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68화 (266/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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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268화>

귀환무사 2부

43화

“저들에게 우리의 신분을 그렇게 둘러대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두두두!

가슴 부근에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멋들어진 갑옷을 걸친 기마병들은 이내 그들의 주변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턱수염을 기른 자가 앞으로 나서며 탁한 음성으로 거칠게 물어 왔다.

“제국의 시민인가?”

써튼 대신 마법사가 나섰다.

“그렇소! 이분은 써튼 로이안 남작이시며 저분들은 남작 각하를 호위하는 기사들이시오!”

“남작?”

“그렇소! 신분을 알았다면 당장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시오!”

의외로 마법사는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지켜보던 모두가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을 물어 왔던 기사가 여전히 말 위에서 써튼의 아래위를 살피더니 손을 불쑥 내밀었다.

“이곳은 제1군단 이글스 여단의 경계 지역이오! 남작임을 증명하기 전엔 인정할 수 없소!”

기사의 얼굴은 무척 근엄했다. 각진 얼굴에 두꺼운 입술은 전형적인 군인의 기질을 나타내고 있었다.

써튼이 품에서 남작임을 증명하는 패를 보여 주자 그때야 기사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려 허리를 굽혔다.

남작은 엄연한 귀족이다. 당연히 장군들이 아니면 무조건 예를 표해야 한다.

“이글스 여단의 7대 대장 가투소라고 합니다. 군사 지역이라 어쩔 수 없이 무례했던 점을 용서하십시오!”

“아니네. 모든 게, 제국의 안녕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가. 이곳이 군사 지역임을 모르고 들어선 나의 실수일세.”

써튼이 짐짓 귀족스러운 행동을 취했다. 북궁천소와 왕전의 입가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꼴에 귀족이라고 제법인데?]

[흐흐! 그러게, 완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더니만 의외야.]

그들을 한 번 쳐다본 가투소가 다시 물었다.

“이곳부터는 상당히 위험한 지역입니다. 남작께선 어디를 가는 길이십니까?”

“여행 중이네. 케논 산맥의 절경이 최고라고 하기에 그곳으로 가던 길이네.”

“케논 산맥을요? 그곳은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임을 모르십니까? 고작 이 인원으로 들어섰다간 무슨 봉변을…….”

놀란 가투소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우린 그냥 그 근처까지만 갔다가 돌아올 생각이네. 그건 그렇고 그곳으로 가려면 군영을 지나가야 하는데 허락할 수 있겠는가?”

가투소가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함께 가시지요! 단장님의 결재가 있어야 하니 군영에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써튼이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반말로 묻긴 물어야겠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조윤이 대신 말했다.

“돌아가면 시간이 너무 지체되니 결재를 받고 곧장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주님!”

“그, 그럴까……?”

가투소가 말 머리를 돌리며 소리쳤다.

“남작님을 군영으로 모셔라!”

기사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써튼을 호위하듯 늘어섰다. 절도 있는 그들의 행동으로 보아 상당히 잘 훈련된 기사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혁련천후와 일행들도 말머리를 돌려 군영으로 향했다.

[조금 전 놈의 눈빛을 보셨습니까? 흐흐!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니 완전 허접으로 취급하더군요, 흐흐흐!]

북궁천소가 히죽 웃는다.

조금 전 가투소가 자신들을 보고 보였던 반응은 자신들이 중원에서 다른 강호인들을 볼 때의 눈빛과 같았었다. 당연히 얕보는 것이다.

[그곳으로 빨리 가야 한다. 군영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도록!]

혁련천후는 모두에게 전음으로 그렇게 전하고는 느릿하게 주변을 구경했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더한 규모였다. 천막으로 보았던 것들은 천이 아닌 하얀 벽돌로 지어진 일 층 높이의 구조물이었는데 그 안에서 병사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곧 소식을 보내겠습니다!”

다른 구조물들과는 달리 제법 크고 높은 건물 앞에서 모두는 멈추었다.

군사들이 주둔하는 곳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넓고 깨끗한 곳이었다.

