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
<귀환무사 267화>
귀환무사 2부
42화
“이봐! 써튼!”
“예!”
조윤의 부름에 써튼은 신입 병사처럼 씩씩하게 대답했다.
나이 30세에 남작이라는 직위를 지닌 귀족인 그가 졸지에 최하급 인생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써튼은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전설의 드래곤들과 함께하니 가슴속에 숨겨 두었던, 어렸을 적의 모험심이 발동했던 까닭이다.
소싯적 꿈이 파티를 구성해 대륙을 여행하며 모험을 즐기는 것이었는데, 비록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얻은 기회였지만 써튼은 조금씩 재미를 붙여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곳까지 얼마정도 더 남았느냐?”
“지금 속도로 가신다면 오 개월은 더 걸려야 합니다만, 텔레포트를 시전할 수 있는 마법사만 있다면 십 분도 안 걸립니다!”
“자식아 그걸 누가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써튼의 고개가 자라처럼 움츠려 들었다.
“네가 마법사라고 했지?”
조윤의 시선을 받은 마법사가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털어놔 봐. 마법에 대한 모든 것을…….”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의 마법에 대한 모든 것을 늘어놓았다. 장황한 써튼의 설명은 이십 분을 이어졌다.
“그러니까, 6클래스에 이른 마법사들만이 그런 재주를 지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 자식! 지금 어디 있지?”
북궁천소의 험악한 표정에 겁을 집어먹은 써튼이 일순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인간이 이분들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을 싫어하시는구나. 그들이 있는 곳을 말하면 분명 찾아가서 모조리 죽여 버리겠지?’
써튼은 불안했다.
제국에 5클래스를 넘어가는 마법사는 단 세 명뿐이다. 그중 둘은 황실에, 나머지 하나는 테세우드 공작의 권역에 있다.
그리고 모든 마법사들의 정점에 올라 있는 대마법사는 오직 하나뿐이며, 그는 황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생활한다. 텔레포트는 오직 그만이 가능했다.
그것은 제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게 이곳에서 상당히 먼 곳에 있습니다. 황실에 두 분이 계시고, 한 분은 테세우드 공작 각하의 권역에 계시는지만, 확실하게 텔레포트가 가능한 분은 황궁에 계십니다.”
“여기서 얼마나 걸리냐.”
“황실은 말을 타고 달려도 팔 개월은 족히 걸리고도 남을 거립니다. 그리고 테세우드 공작의 권역은 왔던 길을 되돌아 한 달을 가면 됩니다.”
“더럽게 큰 나라군. 이 정도면 중원보다 더 크다고 봐야겠는데? 주공! 한 달 걸린다면 그곳에 있는 마법사 놈을 족쳐서 가는 게 빠르지 않겠습니까?”
단순한 계산으로 북궁천소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됐어. 그냥 걸어서 간다. 가면서 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괜찮겠지…….”
말끝을 흐린 혁련천후는 써튼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써튼이 최대한의 공경한 자세로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를 마주 보았다.
두 손까지 아랫배에 착 붙인 써튼에게 그가 물었다.
“흑안의 마검사라고 들어 보았겠지?”
“대륙에 그분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워낙 유명하시니까요.”
“최근 그들이 출현한 지역이 어딘지 들은 소문이라도 있나?”
써튼은 막힘없이 줄줄 대답했다.
“케논 산맥에서의 몬스터 토벌 작전 이후로는 그분들에 대한 소문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몇 개월 전에 홀베른 공국과의 접점 지역에 위치한 영지에서 악덕 영주로 소문났던 테베스라는 영주가 죽음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분들께서 벌이신 일이라 말하는 자들이 있긴 했습니다.”
혁련천후의 눈빛이 변했다.
“그곳이 어디냐?”
“왕국의 최북단 지역으로 케논 산맥을 넘어 일 개월은 더 가야 합니다.”
“더럽게 멀군.”
북궁천소가 투덜거렸다.
“그곳도 이 나라의 영토이더냐?”
“그곳까지만 케이론 제국의 영토입니다. 요란 제국과 맞물린 최전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혁련천후가 더 이상 묻지 않자 써튼은 주문한 음식을 재촉하러 주방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써튼의 성화에 못 이긴 주방장이 다른 손님들이 주문했던 것을 먼저 일행들에게 내주었다.
써튼은 익힌 음식을 꽤 잘 먹는 그들을 보며 신기해했다.
드래곤의 주식은 오크나 와이번 같은, 살아 있는 맹수들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지상 최강의 몬스터라는 오우거도 드래곤에겐 인기 있는 식사거리 중 하나로 알고 있는 써튼이다.
‘하긴 드래곤이라고 항상 생식을 즐기는 것만은 아니겠지.’
식사를 하던 담대소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6클래스에 이른 마법사들 중 하나가 테세우드 공작가에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써튼이 재빨리 대답했다.
“전에 우리가 죽였던 마법사들의 주인이라는 그놈도 테세우드가 아니었나?”
“맞습니다, 덜떨어진 남작 놈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진천이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써튼이 순간 창백하게 질렸다. 지금껏 최대한 조용히 있던 마법사는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마법사들을 죽였다고? 그렇다면 이분들이 그…….’
그는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제국에 내려진 체포령.
바로 테세우드 공작이 직접 공고한 체포령은 지금 제국을 들끓게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사건이었다.
써튼이 일행들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흑안에 흑발! 게다가 일곱! 헉…….’
마법신문에 올랐던 범인들과 인상착의가 똑같다. 창백하게 질렸던 써튼은 순간 테세우드 공작의 멸망이 눈앞에서 그려졌다.
‘그분도 지지리도 운이 없는 분이군. 하필이면 위대하신 존재들을 현상 수배하다니…….’
