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귀환무사 261화>
귀환무사 2부
36화
“아가씨! 저기를 보세요!”
아리안은 여호위기사가 가리킨 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놀람의 빛이 나타났다. 하늘의 제왕이자 먹이 사슬의 최상층부에 존재하는 와이번이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며 사방을 날고 있었다.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와이번이 나타났으니 먹이 사슬의 아래에 놓인 말들이 놀라 날뛰는 것이 당연했다.
“어머! 이쪽으로 와요!”
챙!
아리안이 그레이트 소드를 뽑아 들었다.
두 마리의 와이번 중, 하나가 자신들의 마차로 쏜살같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두 발을 적당한 너비로 벌렸다.
치르륵!
그녀의 검이 푸른색 아지랑이를 품었다. 세상에 못 벨 것이 없다는 소드 오러다. 와이번은 어지간한 검으로는 피부에 상처도 내지 못한다. 오직 소드 오러만이 두꺼운 가죽을 뚫어 낼 수 있다.
“감히! 몬스터 주제에!”
그녀의 초승달 같은 눈썹이 상큼하게 위로 올라갔다.
쾅!
순간, 와이번의 몸에 불꽃이 작렬했다.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던 와이번이 허공에서 휘청하더니 이내 방향을 선회하여 다시 날아올랐다.
아리안이 불꽃을 작렬시킨 주인공을 찾았다. 자신의 오감을 자극하던 그 마법사였다.
‘바보같이…… 두었으면 베었을 것을!’
도와준 것이라면 그다지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 온다!”
“한꺼번에 공격하라!”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오직 둘만은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여유로운 태도로 와이번을 구경하고 있었다. 흑야와 혁련소다. 검조차 뽑지 않은 그들을 보며 아리안은 보석 같은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와이번 정도는 우습게 여길 정도의 실력을 지녔단 말인가?’
와이번은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드래곤이 없는 세상에서 와이번은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 올라 있는 몬스터의 제왕이다.
엄청난 힘을 지닌 와이번의 발톱은 마법방어막이 심어진 갑옷도 쉽게 찢어발긴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간들만이 상대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먼저 상대의 몸에 검과 발톱을 찌르는 쪽이 이긴다.
히히힝!
기사들의 방어를 우습게 뚫어 낸 와이번이 말 한 마리를 꿰차고 하늘로 날아갔다. 발톱이 파고든 말의 몸통에서 붉은 피가 후드득 쏟아지며 기사들의 육신을 더럽혔다. 레이놀드가 고함을 질렀다.
“요란! 요란은 어디 있느냐!”
그는 마법사를 찾았다. 마차 위에 여전한 자세로 앉아 있는 요란을 발견하고는 시뻘게진 얼굴로 분통을 터뜨렸다.
“나의 말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넌 뭐 했느냐? 네놈에게 들어가는 돈이 도대체 얼만 줄 알고나 있느냐? 돈을 받아 처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팔짱만 끼고 똥 멋을 부리라고 네놈에게 오백 골드를 처바른 줄 알아! 내, 오늘 네놈의 목을 베고 다른 마법사를 찾겠다!”
레이놀드는 매우 분노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요란을 대동한 것이다.
그러나 요란은 마차 위에서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사태를 방관했다.
요란의 효용 가치 때문에 가급적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레이놀드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까지 요란이 자신에게 했던 무례한 행동들에 대한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각하! 고정하십시오!”
근위대장이 황급히 레이놀드를 만류했다.
“비켜라!”
“각하! 이번 영지 순찰까지는 그가 있어야 합니다. 고정하십시오!”
레이놀드는 제국에 소문난 마스터다. 비록 낙하산 귀족이라 비난을 받고는 있지만 그도 한때는 엄연한 제국의 장군이었으며 일대일로는 어지간해선 지지 않는 강자였다.
그런 레이놀드가 검에 오러를 품고서 길길이 날뜀에도 불구하고 요란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되레 경멸에 가까운 눈빛을 하고서 레이놀드를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요란 경! 어서 각하께 사과하시오!”
“뭘 사과하란 말인가?”
“저, 저…….”
근위대장이 할 말을 잃었다. 그저 머리 한 번 숙이면 끝날 것을 항상 저런 식이다.
“이곳이 와이번의 영역임을 모르진 않았을 테고, 그곳에 천막을 치고 흥청거려 와이번을 자극한 게 누군데? 흥! 드래곤이 안 온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요란의 차가운 시선이 삶은 돼지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레이놀드를 향했다.
이건 도저히 같은 편으로 봐줄 수 없는 상황이다. 혁련소는 요란을 매우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흑야의 무심한 눈길도 요란을 향해 있었다.
[특별한 마법사였군.]
[그러게 말입니다. 같은 편이어서 한통속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둘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레이놀드가 분에 차 외쳤다.
“추악한 마법사 놈! 넌 오늘부로 계약 해지다! 나와 계약 해지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네놈도 잘 알 것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앞에서 꺼져 버려!”
“각하…….”
근위대장이 죽을상을 하고서 만류했건만 상황은 기어코 최악으로 결말이 나 버렸다.
요란이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계약 해지 좋지! 내놔!”
그가 손바닥을 레이놀드에게 내밀었다.
“이, 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레이놀드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당신이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했으니 남은 임금은 지불해야지. 안 그래?”
“요란 경!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근위대장이 소리쳤다.
이미 요란의 주위는 레이놀드의 기사들이 둥그렇게 에워싼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란은 전혀 위축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남은 임금까지 요구하고 있다.
* * *
“제법 배짱까지 있는 자군요.”
