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69화 (267/425)

# 269

<귀환무사 269화>

귀환무사 2부

44화

써튼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일반 사병들은 절대 이런 음식이 나가지 않습니다. 이건 기사들에게 지급되는 식사입지요.”

“이 정도 규모의 군대라면 그 기사라는 놈들이 몇이나 되지?”

“여단이면 거의 이만 명 병력입니다. 그렇다면 기사들은 대략 칠천 명은 된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부대에 따라 칠십 퍼센트가 기사들로 이루어진 부대도 간혹 있긴 합니다만…….”

왕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기사라는 놈들은 죄다 귀족이냐?”

“작위를 받지 않은 기사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모두가 시종을 둔 하위급 귀족임은 맞습니다. 물론 저처럼 남작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기사들도 무척 많습지요. 대부분이 전쟁에서 공을 세워 신분 상승을 노리고 군에 투신하는 경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너는 왜 군에 투신하지 않았지? 남작에 만족하는 모양이군.”

“아, 그게…… 검술이 워낙 약해서…….”

써튼이 머리를 긁적이자 조윤이 마법사를 쳐다보곤 써튼에게 물었다.

“저 친구는 꽤 실력 있는 마법사로 보이는데 남작 정도의 지위에 검술까지 형편없는 네가 어떻게 고용하고 있었지?”

“다른 마법사들보다 훨씬 비싼 몸값으로 고용했습지요.”

“영주민들 피를 빨아서 마련한 돈이겠지?”

북궁천소가 험악한 웃음을 짓고 물어 오자 써튼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그때 독한 술은 묵묵히 마시던 혁련천후가 써튼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흑발의 마검사들 말이야…….”

“……예.”

“그들에 대해서 네가 들은 것 모두를 말해 봐.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예! 알겠습니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조금은 긴장이 풀어졌던 써튼이 다시 부동자세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덕분에 써튼은 동이 트는 아침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토끼잠을 잔 써튼은 불게 충혈된 눈으로 가투소를 맞이했다.

잠을 더 자야 한다며 밖에서 만나라는 북궁천소 때문에 그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건물 밖에서 가투소를 맞이했다. 한참을 뭔가에 대해 말을 주고받던 써튼이 놀란 표정으로 입이 벌어졌다.

“그럼, 그분들과 함께 가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마침 그분들도 그곳과 가까운 곳으로 가시는 길이라 그렇게 결정되었나 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투소가 전할 말을 하고는 바삐 돌아갔다.

써튼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왕전이 대뜸 성을 낸다.

“이 자식아! 무조건 거절했어야지!”

“예?”

써튼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써튼은 모두가 왕전과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다.

‘설마 대화를 들었단 말이야?’

상황을 보니 분명 그랬다.

자신과 써튼은 그다지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눈 게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과 이들 사이에는 두꺼운 철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들을 수 있는 거지?’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내 써튼은 그들의 정체를 되새김했다.

‘정말 드래곤들이 맞는 걸까? 아닌데…… 텔레포트를 모르는 드래곤은 없잖아.’

써튼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최초 이들을 유희를 즐기는 드래곤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그였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그 부분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마법 부분이었다.

마법사들의 조상이라는 드래곤이 몰라도 너무 몰랐다.

처음엔 일부러 그런다고 여겼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것도 아닌 듯했다. 해서 그는 이들이 드래곤이 아닐 가능성을 조금씩 의심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두려운 건 드래곤이든 아니든 별반 차이가 없었다. 북궁천소의 험악한 눈길을 본 써튼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레이나 공주님은 황제 폐하께서 무척 아끼는 분이시라 감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공주고 나발이고 행여 이동 속도가 늦어지면 너 죽을 줄 알아!”

“……!”

써튼은 그저 눈만 멀뚱거렸다. 덩달아 마법사까지 온몸이 굳어졌다. 혁련천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준비들 해. 상황 봐서 늦어지면 그때 따로 가면 되겠지.”

그가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머지 존재들이 써튼을 보며 한 번씩 험악한 눈길을 주자 써튼은 그 자리에 얼음이 되었다.

* * *

금발에 옥처럼 하얀 피부를 지닌 여인은 무척 아름다웠다.

일행들이 모습을 나타내자 그녀는 황금으로 치장된 마차에 오르며 황금색 갑주를 걸친 자들에게 손짓을 했다. 상당한 덩치를 지닌 기사 하나가 혁련천후 일행에게 다가오더니 대뜸 큰소리로 물었다.

“그대가 써튼인가?”

“그렇습니다만…….”

“난, 황실기사단의 드와이트 헤론 후작이다. 그대들은 본 행렬의 뒤쪽에서 후방을 경계하며 따라오도록 하여라! 공주마마를 모시는 일이니 한 치의 허술함도 없어야 할 것이다.”

“헉!”

순간 써튼이 허리가 구십 도로 굽어졌다.

마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앞의 사내를 본 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해야만 했다.

드와이트 헤론은 공작 다음가는 후작의 지위를 지닌 상위 귀족이며 그보다는 소드 마스터에 오른 엄청난 무력으로 더욱 유명한 인물이다.

써튼 정도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그야말로 제국의 최상위층 인사가 헤론 후작이었으니…….

써튼의 행동을 보고 뭔가를 대충 짐작한 일행들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물론 귀찮은 일이 벌어짐을 싫어한 혁련천후의 뜻 때문이다.

[싸가지 하고는…….]

[아서라, 함부로 사단을 일으키면 너 혼난다.]

[젠장…….]