기사들이 그들이 타고 온 말들을 좌측으로 끌고 가자 일행은 구조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 다른 사람은 전혀 없었다.

“주변 곳곳에 요상한 기운들로 넘치는데, 아마 저놈이 말했던 마법 병단의 결계라는 것이겠지?”

“이거 좀 배워 볼까? 꽤 쓸 만한 것들이 많아.”

“마법 말이냐?”

“그래. 환술과는 판이하게 달라. 그거 배우면 텔레포튼가 하는 것도 할 수 있다며? 그 공간이동을 하는 것 말이야.”

“자식아! 잊었냐? 6클래스에 도달해야 가능하다잖아.”

진천과 사공진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써튼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6클래스에 오른 마법사들은 대륙을 통틀어 셋뿐입니다. 올라서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진천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다.

“그러니까? 나는 꿈도 꾸지 말라…… 이거냐?”

“헉! 아, 아닙니다!”

써튼이 식겁을 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주먹을 쥐었던 진천이 눈을 부라리고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6클래스에 오르면 공간이동이 확실한 것은 사실이지?”

“그, 그렇습니다.”

“좋았어!”

진천이 주먹을 불끈 쥐며 눈을 반짝 빛냈다.

모두가 그런 진천을 흘긋 쳐다본다. 저 진천은 한다면 하는 인간이다. 비록 이곳 세상의 마법과는 다소 달랐지만 중원에선 환술로서 고금최강이란 소릴 들었던 진천이다.

“이 세상의 마법사라는 놈들이 조만간 밥줄이 끊기겠군.”

“얼른 6클래스에 올라봐라. 그 텔레포튼가 뭔가 하는 거, 직접 해 보면 꽤 재밌을 것 같은데.”

“하하하!”

진천이 어깨를 펴 보이며 호기롭게 말했다.

“두고 보슈. 이 세상 마법사들의 족보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테니…….”

지혜로 반짝이는 진천의 눈동자가 단호한 결의의 빛을 담고 있었다.

훗날 드래곤을 초월한 대마법사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제8장 케이론 제국의 공주, 레이나

어둠이 내리고 두 개의 달이 떠오른 초원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풀을 먹고 살아가는 초식 동물들이 사라진 밤은 먹이를 찾아 나선 야수들의 일렁거리는 눈동자들로 가득했다.

크르르…….

사람의 냄새가 초원을 진동하자 초원의 늑대들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푸른색 갈기를 지닌 이곳의 늑대들은 중원의 늑대들과는 차원이 다른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황소만 한 덩치를 자랑하는 늑대, 수백 마리가 이글스 여단의 외곽 지역을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는데, 바로 혁련천후 일행이 들어간 건물의 주변이었다.

“저게 늑대냐? 황소냐? 더럽게 큰 놈들이군.”

“저거 호랑이와 붙여 놔도 한입에 꿀꺽하겠는데요.”

창문을 통해 늑대들을 쳐다보며 신기해하는 일행들.

써튼이 다가오며 말했다. 요즘 들어 부쩍 말이 많아진 써튼이다.

“아이언 울프라고, 오크와 일대일로 싸워도 지지 않는 맹수들입지요. 간혹, 돌연변이가 있기도 한데, 그건 거의 오우거급입니다. 놈의 발톱은 어지간한 갑옷은 한 번에 찢어발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몬스터 토벌에서 대부분 멸종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저놈들이 떼거리로 있다니 놀랍습니다.”

듣던 조윤이 물었다.

“그렇게 흉성이 강한 놈들이라면 말들을 해칠 수도 있을 텐데, 이곳의 대장은 왜 가만히 두고 있을까? 있음을 모르는 것일까?”

“그건 아니겠지. 놈들을 봐. 우리를 보면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아. 저 태도로 보아 사람과 꽤 많은 접촉을 했던 놈들이야. 분명 이곳의 군사들도 저놈들의 존재는 알 테지. 일부러 잡지 않는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담대소천이 특유의 무심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때 문이 열리며 흑마법사와 가투소가 함께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황실에서 귀한 분이 갑작스럽게 내려오시는 바람에 내일 아침에나 결재를 올려야 할 듯싶습니다.”