“힘에서 자신이 있어서 저러겠지. 조금 전 저자가 날린 마법 공격을 보니 꽤 높은 상위 계열의 마법사로 보이더군. 그 정도면 최소 5클래스야.”
흑야는 요란이 아리안을 덮쳐 가던 와이번에게 빛의 화살을 만들어 날려 보낸 것을 보았었다. 혁련소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5클래스! 그게 정말입니까?”
“틀림없어. 언젠가 6클래스의 흑마법사와 싸운 적이 있었지. 그때 그놈과 저자를 비교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이야. 저 돼지가 미쳤군. 말 한 마리 때문에 저 정도의 마법사를 해고하다니…….”
흑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담긴 눈길을 레이놀드에게 주었다.
마법사들은 매우 존중받는 존재들이다. 인간의 영력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닌 그들을 확보하기 위해 거의 모든 제국들은 거금을 쏟아붓는다.
지금은 상위 계열의 마법사와 마스터의 보유 수가 국력의 척도로 여겨지는 세상이다. 세상을 통틀어 오십여 명에 불과한 5클래스의 마법사라면 그 어떤 제국이나 왕국을 가더라도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그런 귀중한 자원을 레이놀드가 내치고 있는 것이다.
“저자! 우리가 고용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예! 어차피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제대로 된 마법사 하나쯤은 있어야지요. 좀 배우기도 하고…….”
“좋긴 하다만, 돈이 많이 들 텐데…….”
“제게 금강석이 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보수야 그것으로 충분하겠지만 과연 저자가 촌구석에 오려고 할까. 그게 문제지. 지금 당장 홀베른으로만 가도 후작은 그냥 줄 텐데 말이지.”소문나다ㅣ
혁련소가 입맛을 다셨다. 듣고 보니 그랬다.
제국 인근에서 가장 강성한 공국인 홀베른에만 가도 요란은 최고의 귀빈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인구 일천의 보잘것없는 도시의 영주인 자신에게 고용될 가능성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고 봐야 했다.
혁련소의 실망 어린 얼굴을 본 흑야가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네가 원하면 강제로 해 줄 순 있다.”
“에이! 사람을 강제로 부리면 언제 나를 찌를지 모르는 칼을 품은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냥 깨끗이 포기했습니다. 어! 그냥 저렇게 끝나는군요.”
혁련소가 눈을 동그랗게 했다.
“저 돼지가 제법 판단력이 있었군. 그저 꼬리에 불붙은 성질 더러운 돼지로만 보았더니 그게 아니었어.”
“사실 저 백작 정도면 5클래스의 마법사라도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실력인데, 마법사를 죽였다고 소문나면 앞으로 다시는 마법사를 고용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군요.”
혁련소는 레이놀드의 육신에 잠재된 내공, 이 세상에선 마나라고 칭하는 것을 대번에 꿰뚫었다. 상당한 마나가 레이놀드의 몸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제아무리 5클래스의 마법사라도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선 마스터의 검을 피할 수 없다. 마나를 배열하는 시간에 이미 목이 날아갈 것이다.
혁련소의 눈동자에 흥미로움이 가득했다.
‘꽤 재밌는 작자야.’
그는 커다란 금덩어리를 손에 쥐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요란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초원을 걸어가는 요란의 뒤에 대고 갖은 욕설을 퍼붓는 레이놀드가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놈의 성질머리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았군. 저런 작자가 어떻게 백작이 될 수 있었는지, 쯧쯧쯧.’
* * *
레이번의 기습으로 벌어진 사태는 의외의 결말을 맞았다.
홧김에 요란과 계약을 해지한 레이놀드가 영지 순방을 철회하고 자신의 땅으로 돌아갔다.
각지에서 모여들었던 영주들도 각자의 영지로 돌아갔다. 요란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초원에 덩그러니 남게 된 둘은 레이놀드가 버리고 간 음식과 술로 배를 채우고는 자신들도 영지로 출발하기 위해 준비했다.
말들에게 푸짐하게 배를 채우게 한 둘은 아르소의 북쪽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혁련소가 밝은 표정으로 흑야를 돌아봤다.
“어이없게 끝났군요. 차라리 잘됐습니다. 전 숙부께서 그자의 목을 벨까 무척 염려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입니다, 하하!”
“레이번이 그놈을 살렸지.”
“하하하!”
“아르소에 들렸다 가지 않겠느냐?”
“그곳엔 왜…….”
“그곳의 밀을 영지에 심어 볼까 해서…… 같은 토양에서 그토록 품질의 차이가 나는 이유를 알아야겠어. 종자에서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재배 방법에서 다른 뭔가가 있는지 알아 봐야겠다.”
“언제는 영지를 떠나 세상을 돌아다니자고 하시더니…….”
“네가 그곳에 남겠다며?”
“그렇군요. 하하! 좋습니다! 기왕 아르소에 간다면 마법주머니와 통신석도 좀 구입해야겠습니다. 없으니 무척 불편하군요.”
둘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적당한 속도로 말을 몰았다. 이 정도의 속도로 가면 영지까지는 이틀 정도가 걸린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둘의 머리 위로 두 개의 달이 떠오른다.
둘의 모습이 초원에서 완전히 사라질 즈음, 그들이 있던 곳에 사람 하나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요란이었다.
“저자야, 저자가 독수리를 죽였어.”
그는 둘이 사라져 간 방향을 응시하며 눈을 반짝였다.
“훗훗! 재밌겠군.”
무엇이 재미있단 말일까. 요란의 눈이 반짝 빛을 발하더니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사라져 간 방향은 혁련소와 흑야가 사라져 간 곳과 일치했다.