 그였다. 평소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했던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만 갔다.

‘살아만 있어 다오.’

간절한 염원을 담고 두 개의 달을 응시했다.

달 속에 자식의 얼굴과 두고 온 아내들의 얼굴이 교차되며 떠오른다. 그러더니 이내 차가운 사내의 모습이 나타난다.

‘너를 믿는다, 흑야…….’

믿을 건 오직 흑야뿐이었다.

그라면 지옥에서도 자신의 아들을 지켜 낼 거라 믿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그의 얼굴을 쓸고 지나간다. 주변에서 자신들을 향해 움직이는 기운들도 느껴진다.

정체 모를 짐승들의 기운이다. 그런 기운 따위는 무시해 버린 그는 이내 눈을 감고 상념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지난날의 기억으로 빠져들어 갈 때였다.

쾅!

공주 일행이 있는 곳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터졌다. 동시에 기사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모두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만 그동안 무척 지쳤던 써튼과 마법사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사람의 기운이 아닙니다.”

조윤이 다가오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랬다. 느껴지는 기운들은 사람의 호흡으로 보기 힘든 상당히 거친 느낌이었다. 혁련천후가 공주 일행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리자 모두는 그의 뒤를 쫓아 경공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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