가투소는 써튼에게 오른팔을 가슴에 대며 정중하게 말했다.

써튼이 무의식적으로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역시 조윤이 대신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여기서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 길을 떠날 수밖에요. 그건 그렇고 저 맹수들 때문에 말들이 해를 입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만…….”

은근슬쩍 말을 돌려 아이언 울프를 거론했다. 가투소가 어둠 속에서 시뻘건 안광을 번득이는 수백 마리의 아이언 울프를 돌아보더니 대답했다.

“저놈들은 이곳 여단에서 기르는 놈들이오. 야생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일부러 기른단 말이오?”

“그렇소, 와이번의 식량으로 오래전부터 길러 오던 놈들이오.”

그 말에 써튼이 크게 놀란 표정으로 소리치듯 물었다.

“와, 와이번의 식량이라니…… 와이번을 사육한단 말인가?”

“하하! 아닙니다. 그 난폭한 와이번을 어찌 사람이 기른단 말입니까? 다만 이곳 주변에 와이번의 서식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놈들이 간혹 군의 전마들을 잡아먹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이언 울프의 종자를 번식시켜 들판에 풀어 놓은 것입니다.”

써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꼴깍 삼키자 조윤이 물으려다 입을 닫았다.

이곳의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을 자신들만 모르는 것으로 비쳐지면 자칫 귀찮은 일이 벌어질까 염려해서다.

흑마법사가 바깥을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저쪽 산악 지역까지 결계를 쳐 놓았군.”

그 말에 가투소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보기엔 그저 그런 하위급 마법사로 보이는 그가 대번에 산악 지역의 입구까지 펼쳐진 결계를 알아보자 그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달라졌다.

그가 혹시 상위에 오른 마법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상위에 오른 마법사들은 어느 나라 어느 곳엘 가더라도 최상급의 대우를 받는다.

그들 하나가 있으므로 해서 속한 부대의 전투력은 거의 수배에 가깝게 상승한다.

‘혹시 신분을 위장한 제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가투소는 다시 모두를 슬쩍 살폈다.

확신할 순 없었지만 눈앞의 마법사는 자신의 여단에 속한 마법사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 정도의 마법사를 대동하고 다니는 이들이 결코 남작 정도의 지위를 지녔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존중받는 마법사가 고작 음식 심부름이나 하질 않았던가.

마법사를 부리는 사람들은 황실의 고위급 귀족들이거나 마스터의 경지를 초월한 존재들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눈앞의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은 형편없었다. 그렇다면 황족에 버금가는 고위 관료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외에는 공작이나 후작이라도 상위 계열의 마법사와는 서로 동등한 관계를 지닌다.

“부탁을 좀 해야겠네.”

써튼이 가투소를 보며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말씀하십시오.”

“먼 길을 급히 오다 보니 아직 식사를 하지 못했다네. 해서 음식과 술을 좀 부탁해도 되겠는가?”

“하하! 아닙니다. 부탁이라니요. 그렇지 않아도 당번병들에게 지시를 해 놓았으니 곧 가져올 것입니다.”

“고맙네.”

모두를 다시 가볍게 살핀 가투소가 군례를 취하고는 돌아갔다.

사공진무와 진천은 널찍한 침상에 올라 벌써 잠이 든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음식과 술이 들어오자 술 냄새를 맡은 둘은 벌떡 일어났다.

“이놈의 나라는 엄청 부자인가 보군. 뭔 군대의 식사가 이래?”

“그러게, 이 정도면 중원에선 부자들이나 먹음직한 것이잖아.”

“남작이라고 신경 좀, 썼나 보군. 하물며 일반 사병들이 이런 음식을 먹겠냐?”

“그래도 이건 과하다. 생각보다 군기가 썩은 곳인가?”

모두가 병사들이 가져온 음식을 보며 한마디씩 했다.

짧은 시간에 준비한 음식치고는 무척 요란했다. 기름을 발라 구운 오리고기와 돼지고기를 다져서 만든 길쭉하게 생긴 요리,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향긋한 죽처럼 생긴 요리가 그들을 유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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