아직 이들은 자신들에게 현상 수배령이 내려진 것을 모르는 듯했다.
알았다면 당장 테세우드 공작가로 날아가서 불바다를 만들어 버렸을 일이다. 써튼의 착각은 끝을 모르고 더욱 심해져만 갔다.
‘엄청난 광경일 거야.’
써튼의 머릿속은 허공을 선회하며 브레스를 뿜어 대는 드래곤들의 영상으로 가득 채워졌다.
“야! 인마! 뭔 생각을 그리 뚫어지게 해!”
북궁천소의 험악한 주먹이 써튼이 뒤통수에 작렬했다.
눈물을 찔끔거린 써튼은 막힘없이 둘러댔다.
“어떻게 하면 케논 산맥으로 빨리 갈까에 대한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 찾았냐?”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마법사가 손을 들고 말했다.
지금껏 두려움에 떨어 왔던 그가 스스로 말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혁련천후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상하게 로브를 걸친 자들이 싫었다. 아들을 데려간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다.
그의 눈치를 힐끗 살핀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라이트 마법을 말에게 걸면 지치지 않고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절반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겁니다.”
“라이트 마법은 또 뭐냐?”
“말이 체중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마법입니다.”
“오호! 그래? 이거 놀라운 기술이군. 그런데 그걸 왜 이제 말하지?”
놀라움을 나타냈던 북궁천소가 험악하게 인상을 그리고 묻자 마법사는 사색이 되었다.
모두가 두려운 존재였지만 특히 북궁천소는 눈길만 마주쳐도 오금에 힘이 풀릴 정도다.
“그게…… 너무 두려워서…….”
“이런! 썅!”
북궁천소의 주먹이 위로 올라갔다.
“네가 그걸 할 수 있단 말이지?”
혁련천후가 마법사에게 물었다. 여전히 그를 쳐다보는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위대하신 존재들에 비하면 태양과 호롱불 차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괜히 이들 앞에서 마법을 뽐냈다가 한 줌 먼지로 소멸될 것이 두려웠던 마법사는 애처로운 얼굴로 빌었다.
혁련천후가 다시 물었다.
“넌 어느 정도지?”
“예……?”
“클래스라고 하는 것 말이야. 몇 클래스 수준이냐고?”
“4클래스 정도 됩니다만…… 저는 흑마법사인지라…….”
“흑마법사?”
처음 듣는 말에 혁련천후가 의아함을 비추자 마법사의 장황한 설명이 다시 이십 분간 이어졌다.
말하면서도 최대한 이들의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는 안간힘을 썼다. 알면서도 묻는 사람에게 대답하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는 법이다.
설명이 끝나자 마법사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적셔졌다.
마침 후식이 나왔다. 물렁물렁한 두부같이 생긴 것을 포크로 먹는 것에 실패한 왕전이 성질을 부리려 할 즈음 혁련천후가 일어서는 것으로 식사는 끝났다.
다음 날, 일행은 여관을 나와 다시 여정에 올랐다.
확실히 말의 속도가 배 이상으로 빨라졌다. 상당한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렸음에도 말들은 지친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하루 만에 그들은 상당한 넓이를 자랑했던 대도시 오코모스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코모스를 빠져나오자 또다시 인가라곤 거의 없는 넓은 평원 지대가 그들을 맞이했다.
중원과는 달리 숲의 밀도가 떨어진 탓에 이동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대략 한 시간쯤을 달렸을까? 일행들은 말의 고삐를 당겨 이동을 멈추어야만 했다. 둔덕을 넘어서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드넓은 초원이 나타났는데 그 위에 수천의 군막들이 쭉 펼쳐져 있었다.
써튼이 다가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국의 군사들입니다.”
“이 나라의 군사들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이곳은 요란 제국과의 국경 지대와 인접한 곳이라 항상 일 개 여단 규모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대충 봐도 거의 이만에 육박하는 대군이었다.
군막의 우측에 펼쳐진 초원 위에서 풀을 뜨고 있는 말들의 숫자만 어림잡아 만이 넘어갔다.
그렇다면 기병 여단으로 봐야 했다. 조윤이 혁련천후를 보며 물었다.
“우회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혁련천후가 초원의 좌우를 살폈다. 군사들이 상주한 곳과 상당한 거리에 우거진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곳으로 간다.”
“모두! 우측으로 방향을 튼다!”
조윤이 모두에게 우회해서 돌아갈 것을 전하자 모두는 말 머리를 틀었다. 그들이 둔덕에서 우측으로 이동하려고 할 즈음, 그들의 머리 위, 공간이 일렁이더니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허공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가 황급히 외쳤다.
“마법 병단의 결계에 발각되었습니다!”
“그건 또 뭐냐.”
“대규모 군이 상주하는 지역은 마법사들이 가장 먼저 결계를 쳐 놓습니다. 적의 출현을 사전에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지요. 어서 떠나심이…….”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이 세상은 중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술수를 부려 적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이런 것은 솔직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군사들이 옵니다!”
오십여 기의 기마가 먼지를 일으키며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자 혁련천후는 슬쩍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나 그렇다고 도망가려니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이날까지 도망이란 단어와는 전혀 친숙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냥 쓸어버릴까요?”
“이렇게 된 거 그냥 정면을 뚫읍시다. 뭐, 자식들이 순순히 보내 주면 그땐 그냥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북궁천소와 왕전이 달려오는 기마병들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써튼과 흑마법사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혁련천후만을 쳐다봤다. 마침 그가 자신을 돌아보자 써튼은 고개를 움츠렸다.
“당분간 너의 호위병들이라 해야겠군.”
“예?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