북궁천소와 왕전에게 조윤이 전음으로 경고했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타부타 인사조차 없이 일행은 공주가 탄 마차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헤론 후작은 주변을 둘러보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혹시 모를 몬스터의 기습을 우려한 그는 이동 속도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마차 주변을 철통처럼 호위하며 이동했다.

헤론 정도라면 지상 최강의 몬스터라는 오우거도 두렵지 않을 정도의 강자다.

그러나 혹시나 공주가 놀라기라도 한다면 그 자체로 호위의 실패라고 여기는 완벽주의자인 탓에 헤론 후작은 어지간한 작은 왕국의 국왕보다 막강한 자리에 있음에도 스스로 주변을 경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뒤를 따르던 일행들이 그런 헤론 후작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 정도면 어지간한 구파의 장문 정도 되는 수준인데, 지위가 후작이라면…… 우린 그냥 이 세상의 공작 정도는 떼어 놓은 당상이 아니겠습니까? 흐흐!”

“저놈에게 도전해서 죽이면 네가 후작이 되는 것이냐?”

“모르지.”

북궁천소와 왕전이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들에겐 제국의 강자라는 헤론 후작도 그저 그런 인물로 보일 뿐이었다. 조윤이 마차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차 안의 공주라는 계집이 꽤 중요한 듯 보이는군요. 최상위층 귀족이라는 후작이 직접 호위하고 마법사 둘에 작위를 받은 기사들만 오십을 넘어가다니…….”

“진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계집인지, 아니면 중원의 모 계집처럼 바람이 잔뜩 들어간 계집인지도 모르지. 코앞을 나서도 황궁의 금군 천 명을 대동하고 움직인 계집이니…….”

관산악이 명 황실의 사고뭉치 공주를 거론했다.

“주공! 저들과 케논 산맥까지 함께할 생각이십니까?”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지. 그곳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테니, 조금 늦어지는 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어.”

“원하시면 당장 그곳으로 가는 이유에 대해 물어 오겠습니다.”

왕전이 눈을 부라리며 나섰다.

그 모습에 혁련천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린다.

이들은 차원을 넘어오면서 옛날, 젊은 시절의 성격들로 돌아가 있었다.

나이 자체가 젊어진 건지 아니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성격만이 바뀐 것인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수하들 모두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성정까지 이십 대 청년 때의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꽤 기분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고 치지 마라.”

“사실 좀 심심하긴 합니다. 중원 같았으면 뇌음사나 동영의 잡놈들을 쓸어버리면서 재밌게 보냈을 텐데 말입니다. 안 그러냐?”

북궁천소가 왕전을 보며 씩 웃었다. 왕전이 마주 보며 험악한 웃음을 짓는다.

“목적지에 가면 몬스턴가 하는 것들이 많다며. 놈들을 상대로 몸 좀 풀어 보자. 이 세상의 공기가 중원보다 다소 가벼우니 무공의 위력이 더 강해졌을 테지……?”

“좋아! 이봐, 써튼! 몬스터는 그냥 죽여도 되는 것들이라며?”

써튼이 재빨리 말을 몰아 둘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지금껏 오로지 둘의 눈치만을 살피며 이동하던 그였다. 가장 무서운 존재들이라 그들을 극도로 경계했다.

써튼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최대한의 공경스런 자세로 대답했다.

“몬스터는 죽이면 죽일수록 좋습니다. 혹시 오우거라도 때려잡으신다면 작위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제국의 남작들 중에 그런 식으로 귀족이 된 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오호! 그래?”

둘의 눈동자가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그것처럼 반짝 빛을 냈다. 조윤이 둘을 흘겨보며 핀잔을 주었다.

“자식들은 그저 싸움질만 생각하는군. 나중에 우린 가만히 있을 테니 네놈들이 몽땅 때려잡아라.”

“흐흐! 좋지. 좋아!”

써튼은 정말로 좋아하는 둘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정말 드래곤인가? 아니면 오우거를 모르는 것일까?’

써튼은 다시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클어졌다.

그들의 진정한 신분을 파악하는 게, 그에겐 당장의 지상 과제였다.

현세에 드래곤을 본 사람은 없었지만, 아니, 요란 제국의 전직 드래곤 사냥꾼이 드래곤을 봤다고 떠들다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없었다.

‘아! 머리야…….’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 * *

태양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기운도 조금씩 서늘하게 변해 갔다.

울창한 수림으로 빽빽한 산맥의 초입을 돌아가던 일행들은 온갖 짐승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며 신기한 눈초리를 주었다.

중원에선 볼 수 없었던 기이한 짐승들이 엄청 많았는데, 호랑이의 몸에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낸 괴수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마차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그것은 선뜻 다가들지 못하고 상당한 거리 밖에서 으르렁거리며 뒤를 따랐다.

“저게 호랑이냐?”

왕전의 물음에 써튼이 대답했다.

“샤벨 타이거라고 무척 사나운 놈입니다. 맛은 별로일 것 같습니다.”

“맛? 그럼 식용으로도 잡아먹는단 말이냐?”

“그게 아니고…….”

써튼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줄곧 그들이 드래곤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엉겁결에 그들의 식사거리로 말을 뱉은 것이다. 그때 헤론 후작 주변에서 우웅! 하는 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그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헤론 후작이 주변을 배회하는 맹수들을 향해 손을 뻗는 시늉을 하자 침을 흘리며 흉성을 드러내던 샤벨 타이거들이 모조리 꼬리를 말고 도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에 써튼의 옆을 이동하던 마법사가 자칫했으면 말에서 떨어졌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양의 마나를 느낀 탓이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호들갑은…….”

왕전이 눈을 부라리자 흑마법사는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헤론 후작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는데, 눈에 보이게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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