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66화 (264/425)

# 266

<귀환무사 266화>

귀환무사 2부

41화

* * *

두 개의 달이 지고 태양이 떠올랐다.

성문이 열리며 천 명에 달하는 써튼의 영지군이 드웨인의 영지를 향하기 위해 서서히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선두에 마법실드가 채워진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 횡으로 늘어서 써튼의 좌우를 호위했고, 그 뒤를 삼백 기의 전마에 몸을 실은 기마병과 나머지 보병들이 따르고 있었는데, 일개 영지의 규모치고는 상당한 군세였다.

대부분의 영주들도 천 명 정도의 군세는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써튼처럼 기사만 삼십 명에 기마대 삼백 명은 좀처럼 드문 경우다.

영지전이든 국가 간의 전쟁이든 기사들의 숫자와 마법 병단의 화력이 승부의 열쇠다. 당장 드웨인의 영지만 하더라도 기사 소리를 듣는 사람은 고작 열 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마법사는 2클래스 수준의 백마법사 하나가 달랑 있을 뿐이다.

이 정도면 상대가 되지 않는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라고 봐야 했으니 드웨인이 해법을 찾아 제국의 곳곳을 뒤지고 다닐 법도 했다.

“흠! 날씨 한번 좋구나!”

선두에선 써튼 남작의 표정은 마치 유람을 떠나는 듯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전력상의 절대 우위에서 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그의 옆을 바짝 붙어 이동 중인 마법사는 역시 흑색 로브를 벗고 백색을 걸치고 있었는데, 얼굴색까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완벽한 변신이었다.

하늘을 향해 던져져 있는 그의 눈동자에 가끔 공허함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써튼이 간혹 보였던 눈빛과 그것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뿌우웅!

국가의 정규군에나 있을 법한 거대한 뿔 나팔이 울려 퍼졌다.

길가에 나온 영지민들이 손을 들어 그들을 배웅했다. 주인이나 사병들이나, 모두 승리를 확신하는 듯 조금의 긴장감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무도 당당하게 진군하던 그들은 조금 못 가 이동을 멈추어야 했다.

그들이 이동 중이던 도로의 전방에 소수의 정체 모를 인물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써튼의 눈이 옆으로 쭉 찢어진다.

“감히 본 남작의 앞길을 막아서다니! 가서 냉큼 잡아 오너라!”

“옛!”

기사 셋이 빠르게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려갔다.

* * *

“확실히 이곳 놈들은 허우대만 멀쩡하군요.”

말을 몰아 달려오는 기사들을 보며 북궁천소가 코웃음을 쳤다.

혁련천후는 써튼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상당한 거리였지만 눈동자를 통해 그의 심성이 대략은 파악이 되었다. 그가 진천을 돌아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사악한 기운이 골수까지 스며든 놈이군요. 죽여도 무방하겠습니다.”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다 죽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공진무가 물었다.

“죽일 놈들만 죽이고 나머지는 겁만 줘서 보내. 어차피 저 친구가 이곳을 다스릴 때, 필요한 사병들이 아니냐.”

드웨인은 황당함에 두려움도 잊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승리는 이미 따 놓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당장 천 명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건만 고작 일곱 명이서 죽일 자와 살릴 자를 정하고 있다니…….

‘정말 폴리모프한 드래곤은 아니겠지?’

지나치게 여유로운 태도에 드웨인은 다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드래곤이라면 그저 브레스 한 방이면 눈앞의 천 명은 그대로 몰살이다.

차가운 목소리에 드웨인은 상상에서 깨어났다.

“저놈만 죽이면 너의 자격이 인정되는 것이냐?”

“그, 그렇습니다.”

“간단해서 좋군.”

혁련천후가 눈빛으로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북궁천소가 히죽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들을 잡으러 오는 기사들이 오 미터 앞까지 다다라 있었다.

일반 기사들이 지니기엔 과할 정도로 값비싼 루비가 박힌 그레이트 소드를 뽑아 든 기사들은 북궁천소가 자신들을 보며 씩 웃음을 날리자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지?”

“저놈은 뭐야!”

“너희들을 지옥을 보내 줄 사람.”

그것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쾅!

말과 사람이 통째로 하늘을 날더니 써튼의 근처까지 날아가 떨어졌다. 말은 즉사하고 기사들은 정신을 잃은 듯,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놀람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한 광경이 벌어졌다.

“이게 대체…….”

“으아…….”

그 엄청난 광경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써튼의 옆에 있던 마법사가 앞으로 나서며 두 팔을 느릿하게 앞으로 뻗었다.

“저잡니다! 저자가 이곳의 마법삽니다.”

드웨인이 손을 들어 소리쳤다.

혁련천후의 눈가에 잔혹한 기운이 어리기 시작한 것은 써튼의 마법사가 주문 같은 것을 막 외우려던 때였다.

“놈을 잡아 와라, 왕전.”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왕전의 육신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마법사의 옆에 나타났다.

캐스팅을 하던 마법사가 혼비백산하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왕전이 마법사의 목줄을 움켜쥐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써튼을 비롯한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냐고.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빠를 수가 있단 말인가!’

놀람은 지켜보던 드웨인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나중에 보자고, 흐흐.”

툭!

왕전의 손가락이 마법사의 육신을 툭 건드리자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린다.

북궁천소의 손짓 한 번으로 말과 기사들이 하늘을 날고, 써튼의 마법사가 납치되어 기절을 하는 데까지 걸린 시각은 일 분이 채 되지 않았다.

“으…….”

온몸에 한기가 저절로 찾아든다.

약삭빠른 써튼은 짧은 시간에 자신의 차후 행동을 그리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오며 손과 발에 감각이 없어진다.

세상에 저런 존재들은 오직 초인이라 불리는 다섯뿐이라고 그는 여겼다.

하지만 자신이 마법영상으로 늘 보면서 동경했던 초인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드래곤이다.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인간임이 확실했다.

초인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가 일곱이나 자신을 노려보며 서 있었으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딱딱딱딱!

그가 재빨리 말 위에서 내려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는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사태를 짐작한 모든 자들이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으며 소리쳤다.

* * *

“저것들이 미쳤나.”

“위대하신 분? 뭐야, 주공에 대한 소문이 이곳까지 전해졌나?”

“그러게.”

일행들은 땅에 머리를 처박는 써튼의 무리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침 드웨인을 돌아보던 북궁천소가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이 자식은 또 왜 이런데?”

드웨인도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는 벌벌 떨고 있었다. 북궁천소가 그의 목줄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뭘 잘못 처먹었냐? 벌벌 기기는…… 가서 계약선가 뭔가에 도장 받아 와!”

“아이고…….”

“뭐야? 이 자식…….”

드웨인이 사색으로 감히 북궁천소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모두가 이쪽저쪽을 번갈아 보며 어이없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소천, 가서 해결해라.”

담대소천이 광신도들처럼 연신 절을 해 대는 써튼의 사병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러자 천 여 명에 달하는 써튼의 사병들이 사색이 되어 더욱 간절한 몸짓으로 절을 해 댔다.

전설의 드래곤이라면 자신들은 그저 미물에 불과하다. 그런 존재들에게 검을 들이밀며 싸우려고 들었으니.

담대소천이 든 무기는 이 세상에선 처음 보는 무지막지한 기병이니 그가 폴리모프한 드래곤임은 더더욱 확신으로 다가왔다.

“네가 써튼인가?”

“그렇습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제가 미천한 써튼이 틀림없습니다!”

담대소천의 입가가 슬쩍 올라간다.

자신과 일행들은 분명 다른 존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네가 드웨인이라는 친구와 영지전을 벌이기로 했다지?”

“그렇습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제가 그 써튼이 확실합니다!”

써튼은 정신이 없었다. 여기서 조금만 삐끗하면 자신을 물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다시는 환생이 불가능한 먼지로 화해 사라진다.

“패배를 인정하면 죽이지는 않겠다. 어때? 인정하겠나?”

“당연합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이 써튼이 무조건 졌음을 신께, 아니, 위대하신 존재 앞에서 맹세하나이다!”

술술 막힘없이 잘도 대답한다.

“그럼 패배를 인정하는 증표를 건네라.”

써튼이 촌각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말안장을 뒤지더니 뭔가를 내밀었는데, 금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조각이었다.

담대소천이 드웨인을 불렀다. 생애 최고의 속도로 드웨인이 달려오자 그것을 내밀었다.

“이게 뭐지?”

“황제가 인정한 영지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금패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네가 이곳의 영주가 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담대소천이 그것을 쑥 내밀었다.

“그럼 네가 가지면 되겠군. 이것으로 약속은 지킨 것이다. 알겠나?”

“그, 그렇습니다!”

자신의 영지보다 두 배는 넓은 써튼의 영지가 고스란히 드웨인의 것이 되었음에도 그는 전혀 반가운 기색이 아니다. 담대소천의 미간이 슬쩍 구겨진다.

“뭐지? 표정이 왜 그래?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

“헉!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드웨인을 이상한 놈 보듯 쳐다본 담대소천이 혁련천후를 돌아보며 물었다.

“주공! 이놈들의 처리는 어떻게 합니까?”

순간 써튼과 사병들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제 저 차갑게 생긴 존재의 말 한마디에 자신들의 삶과 죽음이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드래곤의 주인이라면 분명 저 흑발을 늘어뜨린 존재는 드래곤의 왕이라는 로드가 분명했다.

혁련천후의 말이 떨어졌다.

“영주라는 놈만 제압하고 다른 이들은 그 친구에게 맡겨.”

“알겠습니다!”

기어코 써튼이 눈물을 줄줄 흘려 낸다. 반대로 기사들과 사병들은 엄청난 속도로 혁련천후에게 절을 해 댄다.

“감사합니다! 로드시여!”

그들의 머릿속에서 써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 *

드웨인의 영지로 돌아온 일행은 캐논 산맥으로 이동하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준비라고 해 봐야 드웨인만 여정을 갖추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겨 버렸다.

새롭게 차지한 영지의 처리 문제 때문이었는데, 주인인 드웨인이 없으면 황실에 보고하는 등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처리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곧 문제는 해결되었다.

드웨인을 대신하여 써튼과 사로잡은 마법사가 길잡이로 결정되었다.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감지덕지한 그들은 최고의 길잡이가 될 것을 맹세하고 모두는 길을 떠났다.

괴팍하다고 알려진 드래곤들이 그냥 순순히 물러가자 드웨인은 온갖 것을 그들에게 바치며 혹시 모를 뒷일을 예방했다.

드웨인에게 영지를 잘 다스리라는 말을 해 주고 길을 떠난 일행들은 빠른 시간에 오코모스라는 큰 도시에 이르렀다.

“대단하군, 확실히 문명이 중원과는 차이가 나는 세상이야.”

조윤은 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대부분이 목조로 이루어진 중원의 건축물과는 달리 이곳은 대리국의 대리석과 비슷한 자재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눈으로 보기에도 무척 견고함이 느껴졌다.

높이 또한 중원의 그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여관을 잡겠습니다!”

써튼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위대하신 존재시여! 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혁련천후가 사용을 금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일행들은 써튼이 찾은 나그네의 쉼터라는 여관으로 들어섰다.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삼층 규모의 여관은 무척 깨끗하고 화려했다.

대부분의 여관이 그렇듯 일 층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나머지 층이 객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일행들은 객실에 짐을 놓고는 일 층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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